EP.849부 3부 2장 23 충격과 공포
모든 상황에 있어서 가장 빠른 이동기는 순간이동일 것이다.
복잡하게 벡터니 속력이니 따질 필요 없이, 순간이동은 말 그대로 한 찰나의 순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로 과학의 영역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과학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한가?
-적어도 100년은 더 연구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공간의 연속성에 대해 논해봐야 할 텐데....
-이능력으로 순간이동 가능한가?
-당근빳다죠.
마력의 힘만 있으면 순간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장 청송, 문신사만 하더라도 그림자 속으로 공간을 접어 다니는 게 그녀의 주특기였다.
과학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마법, 신비의 문이다.
이 신비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그만한 마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마법이라고 한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카카롯트도 순간이동에 기를 쓰는데, 순간이동에 마력이 안 드는 게 이상하잖아.'
선의철의 3cm를 18cm로 늘리기 위해서는 큐브 27개가 필요한 만큼, 마력이 존재하더라도 이능력으로 어떤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원동력이 필요한 법.
-순간이동에도 마력이 들어간다고요!
-얼마나?
-하루 자고 나면 회복될 정도?
-그럼 그냥 비행기 타고 다니는 게 더 좋은 거 아니냐?
-그래서 자주 안 쓰잖아요.
마법에 물리법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뭔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하다.
순간이동이 왜 필요한가.
바로 저곳에 있는 적장, 대지의 신관을 쓰러뜨리기 위해서이다.
다른 모든 자로부터 벗어나 대지의 신관에 닿기만 하면 우리의 승리다.
그러나 나는 순간이동이 불가능하다.
순간이동에 가깝게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렇게 이동하고 나면 모든 마력이 전부 소모되고 만다.
나는 마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대지의 신관과 혹시 모를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마력을 온전해야 했다.
그렇다면 순간이동이 아닌 방법으로 가장 빠르게 대지의 신관에게 닿는 방법은?
그중에서 마력을 가장 적게 사용하는 방법은?
평소에 마력을 모아두고, 그걸 이용한다.
축적된 마력을 폭발 시켜, 그걸 추진력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포탄이, 내가 된다!
끼요오오오오오옷!!
나는 날개를 최대한 구체형으로 만들어 굴렀다. 몸이 앞으로 구르는 것에 대해 어지럽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마, 막아!!"
적들은 나를 폭탄으로 알고 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 다른 창염탄과 똑같이 생겨 구분하지는 못하는 게 당연.
"실드 전개!"
그래서 적들은 드넓은 마력의 보호막을 둘렀다.
저들은 우리-전방을 향해 마력으로 우산과도 같은 방어막을 펼쳤고, 폭탄은 방어막에 닿아 방어막을 크게 뒤흔들 것이다.
방어막만.
창염탄은 보호막에 막혀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할 터.
괜찮다.
어차피 전투를 여는 축포니까.
나와 함께 발사된 모든 폭발은 나를 띄우기 위한 '추진체'니까.
[변신.]
나는 나를 감싸고 있던 마력의 껍질을 찢으며 날개를 펼쳤다.
"히이익!!"
갑자기 구체 안에서 괴인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가이아나치의 병사들이 기겁하며 놀랐다.
그러나 보호막을 의지하는 듯, 겁은 먹되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육탄공격을 감행해도 보호막이 지켜줄 거로 생각하는 걸까? 저들은 나를 직접 상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물론, 나도 저들을 상대할 생각은 없다.
탓.
두 발을 동시에 바닥을 디디며 자세를 낮추고.
콰과과광!!
[창염의 피닉스.]
때마침 터진 폭발이 내 뒤에서 앞으로 터져 나오며.
[사★출!]
나는 마치 미사일처럼 폭발과 함께 우리 날았다.
비록 로켓의 추진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바로 뒤에서 터진 창염탄은 나를 밀어 올리기에 충분한 파괴력이었다.
"어, 어어?!"
새애애액ㅡㅡㅡㅡ!!
적들의 시선이 자연히 나를 향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호막은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지 않았고, 나는 보호막을 뛰어넘어 미사일과 같이 날아갔다.
나는, 전방의 적들을 뛰어넘어 하늘을 날았다.
폭발이 보호막을 휩쓸었고, 나는 교란된 시야 위로 날아올랐다.
[창염, 개진.]
펄럭-!
불꽃의 날개를 뒤로 펼쳤다.
두 손은 앞으로 뻗어 공기저항을 줄이며, 동시에 날개 뒤로 마력을 뿌리며 자체적으로 속도를 높인다.
"으아악! 불씨가 떨어진다!!"
"보호막 위로 올려!!"
당연히, 내가 날아가면서 날개에서 흩어지는 불씨는 플레어처럼 아래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를 보호해!!"
최전방을 제외한 모든 병사가 일제히 머리 위로 방패를 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진 방패는 마치 전경들의 것과 같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두터운 판금이었다.
그러나, 창염은 방패 자체를 불태우지 않는다.
"크윽?! 보호막이 불에 탄다?!"
"조심해! 마력을 녹이는 불꽃이다!"
"그렇다고 안 막을 수 없잖아! 젠장! 투구에 닿으면 머리카락을 전부 불태울 거라고!!"
그들의 방패 위로 떨어진 불꽃은 방패에 씐 마력 코팅을 녹여 방어력을 낮추며 사그라들었다.
'머리에도 닿으면 방어력 엄청 낮아질 텐데.'
투구에 닿으면 잔불이 모발을 태워버릴 텐데,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다들 키가 작아서 머리에 닿지도 않네.'
키가 크면 먼저 불씨에 닿아서 타버렸을 텐데, 어떻게 전부 다 키가 140cm에 가까우니 맞는 순서가 대동소이했다.
'좀 더 빠르게.'
화르륵!!
날개에 추진력을 넣어 더 빠르게 날아간다.
전방의 적은 뛰어넘었지만, 불행히 적들은 길쭉한 통로에 넓게 포진해있다.
즉, 전방에서 내가 천장에 닿을 위치에서 날아가는 건 금방 소식이 전해졌을 터.
"잡아!!"
적의 후방에서 나를 주시하던 자들이 하나둘 나를 향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최소 S급 능력자로 보이는 이들, 쌍둥이로 보이는 갈색 머리칼의 두 형제는 엄청난 마력량을 가지고 있었다.
"신관 님의 곁으로는!"
"보내지 않는다!"
[한 명만 말하면 안 되나?]
쌍둥이라는 걸 어필하듯, 둘은 서로 말로 호흡을 맞췄다.
"그건!"
"거절한다!"
[귀찮게.]
귀가 두 개인 건 저걸 끊어서 듣기 위함이 아닐 텐데, 두 형제는 위아래로 땅을 움직였다.
구구구.
격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있던 격벽이 닫히는 것처럼, 공간 자체를 닫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에 있는 '대지의 신관'을 지키기 위해.
'저 여자다.'
보인다.
위아래로 닫히는 거대한 흙의 격벽 너머, 나를 노려보는 작은 체구의 모델 같은 여인이 있었다.
키는 140cm이나, 외형이 지륜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여자.
마치 슈퍼모델을 그래픽편집으로 비율을 줄인 것 같은 모습에 상당히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스태프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수의 가지!'
원작 게임에서 S급 코어웨폰으로 평가받는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 눈앞에 있다.
그걸 들고 있는 저 여자가, 최소한 SS급으로 보이는 저 여자가 아니면 누가 대지의 신관일까.
지륜과 이상할 정도로 닮은 저 여자가 아니면!
[창염개진.]
한 번 더 날개의 불꽃을 방출한다.
순간 부스트를 이용해 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날아간다.
문이 위아래로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두 S급 적들은 나를 비웃으며 하나로 뭉쳤다.
닿기 직전-
끼이익!
"어디서 온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어버려, 테러범! 넌 못 지나간다!"
벽은 닫혔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나는.
[마력이 깃든 벽은, 내게 유리창과 다를 바가 없지.]
* * *
"크으, 그림 나온다. 그림 나와!"
회장, 조 씨는 영상 속 피닉스 미사일을 보며 손뼉을 치고 웃었다.
"아까 나올 때 장면 찍어둔 거 있지? 원래 PV장면에 쓰려고 했던 거, 그냥 번데기 우화하듯이 하지 말자. 조금 전에 쟤가 했던 장면으로 교체하자고. 손으로 껍질을 찢듯이 뛰쳐나오는 거로."
"협조 요청 해두겠습니다."
하선태는 회장의 지시 사항을 꼼꼼히 받아적었다.
"크으. 적의 화망을 뚫고 서커스 하듯 날아가는 장면도 찍고 싶은데."
"마력이 많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크으, 아쉽다. 아쉬워."
몸을 데굴데굴 말아서 가는 게 아니라 구체 안에서 순간이동을 하듯 튀어나오는 것이라거나,
폭발과 함께 뛰쳐나온 것이라거나,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뻗은 두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날아간다거나.
"물리법칙은 괜찮은 겁니까?"
"영상미적으로 간지만 나면 돼. 마력으로 나는데 무슨 물리법칙 타령이야?"
조 씨는 캔맥주를 들었다.
"멋지면 장땡이야."
"...그럼 저 장면이 초반부의 백미겠군요."
펄럭!!
쌍둥이와도 같은 남녀가 나타나 위아래로 벽을 만들어 닫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피닉스가 벽에 닿기도 전에 먼저 닫힐 것만 같은 기세였다.
"더, 더 빨리! 그래! 역시 연출을 아는 녀석이야!"
피닉스의 날개가 더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피닉스는 전력으로 앞으로 날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 날아! 차원문 닫혀서 우주 공간 속 미아가 되기 전에 블랙홀을 가까스로 탈출했던 것처럼!"
1초, 아니 0.1초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벽을 통과해서 계속 나아가는 피닉스의 모습을 보며-
[창염.]
두 팔 벌려 환호하던 조 씨는 보고 말았다.
[펀치.]
한쪽 주먹을 어깨 뒤로 넘긴 피닉스가 닫힌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아니, 씨발."
와 장 창 !!!!
벽은 부서졌다.
피닉스는 벽을 주먹으로 부수며 구멍을 뚫었고, 앞으로 손을 뻗어 두 쌍둥이 형제를 향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서걱!
그리고, 두 손을 흩뿌리듯 X자로 휘둘렀다.
푸른 불꽃이 채찍처럼 휘날려 쌍둥이의 등을 때렸고, 피닉스는 날개를 접으며 아래를 향해 빠르게 고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애액!
마치, 미사일의 탄두와도 같이 피닉스는 날아갔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마치 독수리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니."
콰ㅡㅡㅡ앙!!
"미사일 배빵은 아니지!!!"
땅의 신관의 아랫배를 향해, 피닉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들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