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87화 (787/1,497)

〈 787화 〉2부 7장 19, vs 제우스

신서울, US 호텔 별실.

유성의 호텔은 외국에서 온 귀빈에 대한 환영 파티를 여느라 분주했다.

수많은 X로이드 메이드들이 음식을 나르고, 사방에서 찾아온 귀빈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사교를 나누며, 어떻게든 S급 히어로와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하, 그렇습니까? 제 고향에서 유학을 하신 적이 있으시다니. 하하…."

사소한 연줄 하나라도 만들어 얼굴을 익혀놓는다.

직접적으로 도움은 받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얼굴을 익혀두는 것 만으로도 훗날 충분한 도움이 된다.

가령, 한국인이 그리스에 갔을 때 도움을 받는다거나.

가령, 한국이 위험에 빠졌을 때 S급 히어로가 날아와서 도와준다거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은 제우스의 일거수 일투족에 예의주시했다.

"그럼 지금부터 제우스 님의 환영 인사로...E 엔터테이먼트의 아이돌 그룹, '비에르'의 공연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러브 오브 휴먼!"

"오오!"

유려한 남자 아이돌들의 춤사위에 제우스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아이돌들은 춤을 추면서도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훑는 제우스의 시선에 잠시 위축되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실수를 하면 회사와 나라 전체가 망한다는 심정으로 애국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멋지군요! 이게 한국의 아이돌이군요. 크으, 멋있습니다. 언젠가 그리스에 공연을 하러 오면 저를 꼭 불러주세요. 그리스의 제 별장에...초대하고 싶어지는군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E엔터는 향후…."

많은 이들이 제우스와의 연줄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S급 히어로가 해외에 방문하는 경우, 그 나라는 대통령 이상 가는 총력전으로 해당 히어로를 접대한다.

제우스에 대한 접대는 분명 이상한 것이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전부 혀 놀리는데 도가 튼 이들이다.

자존심 좀 굽히고 알랑방귀를 뀌는 것으로 막대한 이득이 돌아올 것을 알기에, 제우스라는 이와 연줄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그건 제우스도 마찬가지.

"음...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분이 있었습니다만, 아쉽군요."

"예? 누굽니까? 제가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이능력자끼리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S급끼리 나눌 수 있는 이야기죠."

제우스가 아쉬움을 표하자 많은 이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설화공주 석하랑은 '살라딘'의 건으로 제우스와 만나지 않았다.

부산을 지켜야한다는 그녀의 모토와도 일치했고, S급 히어로를 접대하기 위해서는 S급 히어로가 나오는 게 기본적인 도리였다.

광검 허윤환, 불참.

제우스조차도 존경할 법한 내빈 1순위의 남자는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개인적으로 정말 뵙고 싶었던 분인데요."

제우스는 계속 광검, 광검을 언급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쯤되면 누구 하나는 광검을 부르러 가는 게 평소라면 맞지만, 광검은 광검 나름대로 다루기 힘든 자였다.

대통령의 개.

하지만 미친 개다.

광검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에, 원탁 최고의 기사인 가웨인 경이 온다고 해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1년,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들이미는 횟수가 손가락에 꼽을 남자인데 과연 제우스가 온다고 해서 나올까?

어떤 이들은 제우스라서 안 나오는 것이라고도 한다.

-광검...나이 좀 있는 남자인데 젊은 제우스가 그런 쪽으로 추파를 던지면 엄청 싫어하겠지?

-바로 싸움 일어날 걸?

-제우스가 그건 실례인 건 맞는데, 그래도 광검이 잠깐만 남자한테 시간 당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럼 네가 광검에게 가서 게이랑 오붓하게 한 시간 보내보라고 말하든지.

한국에서 대통령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가 광검이다.

그런 광검을 게이에게 투척한다?

광검이 다른 나라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폭거인 셈.

광검에 의해 다운된 분위기가 한창 가라앉아 심해로 내려가던 순간.

"...슬슬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오늘의 환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가니메데스를 찾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말씀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제우스는 좌중을 향해 인사했다.

일단 자신의 이름이 제우스의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이들은 이제 제우스가 지칭한 가니메데스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광검 아니었어?

"사실 히어로 협회에 이미 도움을 구했답니다. 저는 제 가니메데스를 위해 따로 시간을 마련했지요. 여러분, 부디 저와 그의 해-피한 시간을 위해 축복하여주시길."

미묘한 짝짝짝 소리에도 제우스는 활짝 웃었다.

"지, 질문있습니다. 가니메데스라는 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누군가 용기를 가지고 손을 들었다.

전승이나 신화나 상황으로 보아 가니메데스는 분명 '남자'였으나, 문제는 그게 '누구인가'라는 것.

"후후, 여러분의 걱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의 피앙세, 가니메데스는...."

제우스의 뒤, 갈색 머리칼의 비서는 안경을 치켜올렸다.

"한국인이고,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랍니다."

* * *

끼이익.

밴이 멈췄다.

나는 마법소녀들과 함께 밴에서 내렸다.

화려한 조명이 사방을 비추는 지하 주차장에는 이미 제우스의 부하들로 보이는 이들이 정장을 입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지컬 큥큥스의 시안.w.히비스커스 님 되십니까?"

"아아. 이쪽은 우리 팀원들이다. 함께 동행하겠다."

"죄송합니다만 무기의 반입은...."

"이해한다. 모두, 무기를 반납해줘."

내 지시에 유나를 비롯한 마법소녀들은 제우스의 부하들에게 코어웨폰들을 모두 넘겼다.

지팡이며 검이며 창이며, 무기로 보이는 것들을 전부 넘겼다.

달칵.

내가 가지고 있던 권총도.

그것만큼 굵은 TAT가 모습을 드러내자, 제우스의 부하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아래로 눈을 돌렸다.

'역시 아는 놈들이네.'

TAT의 굵기가 무엇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는가.

제우스의 부하들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마력 스캔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거부한다. 마력 스캔 없이 입장하겠다."

나는 우리를 신체 스캐닝 기기로 인도하는 부하에게 강짜를 부렸다.

"제우스에게 전해. 코어 웨폰을 제출한 것 만으로도 이미 할 도리는 다 했다. 신체 데이터 스캔은 명백한 룰 위반이다."

"신체 데이터 정도는...."

"나는 전하라고 했지, 반박을 하라고 안 했다."

"...알겠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죠."

고압적으로 나가니 불만이 생긴 듯 했지만, 이것보다 더 강압적으로 나가도 된다.

'어차피 싸울 놈들.'

하하호호 웃으며 신체 스캐닝을 당하며 X레이 시선강간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시비를 터는 게 더 이득이다.

제우스가 히드라의 괴인인 이상, 내 엉덩이를 노리는 이상 전투는 피할 수 없다.

"......."

유나를 비롯한 마법소녀들은 상당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마법소녀 복장이 아니라 전부 '정장 차림'이라는 전투복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신서울 한복판에서 매지컬 큥큥거리기에는 수치심이 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을 방심시키기 위한 외형이기도 하다.

수트 아래 슈트가 있으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음."

철컥.

우리는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VIP들이나 타는 엘레베이터에 누리나 슈리는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사장님."

유나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물었다.

"괜찮...나요?"

"물론."

나는 유나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얘기했잖아. 피할 수 없다고."

싸움 이야기다.

우리와 함께 탄 부하들은 내가 마치 대주러 온 것 처럼 생각하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는 끔찍한 망상이다.

'절대 그럴 수 없지.'

다른 누구에게도 나의 뒤를 내어줄 수 없다.

나의 뒤는 오직 신라만의 것이며, 신라마저도 나의 전립선을 혀로 핥고 찌르는 애무를 하고 싶다고 할 때나 건드릴 수 있다.

그러니 나의 뒤를 노리는 적은 척살한다.

설령 자신마저도 윗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라는 지시를 받았더라고 하더라도.

띵동.

문이 열렸다.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호텔의 옥상 층, 넓은 천장이 전부 유리로 된 정원같은 곳에서 '그'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웰컴, 나의 가니메데스!"

"지랄은 거기까지다."

나는 곧장 놈에게 중지를 날렸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제우스?"

"아아, 나의 가니메데스! 그렇게 차갑게 나를 대하지 마시오."

"......."

매스컴을 통해 송출되던 방금 전까지의 모습은 연기였다는 듯, 제우스는 자신을 두 팔로 끌어안으며 나를 향해 홍조를 띄었다.

"모처럼 만나는데 그렇게 나를 바라볼 건가?"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데?"

"한심하고...더럽고...추잡하고...못말리겠다는 듯 바라보고 있지."

할짝.

제우스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에 나를 따라온 팀원들은 소름이 돋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어느 순간 미국에서부터 소식이 끊기더니, 이런 동양 촌구석에서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소꿉장난? 웃기는 소리. 얘들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다."

"미래? 이제 고작 C급 간신히 넘길 것 같은 녀석들이 미래? 거기 A급...아니 S급인가? 흐흐, 금발 녀석은 역시 금발답게 뛰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여자들은 정말이지 볼품 없는 걸!"

제우스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이래서 동양인은."

"인종차별 오졌다. S급 히어로 맞음?"

우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미개한 원숭이와 대화하는 듯한 모습에 가장 먼저 분노한 건 누리였다.

"히어로 교양 과목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거임. 모름?"

"흥. 나의 가니메데스에게 정을 조금 받았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잘 들어. 너같은 여자가 주변에 있으니까, 가니메데스가 진정으로 빛나는 곳에 있지 못하는 거야."

펄럭.

"나의 가니메데스! 그리스로, 원탁으로 돌아오라! 그곳에서 너는 인류를 위한, S급 12명을 이끄는 진정한 '지휘관'으로서 인류를 위해 공헌하라!!"

놈의 말에 모두가 굳었다.

"사, 사장님...?"

"괜찮아. 저 놈, 알고 나를 이렇게 부른 거니까."

"게, 게이라서 사장님을 부른 거 아니었어요?!"

"그것도 맞고."

찰싹!

손을 등 뒤로 넘긴 제우스는 자신의 엉덩이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혀를 할짝이며 사납게 웃었다.

"사랑하는 나의 가니메데스, 네가 키운 여자들이 나의 아이들에게 따먹히는 걸 보기 싫다면...당장 바지를 벗고 이리로 와. 그리고...내게 박아라!"

"미친 새끼."

그렇다.

"그래, 난 네게 미쳤다!"

원탁의 타락한 영웅들.

"스스로 박지 않겠다면, 내가 너를 아래에 깔고 위에서 올라타주마, 지휘관----!!"

지휘관에 대한 악의와 빌런의 정체성이 결합된 이들을 두고, 플레이어들은 이렇게 부른다.

부정한 원탁 영웅.

줄여서.

붕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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