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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822화 (822/1,497)

〈 822화 〉3부 1장 24 찾았다

가이아나 왕국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면서도 순탄치 않았다.

경비병이 보이는 곳은 피해가고, 마차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은 남들의 눈을 피해 마차를 통째로 들어서 이동했다.

물리적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남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다.

"낮이잖아요, 피닉스 님."

"그래, 낮이지."

"낮에 이걸 이 성벽 너머로 몰래 옮기겠다고요?"

하리는 나의 계획에 반대했다.

이건 그녀가 나의 힘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였고, 나는 그녀가 가진 오해를 풀어줬다.

"나한테는 태양빛이 있는 지금이 더 유리해. 태양빛을 받는 동안은 몸을 숨길 수 있거든."

"그런 게 가능해요?"

"푸른 태양의 사도니까. 이 땅의 태양은 아직 푸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태양빛 자체에 반응할 수 있는 건 똑같아."

나는 태양빛 속에 몸을 숨겼다. 하리는 순식간에 투명해진 나를 보며 놀랐고, 나는 말과 마차를 통째로 창염으로 묶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펄-럭.

"응?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이 화창한 날씨에 헛것이라도 보이나?"

"요즘 기가 허해서 그런가.... 씁, 그 이상한 괴물들만 아니었어도 어제 푹 자는데."

경비병들은 우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는 별 무리없이 비슈니아 왕국의 여러 성을, 그리고 국경을 돌파할 수 있었다.

무력으로 돌파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창염의 힘이 과격한 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혼돈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

"다시 가지."

태양빛이 있는 시간은 적극적으로 성을 넘고 산을 넘어가며 이동하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을 근처에 마차에 결계를 치고 마을로 잠입한다.

말은 요람과도 같은 창염의 결계 속에서 푹 쉬고, 우리는 여관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피닉스 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가이아나 왕국의 영지로 들어가는데, 하루 더 쉬는 건가요?"

"어. 지금은 쉴 때야."

지금은 해가 떨어지고 난 뒤, 늦은 밤.

태양이 떨어진 지금은 굳이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계속 있을 수도 없다.

테라에서의 시간은 내게 '근무시간'과도 같은 시간이다. 모든 이들이 그렇지만, 정해진 퇴근 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것은 누군들 원하지 않을 것이다.

테라의 사람들이 설령 나의 도움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의 삶이 더 중요하다.

"침대는 네가 써라. 나는 소파에서 잘 테니."

"아, 그...."

로그아웃.

철컹, 철컹, 철컹.

"...후."

잘 잤다.

테라에서의 12시간, 현실에서의 12시간.

나는 현재 24시간 동안 거의 수면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괴인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딱히 수면이 필요가 없었다.

테라의 몸은 아바타로 정신이 이동하는 것.

꿈에서 아무리 적을 죽여도 현실의 육체가 그만큼 피곤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피로가 쌓이는 현실의 육체는 테라에 접속하는 동안 숙면을 취하게 된다.

테라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나의 정신체.

마력으로 빚어진 덩어리일 뿐이니까.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헤드기어를 벗은 뒤, PC의 캠을 연결하여 화상채팅 프로그램을 열었다.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유나야."

화상 너머에는 연구원 복장처럼 흰 가운을 입은 유나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내 것과 똑같이 생긴 헤드기어를 쓴 또다른 이유나가 알몸으로 캡슐 속에 누워있었다.

"저건...."

[제 아바타예요. 현실의 저는 엄청 바쁜 사람이잖아요? 오빠랑 섹스도 해야하고, 방송도 해야하고, 오빠 테라에 있을 때는 모니터링도 해야하고.]

"섹스가 제일 우선이야?"

[그럼요. 저는 이 세계에 오빠랑 섹스하러 온 사람이라고요.]

유나의 말에 나는 기가 찼다. 저 말, 너무나도 익숙했다.

[가이아나 왕국으로 가신다고 하셔서 미리 준비해놨어요. 저희들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오빠도 이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니까.]

"그래. 바로 실전 투입으로 들어가야겠지."

새로운 힘.

그것은 지금까지의 힘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힘을 의미한다.

창염의 마력이 아닌, 다른 힘을 몸에 깃들게 한다는 것.

[성주가 저를 만들 때, 그노시스라는 걸 가장 마지막에 만들었잖아요? 이건 정령, 여신의 마력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그걸 위해서는 성주의 기술이 필요하고, 저희는 이걸 오빠의 아바타에 접목했어요. 아주 아슬아슬하게.]

테라의 아바타는 창염으로 이루어져있다.

피닉스의 심장은 유나의 '그노시스'와 마찬가지로 마력의 코어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구성이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코어가 거대한 구체의 형태라고 한다면, 코어의 마력을 뽑아내는 겉면이 총 세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

[오빠의 그노시스는 여신들의 마력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각 여신들을 따르는 신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게 세 개인 이유는....]

"지륜, 설야, 창염."

[맞아요. 세 개의 힘을 담을 수 있게 해놨어요. 이곳의 현실에서 만들어내려면 세 명의 힘이 전부였으니까요.]

지륜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땅속성.

설야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수속성.

그리고 창염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화속성.

대지모신과 장모님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테라의 피닉스는 총 세 개의 속성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원작 게임적으로 생각하면, 각 속성의 마력을 받아들인다면 최대 마력이 3 늘어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서 고마워."

현재 창염만 있는 경우가 90이다.

여기서 하나를 더 받으면 93이다.

두 개의 마력을 더 받게 되면 96, SS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지륜, 설야, 창염의 힘이 모두 다 모이게 되면 99, SS+에 이르게 된다.

거의 반신, 데미-갓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고작 아바타에 마력의 결정체가 다른 세계에서 일곱 신의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는 게 참 우습기도 했지만, 반신의 근원이 일곱 신 중 무려 셋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테라의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창염이야말로 진정한 태양이라는 것을!

[오빠, 창염쪽은 직접 대면해서 받아야 하는 거 알죠?]

"물론이지."

창염 위에 창염이 깃들 공간은 마련해뒀지만, 그건 창염이 아니다. 그 공간은 창염이 아닌, 홍염(紅炎)의 공간이다.

지금의 나는 창염의 피닉스다.

하지만 그녀의 '파란색'은 성주에 의해 괴인으로 타락하게 되면서 얻은 색이다. 바보같이 성주가 자신들, 외신들마저도 불태워 죽일 수 있는 힘을 부여하면서 생긴 색의 변화다.

즉, 원래 신-라는 파란색이 아니다.

창염의 위로 쌓아올려야 하는 마력의 종류는 세 가지.

지륜.

설야.

그리고, '홍염'.

"빨간맛 신라는 못 참지."

과거의 신라는 붉은 여인이었다.

섹스.

* * *

그 시각.

하리는 얌전히 앉아서 피닉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쳐다보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으니, 그냥 계속 지켜볼 뿐.

"하아."

하지만 그 대단한 킨나라를 상대로도 결국 그걸 하지 않았다. 정령적으로 생각하면 임신을 시킨 경우나 마찬가지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진짜 좋았어요. 제가 섹스를 해본 적은 없지만, 이건 분명 섹스예요.

킨나라는 떠나면서 자신에게 귀뜸을 해주고 갔다. 그녀는 하리를 응원하며, 반드시 성공하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성공?

무슨 성공?

피닉스의 진짜 자지를 자신의 보지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질싸하여 아이를 낳게 만든다.

"......힛."

피닉스는 아직 모른다.

정령과 인간이 섹스를 했을 때, 과연 임신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정령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나, 인간은 정령의 마력을 임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록 태어나는 아이는 정령의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며, 수명이 정해져 있고, 신으로부터 세례를 받지 못한다면 정령이 되지 못하고 인간으로써 죽게 되지만, 정령과 인간은 후계를 낳는 게 가능하다.

그러므로 무조건 성공해야한다.

임신에, 성공해야한다.

끼릭, 끼릭.

"응?"

창문 밖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피닉스는 죽은 듯이 자고 있고, 하리는 문을 열까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피닉스가 자고 있을 때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습격자가 나타나서 덮치기라도 한다면-

덜컥.

문이 열리며, 무언가가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하리는 금색과도 같은 동그란 작은 짐승에 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뀨, 뀨이잉.

짐승은 상처를 입은 듯 했다. 마치 작은 드래곤을 줄여놓은 것 같지만, 짐승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분명 마력이었다.

"저, 정령...? 하지만...."

하리는 이런 정령을 모른다. 공주였기에 수많은 정령에 대해 알고 있으며, 빛속성 정령들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알고 있다.

이런 녀석은 처음이다.

"......."

하리는 정말 조심스럽게 짐승에게 다가갔다.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피닉스가 말하는 '혼돈'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갓 태어난 정령과도 같은 느낌 그 자체였다. 하리는 조심스럽게 정령을 안아들었다.

"따뜻해...."

정령을 품은 하리는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처가 난 부위에 자신의 약한 마력을 불어넣어주며, 혹시나 깨어날까 뜬 눈으로 기다렸다.

그래서 그녀는 몰랐다.

위잉, 철컥.

정령은 이미 눈을 뜬 상태로, 흑발의 청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 * *

어두운 방.

기계음만이 가득한 방, 거대한 캡슐 위에 누워있는 금발 거유 여인은 눈을 빛내며 웃었다.

"찾았다."

여인의 눈에는 별빛이 흐르고 있었다. 여인의 옆을 지키는 흑발 거유 여인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손에 쥔 차트를 건드렸다.

"패턴, 청. 창염입니다."

"역시. 당신은 최고예요, 히카리."

"뭘요. 다 시간과 예산을 충분히 주신 회장님 덕분이죠."

히카리라고 불린 여인은 거대한 모니터 위에 나타난 화면에 싱긋 웃었다.

새액, 새액.

그곳에는 흑발의 한국인같은 청년이 사제복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듯, 어딘가 익숙한 듯한 청년에 금발 여인은 만족하며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연결...쉽지 않네요. 카르나의 백업을 받는데도."

"억지로 몸을 카르나 님에 맞게 성장시켰으니까요. 후후, 대단하네요. 여신의 힘."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금발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역시. 테라를 찾아본다는 게 정답이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저곳은 과거의 테라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리고 테라에서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괴수의 침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래요. 여기는 이제 더 괴수의 침략이 없지만...이제는 다를 거예요. 멍청한 원로원의 욕심쟁이들이 남은 큐브를 찾아서 세계에 구멍을 내버린 바람에 전부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여인은 자고 있는 흑발 청년을 향해 활짝 웃었다.

청년의 몸, 마력 스캐너에 보이는 청년의 마력은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설마, 과거의 당신을 만나게 될 줄은."

여인, 은유하는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웃기만 했다.

"역시 남자일 줄 알았어요, 고객님."

은유하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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