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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97화 (797/1,497)

〈 797화 〉2부 7장 29

그 시각.

가상현실 SM 플레이로 마음껏 즐기고 있던 유나는 '팩토리'에서 들려온 소식에 기겁을 하고 달려갔다.

"저기요!"

유나가 나타나자 직원들이 모두 옆으로 물러났다.

"...오셨습니까."

"진짜예요?"

"네. 그렇습니다. 상황은...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선태는 담배라도 있었다면 한 대 깊게 들이마셨을 표정으로 품에 든 서류를 건넸다.

유나는 서류를 받자마자 울컥했다.

"아...."

"그렇게 됐습니다. 석하랑 님, 그리고 유나 님. 두 명의 신체 구성 작업을 맡아주셨던...'그분'께서 남기신 편지입니다."

유나는 장문의 편지를 받고 눈물이 절로 흘렀다.

그게 유나를 향한 건 아니지만, 유나는 그의 편지에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유나의 소체를 만들어냈는지 십분 느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유나는 편지를 끌어안고 한참 고개를 숙였다.

그 숙연한 분위기에 직원들-특히 남자 직원들은 더욱 참담한 얼굴로 쓰게 웃었다.

"있잖아요. 하랑 언니 뿐만 아니라 저도...정말 많은 분들이 보고 예쁘다고 해주셨어요. 몇몇 분들은 조금 엄한, 야한 말도 해주셨지만...그만큼 예쁘다는 거였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말씀해주셨죠. 그는, 신이라고. 그분 덕분에 저희도 사업이 더욱 크게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지만...특히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 그래도 괜찮아요. 몸만 건강하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그 때는...다시 지금보다도 더 챙겨드릴 수 있도록 해야죠. 성공해서, 그분께 더 많은 보답을 드리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유나 님."

사락.

유나는 편지를 자신의 마력으로 감쌌다.

그리고 누구도 볼 수 없게, 나중에 석하랑만 따로 볼 수 있게 봉인하여 하선태가 가져온 금고 속에 집어넣었다.

"정말...안타깝네요."

끼이익.

유나는 하선태가 서있던 창고 뒤의 문을 열었다.

"좀 더, 나올 수 있었는데."

17개의 기둥이 있었다.

마치 호문클루스를 연구하는 미래 기관의 연구실처럼, 유리로 된 기둥 안에는 녹색의 액체가 가득 차있었다.

물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7개의 기둥 앞에는 각각 대상을 나타내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 중 세 개는 이미 전원이 꺼진 채, 마치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멈춰있었다.

"정말...안타깝네요."

유나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리고.

"크으...! 어떻게든 전부다 뽑아내서 놈을 착정시키겠다는 나의 원대한 계획이...!"

대머리는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피닉스 착정' 계획은 중지되었다.

언젠가 연구실의 주인이 다시 돌아올 그 날을 기약하며.

끼이익.

연구실의 문은 굳게 닫혔다.

* * *

'뭔가 큰 위기를 넘긴 듯한 기분이야.'

신라와 석하랑을 재우고 난 뒤.

나는 홀로 거실에 나와 캔맥주 하나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부부의 시간도 중요하고 셋이서 가지는 시간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혼자서 사색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신라와 만나기 전, 나는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했고, 혼자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내해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내 주변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다.

"...좋네."

그 고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건배를 했다.

삐빅.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는 스마트폰에 뜬 영상통화를 보고 바로 베란다로 나갔다.

"유나야?"

[오빠, 보여요?]

유나는 우리 집 아래, 놀이터에서 조명 하나에 의지한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떡볶이 코트에 짧은 치마, 스커트 차림은 멀리서봐도 익숙한 차림이었다.

"미안하지만 이쪽에서는 안 보여."

[그렇구나...아쉽네요. 가까이 오시면 제 팬티 색깔 보실 수 있을텐데.]

"흰색이지?"

[......보여요?]

보이지는 않지만 알 수 있다.

"그냥 느낌이 그래서."

[으으.... 다음에는 RGB 색상이라도 맞춰보라고 해야하나?]

"그것까지는 좀 그렇지. 그런데 유나야, 너 울었어?"

눈가가 살짝 부어있다.

유나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며 베시시 웃었다.

[오빠 때문에 설레서 울었어요. 전화 받기도 전에 베란다로 나와주는 거 보고 고마워서.]

"내가 고맙지. 이 시간에 이렇게 왔는데. 음...올라올래?"

[아니에요. 이렇게 얼굴 보고 가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여기서는 오빠 잘 보이거든요. 히힛.]

유나는 여신이다.

1층과 최고층의 높이라고 하더라도, 유나는 나를 아래에서 정확히 올려다 볼 수 있다.

[오빠한테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어요. 뭐부터 들을래요?]

"좋은 소식."

[나쁜 소식부터 들으려고 하실 줄 알았는데.]

"나쁜 건 뒤로 미뤄야지."

[그렇군요. 후후, 좋은 소식부터 알려드릴게요. 음...히드라랑 저, 합의를 봤어요. 제가 남기로.]

결국 그렇게 결정을 내렸나.

나는 유나를 향해, 히드라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앞으로 히드라가 제 속에서 올라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영원히 잠들거고, 오빠의 아이로 다시 태어나게 되겠죠. 앞으로 종종 임신 섹스하러 갈게요.]

"...그것 참, 무서운 말이네."

아내가 둘이나 있는 사람을 상대로 임신 섹스를 하러 오겠다니.

유나가 아니면 못 할 말이다.

"나쁜 소식은 뭐야?"

[오빠한테 나쁜 소식이죠. 앞으로...아마 더이상 넘어오는 사람은 당분간 없을 거예요.]

"응?"

넘어오는 사람?

"그거...혹시 20년의 지구 얘기야?"

[네. 이 세계에서 여신의 육체를 연성하기 위한 핵이 필요한데, 그 핵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더이상 작업을 못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거 아닌가?"

[글쎄요.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전적으로 넘어오는 건 그 사람의 선택이니까요.]

"......."

하긴.

[후우.... 그래서 오빠,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어요.]

"갑자기?"

[네. 저를 받아주셔서 고맙다고요. 솔직히 말하면 오빠 입장에서는 저는 20년의 지구에서 그냥 주변에 있던 여러 동료 중 한 명이었을 뿐이잖아요? 유하 언니나 가을 언니에 비하면 그냥 지구를 지키기 위한 사람 A에 불과했죠.]

"그건 아니야. 너는...."

[이성으로서 한 번이라도 호감을 느낀 적, 있었나요?]

"......."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20년의 지구에서 나는 유나에게 괜히 사랑에 빠질까봐, 정령으로서 여신에게 반해버릴까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유나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평범한 여신.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인게임 메인 히로인, 이유나."

[네.]

"내가 너를 처음 봤던 건, PV로 나온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림으로 그린 일러스트였어."

그 모습은 정말이지, 여신이었다.

"나 혼자서만 살아가던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 이끌어 준 계기가 있다면...그게 너였지."

[...그거 정말 고마운 말이네요. 비록 저는 아니지만, 25년의 유나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해야겠어요. 그러면 질문. 오빠는...만약 신라 님이 없었으면 누가 제일 좋았어요?]

유나의 얼굴은 진지했다.

[누군가가 오빠에게 진지하게 대쉬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선택에 따른 이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오빠의 취향에 어울리는 사람이요.]

"......."

유나는 '그 답'을 원하고 있다.

나 또한 그 답을 해줄 수 있다.

"글쎄."

하지만 그건 안 된다.

유나를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안에서 자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아내지."

동문서답.

[정말 오빠답네요. 빈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여자 마음을 싸그리 무시하고 자기 사랑을 챙기다니. 저, NTR 당한 기분이예요. 오빠한테 처녀를 줬던 6974명의 유나를 대표하여 말합니다. 나빠요, 정말.]

"...숫자부터 말하는 것까지 정말 악질이네."

[몰랐어요? 원래 유나는 복흑이예요. 들킨 이상 막나가는 거지.]

"그러게. 그런 의미에서 너는 정말 유나같지 않은 유나야."

[그래서 더 끌리죠?]

"......그러게."

나와 10만 번 섹스를 한 이유나와는 전혀 다른 유나다.

[그래도 다들 공통점이 있어요. 뭘까요?]

"오글거리는 멘트는 사양이야."

[오빠를 사랑한다는 거요.]

유나는 확실히 다른 유나와 다르다.

인게임 이유나였다면 저런 말 절대 안 했다.

"...너 혹시 술 마셨니?"

[히힛, 이제 알아채시다니. 조금?]

워낙 목소리가 반듯하고 떨림이 없어서 마신 줄도 몰랐다.

"나도 마시고 있는데."

[그러니까 통했다는 거예요.]

"올라와. 같이 마시자. 지금 두 명 자고 있어."

[.......]

응?

유나가 방금 뭔가 속삭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한 순간.

"짜잔."

유나는 단숨에 내 앞에 나타났다.

붉어진 얼굴로, 베란다 펜스를 단숨에 넘어 내게 안겼다.

"오빠. 저 왔어요."

"그래, 그래. 잘 왔어."

유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나를 안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봤다.

"오늘은 섹스만하러 온 거 아녜요."

"...섹스만 하러 온 게 아니라면, 일단 섹스는 한 다는 거야?"

"당연하죠. 방송하느라 피곤했는 걸요. 겸사겸사...도구들 사용 방법도 알려드리러 왔구요."

"...너 때문에 지금 나도 피곤하거든?"

나는 유나의 볼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분신은 또 무슨 이야기야?"

"아, 그거요? 간단한 얘기죠. 누가 호문클루스를 던져놓고 분양했던 것처럼, 저희도 호문클루스 하나 만들어서 그걸 분신처럼 사용하는 거죠. 간단하죠?"

"...그걸로 설마 섹스를 하겠다는 거야?"

"그렇죠. X로이드의 원래 목적대로, 섹스로이드가 되겠네요. 그거면 과격한 플레이도, 임신한 몸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아, 알았어."

X로이드라.

갑자기, 불안해지는 이유는 또 뭘까.

* * *

"넘어갈 수 없다면, 이능력의 힘을 사용하는 수밖에."

"응, 그래."

"소체만 있다면, 혼의 1/7조각은 넘어갈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패스를 찾는 게 어렵지만...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후후."

"이쪽은 제법 진심이라구? 직접 가지는 못해도, 중간에...경유해서 가면 된다는 거 아니야?"

"빚은 갚아야지,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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