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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98화 (798/1,497)

〈 798화 〉2부 7장 30 신세계, 개막

어느 날.

석하랑과 이유나가 '피닉스'를 2:1로 강간하고 있던 아침.

하신라는 몸을 단정하게 정돈하고 집을 나섰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펄럭.

"날씨도 좋고, 은밀기동 하기에도 좋고."

그녀는 베란다에서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어차피 들키지도 않는 거, 금방 다녀오죠."

태양이 있는 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비행체로서 반응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불꽃의 정령으로서, 태양신으로서 힘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하신라에게 '낮'은 상시 투명화로 스스로를 숨길 수 있는 시간이나 마찬가지.

펄럭.

하신라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장 스마트폰으로 연락이 온 장소를 향해 날개를 움직였다.

서울로.

장소는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여의도의 C호텔.

햇빛에 비친 유리창에는 노란 정장의 남자가 신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신라는 날개를 접으며 아래로 활공한 뒤-

"와장창!"

에테르체가 되어, 유리창을 박살냈다.

바닥에 두 발을 디디고 착지하며 날개를 접었고, 닿기 직전에 몸을 에테르체로 바꾸어 통과했기에 유리가 깨지는 일도 없었다.

그녀는 입으로 와장창 소리를 내며 펜트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이사님."

"오랜만입니다. 신라님."

펜트하우스 안에서 신라를 맞이한 이는 전신을 노란색으로 맞춘 정장의 남자, 하선태였다.

호적상으로는 부녀관계지만, 서로 딸이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기묘한 관계.

"바로 앉으시죠. 오늘 신라님을 부른 건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선태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번에는 또 뭐죠? 누가 넘어오는 건가요?"

"넘어오는 게 아니라 넘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찮은 사족을 싫어하는 신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고, 신라는 하선태가 꺼낸 서류봉투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프로젝트 M."

"테라를 베이스로 한 모바일 게임입니다. 가챠가 들어간 수집형 RPG죠."

하선태는 벽에 걸린 TV를 켰다.

미리 준비해놓은 듯, TV 모니터에는 프로젝트 M의 PV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쯧."

테라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본 신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인 만큼, 신라의 표정은 좋아질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해요."

"신라 님께서는...아니, 피닉스 님께서 이 게임의 베타 테스터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거절할게요."

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정작 그 제안이 신라가 아닌 피닉스를 향한 제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속을 줄 알고? 내 남편, 납치하려는 거잖아."

그녀는 눈에 푸른 불꽃을 피우며, 계약서에 서린 마력의 흔적을 가리켰다.

"이거, 이계행 계약서잖아요. 저, 분명히 들었어요. 약관 동의는 신중히 하라고. 안 그러면 이상한 세상에 납치당한다고."

"그곳에서 하렘을 만든다면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하렘을 만드는 건 좋은데, 제 남편은 안된다 이거죠!"

"걱정마시길. 이번에는 지난 번처럼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하선태는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진행하는 계획이고, 주변에서 뭔가 이상한 접촉이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프로젝트를 보고 '크 사장'쪽에서도 도와주기로 한 거라,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쪽이 안심하라고 하니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데요. 그보다 그런 일이 없다는 건 지난 번처럼 된다는 얘기인데...?"

"예. 영혼이 그쪽 세계로 넘어갑니다."

하선태의 말에 신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임신한 아내를 두고 애 아빠를 이계로 출장보내겠다는 건가요? 그것도 뒤에 다른 여자가 둘이나 있는데?"

"압니다. 한국 말은 끝까지 들으세요. 자고 있는 동안만 보내는 겁니다."

"자고 있는 동안만?"

"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 딱 닷새만 접속하는 거죠."

"공무원이예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히어로도 휴식 시간이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영혼만 날아가는만큼, 이곳의 육체에 부담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정확히는 이쪽에 있는 캡슐을 통해 육체는 숙면을 하고, 영혼은 저쪽으로 보내는 거죠."

"아하, 아바타구나. 출퇴근 하듯이 이계를 다녀오라?"

신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부우욱.

"싫은데요."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하선태는 예상을 했다는 듯 또다른 종이봉투를 꺼냈다.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까?"

"싫네요. 보내는 곳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20년의 지구잖아요.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낼 이유가...어라?"

신라는 계약서를 다시금 살펴보며 갸웃거렸다.

"멸망한 세계가 아니라...멸망 전의 세계?"

"그렇습니다. 프로젝트 M의 실체는 테라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멸망이 다가오는 테라의 멸망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플레이어가 주인공이죠. 당연히 멸망은 플레이어의 손에 해결될 것이고, 해피엔딩이 무조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피닉스 님이 넘어가서 테라를 한 번 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요."

"뭔 그런 복잡한.... 그래서 제 남편에게 바라는 게 뭐죠? 세계를 한 번 더 구하라고요?"

"그게 우선이기는 하지만, 이차적으로 피닉스 님께서는 데이터 수집을 해주셨으면 하고요."

"데이터 수집?"

"하신라 님은 테라의 주민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까?"

움찔.

신라는 하선태의 말에 침묵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니 아시겠지요. 테라에서의 당신은...."

"여자의 과거는 들추면 안 되는 거 몰라요?"

"후후, 알겠습니다. 그래서 테라의 주민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진행하겠습니다. 피닉스 님이 알고 계신 테라의 주요 인사는...여섯 정령과 마지막을 함께 한 '전우들'밖에 없지요."

"......."

신라는 조용히 자신의 앞에 놓인 딸기에이드를 마셨다.

"그래서요?"

"그분들에 대한 자료는 신라 님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더 높은 존재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죠. 그렇습니다, 저희는...."

"내 남편을 테라에 투입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펄럭.

하선태는 마치 보물을 꺼내듯, 비어있는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한 장의 카드를 여러 장으로 부채처럼 펼쳤다.

각각 E부터 SS까지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챠 등급에 신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가챠 게임의 캐릭터로 만들 겁니다. 이 세계에서 테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지구인들에게 보여지게 되겠죠."

"그걸 제가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멸망한 세계라고 한들, 한 때는 내가...우리가 지배했던 세계예요. 그런 곳의 주민들과 정령들이 게임에서 놀아나는 꼴을 또 보라고요?"

"놀아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세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그리고 테라가 멸망했다는 역사를 없애기 위한 겁니다."

"흥?"

신라의 귀가 쫑긋 섰다.

"테라가 멸망했다는 역사를 없앤다?"

"예. 성주에 의해 이미 멸망한 테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관측된 시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요."

"세계와 그 안에 있던 생명들을 그대로 재구축...한다?"

신라의 목소리가 점차 갈라지기 시작했다.

"예. 그렇게 되면...."

"안 돼요."

"예?"

"나도 재생되잖아. 내 흑역사, 남편한테 보여줄 수 없어요."

신라는 다시 계약서를 불태웠다.

하선태는 또다른 계약서를 꺼내며 물었다.

"그라면 딱히 신경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녜요. 다른 애들은 괜찮아요. 하지만 나는 안 돼. 분명 남편은 나보다 더 젊은 나를 좋아하게.... 아니, 그 년이 내 남편한테 꼬리칠 거라고요!"

"...이상한 곳에서 포인트를 잡으시는 군요. 저는 세계가 재생되는 것에 대해서 존엄성을 언급하시거나, 기만행위라고 욕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신라는 다리를 꼬며 빈정거렸다.

"결국에는 나 빼고 전부 다 패배해서 타락해버렸잖아요? 어차피 성주가 아니더라도 다들 그렇게 멸망할 운명이었던 거죠. 흥."

"예. 그러니 세계를 다시 구원하는 겁니다. 저희 측의 사고로 인해 멸망한 세계니까, 저희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했죠. 근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건 회장님도 예상하지 못한 건데...."

하선태는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여기서 사고치고 좌천된 놈이 멸망한 테라를 저희 계획과 달리, 제멋대로 되돌려버렸습니다. 정확히는 그의 추종자들이 일을 벌려버렸죠."

"추종자들이라고 해봐야 성주보다 못한 놈들일텐데, 그게 가능해요?"

"예. 놈은...."

하선태는 진심으로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육신과 심장을 바쳐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20년의 지구와 이어버렸죠."

"...아, 그거구나. 원작에서 나오는 그 테라와의 연결...그걸 가상의 테라로 연결시켜버렸구나."

"명칭은 '검은 테라'라고 지칭하겠습니다."

신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 한 번 정리해보도록 하죠. 우리 남편을 그 세상에 집어넣은 범인이 복수하려고 테라를 멸망 이전으로 되돌렸고, 그걸 20년의 지구와 이어버렸다?"

"예. 신라 님도 아시다시피, 20년의 지구 사람들이 엔딩 이후에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나서지 않습니까? 세계가 지휘관에 의해 평화를 되찾은 뒤, 테라와의 패스를 찾아서 차원문을 열고 테라로 역으로 침공해들어가는 거죠."

"테라포밍."

20년의 지구.

그들은 세계 평화를 얻고 난 뒤, 이차원으로의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다.

"원래는 신라 님께 제안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임산부잖아요? 그래서 부득이 피닉스 님께 제안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곳에 가서는...."

하선태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신라는 한참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딸기 에이드는 벌써 세 잔을 비워버렸고, 하선태는 묵묵히 신라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상담."

신라는 한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남편이랑 상담 좀 해볼게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신라 님, 만약 남편분께서 이 일을 선택하시고, 검은 테라마저 정화하여 테라를 재건한다면...."

하선태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를, 신세계의 신으로 추앙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세 명의 여신, 아니 수많은 여신들을 품은 쥬지신으로서 말이죠."

"...합법 하렘?"

"그렇습니다. 이 나라, 이 세계가 중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하선태는 달콤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어, 그곳에서 중혼을 하는 게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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