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6 3부 2장 18 후방 트롤 주의
[리멤버, 노 가이아나.]
투두두두.
우리는 마구잡이로 마탄을 발사했다.
창염의 마력이 실린 마탄은 우리를 반기기 위해 나온 시민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아아악!"
물론, 죽지는 않았다.
창염은 비살상이고, 그렇기에 청화단은 안심하고 조정간을 연발에 놓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끄아아아악!!"
죽을만큼 잠시 아플 수는 있지만, 일단 창염이 실린 마탄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털썩, 털썩.
하나 둘 사람들이 기절하기 시작했고, 정규군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빠르게 중요 위치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요새의 입구로.
누군가는 병사들이 주둔하는 곳의 입구를 쏠 수 있는 포인트로.
또 누군가는 우리의 뒤를 칠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골목 바로 앞으로.
이미 지형은 전부 숙지했다.
4군단으로부터 받은 지형 자료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성벽 앞 시가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실탄을 든 자들을 먼저 제거한다. 타이탄의 위치가 보이거든 즉시 말하도록.]
"""예!!"""
청화단 안에서도 나름 싸울 줄 아는 자들을 사방으로 보냈다.
테라의 중심에서 지구의 전술을 외치다.
나는 트로이의 목마를 시전했다.
말이 트로이의 목마지, 그냥 우리 병사들과 부하들에게 4군단의 옷을 입혀 도시 안으로 무혈입성 했을 뿐이다.
군의 깃발만 대충 바꿔서 다른 성을 일거에 점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는데, 역시 전략 전술은 조상님들의 지혜를 빌리는 게 최고다.
'병법이 괜히 있는 거겠어.'
기만전술.
우리는 스스로를 4군단으로 속였다.
물론 원래 이곳을 지나쳐 타르거트의 영지로 와서 우리를 학살하려고 했던 4군단의 인원수보다 훨씬 부족했다.
하지만 그 수는 이곳의 병사들이 순간 속아넘어가기에는 충분한 수였다.
모든 어른들.
남녀를 떠나, 청화단에 있던 모든 어른들이 모두 정규군의 군복을 뒤집어 썼다.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전투원이 아니지만, 도시를 점령하여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청화단은 과감히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결과는 대성공.
좀 더 확실한 기만을 위해 4군단장을 데려온 건 정말 마스터피스였다.
[덕분에 아주 쉽게 들어왔군.]
"그, 그럼 이제 살려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약속이지.]
탕.
"어...째서…?"
[살려는 줄게.]
나는 4군단장을 향해 마탄을 날렸다.
[죽지 않아. 꼭 죽을 것처럼 그렇게 바라보지 마라. 안 죽으니까.]
"크, 허억…!"
4군단장은 순식간에 마력이 불타 바닥에 고꾸라졌고, 나는 불꽃에 타들어가는 그의 머리칼을 향해 잠시 애도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려고 한 죄는 용서할 수 없지. 너의 모근에 사형을 처한다.]
다시는 머리카락이 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었다.
청화단과 아이들을 학살하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요새의 그 자처럼 머리에 바람구멍을 만들까 고민도 했지만, 아직 저지르지는 않았고 또 우리에게 도움도 줬으니 일단 머리만 태우고 넘어가기로 했다.
[상황봐서 나중에 죽여도 무방하니.]
당장은 도시 내부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들어오게 해준 것에 감사를.
[다들 이미 위치를 잡았군.]
대로에 가득하던 청화단은 이미 진작에 방으로 흩어졌다.
[피아가 구분되지 않는 와중에 정규군 복장을 한 반란군이 민간인을 향해 총까지 쏜다? 아비규환 그 자체지.]
가이아나 왕국의 정규군 복장을 입고 있는 만큼, 시가전을 펼치게 되면 쉽게 우리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투두두두두!
일부 청화단 단원들이 벌써 요새 위에서 내려오는 길을 차단하여 봉쇄했다.
요새 위에 있던 이들을 향해 마탄을 쏴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마탄과 함께 날아든 미니피닉스들이 성벽 위의 정규군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쪼아 불태우고 있었다.
[성벽 쪽은 금방 끝나겠어.]
성벽 위가 푸른 불꽃으로 활활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아주 만족스럽다.
사실상 병력들이 몰려있는 성벽쪽이 제압된 이상, 나머지는 곳곳에 퍼져있는 적군을 쓰러뜨리면 될 일.
그보다 먼저, 내가 적의 지휘부를 날려버리면된다.
[나 혼자 싸울 수는 없지.]
나는 괴인체의 건틀릿에 마력을 불어넣은 뒤, 대로를 당당히 걸었다.
[어그로 끄는 중이니까 빨리 이쪽으로 전부 몰렸으면 좋겠는데.]
청화단 사람들이 죽지 않으려면 내가 모든 실탄 사격을 감당해야한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적들은 내 예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반란군은 수괴부터 죽여야지.]
사방에서 나를 향해 겨누는 불렛 라인이 느껴진다. 총구가, 살의가 나를 향해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쪽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나는 빠른 전투의 종결을 위해 지휘부로 추정되는 건물을 향해 바로 달렸다.
타다다당!
어느새 정규군은 정신을 차린 건지, 나를 향해 무수히 많은 실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력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납덩어리는 내 몸에 벌집으로 구멍을 만들었다.
[응, 에테르체.]
실탄은 내 몸을 통과해 바닥에 도탄되었다.
적들은 총알을 피하지도 않고 뚫고 오는 내게 몹시 당황했고, 그동안 나는 사격이 날아온 위치를 파악해 달렸다.
[파이어 인 더 홀.]
전방에 창염 수류탄 하나, 투척.
[콰ㅡ앙.]
옆 건물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창염이 안에서 폭발했다. 사람들 중 일부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떨어지는 사람은….
쿵!
[...안 죽었겠지.]
등부터 떨어졌고 화단에 떨어졌으니 아마 살 것이다. 어디 크게 아프다면, 사람을 향해 함부로 총을 겨눈 대가일 것이다.
[다치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땅을 두 발로 디딘 뒤.
[전부 끝낸다.]
하늘 높이 뛰어 올랐다.
두 발 아래로 마력을 분사하며 로켓처럼 치솟았고, 나는 순식간에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떠올랐다.
날개는 펼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할 건 날개가 필요없는 공격이니까.
[목표는….]
유리창.
나는 나를 잡아당기는 중력에 몸을 맡기며, 한쪽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창염개진.]
뒤로 날개를 뿜어냈다.
펄럭이기 위한 날개가 아닌, 마력을 등 뒤로 분사하는 식으로 마력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며, 나는 건물 안으로 단숨에 들어갔다.
한 개 층의 천장을 뚫으며 바닥에 착지한 뒤, 몸을 구성하는 마력을 강화했다.
타다다당!
내 앞에 있는 제복의 사내들이 나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그들에게 다가가 손등으로 병사들을 쳐날렸고, 가장 안쪽에 있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인가?]
"...괴물."
140의 작은 체구에도 남자는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190 정도는 되어보이는 위압감을 가진 사내는 내가 한참 내려다봐야 할 정도로 낮았다.
"네가 저지르는 짓이 무슨 짓인지 아느냐?"
[잘 알지.]
한 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세계를 구하는 중이다.]
탕.
* * *
우리가 습격한 도시, 트로이스는 너무나 손쉽게 점령되었다.
트로이스 주둔군의 대장 헥토르는 대머리가 되었고, 우리는 트로이스의 병사들을 감옥에 가뒀다.
"모두 들으시오! 우리는 청화단이오! 가이아나 왕국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이곳에 모였소!"
나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레이를 앞세워 사람들에게 가이아나 왕국의 진실을 알렸다.
혼혈들을 강제로 가두고 비뉴시르죠 가스를 살포하던 행위.
진실의 폭격에 시민들은 쉽게 우리 청화단의 말을 믿지 않았다.
"보시오!"
그래서 준비했다.
최첨단 영상석.
'영상 증거는 기본이지.'
내가 본 장면의 시각적 기억을 마력으로 형상화하여 영상장치로 만들었다.
그걸 그레이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재생했고, 트로이스의 주민들은 가이아나 왕국의 실체를 한눈에 보고 말았다.
"우리와 함께 해주시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가이아나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
청화단의 적극적인 선언에 사람들이 하나 둘 동화되기 시작했다.
설령 청화단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는 않더라도, 가이아나 왕국의 실체를 안 이상 청화단과 직접 척을 지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하군."
"무엇이 불안하다는 겁니까?"
"너무 잘 풀려서."
지구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청화단의 사상자는 거의 전무했고, 적들은 과격분자를 제외하면 거의 다 제압하는 선에서 끝났고, 우리는 트로이스라는 도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정령을 상대로도 승리하고, 인간을 상대로도 승리했다.
이런 승리의 연속은 내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이렇게 쉽게 이겨도 되는 건가?"
"예?"
"분명 뭔가 엄청난 사고가 터져야 하는데."
경험상 이쯤되면 누구 하나는 트롤링이 일어나야한다.
하지만 그런 게 없다.
20년의 지구보다 훨씬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넘쳐나는데, 20년의 지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왜 안전한 게 더 불안하지."
도대체 어디서 어떤 사고가 생길까.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사고 안 일어나니까 좋다.
'히로인이 없어서 그런가.'
* * *
그 시각.
"아, 움직인다."
크리슈나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은유하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피버들에 안도했다.
"잘 해결됬다는 거네요."
"그러게요. 휴."
피버들의 등에는 이미 트로이스 점령을 위해 떠난 어른들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극소수의 인원만 남아 아이들을 지켰고, 트로이스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이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구구구.
피버들이 출발했다는 것은 피닉스가 안정적으로 트로이스를 점령했다는 것.
잠시 뒤.
"...퍼펙트하네요."
피닉스와 선봉대는 트로이스를 무사히 점령했다.
다친 사람도 없고, 사상자도 없고, 뭔가 특별히 경각심을 가질 사고도 없었다.
"정말, 후우…."
은유하는 안도하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일을 진행하다니. 지구의 일이 트라우마가 된 게 분명해요."
"라기보다는 과거에는 저렇게 했는데, 지구에서는 이상한 변수가 생겨서 스트레스 받으셨던 게 아닐까요?"
"저기요, 요즘 자꾸 일부러 반대하는 것 같은데요?"
"때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도 좋은 것 아닐까요."
은유하는 하품을 하는 히카리의 입에 커피를 부어버리고 싶었다.
"자꾸 스트레스 주지마요. 스트레스 없는 게 얼마나 행복해보이는데."
"그렇긴하네요."
둘은 불안해보이면서도, 그래도 안도하는 듯한 피닉스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일 없어야할텐데."
"보통 그런 말 하면 사고 나는 거 알죠?"
"아니, 뭐 사고 나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고 날텐데."
"에휴, 차라리 저주를 해라. 이 아가씨야."
영국 스톤헨지에 차원문이 열렸다.
지구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차원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