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2 3부 2장 14 타르거트
인간은 믿을 수 없다.
내가 가이아나에 대한 저항군을 조직한 건 어디까지나 내가 지륜의 신관과 싸우기 위함일 뿐, 순수하게 이곳의 인간들을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한 6:4, 아니 7:3 정도.
'아이들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그냥 넘어가는 건데.'
가이아나는 아이들을 건드렸다.
전부 선의철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면, 전부 김누리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테라했거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들이 과연 서울의 청화단처럼 내게 적극적으로 따르려 할까?
아니다.
서울에서는 선의철이라는 거악이 있었고, 괴인에 대한 절대명령권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나는 일단 명목상 정령이고, 이곳의 인간들을 상대로 코어웨폰과 같은 마력의 무기를 나눠줄 수 있어도 괴인으로 만들어 절대적인 명령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절대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를 만든다.'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닌 동시에, 나의 명령을 목숨 걸고 따를 수 있는 존재를 수하로 만든다.
그게 바로 저 녀석, '타르거트'다.
"금방 왔네."
놈은 자신의 영역에서 이미 밖으로 나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마력을 일부러 뿌리면서 왔기에, 놈은 나의 마력을 느끼고 직접 마중을 나온 것이다.
"자기 집 망가질까봐 나와준 거 봐라."
"좋은 건가요?"
"호재지. 우리가 쟤 집을 본거지로 쓸 거니까."
정령은 짐승과 다르다.
동물의 분비물과 같은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다.
오히려 땅은 비옥하고 먹을 것도 많을 수 있다.
타르거트, 지파룡이 제대로 관리를 해놓았다면.
"나랑 싸워서 본인 집 망가지는 게 아깝다고 여기고 있다면, 분명 나름 집 인테리어를 잘 해놨겠지."
"그걸 빼앗으려는 건가요?"
"빼앗는 건 아니지."
잠깐 같이 더부살이 할 뿐이다.
"그레이! 아이들을 불러라. 이번에는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네? 무, 무슨 작전을 쓰시려고 하시길래...?"
"아이들의 노래가 필요하다."
정령은 물리적인 공격도 효과적이지만, 정신공격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어떻게 할 거냐면...."
나는 반란군에게 나의 작전을 가르쳐줬다.
그러자 어른들은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벌써 몇몇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쉬운 노래니까.'
일부러 어린 아이들이 부르기 쉬운 동요로 선택을 했다.
동요가 다 그렇듯, 아이들이 듣고 바로 한 소절 정도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단지 조금 개사를 했을 뿐.
"걱정하지 마라. 아이들을 위험하게 하는 게 아니야. 어차피 너희가 파멸전차로 보호하면 될 것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바로 시작해.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펄럭.
나는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샌드래곤과 싸웠던 때처럼 갑주의 형태로 몸을 바꾼 뒤, 타르거트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
정령아, 정령아.
헌집줄게.
새집다오.
아이들의 신난 노랫소리와 함께.
캬아아아아!!
[집 내놓으라는 건 못 참지.]
타르거트가 몹시 흥분하며 아가리를 벌렸다.
놈의 눈동자는 핏발이 섰고, 나는 아가리를 피해 날개를 펼치며 옆으로 비켜나갔다.
콰득!
허공을 씹었는데도 공기가 뭉텅 잘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놈의 공격을 피했지만, 타르거트는 금방 다음 공격으로 이어나갔다.
[헌집 준다니까?]
캬아아악!!
놈은 날카로운 꼬리를 휘둘렀다.
마치 아르마딜로를 연상케하는 피부의 끝, 꼬리에는 톱날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그 꼬리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카가가강!!
철판을 갈아버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전력으로 놈의 꼬리를 두 팔로 붙잡았다.
[보통은 나를 꼬리로 패대기치려하겠지.]
그게 거대한 마수와 작은 존재의 싸움이다.
[근데 나는 아니야.]
나는 놈이 꼬리를 휘두르려고 하는 걸 힘으로 당겼다.
놈은 꼬리를 휘둘러 나를 벽에 처박으려고 했지만, 내가 갑자기 강한 힘으로 당겨버리니 뒤로 딸려오기 시작했다.
카가가각.
이제는 놈이 발톱으로 땅을 긁기 시작했다.
내가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상승까지 하니,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쪽은 너보다 더 무거운 것도 들어본 적이 있단 말이다.]
지구로 날아오는 별 하나도 밀어내본 게 나다.
얼핏 보면 힘으로 드는 것 같지만, 팔과 꼬리 안에는 나의 창염이 빠르게 움직이며 타르거트의 꼬리를 휘감아 당기고 있다.
캬아앙...!!
나는 기어이 타르거트의 몸을 들었다.
헌 집 줄 게!
새 집 다 오!
그러자 아이들의 환호성과도 같은 노래가 울려퍼졌다.
나의 압도적인 위력에 아이들은 고무되었고, 몇몇 어른들도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작게나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억울하냐? 갑자기 살던 집을 빼앗겨서?]
캬아앙!!
타르거트는 억울함의 포효를 내질렀다.
나는 녀석이 상당히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운명은 정해진 법.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어차피 누군게에게 빼앗길 삶의 터전.
차라리 나중에 돌려주기라도 할 내게 잠시 양도하는 것이 더 낫다.
[나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적어도 테라를 점령하려는 혼돈의 무리에게 습격당해 지구의 중국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것이다.
[창염개진.]
나는 꼬리를 붙잡아, 놈을 벽에 휘둘렀다.
쾅ㅡㅡㅡ!!
거대한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지진이 울려퍼졌다.
놀란 아이들의 노래가 순간 끊겼고, 나는 타르거트의 몸 아래를 빠르게 살폈다.
덜렁덜렁.
[수컷이군.]
창염, 최대로.
쿵!
나는 바닥을 굴러 대자로 뻗은 놈의 가슴에 안착했다.
그리고 놈의 마력이 가장 밀집되어있는 곳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뽑아내면 잔인하니까.]
심장 부위를 향해 뻗은 손에 푸른 불꽃이 모였고-
[창염개진.]
쿵!
코어가 있을 부분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한 번 내려찍었다.
타르거트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파닥파닥 거렸고, 나는 주먹을 비틀며 마력을 방출했다.
[창염, 펀치.]
화륵.
아무리 강한 정령이라고 해도 심장에 직접 불질을 하면 이겨낼 수 없는 법.
[다음 생에는 암컷으로 태어나라.]
암컷이었으면 창염의 사도로 만들어줬을텐데.
유감.
* * *
그 시각.
가이아나 왕국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부서, '올림포스'는 비슈니아 왕국 방면에서 들려온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요새가 폭도들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예. 소식을 알려온 전령에 따르면, '잘라내야할 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허, 이럴 수가."
황색 머리칼의 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타이탄을 탈취당하기라도 했나? 도대체 왜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거지? 드라칸, 그 자가 어디 약한 자도 아니고 말이야."
"이것을 봐주십시오."
원탁의 가운데에 놓인 수정구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수정구가 비추는 화상은 푸른 날개를 펄럭이는 검은 갑주의 존재를 비추고 있었다.
"불?"
"그 쪽에서 온 자들일까요?"
"글쎄. 푸른 불꽃을 들어본 적이 있나? 애초에 불꽃이 푸른색일 수는 없어."
불꽃은 붉은색이다.
저런 식으로 푸르게 타오르는 불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선 문의는 넣어보도록 하죠. 공식적인 채널로 항의를 하면 뭔가 반응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극구 부인을 하든 아니면 진실을 숨기려고 하든, 뭔가 소식은 들려오겠지."
여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형의 괴물을 처치하고 잘라야 할 자들과 한 패가 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종잡을 수 없지만, 반란을 일으킨 이상 우리 가이아나의 적이다."
"그, 신관 님께는...?"
"신관 님께는 이런 일로 귀찮게 하지마. 고작 이 정도도 해결하지 못해서야 국방을 책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인의 엄포에 원탁에 모인 이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이걸 봐주시오."
여인은 원탁에 모인 관료들을 슥 훑은 뒤, 수정구에 비친 또다른 사진들을 꺼냈다.
"저건...?"
"벌레전차?"
"요새의 병사들 중 일부가 보낸 자료요. 안에서 푸른 불꽃이 나오는 걸 봐서는 폭도들의 병기로 추측되고 있소."
"내부에 있는 것은 타이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타이탄을 노획한 뒤, 위에 저런 형태의 추가 장갑을 달아놓은 것 같습니다."
"기동력을 현저히 낮춘 대신 방어력을 단단히 한다는 건가. 칫, 귀찮군."
관료들은 이형의 병기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면밀히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여인, 국방대신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도를 살폈다.
"......."
요새 인근.
그곳에는 정령학적 부친이 살고 있다.
'설마 무슨 문제 생기겠어.'
국방대신은 화상 속 푸른 불꽃의 괴인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 * *
"타르거트 속살 살살 녹는다!"
"정령도 구워먹으니 맛있군요."
"마력을 뽑아내고 난 뒤에는 그냥 생물일 뿐이니."
타르거트, 지파룡은 죽었다.
정확히는 나에 의해 마력의 핵이 뽑혀나왔다.
"육체를 이루고 있던 부분은 굳이 말하자면 식물의 뿌리나 줄기 같은 것이지."
"그런 것 치고는 안에 있는 살점이 야들야들한데요."
"다행이군. 혹시 맛 없으면 전부 태워버려야 하나 싶었어."
타르거트는 잘 익었다.
속부터 겉까지 아주 촉촉하게 잘 익었다.
겉은 바삭하게 구워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껍질이 상하여 쓰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저기, 주인님. 진짜로 그런 거 맞아요? 아무리 봐도 짐승같은데."
하리는 핼쓱해진 얼굴로 타르거트의 잔해를 가리켰다.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그 작은 구슬이 타르거트고, 저건 별개의 육체라니."
"마력으로 구성한 신체일 뿐이다. 정령도 뭔가 음식을 섭취할테고, 그걸 마력으로 정제해서 자신의 육신으로 바꾼 셈이지."
나는 타르거트의 근거지를 두 팔로 가리켰다.
"이곳에 있는 열매와 꽃을 먹고 스스로를 맛있는 고기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착한 녀석이냐."
"죽이셨잖아요."
"안 죽였어. 이걸 이용하면 부활시킬 수 있지."
나는 타르거트의 핵, '정령석'을 들었다.
"암컷이었으면 여체로 만들어서 정령으로 만들었겠지만, 수컷이니 다른 방법을 이용해 하수인으로 만들어야겠다 이거야."
"...뭘 생각하고 계시길래 저걸 바라보시는 거죠?"
하리는 내가 보고 있던 피버 중 하나, 다른 파멸전차보다 살짝 더 큰 녀석을 가리켰다.
"설마 저걸 보시는 건 아니죠?"
"아니, 그, 뭐냐."
나는 드라칸의 타이탄-대장기를 베이스로 만든 파멸전차를 가리켰다.
"좋은 엔진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타르거트.
녀석은 S급 전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