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3화 〉3부 1장 15 동료의 조건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의 성적 판타지가 있다.
수백 년 나이를 먹었음에도 자신보다 못한 존재에게 매도를 당하고 싶어 하는 엘프도 있고, 한낱 평범한 인간에게 쉽게 반하는 하프 엘프도 있다.
그러나 이건 좀 심한 경우가 아닐까.
세상에 따먹히고 싶은 여기사라니.
물론 알고는 있었다. 델피아가 스스로 강간을 당하고 싶어 강간촌에 몸을 던진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도 이런 곳의 구멍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애초에 이런 시설이 존재하는 것도 충격이다.
"여기 있는 여자들, 혹시 전부 다 박히길 원해서 이렇게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은 초대 신관께서 쉽게 성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공공복지시설, '프리퓨지'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름부터 노골적이다.
"이들은 모두 성병 검사를 완료하고 몸단장을 깨끗하게 한 이들입니다. 각방에서 이쪽으로 자신이 원하는 체위로 아랫부위만 빼내고 있죠. 자신이 모르는 자가 마음대로 자신을 써주기를 바라면서."
관리인이 각 구멍 위에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허리 아래가 전부 밖으로 나온 델피아는 엉덩이를 좌우로 살랑거리며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예. 손님께서 관찰 중이시다는 신호입니다. 안쪽에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마다 다르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분도 있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원하는 분도 있죠."
벽 너머로 넘어간 줄은 벽 너머의 사람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줄이었다. 관리인이 줄을 잡아당기고 있으니, 분명 델피아는 자신에게 박아달라고 유혹을 하는 것이었다.
'설마 이게 여기서 나오는 걸 줄이야.'
25년의 지구에도 이런 게 있었다.
멕시코 쪽의 스토리였던가? 아마 빌런 마약왕의 스토리가 이쪽과 관련이 깊었던 것 같다.
누리를 노리는 페도 빌런 중 하나인 그는 마약으로 중독시킨 여자들을 목장의 가축처럼 다루며 이런 시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아무렇게나 쓸 수 있게 하여 부하들의 충성을 끌어냈다. 카르텔과 연결된 군경, 정치인들은 덤.
그 스토리가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라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이건 좀'이라는 말이 분분하게 나와 오히려 개천광이나 카르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걸 생각하면, 이 비슈니아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성진국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아예 전부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 거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건 조금 그렇다.
그래.
친구의 친구와 19금 음담패설을 하는 와중에, 아는 사람 이름을 말했다가 '어? 나 그 여자 사창가에서 만났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기분이다.
나랑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정신적으로 살짝 충격인 건 마찬가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델피아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여기사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강간촌에서 만나고 설마 여기서 또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거기만 보고 알아챘냐고 하면, 강간촌의 창고에서 봤던 모습이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직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쓰시겠습니까?"
"아니오. 안 씁니다. 그냥 구경하러 온 것뿐입니다."
나는 괜히 민망하기도 하고, 하리가 델피아에게 걸리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하리를 붙잡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나가지."
"자, 잠시만요. 진짜 그 사람이에요?"
하지만 하리는 나를 만류하며 구멍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구멍보다 나를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 그러면 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요."
"도움?"
"예. 저 사람...그, 저래 보여도 저희...."
"공주 지지파라는 건가?"
하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름 왕국에서도 수준 높은 기사로...."
"수준 높은 공공보지가 아니고?"
"...개인의 성적 취향과 개인의 능력은 관계가 없을 수 있어요."
"그건 그렇지."
약육강식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강자는 항상 약자를 유린하고 범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로는 약자에게 목줄을 채우고 자신을 범하라고 하는 이도 있다.
물론 그것도 약자에게 강제로 하게 하는 것 자체가 강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사람 나름이니까.'
성적 취향은 존중한다.
다만, 취향에 대한 존중과 별개로 델피아를 여행의 '동료'로 맞이하는 것은 안 된다.
"하리. 잘 들어. 창염신교의 교리 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네, 잘 듣고 있어요. 뭔데요?"
"비처녀 죽어."
"...예?"
하리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이 빛 속성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동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창염신교의 사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정확히는 창염의 사도는 비처녀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거야."
"당신이 창염의 사도잖아요."
"그래. 나는 비처녀와 함께 할 수 없는 저주에 걸렸어."
"그게 무슨.... 아, 아...!!"
하리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가씨다.
"저, 저는 그러니까...!"
"실례하겠습니다."
로브를 뒤집어쓴 금발의 여인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며칠 만에 보는 얼굴은 표정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우리, 구면이지?"
"그래. 일단 숙소로 따라.... 아니지, 옷 가게로 가지."
"옷 가게요? 저희 숙소로 가야 하는 게...."
"지금 쟤 로브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급하게 나왔다."
내 말에 로브의 여인, 델피아는 묵묵히 하리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리는 델피아를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내 뒤로 쫄래쫄래 달려왔다.
...방금, 비처녀라고 피한 건 아니겠지.
* * *
접속 전.
"창염의 피닉스 근처에는 처녀만 있어야 해요."
신라는 내게 엄포를 놓았다. 처음에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비처녀는 쉬운 여자고, 쉬운 여자는 당신과 한 번 자보려고 다리를 쉽게 벌릴 것 같으니까요."
전적으로 신라의 말이다. 나는 처녀든 비처녀든 딱히 상관은 없었다.
델피아? 비처녀인 것과 문란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 번 한 여자와 천 번을 한 여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듯, 델피아는 조금 많이 그런 여자다.
"그건 빛이국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요. 밝히는 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을 노리는 암캐들이 분명 껄떡거릴 건데, 당신은 그에 대한 방어책을 세워 둘 필요가 있어요."
"비처녀가 무슨 바이러스도 아니고."
"중요한 문제라고요. 마약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마약을 많이 피워보겠어요?"
"섹스가 마약이라는 얘기야?"
"그거랑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에요. 경험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 당신과 하려고 할 거예요. 특히 이 세계가 아니라 저쪽 세계라면 더더욱."
신라는 허공에 불꽃을 피웠다.
"S급 수준의 능력자는 테라에서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아요. 판타지로 치면 소드마스터고, 8서클 마법사고, 무협으로 치면 화경 고수인 셈이죠."
"요즘 소설 보니?"
"비유하자면 그런 거예요! 저쪽 세상에 등급이나 레벨을 대입할 수 없으니까!"
"등급이나 레벨로 이야기해도 딱히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
이미 나는 S급이라는 존재들의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S급이 가지는 마성의 매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20년의 지구, 청화 양 시절.
나를 향한 수많은 허니트랩(男)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갖은 애를 썼는가.
정순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수록 미형이고, 마력을 가진 존재에게 흠모의 대상으로써 존경과 신뢰와 호감을 받게 된다.
S급이란 그런 존재다. SS급이나 SSS급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여기서 질문. 비처녀가 당신을 상대로 '어맛, 몸으로라도 유혹해야 해!'하는 경우가 많겠어요, 아니면 처녀가 '이, 이 몸으로라도 유혹해야 해!'라는 경우가 많겠어요."
"너는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먼저 신라의 오해를 풀어야 했다.
"내가 외간 여자에게 유혹당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당신...!"
신라, 감동. 신라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몸을 비비적거렸다.
"역시 당신이에요!"
신라는 내 얼굴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그런데 동료는 여자로만 들일 거잖아요."
정말 조용히, 담담하게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남자를 동료로 맞이할 리가 없어요. 무조건 여자, 무조건 처녀. 남자인 동료를 맞이한다? 차라리 그냥 혼자서 돌아다니겠죠."
"......."
"성능을 따지면서 남캐를 고르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당신이."
신라는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신라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맞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동료를 영입한다면 여자를 동료로 맞이하겠지. 여자는...내 모습에 반한 여자가 나를 배신할 리는 없으니까."
속물적인 이유다.
어장 관리라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부남에게 반한 여자가 잘못이다.
"그러다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그러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때는 내가 부숴버리면 되지. 애초에 그런 여자를 동료로 맞이할 리가 없잖아."
나는 테라에서도 동료를 데리고 간다면 철저한 판단하에 움직일 것이다.
"나는 테라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수호자야. 그런데 저쪽 세계에서 섹스 같은 걸 하고 있을 틈은 없어."
"이쪽에서는 맨날 하잖아요."
"그건 당연하지. 저쪽에서 그렇게 찾으려고 애를 쓰는 아내가 여기에 있는데."
테라에 접속하는 동안, 내 신체는 숙면 상태를 유지한다. 현실로 돌아오는 타이밍의 육체는 신체의 활력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그렇다.
테라에서 다녀온 직후.
나는 하신라-석하랑-이유나 셋을 상대로 동시에 섹스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육체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계를 지키고, 사랑하는 여자와 풀파워 섹스도 하고.
그런데 내가 뭐하러 이계에서 섹스를 한단 말인가.
"신라야. 내가 처녀들을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나는 신라와 입술을 맞췄다.
"테라가 평화를 되찾는 그 날, 나와 섹스를 원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나는 말할 거야. 사실 나는 여자였다고."
"앗...?"
"그런데도 통정하기를 원한다면, 여자 대 여자로서 해야 한다고."
"설마...!"
"그래."
나는 신라를 위한 선물을 모으는 중이다.
"내가 모으는 동료들, 다 네가 보비면 되는 거야. 어때?"
신라가 보빌 여자인데, 어찌 비처녀를 침대에 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