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27화 (827/1,497)

〈 827화 〉3부 2장 04

마룡은 보통 괴수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20년의 지구에서 S급이라는 칭호를 달고 나타나던 마룡들은 다른 괴수들과 달리, 인류에게 그 어떤 이득도 되지 않은 재앙의 현현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다름아닌 성주가 정령들의 코어를 복제하다 만들어진 인공생명체다.

여신들을 정령으로 끌어내리고, 이들의 마력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정령들의 집합체다.

마룡은 그 중 가장 강한 존재로, 하나같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설령 테라라고 하더라도!

■■■■■■■!!!

'오랜만에 들어보네.'

마룡 특유의 포효가 협곡에 울려퍼졌다. 큰 체구의 도망자들도, 작은 체구의 병사들도 모두 마룡의 포효에 겁을 먹었다.

생명에 대한 악의로 태어난 존재다.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파괴와 살의 뿐이다.

그리고 그건 고향인 테라에 와서도 마찬가지.

■■■■■ !!!

지마룡이 네 발로 땅을 디디며 마력을 뿜어냈다. 몸에서 터져나온 검은 마력이 가시처럼 튀어나와 사방을 찔렀다.

"으아아악!"

마치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지마룡의 일격에 가이아나의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일격에 죽는 이는 없었다. 만약 죽는 이가 있었다면 나는 마룡의 속에 있는 오염된 마력, '혼돈'에 의해 영향을 받아 중독된 이들까지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큰일날 뻔 했어.]

나는 오른손에 불꽃을 실었다. 그리고 정확히 지마룡의 등에 착지하며 주먹을 꽂아넣었다.

[파이어 펀치.]

■■■■■ !!!!

지마룡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나는 한쪽 다리를 꿇으며 자세를 잡은 다음, 지탱하기 위한 손톱을 놈의 껍질에 박아넣으며 다른 손을 뒤로 당겼다.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창염 펀치.]

이것은 단순한 주먹질 연타다. 하지만 펀치에 더불어 몸을 불태우는 불꽃까지 더해진다면 얘기는 다르다.

[아픈가? 미안하지만 너는 잘못 나타났다.]

이 녀석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발생한 녀석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하다하다 미래에서도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오는군.'

위에서 공격을 하니까 느낄 수 있었다.

이 지마룡은 명백히 지륜의 복제였다.

정령 지륜을 히드라로 타락시키고 난 뒤, 그녀의 코어를 복사하기 위해 땅속성 정령에 혼돈을 뒤섞어 만든 괴물이다.

구제할 수 있나?

...유감. 없다.

죽음만이 유일한 구제이며, 죽여서 지금의 고통을 끝내야 한다.

[동족들을 죽이지 않게 해주마.]

나는 한 번 더 주먹을 들어올렸다.

[파이어 펀치.]

■■■■ !!!

지마룡의 몸이 옆으로 갸우뚱 기울었다. 처음에는 위에서 내가 계속 연타를 하는 것 때문에 몸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역시 놈은 머리가 마냥 멍청한 건 아니었다.

[나를 등으로 깔고 누워버리려고?]

■■■ !!!

지마룡은 스스로 몸을 굴리듯 옆으로 누웠다. 내가 계속 껍질을 붙잡고 있으면 놈의 육중한 몸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놈은 배를 보이며 몸을 발라당 뒤집겠지만, 주변에는 지마룡을 상대할 수 있을만한 마력을 가진 이가 없었다.

즉,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싸우려면 내가 나서야 한다.

여기서 내가 지마룡을 죽여야한다.

[미안하지만 늦었다.]

나는 바로 날개를 펼쳐 이탈했다. 지마룡이 등으로 나를 누르기 전에, 나는 전력으로 땅을 스치듯 날아 빠져나왔다.

투두두두두.

날아가면서 동시에 푸른 마탄을 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총 대신 손으로 쏴버려서 마치 깡통 시체마냥 연발을 날리거나 차지샷을 날리거나 하게 되었지만, 지마룡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미안하지만 짐승이 배 까뒤집는 걸 보고 싶지 않군.]

나는 놈의 복부에 창염을 뿌렸다. 순식간에 배가 창염으로 뒤덮이자, 놈은 괴성도 지르지 못한 채 다시 몸을 뒤집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쿵!

협곡에서 한 바퀴 몸을 뒤집은 지마룡의 몸은 너덜너덜해져있었다. 나는 놈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듣고 있다면 제발 반응해다오.

[2페이즈, 어디 한 번 해봐라.]

내 도발을 들은 걸까.

창염이 붙은 지마룡은 발로 바닥을 쾅쾅 두드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몸에 달라붙은 창염이 갈기 털과 함께 바닥에 굴러떨어졌고, 나는 놈의 2페이즈를 기다렸다.

* * *

"역시 대단해…."

은유하는 피닉스의 전투를 보며 넋을 잃었다.

"괴인으로 타락하기 전에는 더 잘 싸우네요. 사장님의 전투 패턴과 정말 비슷한데, 오히려 더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어요."

"역시. 타락하면서 원래의 힘을 조금 잃었던 게 분명해요. 전투 방식도 거칠어지고 야성적으로 되어버린 거죠. 저거 봐요."

쿵!

지마룡의 꼬리를 피해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멈춘 뒤, 피닉스는 지마룡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르르륵!

피닉스의 손에서 뿜어져나온 창염이 지마룡을 덮쳤다. 전신을 구워버릴 듯이 뿜어져나오는 창염에 지마룡은 좌우로 몸을 굴리며 몸에 붙은 창염을 꺼뜨리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자기 몸 안 다치면서 싸우고, 공격은 우아하게 피하고, 실속을 챙기는 듯 하지만 아름다워요. 과거의, 남자 시절의 고객님은 정말 멋졌네요. 하아…."

"...회장님. 제가 남녀차별을 하는 건 아닌데요."

히카리는 지마룡의 마력 패턴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들 특유의 허세가 있잖아요."

"어떤 거요?"

"그 왜, 죽어가는 적을 상대로 자비를 베푼다면서 회복 아이템을 건네준다거나."

"그런 짓을 왜 하죠?"

"그러니까요. 그런데 남자라는 생물은 말이예요,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

지마룡은 포효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이제 마무리 일격만 날리면 지마룡은 완전히 소멸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고객님?"

하지만 피닉스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지마룡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공격도 하지 않는 채, 마치 지마룡이 보일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고객님! 죽일 수 있을 때 숨통을 끊어야죠! 지마룡이 코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고객님 답지 않은 행동이예요! 고객님이 무슨 정공법만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샤오린도 아닌데 왜 저런 미친 짓을 저질러요?!"

은유하는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2페이즈를 왜 기다리고 있는 건데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허세. 어, 그러니까...강해져서 돌아와라?"

"그런 건 안 해도 돼요!"

은유하가 빽 소리를 지르며 답답해했으나, 여전히 피닉스는 가만히 허공에 날개를 펼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지마룡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창염에 의해 익어버린 껍질을 탈피하고 안에서 본모습을 드러내듯, 지마룡은 그 등이 열리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망했다…."

지마룡, 2페이즈.

"히카리. 데이터베이스 좀 찾아줘요."

"나왔어요. 이쪽에서 발견했던 S급 괴수, [네지오르게]와 비슷해요."

전신의 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뱀과도 같은 형태의 괴수.

지마룡의 제 2형태는 머리만 드래곤의 형태를 갖춘 지네와도 같았다.

전신을 뒤덮는 검은색 비늘에는 마치 땅이 갈라진 것 같은 황색의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근데 그 녀석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녀석은 S급 괴수였지만, 저 녀석은...SS급이에요."

지마룡 2페이즈의 시작.

그것은 지마룡이 불완전한 마룡의 형태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형태를 갖춘 '진화'를 마쳤다는 의미였다.

"아으, 왜 진작 숨통을 끊어놓지 않은 거예요?!"

은유하는 답답했다.

자신이 알던 '청화 양'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

-2페이즈를 왜 봐요? 그냥 1페이즈에 오버킬로 죽여버리면 되는 걸. 푸흐흐.

"변신하는 적을 변신 전에 죽이라고 한 건 고객님이잖아요…!"

은유하는 타락하기 전의 피닉스를 보며 답답함에 연신 아이스 커피를 들이켰다. 은유하와 히카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든, 지금은 애완동물 크리슈나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죽으면 안 돼요…!"

피닉스는 변신을 마친 마룡을 상대로 여전히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 미친."

까닥, 까닥.

"저기서 간지를 챙기네."

피닉스는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지마룡을 상대로 손을 까딱거릴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