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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805화 (805/1,497)

〈 805화 〉3부 1장 07 호칭

로그아웃 이후.

나는 신라와 석하랑, 그리고 모처럼 방문한 유나와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며,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미 '예정된 시각'은 이미 지나버리고 말았다.

"너희들 방송 안 해?"

"엣."

"방송 시간 보니까 석하랑은 오방없 공지만 달랑 올려놓고, 유나는 아예 일정에서 방송 횟수를 줄였더라? 무슨 일 있어?"

세 명은 모두 침묵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야. 최근들어 너희 조금 이상해. 신라는 게임 아예 안 하는 것 같고, 석하랑은 방송 요즘 되게 짧게 하는 것 같고, 유나는 아예 여기에 출퇴근 하는 것 같아. 너 영상 올라오는 거 보니까 폰으로 찍은 V로그 같더라?"

"아, 하하…."

셋은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곧장 우리의 방으로 가서 VR기기에 쌓인 먼지를 확인했다.

"세상에, 신라야. 너 플레이 안 해?"

"...의욕이 나야 하죠."

신라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게임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테라는 지금 실시간으로 침략을 당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테라의 마지막 생존자인 제가 게임이나 하면서 여자애들이랑 시시덕거리고 있으면 테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런가?"

"네. 그런 거예요. 일제강점기에 미국으로 날아가서 백마들이랑 희희덕거리는 거랑 똑같다고요."

"뭔가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네가 말하니까 이상한 말이기는 하네."

신라의 기분이 뭔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라가 게임을 중단해버린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걱정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혹시 내가 중간에 로그아웃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계속 모니터링 중이잖아."

"그것도 있지만, 제가 게임을 하는 사이에 빅-이벤트가 일어날까봐 그런 거죠. 그걸 생방송으로 보고 싶은 그런 느낌?"

신라는 자신과 게임방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게임 속 피닉스랑 보비는 게 더 좋겠어요, 아니면 과거의 나 자신과 보비는 게 더 좋겠어요?"

"그렇게 받아치면 할 말이 없네."

게임 속의 아바타와 현실의 존재는 엄연히 다르다. 신라는 인게임 속 데이터보다 과거의 자기 자신과 보비는 것에 더 군침을 흘리고 있다.

"흐흥, 말은 이래 해도 오빠야 걱정하느라 제일 조마조마한 사람이 임마다."

"오빠가 넘어가있을 때 신라 님, 저희랑 하는 건 생각도 안하고 오빠만 계속 보고계시던 걸요."

"...흥. 딴 여자랑 놀아나는 거 아닌가 감시하는 거예요."

보빈다고 표현은 하지만, 다른 여자랑 뭔가 썸씽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건 테라로 넘어간 나의 안전이리라.

"그래. 신라는 내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고 쳐. 하랑이랑 유나는? 신라도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괜찮고, 너희는 꼭 해야하는 게 있잖아."

"방송 횟수랑 시간? 방송이야 계약된 시간을 채우면 되는 거고, 지금 내가 테라 보는 것도 나중에 방송에 다 도움이 되는 기다."

"오빠가 테라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나중에 모바일 게임의 기초 데이터로 활용될 예정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냥 노는 건 아니예요. 오빠의 눈으로 테라를 보는 것 또한 일이죠. 일."

하랑과 유나는 서로를 가리키며 베시시 웃었다.

"나중에 모바일 게임 오픈했을 때 우리가 본 것들 직접 이야기하면 좀 더 생동감이 있지 않겠나?"

"게임에 저희 지분도 있어서 일정 수익이 저희에게 연금식으로 들어온단 말이죠. 오빠랑 신라 님이랑 저랑 하랑언니한테."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보면...그러니까 지금 내가 테라로 넘어가는 것 때문에 지금 이 사단이 일어난 거야?"

다소 어처구니가 없지만 상황이 그랬다. 졸지에 나는 세 명이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들을 한순간에 멈추게 만들었다.

신라의 게임도, 석하랑의 방송도, 유나의 방송도 모두.

물론 완전히 멈춘 건 아니고 셋 다 자기 할 분야에서 나름 열심히 하지만, 마치 모바일 게임에서 출석체크랑 일일임무만 해결하고 게임을 끝내는 것처럼 이전보다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더 짧아졌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이들은….

"그럼 이야기도 다 끝났겠다, 비슈니아 왕국에서 어떻게 움직일까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테라에서 창염의 피닉스의 행보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테라에 접속하기 전은 항상 작전 회의 시간이었다.

"비슈니아 왕국은 유감스럽게도 혼돈의 세력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혼돈으로 부르기로 한 기가? 혼돈환룡이랑 헷갈리지 않겠나?"

"혼돈환룡도 오염된 장기로 변해버린 존재니까 괜찮지 않겠어요? 언제까지 오염된 마력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적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가장 적당한 게 혼돈이잖아요. 테라를 위험에 빠뜨린 존재는 다름아닌 기어오는…."

"그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다. 그 자는 다름아닌 나를 게임 속 세상에 빠뜨린, 2천억 세이브 파일을 가지고 흥정을 하다가 내게 DLC를 보낸 당사자니까.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지금의 나는, 신라의 힘을 가진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당사자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일단 부하들부터 처리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자. 신라로부터 받은 힘 덕분에 '나'는 무조건 안전하니까."

창염은 혼돈에 대해 극카운터나 마찬가지니까.

"문제는 결국에 나만 빼고 전부다 오염되는 경우야. 혼자서 움직이는 건 조금 무리지?"

"혼돈을 찾기 위해서는 각 국가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화전마을의 경우처럼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오염이 진행될 수 있으니까."

"그럼 정령들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면 되는 건가? 아니다, 정령들에게도 혼돈의 힘이 미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네. 처음은 간봐야겠다. 오빠야, 개천광 나라 끝나면 바로 물의 나라로 가면 될 것 같은데? 우리 엄마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설야.

석하랑은 설야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개천광이 타락했어도 설야를 확인하러가야하고, 설야도 신라 다음으로 버텨냈던 정령 아이가."

"그렇게 보면 땅의 나라도 괜찮아요. 지륜도 나름 한가닥 하는 아이니까요. 지륜이 오염되었는지, 아니면 지륜도 괜찮은지 확인하면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죠. 누군가 오염이 시작되었다면...거기서부터 방어선을 구축하는 걸로."

"끙...."

각자 의견을 하나씩 내는 가운데, 신라의 표정에서 뭔가 불쾌함이 느껴졌다.

"왜 그래?"

"아뇨, 별 건 아닌데…."

"별 게 아니기는. 지금 살짝 화나있잖아. 그것도 하랑이랑 유나한테."

신라가 둘에게 화를 내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둘 또한 신라와 나를 번갈아보며 침을 삼켰다.

"내가 뭐 말 실수했나?"

"딱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신라 님, 저희가 뭐 잘못했어요?"

"명칭."

신라는 자신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명칭이 달라요. 정령은...정령이라는 것조차 성주가 신들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상을 낮춘 거라구요."

신라는 불꽃으로 계급의 피라미드를 만들어냈다.

"테라에서 가장 많은 건 인간과 수인, 그리고 아인. 그들의 위에 정령이 있어요. 그리고 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각 원소들의 신."

"불꽃신이 창염이 아니고, 물의 신이 설야가 아니고, 땅의 신이 지륜이 아니라는 거지."

"맞아요."

내 말에 신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얘를 창염이라고 안 부르잖아. 그건 위상이 다른 존재기 때문이야. 세뇌가 풀린 간부는 정령이지만, 이들은 정령이기 전에 테라의 일곱 신이었지."

창염이 불꽃 속성의 대표 '정령'이라고 한다면, 신라는 불꽃의 여신이다. 이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서, SS와 SSS의 차이야. 마력 한계 99와 싱크로한 여신이 다른 것처럼."

전자는 인류의 한계에 다다른 존재이나, 후자는 신이다.

"그러니까...신으로서의 다른 이름이 존재한다 이거가? 설야나 지륜, 개천광과는 다른 이름이?"

"그래요. 조금 까탈스러운 요구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그런 거랑 비슷해요."

신라는 우리 셋을 번갈아 가리켰다.

"여러분도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듣고 싶지, 조선인이라고 들으면 싫잖아요?"

나도, 하랑도, 유나도 금방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통수가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와, 나 확 와닿았다. 오빠야는 어떤 느낌인데? 여기도 같나?"

"...완벽하게."

"맞는 말이긴 한데 조금 그렇기는 하네요. 뭔가...뭔가네요."

"그런 거예요."

신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럼 나는 이제 신라의 피닉스라고 불러야 하나?"

"......그건 좀 그렇네요."

신라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불꽃을 둘로 나눴다.

"용어를 정리하죠. 신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그냥 각 마력의 신들로. 빛의 신, 어둠의 신, 물의 신, 절풍, 땅의 신, 환상의 신, 그리고 불꽃의 신. 광신이나 암신이나 그렇게 불러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바람의 신을 깎아내리고 있는데?"

"절풍은 절풍이니까요. 김펜릴을 낳은 것 이상으로 큰 죄를 가지고 있으니까 용서할 수 없어요. 어쩌면 지금쯤...간부 타락을 했을지도 모르고."

신라는 아마 영원히 절풍을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보빔 좋아하는 신라가 절풍과 비빌 바에는 차라리 펜릴이랑 비비겠다고 하니, 그 혐오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니지 않나? 매번 무슨무슨 신이라고 불러야하나?"

"그건 좀 불편하죠. 그러니까...앞으로는 이렇게 하죠."

신라는 일곱 개의 한자를 쓰고 그 옆에 빈칸을 만들었다.

"별칭을 정하죠."

* * *

"낯선 감옥이다."

아무리봐도 감옥이다. 사지는 자유롭지만 전면에 있는 철창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옆방에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그래. 여자지. 한낱 범죄자에 불과한 여자지만."

"여긴 어디지?"

"어디냐고? 비슈니아 왕국의 왕성 아래에 있는 지하 감옥이다. 국가적 범죄를 일으킨 자들이 이곳에 갇히지. 너는...기절한 채로 여기까지 끌려왔다."

"끌려와? 내가 왜?"

"흐흐흐."

여자의 웃음소리는 상당히 기괴했다.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살짝 기분도 나빴다.

"너는 지금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다."

"무슨 범죄?"

"정령살해. 방화. 살인. 근데 사실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 바로 이단."

"뭐?"

여자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한 번 물어볼까? 너의 태양은 무엇이지? 너의 빛은 무엇이지?"

"그야 당연히 나의 푸른 불꽃...."

아.

"그거, 신성모독이야."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법.

"역시 화형당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녀석이었군. 쯧쯧."

아무래도 빛의 신, '금태양신'은 나를 이교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태양이 어떻게 푸른색이니? 이단이네."

신성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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