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화 〉3부 1장 17 vs 킨나라
먼저 때리면 거의 대부분 승리한다.
특히 궁극기 같은 건 일단 한 번 세게 박고 시작해야한다.
상대가 체력이 낮아졌을 때 사용해야 효과적인 기술 같은 건 게임에서나 있는 이야기고, 현실은 그냥 강한 공격을 처음부터 때려박는 게 이기는 거다.
왜냐.
약한 적은 강한 공격에 금방 쓰러지지만, 적당히 강한 적은 이렇게….
"아, 아하하!"
쿵!
불길 사이로 나타난 인영이 바닥에 진각을 밟았다. 말발굽으로 땅을 두드리는 듯한 울림과 함께, 인연-킨나라는 모습을 드러냈다.
"큰일날 뻔 했잖아!"
킨나라는 상당히 경쾌했다. 팔 한쪽이 불에 그을려 너덜너덜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 마력이 뭉텅 날아갔어!"
서걱.
킨나라는 스스로 팔을 잘라냈다. 그리고 잘린 단면에서 금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하더니, 다시 팔로 재생되었다.
"말딸이 아니라 피콜로딸이었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응? 그렇게 말하면서-"
킨나라는 땅을 박차고 달려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다음 공격 준비하는 거, 재밌어?"
탕!
나는 킨나라의 미간에 정확히 사격을 날렸다. 마탄은 직선으로 날아가 킨나라의 미간을 정확히 저격했지만….
"히힛."
고개를 젖힌 킨나라는 입으로 마탄을 받아냈다. 이 사이에 흔들리는 마탄을 과시하며, 그녀는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새액!
안면을 노리는 주먹은 날카로웠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어도 주먹에 얼굴이 찌그러질 뻔 했다.
"그거 아나?"
[말 시켜도 소용없어! 안 통해!]
"그거, 터진다."
"응?"
콰---앙!!
킨나라가 뱉지 못한 마탄은 킨나라의 입에서 터졌다. 목 위로푸른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하리의 옆에 착지했다.
"보통내기는 아니군. 역시 팔부신중 중 한 명이라는 건가. 마력으로 말하면서 싸우다니."
"가, 갑자기 왜…?!"
"싸우고 싶어하는 자다. 논리는 통하지 않아."
전투광이 그저 전투를 바랄 뿐이다. 신관이나 공주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건 무의미하다.
"네가 공주인 걸 알아도 저런 애들은 딱히 신경쓰지 않아."
"하하, 잘 알잖아!"
쿵!
다시 땅에 금색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주변에 일어난 푸른 불꽃은 황금색 폭풍과 함께 다시 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거기 이단자와 싸우고 싶을 뿐이야!"
킨나라는 그저 나와 겨루고 싶을 뿐이다.
광속성 대부분이 전투광이라는 성향은 원본과 크게 차이가 없는 듯 했다.
"하리를 인질로 잡으면 안 싸울 거다."
"물론! 공주님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리는 조금 상처받은 얼굴이었지만, S급 사이의 전투에서 인질이나 휘말리는 이는 민폐다.
어느 정도로 화력이 퍼져나갈 지 모르는 상황이니, 하리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잠깐 물러나있어."
나는 하리에게 조금 떨어진 동굴을 가리킨 뒤.
파ㅡ앗!
제자리에서 앞으로 박차고 달려, 킨나라에게 접근했다.
히죽.
내가 달려들자마자 킨나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한 발을 뒤로 뻗었다.
마치 나를 향해 걷어차려는 자세였고, 실제로 내가 달려가는 방향이었다.
'어림도 없지.'
나는 땅을 박차고 높이 뛰어올랐다.
킨나라를 아래에 두고 몸을 뒤집으며, 킨나라를 향해 마탄을 난사했다.
두두두두!
킨나라는 팔을 X자로 들어올리며 공격을 막아냈다.
무차별 폭격이나 마찬가지인 공격에도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윽…!"
하지만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방어 자세에 들어갔다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큰 이득이다.
이대로 공격을 지속해나아가면 무난히 승리를 따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S급은 S급이다.
"그래, 이 거지!"
킨나라는 내 사격을 피하듯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달팽이처럼 몸을 빙글 꼬며 바닥에 엎드리더니, 나를 정확히 응시했다.
'체술!'
콰ㅡ앙!
마치 폭탄이 터지듯 킨나라는 뛰어올랐다.
내가 착지하려는 위치를 향해 정확히 군화를 뻗었다. 아래에 박힌 편자가 인상적이었으나, 그걸 유심히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킨나라의 공격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카가가강!
"크윽…!"
아래쪽으로 뻗은 마총과 킨나라의 군화가 맞닿았다.
마총 만으로는 킨나라의 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실드까지 덮어 킨나라의 공격을 막았다.
킨나라는 나를 비웃으며 다른 쪽 다리를 접었다.
"놓치지 않아."
쾅!
킨나라는 실드를 걷어찼다.
덕분에 나는 반동으로 하늘에 떠오르게 되었다.
"크윽…!"
날개를 급히 펼치며 튕겨지듯 떠오르는 바람에 균형을 잠시 놓쳤다.
그리고 어느새 킨나라도 아래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킨나라의 위치는….
'위!'
"흐랴아앗!!"
킨나라는 기합과 함께 위에서 나를 내려찍으려고 했다. 두 다리에서 풍기는 금빛 기류는 마치 전격처럼 튀어오르고 있었다.
"끝이다!"
"누구 마음대로?"
나는 날개를 접었다. 중력에 따라 내 몸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표적을 잠시 놓친 킨나라는 당황하며 다리를 휘둘렀다.
새애액!
칼날같은 충격파가 나를 덮쳤다. 나는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리는 것으로 충격파를 피했다.
쿠구궁!!
얼핏 본 바닥은 충격파에 의해 반으로 쪼개졌다.
"피했…?!"
"예전에 다 겪어봤지."
나는 정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뭉클.
"......."
어쩌다보니 킨나라의 가슴을 움켜쥐게 되었지만, 싸움 도중에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와락!
나는 킨나라의 가슴을 잡고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킨나라와 숨결이 닿을 정도로 밀착했다.
"다리 말고 또 뭘로 나를 공격할 수 있지?"
"이, 이…!"
킨나라는 다리로 나를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헛발질로 끝났다.
"지구던지기라고 아나?"
나는 킨나라를 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녀는 계속 아둥바둥거리며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놓으란 말이, 히익…?!"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 구름을 뚫고 날아왔으니, 최소한 수백 미터 상공은 될 터.
"놓아? 사실 놓아도 살아남을 수는 있을테지. 하지만 그러려고 너를 여기에 데려온 거 아니야."
나는 킨나라가 도망가지 못하게,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 덕분에 아랫배가 닿았지만, 그런 걸 신경쓰는 게 지는 거다.
"화력 최대로."
"뭐…."
"창염개진."
나는 내 몸에 창염을 둘렀다. 푸른 불꽃이 나를 감싸기 시작하고, 킨나라도 함께 휘감았다.
"으, 아, 아으…!"
킨나라의 반응은 더욱 심해졌다. 어떻게든 발로 나를 걷어차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땅에서 달리는 자가 하늘을 나는 자를 하늘에서 이길 수는 없다.
"아아악!!"
킨나라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나는 킨나라를 안고 아래로 날개를 펄럭이며 수직낙하했다.
"그, 그만! 터져, 터진다고!"
"안 터진다. 내가 우주에서도 떨어져보고 그런 사람이야."
많이 터뜨려봐서 안다.
"나의 승리다, 킨나라."
아무리 S급 정령이라도, 창염이 몸에 붙은 상태에서 수백미터 상공에서 바닥에 떨어지면 몸이 산산조각난다.
자신이 몸을 유지하는 속도보다 창염이 마력을 태워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니까.
"잘 가라, 킨나라."
"윽…!"
땅에 닿기 직전.
빙글.
나는 땅을 1m 앞에 두고 몸을 빙글 돌렸다. 날개를 펄럭이며 관성을 억제하고, 킨나라에 붙였던 창염을 모두 회수했다.
그리고 잠시 기절한 킨나라를 아주 천천히 바닥에 대자로 눕혔다.
쿵!
나는 킨나라의 복부를 깔고 앉았다.
"야, 일어나."
의식을 찾은 킨나라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안이 벙벙해보였고, 나는 그 사이 킨나라의 손목을 각각 붙잡았다.
"잡혔지? 이제 너와 나의 실력차를 알겠나?"
"아, 어…."
킨나라는 당황했다.
"어, 어떻게…?"
"잘."
이능력으로 싸우는 거라면 모를까, 체술로 싸우는 거라면 밀리지 않는다.
"마력이 비슷하다고 실력까지 비슷한 건 아니지."
"나...우리 나라에서 알아주는 강자인데…."
"미안하지만 나는 세계 단위라서."
게임속 세상이지만 나는 인류 최강의 무인에게 싸우는 방법을 배웠고, 지금은 그 경험을 살릴 힘이 있다.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괜히 귀찮게 하지마. 한 번 패배했으면 얌전히 말에 따라라."
"...내가, 졌구나."
킨나라는 눈을 계속 감았다 떴다.
초격부터 방금 전의 일격까지 전투를 복기하는 듯 했다.
"음…. 어떻게 진 거지?"
"간단해. 너무 다리로만 공격하려고 하니까, 다리 공격만 피하면 다른 곳은 상대적으로 약하니까."
"...그렇구나. 완전히 졌네."
킨나라는 시원시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졌어! 이제 가도 좋아!"
"고맙군."
"아, 그, 근데."
킨나라는 얼굴을 붉히며 꼼지락거렸다.
"저기, 배에 닿는 거...그거야?"
"......."
현재. 나는 킨나라의 배 위에 걸터앉아있다.
양 무릎을 좌우로 꿇은 상태라, 킨나라의 배에 닿는 건 당연히….
"어."
"으, 으음…."
킨나라는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이, 이겼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돼!"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내가 있는 몸이라서."
"아…."
킨나라의 표정은 울것처럼 일그러졌다.
"닿은 건 미안하다. 하지만…."
[섹스하는 거시에요!]
"......잠깐만."
나는 어디선가 전해진 괴전파에 머리가 아파왔다.
"킨나라. 너는 내게 패배했다. 맞지?"
"응."
"그러면 하리를, 그리고 나를 잠깐 부탁한다."
"뭐?"
로그아웃.
나는 테라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무슨 소리야?"
"어서 오세요!"
그리고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라를 향해 물었다.
"나보고 지금 킨나라랑 섹스하라고?"
"네!"
진심인가, 이 여자?
"신라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뿐만 아니에요. 하랑이랑도, 유나랑도 다 이야기가 된 걸요."
신라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테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한 명이라도 필요하죠. 조력자를 구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그거잖아요? 후후. 그리고."
신라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테라에서 섹스한다고 해서 아이 낳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 마음이 다른 여자한테 흔들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섹스랑 무슨 관계가 있어?"
"이유는 간단해요."
신라는 내 얼굴을 붙잡으며 싱긋 웃었다.
"당신이 사정한 정령에게는 창염이 깃들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그들도 혼돈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이건 대의예요. 테라를 구하기 위한 대의."
"그게 섹스일 필요가 있어?"
"예!"
신라는 너무도 당연한 얼굴로 답했다.
"당신은 처녀만 여행의 동료로 데리고 다닌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비처녀로 만들어버리면 여행의 동료로 안 데리고 다닌다는 거잖아요. 푸흐흐. 아, 그래서 금발거유백마랑 섹스 안 할 거예요? 예?!"
"......."
아내들이 나보고 이계의 여자랑 섹스하라고 한다. 어떻게 하지.
"이겼으니까 섹스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요."
테라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