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48화 (848/1,497)

EP.848부 3부 2장 22 서전

미연시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데이터로 나타낸다.

호감도라는 지표는 주인공과 히로인 사이의 감정을 가장 쉽게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데이터이며, 많은 연애고자들도 미연시를 할 때 호감도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가상현실 미연시의 호감도는 조금 다르다.

가상의 2D 데이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가상의 현실 속 존재들을 마주하기 때문에, 호감도는 정해진 선택지에 따라 오르는 알고리즘과는 사뭇 다르다.

창천의 데스디나스가 다른 가상 현실 게임과 확연히 다르게 인기를 끌었던 점은 바로 이 호감도로부터 시작되는 진정한 가상 현실의 체험이었다.

히로인이 잘생기고 능력좋은 남자 주인공에게 쉽게 반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플레이어 누구나 가상의 존재들과 감정을 진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은 그만큼 게임 속에서 히로인들과의 상호교류가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스러웠다는 것.

누군가가 그러더라.

분명 가상현실게임이기는 한데, 분명 미연시 베이스인 걸 알고 있는데, 뭔가 느낌은 러브 코미디 속 남자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래서 각 히로인 루트를 탈 때가 되면, 플레이어는 히로인들에게 '진심'이 되는 경우가 정말 잦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히로인을 공략할 때는 항상 진심으로 응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했다.

공략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 여자를 사귀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들을 대했다. 그래서 나는 열 여섯, 아니 어쩌면 17명이라는 여인들을 상대로 매번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하고 사랑했다.

진심을 담아.

물론 지금의 내 사랑은 신라와 하랑, 유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20년의 지구에 내 조각들을 남겨두고 와서 나는 창염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20년의 지구에 남겨두고 와서 잘라낸 줄 알았던 흔적들이 내 기억, 내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건 전 여친들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차인 건 아닌만큼, 내가 찼다고 할 수 있는 만큼, 내게는 아직 히로인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마음과 경험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한 때 진심을 다했던 여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지륜.

착한 여자다.

안경이 정말 잘 어울리는 누님으로, 그녀는 무엇이든 포용해주고 상냥하게 받아주는 어머니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이 조금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이는 지륜을 상대로 아이를 가지게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더라.

지륜 엔딩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아이를 낳게 해준 지휘관에게 더욱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만큼 지륜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개인 루트가 아니면 플레이어만큼 아이를 좋아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지구의 영향으로 정신이 오염되고 가이아나를 나치마냥 다루는 모습은 두고볼 수 없다.

대지의 신관이 하는 행위를 두고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지륜."

20년의 지구에서는 오염된 정신을 감당하기 어려워 히드라가 전면으로 나서야 했을 정도로 영향을 받기 쉬운 존재다.

그러니 그녀와 만나야 한다.

그녀와 만날 수 있는 통로인 대지의 신관을 붙잡아야한다.

-저는 누군가에게 제 사랑을 주는 걸 좋아해요. 아이들은 순수해서 제가 주는 사랑에 대해 확실하게 반응해주죠. 제가 사랑을 주는 이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한 때 잠깐이나마 사랑했던 여인을 위하여.

-설령 잘못된 존재라고 한들, 엇나간다고 한들…. 제가 사랑을 주면 분명 바뀔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녀를 오염시키는 대지의 신관을 죽인다.

* * *

한 조직의 국가를 상대하는 건 상당히 힘들다.

하지만 조직이 국가 단위로 커진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곳은 이계, 테라.

마력이 최고 갑인 이 세계에서는 마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

뉴 청화단의 사람들이 나를 따르는 것도 청화의 사도인 나의 힘을 믿기 때문.

그러므로 적의 수장인 '대지의 신관'과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힘을 충전하여 만전의 상태로 만들었다.

"피닉스 님."

지상으로부터 유일하게 햇빛이 닿는 곳, 작은 샘에 발을 담그고 있던 내게로 하리가 다가왔다.

여전히 카르나를 닮은 금빛의 그녀는 140cm 어린 아이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나를 상대로 뒤에서 조용히 끌어안았다.

"잘 될 거예요."

"당연히 잘 되어야지."

잘 안 된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끌고 있는 건 나 혼자만의 조직이 아니라,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 명령 한 마디에 의해 목숨이 날아갈수도 있는 이들.

"경우의 수를 따지거나 할 필요 없어.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군대를 오는 족족 물리쳤으니까."

나는 청화단 사람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마력만 소비되는 상태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내 마력으로 창염의 사도들을 늘리고, 그들을 다소 혹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장에 매일같이 투입했다.

그래도 그들은 다행히 적극적으로 나를 지지해줬다.

가이아나치의 실체를 알고 난 뒤에 아이들의 미래를 전부 없애려고 하는 대지의 신관에게 환멸을 느낀 것도 있지만, 그들도 창염이 지는 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사도들은 지금 자고 있지?"

"네. 모두 출격 전에 한 번씩 그거 하고 자겠다고 다들 누웠어요."

그거.

그게 무엇이냐.

바로 딕배트다.

내가 창염의 결계 속에서 그들의 처녀를 확인하며 동시에 딕배트를 밀어넣은 이후, 그들은 첫경험을 에테르 딜도로 겪었으면서 그걸로 또 같은 경험을 해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사도들이 직접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딕배트를 양옆으로 길쭉하게 만들었다.

덤으로 속옷으로 착용할 수 있게 만들었기에, 두 명의 사도는 하나의 딕배트를 두고도 동시에 섹스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스트랩 온 딜도를 사용한 레즈섹스.

나는 반기지 않지만,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신라는 몹시 만족할 것이다.

"피닉스 님. 다들 피닉스 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피닉스 님이 안계셨으면 다들 무력하게 미래를 제한당했을 거예요."

"내가 아니더라도 그런 미래는 당도하지 않았을 걸?"

가이아나치가 바라는 페도피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청화단을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실패하더라도 가이아나치가 본격적인 결실을 맺기도 전에 테라가 망할테니까.

물론 후자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나는 전력을 다해 가이아나치와 대지의 신관을 막을 것이다.

"하리. 이번에 잘 봐. 내가 어떻게 나라를 구할 건지. 가이아나 왕국을 구원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비슈니아 왕국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지 판단해."

나는 하리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그녀의 나라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주기로.

"나를 믿나?"

"물론이죠, 주인님."

"...여기서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그렇긴 한데, 뭐 상관없지."

나는 하리의 품에서 벗어났다.

"태양열 충전 끝났다. 지금부터 전력으로 가이아나치를 박살낸다."

* * *

가이아나 왕국의 지형은 분명 개미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좌우로 사방이 탁 트인 것처럼 공간이 넓어보이지만, 실제로는 축구장만큼의 공간이 통로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진격하는데 있어서 좌우폭도 정해져있고, 서로 적을 마주했을 때 싸울 수 있는 전력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최전방에 선 병사들의 전력이 중요했다. 그들이 얼마나 적 최전방의 적을 상대로 수월하게 싸워 이기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다.

"정말 작전대로 하실 거예요?"

"그럼."

내가 제안한 작전에 다들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게, '이게 작전?'이라고 다들 처음에 얼굴 표정을 찌푸릴만한 작전이었으니까.

"최전방에서 포격하며 전진. 이게 끝?"

"이것만큼 적절한 전술이 또 없지."

지형이 지형인만큼 전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원래 압도적인 힘 앞에는 어떤 전략 전술도 필요없는 법이야. 믿어. 아니면 내가 하는 걸 잘 봐."

나는 내가 이끄는 파괴전차의 머리 위에 선 채 가만히 있었다.

현재 나의 전용기, 전쟁인도자는 내가 아닌 하리와 크리슈나가 조종석에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기 보이지? 정규군."

정면.

우리의 앞에 드디어 막대한 수의 병사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수가 얼핏봐도 천 단위는 훌쩍 넘을 것 같았고, 중간중간 B~A급으로 보이는 자들도 100 가까이 이르는 듯 했다.

-대지의 신관께서 명한다! 반란분자들은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간부들을 바치는 자들은 크게 포상할 것이다! 왕국에 충성하라!

-가이아나 왕국의 위대한 진보에 동참하라! 그대들은 이 땅에 태어난 자들로서 그럴 의무가 있다!

"선전 한 번 참 구식이군."

나치의 수법만 넘어와서 다행이다.

만약 히틀러나 괴벨스가 테라로 넘어와서 테라나치를 새로 만들었다면, 그들을 모두 죽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국의 병사들 모두를 죽일 필요는 없다.

적들의 눈에는 전쟁을 바라지 않는 간절함이 가득했고, 우리 청화단을 몰살하겠다는 악의를 가진 이들은 1%가 되지 않았다.

그 1% 안 되는 이들 대부분이 키가 140cm가 되지 않는 순혈이었고, 하필이면 또 A급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청화단을 물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길 수 있다면 승리를 쟁취할 뿐.

"포격 준비."

"모든 전차에 명한다! 포격 준비!"

피버들의 입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푸른 구체로 응축된 마력 덩어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피닉스 님. 이거….]

"괜찮다."

나는 마력의 구체 속으로 몸을 던졌다.

몸을 최대한 말아 웅크린 다음, 전방을 날개로 몸을 보호하며 구체의 강도를 유지했다.

"Trust Me."

작전명, 피닉스 폴.

"발사!"

나는.

콰ㅡㅡㅡㅡㅡㅡㅡ앙!!!

직접, 포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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