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3화 〉2부 외전 /부산 데이트/
"부산이다-!"
석하랑은 방방 뛰며 기뻐했다.
"오빠야, 여기가 부산이다!"
"나도 알아. 나도 한국 사람이거든?"
"오빠야, 솔직히 실제로 부산 내려와본 적 있나?"
"...없는데."
현실의 부산은 처음이다. 애초에 여행은 좋아하지 않고, 멀리 부산까지 내려올 일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내려온 이유는 하나.
석하랑이 부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하기 때문.
테라의 일? 테라의 숱한 인간과 정령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근무 시간은 끝났다. 퇴근하고 난 뒤에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하러 나왔는데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드디어 부산에 왔네."
"날아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한데, KTX 타고 오니까 금방이네. 오빠야, 어서 온나. 내가 부산 풀-코스로 대접해줄게."
"너네 부산 아니잖아."
"씁.... 마, 부산이 어디 다를 것 같나? 거가 거지."
"......."
부산에 왔다고 사투리가 폭발한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도 다 사투리라서 석하랑의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향 왔다고 신났네. 이제 여기 수호신 하면 되겠다."
"내는 우리집 수호신인데."
"그래, 게임방 수호신이지."
나는 석하랑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석하랑은 내가 이끄는 대로 내게 안기며 베시시 웃었다.
"오빠야, 어디부터 가고 싶은데?"
"나야 너 가고 싶은 곳부터 가는 거지."
"그럼 뭐 먹으러 가고 싶은데?"
"음...."
부산에 왔으면 뭘 먹어야 하나.
나는 부산하면 생각나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음...."
아웃, 아웃, 아웃.
부산의 명물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게 많았지만, 문제는 이게 석하랑과 함께 먹을 수 없다는 것.
"왜? 오빠야, 먹고싶은 거 아무거나 얘기해봐라."
"하랑아. 먹고싶은 거라고 하면 일단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게 대부분이잖아?"
"그렇지?"
"그런 건 보통 로컬 음식이고."
"그렇지."
20년의 지구와 이곳 지구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보이는 음식도 그곳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음식일수도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음식에 관심이 있었다면 '아니, 이게 없다고?'라고 놀랐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 구분하지는 않았다.
대신 석하랑과 교차대조를 통해 알아가는 방법 뿐. 나는 스마트폰을 통해 석하랑에게 부산의 명물에 대해 소개했다.
"너 씨앗호떡 가능?"
"...호떡?"
"어. 너무 기름져서 좀 그런가?"
나는 어깨에 올렸던 손을 석하랑의 허리로 슬쩍 내렸다. 가디건과 셔츠의 감촉이 있었지만, 그녀의 허리는 '여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잘록했다.
"이 정도 말랐으면 호떡 정도는 먹어도 되는 것 같은데."
"기름진 게 문제가 아니다. 씨앗을 넣는다고? 왜?"
"몰라. 맛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호떡 안에 씨앗 넣은 걸로 끝 아이가? 그러면 그냥 기름에 튀긴 호떡에 꿀이랑 견과류 섞어서 넣은 걸로 끝일 것 같은데?"
"...너는 진짜 감수성이 없구나!"
생긴 건 별스타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녀석이 선머슴이나 다름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경험을 위해 먹는 음식도 있는 거야. 이 지역에서 내가 이걸 먹었다! 그런 추억을 쌓는 거지."
"추억을 쌓아봤자...."
순간, 석하랑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
"...오빠야, 가자. 씨앗호떡 먹으러."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 나는 이 세계에 적응했구나 싶었는데, 아직 아닌 것 같네."
석하랑은 스스로에게 당황한 듯 했다.
"저짝에서는 아무리 어디서 추억을 쌓아도 그게 안 좋은 기억으로 덮이기 마련이었다 아이가. 거기서 사람이 죽든, 괴수가 미쳐 날뛰든, 그도 아니면 차원문이 열려서 지역이 파괴되든. 그런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지."
"거기서는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은 것에 감사했던 것 같다. 어떤 장소나 음식에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기보다는...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데 의미가 있었지."
"그래서 추억을 쌓아봤자 의미는 없었다?"
"쌓은 인연과 기억이 사라져버리면 슬픔만 남을 테니까."
석하랑은 쓰게 웃었다.
"대략 10년인가, 12년인가. 내가 각성하고 난 뒤에 죽은 사람의 수만 수십 명이었다 아이가. 그게 이능력자 얘기고, 일반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 나라에서만 한 해에 수 만명 넘게 죽었을 거다. 괴수든 괴인이든."
똑같은 지구지만 그곳과 이곳은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이 공포 속에서 사는가 아닌가.
농담으로 이곳을 한 때 지옥불반도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곳은 진짜로 지옥이었다.
"그래서 뭔가...느긋하게 지역 명물이라고 먹을 수 있었던 게 없던 것 같다."
"......비록 세계는 다르지만, 지금부터라도 먹어보는 게 좋겠네."
석하랑은 싱긋 웃으며 나를 잡아끌었다.
"가자, 오빠야. 일단 사진부터 찍으면 되는 거제? 씨앗호떡 억수로 유명한 거 맞제? 나중에 좀 사서 포장해갈까? 안에 딸기잼 대충 뿌려놓으면 금마도 먹을 거 아이가."
"일단 하나 먹어보고 생각해보자, 하랑아."
나는 석하랑과 함께 시장을 찾았다. 이미 그곳에는 타지에서 온 수많은 연인과 가족이 함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석하랑과 시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씨앗호떡을 받았다.
아삭.
"하랑아."
"응, 오빠야."
"자, 하나, 둘, 셋."
찰칵.
"다음은 어디로 갈까?"
씨앗호떡의 맛은 사진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풉."
그래도.
"...이런 게 추억쌓기라 이거제?"
석하랑이 웃었으니 됐다.
하지만 과연 석하랑이 앞으로 웃을 수 있을까.
"오빠야, 다음에 또 먹고 싶은 거 있나?"
"여기 어때? 부산 출신 셰프가 차린 파인 다이닝인데, 미슐랭 별도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
"뭐? 오빠야, 돌았나? 부산까지 와서 무슨 파-인 다이닝인데? 그런 건 서울 가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아이가. 으-딜 부산와서 파스타를 포크로 휘저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치만 하랑아."
나는 시장 안쪽을 가리켰다.
"너 순대는 먹니?"
"......그, 떡볶이랑 같이 나오는 당면순대 말이제?"
"아니. 진짜 피순대."
"...으."
석하랑의 표정이 급격기 나빠졌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다.
"자갈치, 꼼장어, 조개구이, 밀면, 파전...."
"오빠야, 지지미다."
"뭐? 아무튼, 그런 것들. 먹을 수나 있나?"
"내 지금 무시하나? 내가 부산에서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다."
"그 삼시세끼의 9할을 호텔식으로 먹지 않았어?"
석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하가 사실상 너한테 전속 쉐프 붙여준 거잖아. 부산에 호텔 세워도 적자만 가득한데."
"그, 뷔, 뷔페 스타일이라서 나름 한식도 있었거든?"
"그래서 건드린 게 얼마나 있어? 하랑아, 너 김치찌개 가장 최근에 먹어본 적이 언제야?"
"......."
석하랑, 침묵.
나는 석하랑이 벗어나지 못하게 허리를 꽉 붙잡은 뒤, 그녀가 말한 말투를 떠올리며 귀에 속삭였다.
"하랑아, 부산 하면 그거 아이니?"
돼지국밥.
석하랑의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구겨졌다.
* * *
"하여튼 참 이상해. 외계인 장모님은 그렇게 좋아하는 돼지국밥을 못 먹다니."
"......흥."
우리는 돼지국밥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결국 석하랑은 들어가기 전부터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나는 석하랑을 데리고 번화가로 나와서 스프와 빵이 전채로 나오는 곳으로 왔다.
"아저씨, 진짜 너무하네요."
"아까까지는 오빠야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저씨에 서울말까지 하네. 삐졌어?"
"네, 삐졌어요. 그도 그럴게...."
석하랑은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예약 해놓고 나를 놀렸겠다?"
"놀린 건 아니지. 츄라이, 몰라?"
"몰라요. 흥."
"에이, 그러지 마. 얘, 여기 블루베리 에이드가 맛있단다."
"...에휴, 봐줬다."
석하랑은 한숨과 함께 음료를 홀짝였다.
"내가 딱히 한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내도 이 나라 사람이고, 좋아하는 건 좋아한다. 근데."
"그런데?"
"내는 양식이 더 좋다."
석하랑은 진심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여기에 있는 음식들 풀코스로 먹을 수 있는데, 한식은 그냥 먹을 수 있을만큼만 먹을 수 있다 이거지."
"왜 그런지 알아?"
"응? 오빠야, 혹시 이유 아나?"
"잘 알지."
석하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하나 뿐이다.
"고춧가루."
"...응?"
"너 고춧가루 세게 친 음식 잘 못 먹어."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석하랑과 같이 지내다보니 알게 된 것이다.
신라나 유나는 잘 먹는데, 유독 석하랑은 그런 음식이 있을 때마다 젓가락이 덜 가더라.
그래서 가급적이면 같이 먹을 때는 석하랑도 함께 먹을 수 있는 종류로 식단을 짜고 있다. 함께 요리하는 유나에게도 매콤한 종류의 음식은 지양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그냥 맵찔이일수도 있다.
"......진짜?"
"네 입맛인데 진짜라고 하면 어쩌냐."
"몰랐으니까 그러지. 내가 고춧가루를 잘 못 먹는다고? 왜?"
"글쎄다. 장모님이 너 태교할 때 돼지국밥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닐까?"
"...가능성이 있어서 무서운데. 고춧가루라...."
석하랑은 사이드로 나온 피클을 포크로 찍었다.
"생각해보니 김치보다는 이런 거 더 잘 먹는 것 같기도."
"치킨도 양념 잘 안 먹지?"
"어!"
석하랑은 박수를 쳤다.
"그럼 국밥은?"
"그것도 모르지."
거기까지는 미스테리다.
왜 석하랑은 돼지국밥을 잘 먹지 못하게 되었는가. 다른 국밥까지 실험을 하기에는 석하랑이 헛구역질을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못할 것 같았다.
왜 국밥을 사왔는데 먹지를 못하니.
"진짜 장모님이 너 뱃속에서 기를 때 평생 먹일 돼지국밥이랑 고춧가루 다 먹여서 그런 거 아닐까?"
"오빠야, 그게 말이가 방구가?"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걸? 네 아버지가 그 뭐냐, 다대기 엄청 넣어 먹잖아. 심지어 장모님은 깍두기 국물도 부어먹던 걸."
"......."
석하랑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보통 자식은 엄빠 입맛 따라가지 않나?"
"그렇긴 하지."
"그럼 오빠야랑 내 자식은 한식 양식 중에 뭘 더 잘 먹을 것 같은데?"
"......뭐든지 잘 먹지 않을까?"
갑자기 훅 들어오는 공격에 나는 기습을 당했다.
석하랑은 이제서야 조금 편해진 모습으로 내게 자신의 음료를 들었다.
"그럼 내 닮으면 안 되겠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 잘 먹는 거 먹을라카면 혼 날 테니까."
"블루베리?"
"아니."
석하랑은 턱을 괴며 나를 향해 웃기만 했다.
"오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