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3화 〉2부 7장 25 배신할 이유가 있어
히로인들은 전부 제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히로인들은 전부 제각기 다른 공략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히로인들은 전부 제각기 다른 섹스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가령 라온의 경우, 자신의 가슴이 흔들리지 않게 뒤에서 붙잡고 뒷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가령 누리의 경우, 작은 체구일 때는 들박 섹스를 좋아하고 큰 체구일 때는 평범한 정상위를 좋아한다.
가령 석하랑의 경우, 서로 누워있는 섹스를 좋아한다.
이렇게 바라는 체위가 다른 경우가 있다면, 바라는 섹스 롤이 다른 경우도 있다.
가령 지륜의 히드라의 경우, 오네쇼타 플레이를 원한다.
가령 개천광 카르나의 경우, 전투에서 패배하여 몸이 격렬히 달아오른 상태에서 강간당하는 듯한 교배프레스를 좋아한다.
가령 혼돈환룡의 경우,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자가 자신을 오나홀 다루듯 알아서 다 박고 싸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히로인마다 원하는 섹스가 다르다.
히로인마다 원하는 체위나 패티시가 다르기에, 히로인마나 잘못된 섹스를 해버리면 호감도가 깎이게 된다.
혼돈환룡에게 기승위를 하라고 한다? 게임 오버다.
개천광 카르나에게 져놓고 자신을 따먹어보라고 티배깅을 한다? 따먹혀서 게임 오버다.
지륜의 히드라에게 쇼타 플레이를 할 때 자지까지 실좆으로 만든다? 좆이 터져서 게임 오버다.
19금 미연시인 만큼 게임 오버가 될 가능성이 수도 없이 많으며, 특히 히로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만큼 까딱 잘못하면 히로인에게 살해당하는 게임 오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러니 히로인에게 안 맞는 섹스를 강제로 권유하는 건 몹시 위험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SM 플레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
가상현실 게임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겠는가?
오픈 월드로 내가 원하는 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극강의 자유도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론적으로 SM 플레이가 가능은 하다.
히로인을 상대로 정말 이야기를 잘 해서 SM 플레이를 화간으로 이끌어나간다면, SM을 싫어하는 히로인과도 SM을 할 수 있다.
상황만 잘 만들어지면.
사람만 잘 선택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지금부터 마법소녀들에게 SM 플레이를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빳빳하게 서는 가죽봉을 움켜쥐었다.
사무실에 있는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향해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는 성실하게 필기 준비를, 누군가는 영상으로 촬영을, 누군가는 손가락을 허벅지 사이로 집어넣고 부비적거리기를, 누군가는 원격으로 보면서 자위를.
"여러분들은 마법소녀로서 적 괴인에게 잡혔을 때를 가장해야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바로...."
"그래요. 내가 괴인 P입니다."
나는 내가 쓴 가면과 아래 정장을 가리켰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이상한 투구를 뒤집어 쓴 수상쩍은 검은 정장 그 자체였다.
마치 로봇과도 같은 이 투구는 무엇이냐?
바로 괴인 피닉스의 투구다.
'나랑은 다른 디자인이네.'
20년의 지구에서 있었던 내 모습은 좀 더 샤프하고 거칠었다.
다크 히어로라기보다는 다크한 배경의 중세 알피지에서 나올 법한 '악' 그 자체의 외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악의 존재에서 '다크 히어로' 적인 면모가 부각되어, 얼핏보면 히어로같은 모습처럼 보이게 되어버렸다.
'역시 내가 더 나아.'
조 씨, 당신이 틀렸어.
괴인 피닉스는 괴인의 모습 그 자체여야 멋이 나오는 법.
어줍잖게 히어로인 모습으로 되어있으면 그 나름의 멋은 있지만, 진짜 악당 피닉스의 느낌은 없다.
하지만.
"여기, 다크 레기온의 간부가 있습니다."
"하아, 하아."
알몸에 와이셔츠 한 벌을 걸치고 손목에 쇠사슬이 묶여 천장에 걸쳐진 유나의 턱을 강아지풀 같은 물건으로 들어올리는 귀축 가면이 악당이 아닐 수 없다.
외형의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행동이며, 나는 현재 누가봐도 알몸인 여자를 희롱하는 성범죄자나 마찬가지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불쌍한 유나의 몸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중이죠."
"불쌍한 거 맞습니까?"
"나는 부러운 듯?"
"사장님께 직접 당하는 SM 플레이...."
"하악, 하악...."
불쌍해야하는데 왠지 유나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다들 알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유나가 알몸인 것도 딱히 다들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지금부터 유나 안에 빙의한 지륜의 히드라를 상대로 SM 플레이로 보내버릴 거야. 이른바 제령 섹스지."
"세상에 섹스로 성불하는 영혼이 어디있습니까?"
"성불도 아니야. 남의 몸에 멋대로 빙의했으니까. 확 소멸시켜버려야 해. 어딜 우리 유나 몸에 깃들어?"
"정작 유나는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유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왜 웃고 있냐하면....
"그래. 정말 좋아하고 있지. 나한테 희롱당하는 경험은 처음이니까."
뭉클.
나는 유나의 가슴을 대충 움켜쥐었다.
다소 아플 것 같은 자세임에도 유나는 신음을 흘리며 기뻐했다.
"후욱, 후욱...."
입에 채워진 볼개그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상태인 만큼, 유나는 현재 강제로 도구의 힘에 의해 애무당하고 있는 중이다.
"크흐흐, 정슈리. 너는 유나와 정말 친하지? 네가 정말로 친하다면, 내 말을 들어라."
"크윽...! 유나야, 미안해...! 너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슈리는 분위기를 잘 읽는 여자다.
내가 이렇게 일부러 상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잘 파악하고 있고, 히드라 속에 억눌려있을 유나의 본심도 잘 이해하고 있다.
"유나가 희롱당하는 걸 보기 싫다면, 당장 스위치를 올려!"
"유나야, 미안해...!"
달칵.
위이잉!!
"으으응?!"
유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그녀의 허벅지에 묶인 밴드에서 선이 하나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나왔고, 그 선은 당연히 유나의 보지 속에 들어가 있었다.
위이잉, 위이잉.
달칵 소리가 나자마자 바로 어디선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진동보다도 더 큰, 안 들릴래야 안 들릴 수 없는 소리에 모두가 침묵하며 유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뚝, 뚜둑.
유나의 다리 사이에 굵은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동 소리는 점점 커졌고, 결국 진동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찌걱.
유나의 몸속에서 분홍색의 타원형 물체가 툭 떨어졌다.
허벅지의 밴드에 선으로 엮인 물건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떨리고 있었다.
'SM플레이에 바이브레이터가 빠질 수 없지.'
바이브에 의한 강제 절정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 외에 별다른 성기구는 모으지 못했다.
"좋아. 바이브 다시 집어넣고 방치플이야.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랑 섹스해야지."
오토로 돌려놓을 거지만.
"하유은, 유나를 큥큥할 SM 도구, 언제 도착하지?"
"사장님께서 특별히 주문하신 더블 엣-찌 디바이스는...곧 들어올 예정입니다."
H.H.
그녀가 우리에게 배달해주면, 그 때가 비로소 유나를 본격적으로 상대할 차례다.
* * *
끼익, 끼익.
모든 준비는 끝났다.
히메지 히카리는 검은 로브의 존재, '문신사'의 주문대로 물건을 전부 만들었다.
나머지는 문신사가 이 물건들을 챙겨 주인에게로 가면 끝.
확신은 할 수 없다.
문신사는 그저 VVVIP가 사용할 물건이라고만 말했지, 그 외에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히카리는 그저 자신의 직감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물건은 반드시 그들에게로 간다.
'왜 SM 플레이를 하는 지는 모르지만...!'
그런 취향인 여자가 새로 생겼거나, 아니면 뭔가 또다른 방향으로 눈을 떴겠지.
'그래, 이제는 이곳에서의 삶을 그만 둘 때야.'
매일 아침 두 시간마다 아침드라마를 직접 녹화하는 건 질렸다.
심지어 감상 보고서까지 쓰며 블로그 리뷰를 대신 하는 것도 싫다.
'나는 노예가 아니야.'
화물선에서 빌런으로부터 죽을 뻔한 걸 구해준 건 고맙지만, 어린 자신을 거두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건 고맙지만, 혼자서 이런 거대한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 건 고맙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인체 실험들.
인권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악독한 행동들.
문신사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히카리가 최근 그만 '알아차리고 말아버린' 대전 지하 연구단지 아래에 파묻힌 물건의 정체.
그것은 결코 문신사가 알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으으...."
히카리는 고민했다.
아무리봐도 빌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5년 남짓 자신을 위해 많은 걸 도와줬다.
자신을 괴롭히고 멸시하고 집단으로 이지메하던 자들과 달리, 문신사는 히카리를 위해 최소한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할 수 있는대로 뭐든지 들어줬다.
아침마다 하는 드라마 리뷰와 선전 행동이 지루하고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쳐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곳 지하에서 도망쳐서 인류를 위해 밖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문신사의 아래에서 평생 지하에 갇혀 연구만하다가 살 것인가.
전자는 위험이 가득하지만, 후자는 안전하고 평온하다.
"끄으응...."
지금이라도 납품할 물건에 있는 '신호'를 없애버릴까?
히카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간이다, 히카리.]
스르륵.
그림자 속에서 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히카리가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물건을 훑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히카리야. 능력 확실하군. 이건 내가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겠다.]
문신사는 그림자 속으로 단숨에 SM 플레이용 도구들을 집어넣었다.
큰 돈을 벌려고 하는지, 아니면 물물교환을 통해 뭔가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건지, 물건을 쓸어담는 문신사의 행동은 몹시 기뻐보였다.
[모처럼 기쁜 날이니, 네게 특별한 선물을 주마. 그러보니 오늘이 너와 내가 만난 날이지?]
"네...."
[너를 위해 사왔다. 유성 피자에서 새로 나온 신상 메뉴이니까, 맛있게 먹도록.]
문신사는 피자 한 판과 콜라캔 하나를 두고 사라졌다.
종종 흔히들 배달 음식으로 불리는 걸 가져다주고는 했고, 히카리는 가볍게 먹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만약.
밖에 SOS신호를 보내고 상황이 달라진다면, 평온하기 짝이 없는 이 환경도 크게 달라지겠지.
"음...."
원격 신호를 그냥 없애버릴까.
히카리가 고민에 잠긴 채 아무 생각없이 피자 뚜껑을 연 순간.
"......하."
히카리의 마음속에서 뭔가 꾸멀꾸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문신사에 대한 분노, 자기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한 울분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지."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좋아."
배신하자.
히카리가 들어올린 피자 한 조각 위에는 큼지막한 파인애플 덩어리가 하나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