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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81화 (781/1,497)

〈 781화 〉2부 7장 14 제 2차 타락

기자 회견장은 얼어붙었다.

S급 히어로, 그것도 외국에서 방문한 이를 대상으로 천가은이라는 일개 기자가 충격적인 일을 저질렀다.

세계의 시간이 멈추고, 누구도 뭐라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상황.

"...하하, 이게 혹시 코리안 조크입니까?"

살라딘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자님께서 농담이 조금 고약하시군요. 펜대는 때로는 칼보다 더 날카롭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공식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천가은의 당돌한 말에 점차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찌라시라고 한들, 그걸 정면에서 전세계가 보는 상황에서 터뜨린다?

"좋습니다. 그럼 어디 보여주시길. 제가 페도필리아...아동성애자라는 증거를."

살라딘은 느긋한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이죽거렸다.

"하지만 제가 그런 자가 아닐 경우, 이 일은 공식적으로 이 나라에 항의하겠습...니…."

살라딘의 말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표정 또한 굳어가기 시작했고, 웃음기가 싹 가셨다.

천가은은 그저 한 명의 소녀 사진을 공중에 꺼냈을 뿐이다.

이상할 정도로 머리와 눈이 검은 소녀는 흐리멍텅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더 꺼낼까요?"

"......오해입니다."

오해.

살라딘은 사진을 보자마자 부정하지도 모른척하지도 않고 '오해'라고 지칭했다.

"페도필리아라고 오해를 하시게 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군요. 저는 말입니다, 괴수로부터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에 가면...로하랑을 따먹을 거야. 츄릅. 군침이 도는 군.

살라딘과 같은 목소리.

천가은은 기다렸다는 듯 음성을 재생했다.

"조작…!!"

"주작 아닙니다. 마도기어를 통해 녹음된 마력저장장치에서 재생된 겁니다."

조작의 가능성이 1%도 없는 명확한 증거.

마력의 힘이 깃든 녹음 파일의 등장에 하나 둘 살라딘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불쾌하군.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순수한 의도로 고아원을 운영하고-"

-츄릅, 쯉, 살라딘 님, 이렇게 하면 되나요…?

"모자이크 해제 해요?"

"......너, 뭐야?"

살라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있던 이들은 황급히 살라딘을 향해 무기를 겨누거나 천가은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천륜을 저버린 자를 고발하기 위해 온 사람."

천가은은 당당히 가슴을 내밀었다.

압도적인 가슴 크기에 몇몇 이들이 침을 꿀꺽 삼켰고, 살라딘은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더럽게 가슴만 큰 여자가…!"

고오오오.

살라딘의 몸에서 점차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명백히 마력을, 무력을 사용하려는 듯한 모습에 회견장이 전부 얼어붙었다.

"그만."

"아…?"

"난동은 거기까지입니다."

사락.

하얀 빛무리와 함께 천장에서 작은 소녀가 내려왔다.

한복과도 같은 드레스 차림의 소녀는 살라딘을 향해 손을 뻗으며 선언했다.

"스스로 무덤으로 들어오다니. 이 뒤는 국제기구의 심판을 받기를."

"네가 로하랑이구나."

살라딘은 비릿하게 웃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의 바지 앞섶은 요란하게 튀어나와있었다.

"이거...안되겠군. 얌전히 내 아내가 되면 이 나라를 용서할-"

쩌적.

"뭐라카노, 똘개이가."

살라딘은 자신만만한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는 임자있다, 쓰레기야."

페도 괴인, 살라딘 제압.

이후.

로하랑이 임자라고 말한 진성 페도필리아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추적이 시작되었다.

* * *

한창 신라가 인게임 속에서 페도필리아인 살라딘을 튀겨죽일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석하랑과 잠시 야밤에 데이트를 나왔다.

"알아보는 사람 없어서 좋네."

석하랑은 회색 후드티로 자신의 머리칼을 숨겼다.

거기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일은 없었다.

...핫팬츠를 입어서 매끄러운 다리가 전부 드러나게 되는 바람에 말짱 도로묵이 된 것 같지만.

"왜 사람들이 나를 계속 보는 것 같지? 나 최대한 숨겼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석하랑을 흘깃 보면서 지나가고, 스쳐지나가고 나서도 뒤돌아서 한 번 보고 지나간다.

이게 연예인?

말로만 듣던 연예인 오라?

매번 신라랑 같이 있어서 그런 걸 잘 느낄 새가 없었는데, 석하랑과 따로 나오니까 어떤 느낌인 지 알 것 같다.

미녀는 아무리 감춰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법.

인파가 몰리는 일은 다행히 없었지만, 나는 행여나 석하랑의 얼굴이 찍힐까봐 조마조마했다.

"오빠, 혹시 내 말에서...좀 느껴지나?"

석하랑은 주변을 의식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말에서 느껴지냐고 묻는 말은 필히 자신의 부산 사투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일 터.

"전혀."

"그렇제? 다행이네, 신...서울에서 놀림 안 받을라고 연습 좀 많이 했거든. 거기서도 여기서도 다 그러더라."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20년의 지구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같다.

지방민이 상경하여 사투리를 쓴다는 것 자체가 놀림감이 되는 건 비단 이 나라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너 방송에서는 자유롭게 쓰지 않아?"

"그렇지. 그래서 지금 부산 난리났다 아이가."

석하랑은 킥킥 웃으며 스마트폰을 열었다.

"인게임 석하랑이 부산 사람인 게, 모델링 제공한 서카랑이 부산 사람이라서 그게 적용된 게 아니냐고 사람들 난리 났다. 히힛."

석하랑은 큥튜브의 수많은 영상들을 내게 보였다.

그곳에는 스트리머 서카랑의 신변을 찾는 이들이 부산 일대를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위험한 거 아니야?"

"여기 부산은 커녕 수도권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스토커들 조금 위험한 거 아니야?"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보다 더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뭘."

석하랑은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 내가 예뻐서 그런 걸 우짜는데? 좀 예뻐야지. 안 글나?"

"그러게. 나중에 방송하다가 합방도 하고 사람들 막 찾아오고 그러면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연예인 정도로."

"오빠야, 내 전생에 S급 연예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음...전생인가? 아무튼. 전세계 60억 인구 중에서 내 이름 모르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을 걸?"

"...그렇긴 하지."

설화공주, 설령화, 설화령.

그리고 그녀를 대표하는 지칭, '피닉스 대적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괴인 피닉스와 대적할 수 있는 히어로로서, 피닉스의 억제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더 유명세를 떨쳤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광검 허윤환 대신 석하랑이 나라의 대들보이자 지구의 평화를 지킬 운명의 존재로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21살 여자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일 수도 있다.

영웅이라고 해봐야 게임 속 영웅이었던 경험밖에 없는 나로서는 석하랑이 가지고 있던 히어로이자 아이돌로서의 중압감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고생 많았네."

나는 석하랑의 후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눈으로 싱긋 웃으며 내게 머리를 기대었다.

"이제 편해지면 되겠다."

"당연하지. 앞으로 꿀빨면서 살 거다."

"꿀만?"

"흐흥, 왜. 집에가서 빨아줄까?"

석하랑은 은근한 섹드립을 치며 내 등허리를 손으로 쳤다.

손가락 끝의 위치가 엄한 곳으로 내려가서 나는 그녀를 눈으로 흘겼다.

"집에 들어가서 보자."

"무섭네, 히힛. 아참, 오빠야. 그거 좀 얘기해줘. 금마가 지금 노리고 있는 놈이 살라딘이라고 했다 아이가."

"그렇지."

"그 놈, 진짜 페도 맞나?"

"........"

공공장소에서 말하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대화였지만, 어느새 석하랑은 주변에 미약한 결계를 치고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차단했다.

이 상태로 이야기를 해도 남들에게 들리지는 않을 터.

"페도 맞지. 누리를 노리는 녀석이니까."

"음...."

가출 청소년 김누리를 잠시 돌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다소 복잡한 표정이었다.

"누리...그 때 우리가 케어 안 했으면 게임처럼 됐다 이거제?"

"그래."

유감스럽지만 그게 사실이다.

김누리는 성인이 될 때까지 불운하게 지냈고, 주인공을 만나고 난 뒤에야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오빠야."

"응."

"내는 딸 낳으면 이름 누리라고 지을란다."

"...예?"

갑자기?

"왜? 누리가 오빠 딸이 되는 거 싫나?"

"싫다기보다는 좋기는 한데,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뭔가 느낌이 이상해."

갑자기,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안그래도 히드라가 유나의 몸에 깃들어서 내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진짜로 이루어질까봐 무섭잖아."

"글나? 나는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데?"

석하랑은 스마트폰을 다시 펼쳐, 게임 속 히로인들을 하나 둘 넘겼다.

"누리는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보다 그쪽 세상에서 사는 게 더 좋을 거 아이가. 내 물어봤다. 피닉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거든? 그러니까 누리가 그 카더라."

석하랑은 킥킥 웃으며 표정을 굳혔다.

"또라이. 오빠야는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서 어지간한 마음으로는 덤비지 못할 거라고."

"...김누리가 그랬어?"

앞에서는 용돈이랑 코어 달라고 사근사근 그랬으면서, 뒤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하. 어처구니가 없네. 확 빈유로 평생 살게 되어버려라."

"오빠야는 뭘 그런 걸 가지고 악담을 하는데? 또라이 맞다 아이가. 원래 순수한 애들 눈이 제일 확실한 거 모르나?"

"......."

정론으로 찌르고 오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오빠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석하랑은 나보다 앞서가며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나중에 누리 엄마한테 혼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하라고. 알겠지?"

"이미 누리가 나오는 건 확정이야? 남자애가 나오면 어쩌려고?"

"음...."

짝.

석하랑은 박수를 치며 제안했다.

"윤환이는 어떤데?"

"...이름에 페도 기운이 넘쳐흐르는데?"

"페도는 맞지만 그래도 남의 아빠 이름가지고 그런 말 하지마라."

살라딘.

마약왕.

그들보다도 더 악명이 높은, 데스디나스 제작사 공인 진성 페도필리아.

광검, 허윤환.

석하랑의 아버지는 페도필리아다.

뭐? 루살카에게 강간당한 거 아니냐고?

"오빠야, 그거 알제? 아빠가 예전에 엄마랑 똑같이 생긴 X로이드 하나 주문했던 거."

"알지. 내가 그걸 이용해서 루살카의 분령을 만들어냈으니까. 루살카가 광검을 덮쳤을 때의 몸과 똑같이 만든 거. 그런데 왜?"

"그 몸이 지금의 로하랑인 것도 알제?"

"...그야 그렇겠지. 네가 빠져나왔으니까 루살카의 모델링을 그대로 석하랑으로-"

사아아.

갑자기 옆에 있던 석하랑이 줄어들었다.

나는 급히 주변을 훑어봤지만, 정말로 다행스럽게 아무도 없었다.

"너, 너, 무슨 위험천만한 짓을-"

"어떤데, 오빠야."

석하랑은 내 가슴 정도에 올까말까한 키로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오빠는 페도 아니제?"

"당연하지."

"근데...내가 오빠 따먹으면 오빠는 페도겠나?"

".......그건 아니지."

사랑하는 사람이 작은 체형의 성인이었을 뿐, 나는 결코 페도필리아가 아니다.

암, 그렇고 말고.

* * *

"응, 유나야. 이제 집에 들어가는 중."

"작전은 성공했어."

"잠깐 혹한 것 같더라."

"신라한테 전해. '그 작전'을 써먹어보자고."

"히드라보고 쇼타콘이니 뭐니 이야기하는데, 지도 한 번 당해봐야 그런 말 쏙 들어가지."

"밤에 얼라 모드로 덮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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