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1화 〉3부 1장 03 여기 완전
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20년의 지구에서는 여러 사람을 죽이고 다녔지만, 그들은 죽여도 되는 이들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가만히 살려두면 내가 신라를 구하는데 방해가 된다.
인류의 평화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전부 태워죽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특히 이계에 오자마자 살생은 해도 살인을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쐈다.
빗겨서.
"아, 아아…."
놈의 볼을 스치고 날아간 마탄은 벽에 박혔다.
마법으로 치면 매직미사일, 그러니까 E급 수준의 마탄이다.
"히, 히익!!"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남자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원소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이 깡촌 마을에서 마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예상하지 못한 물건에서 마탄이 나왔으니,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하다.
털썩.
촌장아들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바지가 서서히 짙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총구를 촌장 아들의 이마에 다시 겨눴다.
"델피아를 어떻게 했지?"
"어, 억울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억울합니다!!"
"억울하겠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위협을 받았으니까. 그런데...그거 아나?"
나는 촌장아들의 이마에 총구를 정확히 겨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오염된 놈은 정확하게 볼 수 있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네 눈빛에 음란마귀가 가득하다, 이 말이야."
순간.
촌장 아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 지금."
탕!
그래서 나는 가차없이 마탄을 쐈다.
촌장 아들의 이마에는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고, 나는 총신을 붙잡아 놈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아주 불손해."
키아악!
놈의 머리에서 뛰쳐나오려던 유령같은 안개가 나를 덮치려했다.
나는 들고 있던 총을 옆으로 도끼처럼 휘둘러 안개를 패대기쳤고, 안개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다가 푸른 불꽃에 전신이 타올라 사그라들었다.
털썩.
촌장아들은 옆으로 쓰러졌다.
몸 속에 잠식되어있던 테라리스트는 혼령 째로 소멸했다.
죽이지 않았다.
괜히 사람을 죽이면 귀찮아질 뿐더러, 나는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촌장 아들에게 달라붙어있는 테라리스트가 도저히 본체로부터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달라붙어있다면 모를까, 숙주를 버리고 스스로 뛰쳐나올 정도라면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끄집어내기.
기생체가 문제라면, 기생체 스스로 위협을 느끼고 직접 뛰쳐나오게 만든다.
방금도 나는 일차적으로 빗겨 쏘는 것으로 위협을 가했다.
처음에는 나를 간보던 테라리스트도 내가 미간을 겨누자마자 기겁하며 뛰쳐나오지 않았던가?
그게 다 진짜로 자기가 죽을 것 같아서 뛰쳐나온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주 손쉽게 촌장 아들에 깃든 기생체를 무사히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신라가 말한 대로 하니까 쉽네.'
신라는 수많은 정령들을 괴롭혔던 테라리스트와 테라사이트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내게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가르쳐줬다.
테라리스트는 인간과 정령의 정신에 깃드는 혼령이다.
테라사이트는 식물과 동물의 몸속에 깃드는 기생충이다.
이들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 기생당한 숙주를 통째로 태운다.
둘, 기생당한 부위가 있다면 그 부위만 깔끔하게 태운다.
셋, 기생체만 특정할 수 있다면 그놈만 태운다.
넷, 기생체가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그놈을 태운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 않은가.
응? 만약에 안 튀어나왔으면 어떻게 하냐고?
썩은 사과는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먹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냥 통째로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셈이다.
촌장아들은 테라리스트에게 씌여 정신이 폭력적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테라리스트가 깃들었다는 건 평소에 저 남자의 마음에 깊은 어둠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테라리스트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이들의 정신에 안착한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곳부터 서서히 잠식해들어가며, 인간의 원초적인 악함을 찾아 그들을 타락시킨다.
현대의 빌런이 쉽게 타락하여 괴인으로 물드는 것과 마찬가지.
이 세계의 주민들도 오염된 마력, '장기'에 노출되면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들부터 하나 둘 영혼이 오염되기 시작한다.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촌장 아들이다.
필히, 이곳은 뭔가 큰 문제가 생긴 마을이리라.
'내 이름을 페니스라고 부른 것 부터 이상했지.'
나는 델피아에게 나를 피닉스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나를 굳이 페니스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인게임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건 그건데.'
기억이 떠오른다.
원작 빌런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여자 캐릭터를 납치하려고 했던 전적이 떠오른다.
'사실 납치당했는데 내 이름을 다르게 알려준 걸로 이상함을 눈치채게 했다거나.'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는 현 상황과 가장 싱크로율이 높다.
애초에 인게임은 테라에서 있었던 일들을 현대 지구와 괴수 아포칼립스에 맞게 변형해놓은 일이다.
그러므로 마냥 무의미한 추측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마을, 이상해.'
당장 촌장 아들에게 테라리스트가 붙어있었다는 것 자체가 델피아의 위험을 증명하고 있다.
끼이익.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총성을 듣고 뛰쳐나온 이들로 가득했다.
"뭐, 뭐야!"
주민들 중 몇몇이 나를 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쟁기나 삽과 같은 농기구를 들고 나를 대적하는 모습에서 나는 이들에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촌장은 어디에 있지?"
"촌장님은 왜 찾는 거야?!"
"그야 촌장이 죄를 저질렀으니까."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다.
내가 촌장을 특정하여 '죄가 있다'고 말하자,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다들 겁을 먹으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지만, 누구도 촌장을 옹호하지 않았다.
"말해라. 촌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너, 너부터 정체를 밝혀라! 너는 누구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다니. 이쪽이 물었는데 그쪽에서 대답을 안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그쪽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주지?"
"초, 촌장님을 찾는 이유는 뭐냐?!"
나름 이성적으로 보이는 이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짐작하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하려다 참았다.
"그쪽 촌장은…."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귀신이 들렸다?
이계에서 온 괴물이 깃들어서 이제 곧 사람들을 학살하는 괴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이 세계를 멸망에 빠뜨리는 첨병이 되고, 다른 세계도 멸망에 빠뜨릴 존재가 된다?
아직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높은 확률로 정답에 가까운 추론이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큰 충격에 빠질텐데, 괜찮겠나?"
"...촌장님이 진짜 죄를 지은 거라면 모를까, 죄도 없는 촌장님을 음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물어보도록 하지. 여인을 강간한 건 죄인가?"
"......그건 당연히, 흡…?!"
남자는 숨을 참았다.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이들 중 일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셋.'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가 느리거나 하는 이들이 정상이다.
나는 중간에 들어갈 말을 과감히 생략했다.
그걸 한 번에 알아듣는 이는 이미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이들 뿐이다.
여인을 강간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나, 그걸 촌장이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
"말도 안 된다!"
"촌장님을 음해하다니, 이 비겁한 자식!"
"어디서 온 놈인지 몰라도, 감히 사람을 상대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빛의 신께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빛의 신과 알고 지냈던 사이라서, 정확히는 의지를 이어받은 자와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서 딱히 두렵지는 않다.
그리고 빛의 신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편을 들 것이다.
자신의 영토 안에서 여자를 겁간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어찌 신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방금 전의 반응으로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저 놈들, 공범이다.
"빨리 촌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방랑기사라고 해도 기사는 기사. 무슨 이상한 약으로 감금한 다음 강간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말겠지?"
"그, 그럴 리가…."
"촌장의 아들은 내게 기사가 수도로 떠났다고 하더군. 그건 맞나?"
웅성웅성.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도 여기사, 델피아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눈치였다.
"델피아는 어디에 있지? 나를 아마 이곳으로 데려온 여기사 말이다."
"그, 그녀는...."
"여기 있는 이들 중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수도로 떠났다는 것인가? 그건 말이 안 되지. 기사가 뭐하러 자신의 행적을 숨기고 떠나겠어? 숨길 일이 있지 않고서야."
점차 다들 표정이 굳어간다.
그리고 이제 슬슬....
탕!
나는 하늘을 향해 총구를 들어올려 위협사격을 날렸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마, 마법사?!"
"조심해! 역시 저거, 스태프야!"
마탄이 발사되는 도구.
아주 특이한 형태의 마법 스태프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죄다 특이한 존재니까.
특히 강한 존재일수록 검이나 창, 활 같은 무기에서 뭔가 괴랄한 무기를 사용하기 마련.
저들이 보기에도 아무 영창없이 마탄을 쏜 내가 상당히 위험한 마법사처럼 보이리라.
특히 저기 촌장의 행적을 알고 있는 듯한 남자들은 더더욱.
"순순히 이야기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으, 으아아아!!"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 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놈의 손에는 조잡하지만 제법 그럴듯하게 생긴 창이 들려있었다.
나무의 끝부분을 날카롭게 잘라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탕.
"아아악!!"
허벅지에 한 발.
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뒤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나는 저 비명이 너무나도 가증스러웠다.
덜커덩!
어디선가 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앞으로 총구를 겨눈다음, 살짝 머리 위를 향하도록 난사했다.
"으아아악!!"
화전민들은 좌우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사이로 달려가, 마을의 공동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바로 달려갔다.
쾅!
나는 문을 발로 걷어차며 열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지고, 어둠만 가득하던 창고 내부에
창고처럼 되어있는 곳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했고, 그 안에는....
'좆간 네버 체인지.'
음부에서 누런 정액이 흘러나오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누더기는 커녕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는 초점없는 얼굴로 몸을 떨고 있었다.
처음보는 여자의 전신에는 멍이 가득했다.
"오, 오지마!!"
그리고 그 뒤에는 막 늙은 노인이 있었다.
녹색 머리칼로 보아 촌장의 아들과 혈연으로 보이는 그는....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채, 덜렁거리면서 델피아의 목을 향해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역시 여기 완전...."
인게임에서 나온 설정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강간촌.'
이곳은 여행자를 납치하여 강간하는 강간촌이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는 도적들의 마을.
아니다.
어쩌면 남자도-
카ㅡㅡㅡ앙!
뭔가가, 뒤에서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