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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76화 (776/1,497)

〈 776화 〉2부 7장 09 선섹후결

인게임.

"사장님, 요즘 저를 너무 멀리하시는 거 아녜요?"

볼을 부풀리며 두 팔을 벌리는 유나의 태도에 나는 뭐라 답을 할 수 없었다.

"멀리한다뇨?"

"그렇잖아요. 평소같았으면 여자인 상태여도 존대는 하지도 않았을텐데, 요즘들어 저를 대하기 꺼려하시는 것 같아서요."

"......."

귀신인가.

바깥 세상의 유나가 하는 행동은 내게 있어서 많이 껄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순애 일직선이었던 그를 하렘 타락시키는데 한 몫 거드는 건 좋았지만, 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없는 부분을 핀 포인트로 해결해주는 모습에서 솔직히 질투심이 났다.

인간으로서 해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내게는 없었다.

아직도 정령감수성이 가득한 내게 인간의 심리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것이었다.

'인게임 유나라면 알까요?'

근본은 같다.

인게임 유나와 현실의 유나가 큰 차이가 없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유나에게 물어본다면 분명 현실의 유나를 상대로 내가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터.

"좋아. 그러면 오늘 유나랑 하루 데이트다."

"엣...."

갑작스러운 내 데이트 제안에 유나는 몹시 당황했다.

"오, 오늘요?"

"그럼. 싫어?"

"시, 싫은 게 아니라.... 오늘 저 그냥 평범하게 입고 왔는데...!"

유나는 자신의 차림을 두고 울상을 지었다.

한창 따스한 봄바람이 가득한 5월에 가장 어울리는 옷이었지만, 유나가 말하는 '평범'은 분명 그것일 것이다.

"오늘은 보라색이야?"

"...아니예요."

유나는 우울함 가득한 얼굴로 웅얼거리듯 답했다.

"그냥...어...핑크색...."

"귀엽네. 가자, 오랜만에 유나랑 1:1로 데이트."

나는 유나의 손을 맞잡았다.

어차피 일정은 이미 '자동 모드'로 진행을 해놓았기에, 우리 팀 히어로들의 성장은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히드라 챕터에 들어가기 전, 유나랑 하루 정도는 자유롭게 쓸 시간이 있다.

"오늘은 유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거야. 단,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모텔은 저녁 7시 이후에."

"앗...."

유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계를 확인했다.

"모텔에서 저녁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아직 시간은 고작 10시.

점심을 먹고, 저녁까지 먹고 난 뒤에야 시간이 맞는 만큼 유나는 손가락을 깨물며 이것 저것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사장님. 저 진짜 사장님 상대로 '데이트'해도 돼요?"

유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도기어를 몇 번 두드리며 내게 화상 하나를 꺼냈다.

"이, 이거 보러 가고 싶어요."

"이게 뭔데?"

"영화인데요, 이번에 새로 나온 거예요."

"...흐음."

그의 기억에 히로인과 '영화'를 보러가는 데이트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영화관 들어간 적은 없었는데?'

나는 유나와 함께 영화관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 둘이 들어온 셈이라-안의 사람도 여자기는 하지만-주변에서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은 없었다.

"커플석하고 싶었는데...."

"심야 영화 때 그러자고."

"네!"

유나는 좌석을 커플석으로 하기를 바랐지만, 여자 둘이서 갔는데 커플석은 조금 그렇다.

나는 괜찮지만, 주변의 음흉하고 이상한 시선이 유나에게 닿을 때 생기는 귀찮음은 원치 않는다.

'유나는 커플석에 앉고 싶어함. 메모.'

나는 유나가 나를 상대로 뿜어내는 욕망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인게임 유나의 행동 하나하나는 현실에서 내게 큰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유나와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영화는 그냥 평범한 로맨스 영화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렇고 그런 생각이 들게하는 영화였다.

지금은 영화를 보기 전의 광고 타임.

유나에게는 평범한 광고로 보이겠지만, 내게는 제작사에서 판매하는 유료 재화나 스킨들에 대한 홍보 영상이 가득했다.

구매됨.

구매됨.

구매됨.

구매됨.

구매됨.

...전부 다 구매가 진작에 이루어져서 내가 뭔가 사달라고 할 것도 없었다.

특히 히로인들의 '수영복 세트'는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구매 이력을 살펴보니 가장 먼저 구매한 종합 스킨 세트더라.

'피닉스 수영복 디자인 나중에 물어봐야지.'

그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간다.

물은 싫어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우월감을 느끼는 건 신으로서 좋기만 하다.

숭배받고 칭송받는다.

신이란 그런 존재니까.

삐빅.

[...테라는 위험에 처했어요.]

"응?"

영상을 보자마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익숙한 세계.

멸망해가는 세계.

절망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자들.

몰려드는 수많은 괴수들을 상대로 태양신전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푸른 드레스의 여인 실루엣.

그리고.

어둠에 물드는 '절풍'을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욕을 할 뻔 했다.

"사장님."

유나는 옆에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안색이 안 좋으세요. 괜찮아요?"

"...응, 그래. 괜찮아."

"방금 전의 광고...혹시 저런 영화 무서워하세요?"

"......."

끄덕.

내가 인게임 광고를 봤다고 그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일단 에둘러 말한다.

"하긴...저도 무서워요. 사랑하는 내 남자의 곁으로 자꾸 여자들이 늘어난다니."

"응?"

"여자 주인공이 상당히 힘들어하겠어요. 사람이 너무 착해서, 그리고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다 받아주는 거. 정말...저런 여자가 여신이 아닐까요?"

"그거, 멍청한 거 아닐까?"

"...저는 개인적으로 부러워요."

유나는 쓰게 웃으며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광고 속 남자, 끝까지 반지 안 빼던 걸요."

"......."

"내 남자를 지키는 50가지 방법. 후우, 정말, 나중에 따로 한 번 더 봐야겠어요."

"...그러게."

어쩌면 그건 슬슬 불안해지는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그래. 내가 난데.'

그가 피닉스고, 내가 창염인데.

창염의 피닉스.

분명한 종속관계가 있는 한, 우리의 관계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장님...몸이 엄청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어디 잠깐 쉬러 갈래요?"

"어디요?"

"음...호텔? 모텔은 안 되지만 호텔은 안 된다고 하신 적 없잖아요."

유나는 싱긋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그...개인적으로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정말로 숫처녀가 그런 것처럼 내 눈치를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이 상대라면, 여자랑 하는 것도...."

"아."

나는 깨달았다.

유나라는 인간이 왜 만인의 사랑을 받는지.

유나는 상대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여자다.

괜히 그녀의 이명이 '성녀'가 아닌 것처럼, 유나는 본인에게 다소 난감하고 어려운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락해주는 여자다.

그 허락의 근간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상처를 치유하는 위로가 담겨있다.

신으로써 자신이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나와 달리,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 줄 아는 여자.

'이러니 뻑이 가지.'

나는 유나와 손깍지를 끼며 호텔 방향을 가리켰다.

"유나, 호텔 조식 나올 때까지 지금부터 논스톱으로 달리죠."

"아.... 자, 잠깐만요. 사장님, 그...가기 전에 한 곳만 들리면 안 될까요?"

유나는 호텔로 가기 직전,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리, 속옷 사러 가요."

"......."

끼요오옷.

* * *

"신라 님, 왜 인게임에서의 제 속옷을 저보고 고르란 거예요."

"당사자 속옷은 본인이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푸흐흐."

이것이 팬티배깅인가.

신라는 현실의 유나에게 게임 속 유나와 레즈 섹스를 하기 위한 속옷을 주문했다.

유나는 아직 모델링이 빠져나오지 않았다.

거의 외형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후우, 그냥 좋아하는 색이랑 디자인으로 하세요. 저는 뭐든지 괜찮으니까."

숨을 들이마시니,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싱크로를 통해 히드라가 들어간 만큼, 심장에 있는 코어에 히드라가 깃든 게 분명하다.

"오빠는 어때요?"

"...나?"

"네. 낮섹스는 새가 하고, 밤섹스는 오빠가 하잖아요."

"...밤섹스도 얘가 하는데?"

내가 신라를 가리키자 유나는 바로 볼을 부풀렸다.

"싫어요. 다른 애들이랑은 괜찮은데, 저랑은 오빠가 직접 해주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당사자의 앞에서 인게임 유나랑 섹스를 하라니.

이건 또 무슨 수치플레이인가.

"오빠랑 하는 거 보면서 일단 대리만족한다는 느낌? 어때요?"

"그거 이미 석하랑이 했다."

하랑이(현실) 앞에서 석하랑(인게임)이랑 섹스하기.

나중에 당사자가 말하기를, 부끄럽기 짝이 없는데 나를 상대로 저렇게 하겠다는 예고편 같아서 기대가 된다고 하더라.

"...도대체 안 한 게 뭐죠?"

"거의 없지."

유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 이유나라면 이런 상황에 굴복하고 여기서 그만 둘 여자는 절대 아니다.

"그럼...이렇게 하면 되겠다. 음."

유나는 내게 등진 채, 신라를 향해 바라보며 섰다.

"이걸로 해주세요."

"...어우야."

사락, 사락.

들리는 소리, 신라의 반응.

그걸로 유추하건대, 유나는 지금 자신의 가슴을 신라에게 보였다.

'속옷'을 보였다.

정작 내게는 보여주지 않고, 신라에게 보여주며 뒤로 눈을 흘겼다.

"......."

보고 싶으면 직접 보라는 걸까.

끌리거나 그런 건 없지만, 이런 식으로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니 난감하기 짝이 업다.

밥상은 차려져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데 먹으면 큰일 날 것 같다.

그래, 마치 다이어트 중에 마주친 당처럼.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파이와 같은, 그런 느낌.

"당신, 정말로 유나랑 섹스 안 할 거예요?"

신라는 유나의 품에 안기며, 유나와 함께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신이 섹스를 해야 제가 유나랑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게임에서 하면 되잖아. 인게임 유나도 허락했는데."

"아이참, 게임으로 딸치는 거랑 실제로 섹스하는 거랑 다르죳!!"

"......."

그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유나랑 섹스를 하면....

"오빠."

유나는 눈을 반쯤 감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섹스 한 다섯 번 정도는 그냥 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요?"

"뭐?"

"그렇잖아요. 세상에 만났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 세상에 섹스 한 번 했다고 책임진다는 게 어디있어요?"

유나는 신라의 턱을 붙잡으며, 입술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가볍게, 즐기라니까요?"

"헤으응...."

그 신라가 유나의 적극성에 놀라 움찔거렸다.

마치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뱀을 보고 놀란 새처럼, 그녀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가 저랑 섹스 안 해주면...아시죠?"

"협박에 굴복하지 않아."

"협박이 아니예요. 통보지."

유나는 신라에게서 떨어져 내게로 다가왔다.

"오빠, 지금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ㅡ"

와락.

"내가 당장 임신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유나는 내게 안기며 까치발을 들었다.

"일단 섹스해보고 생각해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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