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02화 (802/1,497)

〈 802화 〉3부 1장 04 통수에 통수

접속 전.

"카르나, 그러니까 개천광의 나라는 섹스촌이에요."

신라의 말에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개념과 신라가 말한 것이 맞나 잠시 고민을 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라가 말한 말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 듯 했다.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거야?"

"문란한 걸 넘어서 섹스촌이라니까요? 국가니까 섹스국. 음...그냥 섹스의 나라라고 하죠. 개천광의 나라는 성적으로 상당히 오픈되어있어요. 모두가."

"성진국이라는 거야?"

"이쪽의 성진국같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섹스가 일상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라는 거죠. 너도 나도 섹스하는 게 일상인 그런 곳."

감이 오지 않는다.

"만나면 반갑다고 큥큥큥, 오케이?"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는데."

"지나가다가 서로 잘생겼거나 예쁘거나 섹스하고 싶게 생겼으면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야, 함 빠구리 뜨자."

"음, 뭔가 이해할 것 같기도 하고."

카르나가 성적으로 문란한 캐릭터인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원전인 개천광부터 그랬다면, 카르나가 자신을 이기는 상대에게 가차없이 다리를 벌리는 성향인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 개개인은 평범한데, 성적인 것을 따로 금기시하거나 터부로 만들지 않아요. 섹스는 평범한 것이되, 강제로 하는 건 불가능."

"그러면 섹스의 나라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게 가능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기 싫은 사람도 있는 거잖아."

"그건 나중에 돌아다니다보면 알게 될 거예요.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의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화륵.

푸른 불꽃이 막대한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신라는 그 아래에 두꺼운 책을 비스듬히 기울였고, 아래에는 당연히 불꽃만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짙은 법. 테라의 오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졌고, 신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부터 천천히 진행되었죠."

"신들조차 눈치 못챌 만큼 교묘히 이루어졌다는 거야?"

"예. 인간의 정신을 좀먹어들어가는 놈들, 테라리스트 들은 약한 존재에 더 쉽게 기생을 했으니까요. 테라라고 악인이 없는 건 아녜요. 테라도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주 세력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고, 개중에는 게임 속 빌런이나 괴인들 같은 성향을 지닌 존재도 있었죠."

"걔들은 다 어둠속성의 나라, 앙그의 나라에 있을 것 같은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아요. 당장 제 나라만 하더라도...아니, 이건 비밀."

신라는 비밀이 많은 여자다.

세계를 탈출하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그녀는 자신이 아는 바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야 뭐, 부끄러우니까.

신라에게 있어 테라의 자신은, 과거는 흑역사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런 흑역사를 공개하면서까지 테라를 구하려고 하니, 내가 어떻게 그만들 수 있나.

"매운맛 하신라."

참을 수 없다.

반드시 세계를 구하고 신라의 과거를 보면서 지금의 신라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지 나는 테라의 위협이, 20년의 지구에서 있었던 빌런과 괴인들의 악행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했다.

"조심해요. 언제 어디서든 뒤통수 맞을 수 있는 곳이예요. ...정확히는 언제 누군가가 돌변해서 악행을 저지를 지 모르는 곳이죠."

신라는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계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에 몹시 걱정을 많이 했고, 나는 최대한 긴장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델피아가.

* * *

아프지 않다.

분명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았는데 아프지 않다.

그리고 내가 가만히 서있자, 다들 혼란에 빠진 것이 한눈에 보인다.

"으, 으아아!!"

"뭐야?!"

"괴, 괴물!"

하나 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금발의 여인을 인질로 잡은 촌장은 벌벌 떨기 시작했고, 내 뒤통수를 친 여기사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아, 아아...."

[개인적으로 말이다, 나는 네가 여기서 강간을 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시야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뻗으며 내 뒤통수-투구의 뒤를 때린 둔기를 붙잡았다.

[여기사임에도 뭔가 약에 취해서 당한 나머지, 이 창고 안에서 범해지거나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으, 아아악!"

델피아는 괴성을 지르며 내게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검에는 가증스럽게도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마력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러구나. 그게. 검에 마력을, 광속성의 마력을 담아서 휘두르는 거야.]

그게 나중에 극의에 이르러서는 마력 그 자체를 검으로 만들어 휘두르는 경지에 이르리라.

그리고 중세 판타지가 으레 그렇듯, 검에 오러를 담을 수 있는 수준이면 상당한 수준급 기사다.

방랑기사든 뭐든, 그런 여자가 이런 곳에서 쉽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나의 예상이 잘 맞아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역시 인간은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애초에 믿지 않았지만.]

"다, 당신 뭐야! 도대체 무슨...!"

[나?]

나는 단숨에 델피아에게 접근했다.

그녀의 목을 움켜쥔 손은 날카로운 새의 발톱과도 같은 건틀릿의 모양이었다.

빌런이라기 보다는, 괴인 피닉스의 진짜 모습이라고 하기 보다는 "다크 히어로"에 가까운 디자인.

익숙하지는 않지만 어차피 디자인보다 성능을 더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딱히 상관 없었다.

신라의 힘을, 창염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같으니까.

[세계의 어둠을 정화할 푸른 불꽃.]

화륵.

나는 델피아의 목을 붙잡고 불꽃을 뿌렸다.

"아아악!!"

델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고, 입에서 무언가가 하늘로 솟구치며 전신을 벌벌 떨었다.

사아아-

불과 3초 남짓한 순간이지만 델피아는 창염에 의해 타올랐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 어떤 곳도 화상을 입은 곳도 없었다.

단지 그녀가 다친 곳이라고 한다면 하나.

[마력을 전부 태웠다. 순순히 나오면 단번에 죽여주지.]

나는 델피아의 입을 벌리고 목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델피아의 뱃속에서 뭔가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곧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내 손가락을 물었다.

콰득.

내 손가락 끝에는 이형의 괴물이 있었다.

마치 외계생명체의 새끼처럼 보이는 음충은 피라냐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하지만 건틀릿 끝에 두른 마력 덕분에 놈은 그 어떤 흠집도 내지 못했다.

[숙주의 마력이 전부 사라지니까 내게 기생하려고 하다니. 미안하지만 선택을 잘못했다.]

화륵.

어차피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굳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건 내가 죽이는 테라리스트-육신 기생형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언젠가 이 상황을 알고 이곳에 올 적이 있다면, 그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테라의 오염을 정화할 불꽃의 사도가 왔노라, 하는 그런 메세지.

이곳에 있던 기생형 테라리스트의 소멸에 의아함을 느낀 누군가가 와서 과거의 흔적을 보게 된다면, 필히 내 메세지가 전달 될 것이다.

지금은 비록 공허한 울림이지만, 나의 목소리는 미래에 이곳을 방문할 '적'에게 들릴 것이다.

화륵.

나는 테라리스트를 완전히 제거했다.

그리고 델피아의 몸이 형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도플갱어?'

원작 게임에서도 나온 괴물이다.

만약 이 델피아가 도플갱어라고 한다면, 어쩌면 그 금발 여기사는....

'집중하자.'

이제 고작 하나, 아니 두 마리 제압했을 뿐이다.

[촌장.]

나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도플갱어는 네 작품인가?]

"오, 오지마!!"

촌장은 칼을 휘두르며 앞에 있는 여자를 내팽겨쳤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불태워죽이는 건 시각적으로 효과가 크지. 사람을...패닉에 빠뜨리거든.]

해봐서 안다.

예고도 없이 사람을 태우는 건 사이코패스지만, 태워죽일만해서 태우는 것일 뿐.

그래도 이번에는 직접 죽이지 않았다.

촌장아들의 경우는 위협으로 직접 기생체를 뽑아냈고, 델피아는 마력을 전부 태워버림으로써 기생체를 뽑아냈다.

그러나.

[저 여자를 강간한 사람은 네놈인가?]

"크, 으아아!!"

[끝났군. 역시 이런 화전마을 촌장이 빌런이 아닐 리가 없지.]

시골 마을일수록 주민들 사이의 카르텔이 공고히 다져져 있으며, 촌장은 이들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악행을 일삼는 자이며, 테라리스트에게 가장 쉽게 노출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크륵, 크르륵, 크아아...!"

예상대로 변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은 저쪽이나 이쪽이나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화르륵.

괴인의 상태에서는 굳이 총을 꺼낼 필요가 없다.

그냥 손을 앞으로 뻗어, 창염을 뿜어내면 된다.

내 전신은 화염방사기나 마찬가지.

"크아, 아아아...."

촌장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검게 타오른 상태에서 그는 자신이 범한 여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쓰러졌다.

테라 진입 일일차.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아마 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을 석하랑은 다소 씁쓸해할 수도 있다.

그녀는 히어로로서 악인도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다.

화르륵.

전신을 다시 불꽃으로 태우며,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로브는 다시 청과 백과 금의 세 색깔로 되돌아갔고,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슬슬 일어나지?"

"...당신 뭐야?"

강간당한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와 동시에 나를 향한 명백한 짜증이 서려있었다.

"하아...모처럼 재미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영원히 중독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그래, 타락이라고 들어는 봤나?"

"흥...."

금발 여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사아아.

여인의 몸에서 금색 빛이 반짝였고, 그녀는 찬란한 금발에 마치 정장과도 같은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잠입 수사 중에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와서 상황은 다 꼬일 뻔 하고…. 당신 뭐야? 세상에 푸른 불꽃을 쓰는 정령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너 도대체 왜 여기서 강간당하고 있는 거냐.”

“잠입 수사라고 했잖아. 잠입 수사.”

여인은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간촌에 잠입하려면 강간당하는 게 기본 아니야?”

“.......”

빛속성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 이름은 이시리아 델피아. 비슈니아 왕국의 기사야. 이곳에서 여행객들을 강간한다는 소문을 듣고 잠입수사 중이었어. 나를 사칭한 녀석은...도플갱어지. 뭔지 알아?"

"그대로 복사했다는 거군. 그런데 왜 강간 당한 거지?"

"그야...."

'진짜' 델피아, 이시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개인 취미 생활에 훈수 놓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

"하, 오늘 윤간으로 존나게 따먹힐 예정이었는데...누가 다 망쳤어."

이게, 진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