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1화 〉2부 7장 04 근본은 같다
유나가 본격적인 피닉스 공략에 나선 것과 별개로, 나는 나대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다음 챕터 어떻게하죠?"
"글쎄...."
신라가 진행하던 원작 게임의 진행.
석하랑과 이유나의 등장과 별개로, 우리는 원래 진행하던 게임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
"여기서 그만둘까?"
"그럴 수는 없죠. 지휘관을 암컷으로 만들어버린 창염의 피닉스를 따먹기 위해서라도, 다른 히로인 모두를 범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여기서 멈출 수 없어요."
신라는 히로인 전원과의 레즈 섹스를 원했다.
나 또한 그녀의 플레이를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사실상 조언이라고 할만한 건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유는 하나.
신라가 플레이하는 지구의 메인 스토리가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꼬여버렸기 때문.
선겨울의 존재.
언더 서울의 존재.
그리고 아지다하카의 동료화.
"일단 접속해서 스토리나 밀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소식이 들어올테니."
다음 챕터의 보스는 다름 아닌 지륜의 히드라.
그녀는 대놓고 괴인을 보낸 아지다하카와 달리,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석하랑이 힘을 쓸 수 없는 '해외'에서.
* * *
"큥큥 체인지."
"그건 뭐예요?"
"아침이 되었을 때, 앞으로 태양을 바라보며 변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가 게임을 모니터링 하는 동안, 나는 게임 속에서 플레이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외적으로 여자인 척을 해야하는 상황이고."
"여자인 척이라고 다들 믿기 어려울 걸요?"
내 앞에는 정장 OL 차림의 유나가 있었다.
인게임이라고 해도 예쁘기는 하지만, 왜 사람들이 현실 속 유나에게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더 성숙하고, 더 섹시하고, 더 세련되고, 더 쎅쓰하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니 가끔 '쎅쓰'하다라는 표현을 쓰던데, 유나가 딱 그 모양이었다.
지금의 유나에게는 현실의 유나가 가진 '순결함'이 없다.
이런 유나를 비처녀로 만든 한량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네?'
내가 했구나.
나는 사람들이 인게임 속 유나와 현실의 유나에 대해 느끼는 차이를 바로 알아채고 말았다.
"유나, 여자가 제일 예쁠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처녀일 때요?"
"...정답."
유나는 내가 낸 문제에도 금방 답을 맞췄다.
그리고 나는 유나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내가 당신을 비처녀로 만들었는데."
"그건 괜찮아요. 지휘관 님이 직접 제 처음을 가져가신 거니까요. 그럼 지휘관 님, 여자가 제일 아름다운 때는 언제인지 아세요?"
"언제인데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요."
쪽.
유나는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새가 모이를 조는 듯한 가벼운 버드키스였고, 나는 바로 유나의 허리를 휘감아 키스하려고 했다.
"그건 안 돼요."
유나는 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우스 투 마우스는 밤에."
"...남자일 때 하라고요?"
"당연하죠."
"......혹시 진지하게 한 번 해볼 생각은 없어요?"
나는 양 손을 가위처럼 만들어 슥슥 비볐다.
유나가 이 신호를 두고 모를 사람은 아니었고, 그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해요, 지휘관 님. 저는 거기까지는...."
"그런가요. 아쉬워라...."
현실 속 유나를 건드리지 못하니 일단 게임 속 유나와 보벼보려고 했는데, 게임 속 유나는 철저히 '남성을 위한' 캐릭터로 설정되어있었다.
"저랑 밤에 하는 섹스가 그렇게 좋아요?"
"네. 지휘관 님께서는 싫으세요?"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저희, 벌써 3개월이랍니다. 후후."
유나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3개월.
임신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지휘관에 의해 마력 공급이 시작된 지 3개월이라는 소리.
"아니네요. 이제 4개월인가?"
어느덧 인게임에서의 시각은 5월에 접어들었다.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서울에서 살아오기도 했고, 전력은 하루 하루 강해지고 있었다.
유나와 라온과 누리.
어느덧 셋의 레벨이 거의 비슷해지고 슬슬 유나가 누리를 추월하는 시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0에서 약 45로의 상승.
지금까지 최소 35번의 질싸를 했다는 얘기고, 마력공급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많이 했으니 최소한 100번은 넘게 싸지 않았을까?
"...유나, 혹시 말이에요."
"생리 말씀하시는 거죠?"
"!!"
마음이 읽혔다.
인게임이라 임신은 하지 않겠지만, 나는 유나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챈 것에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후후, 그거 알아요? 제가 지휘관 님을 만나서 처음 관계를 가진 날부터...생리가 안 와요."
"......마력 공급을 받는 이능력자의 전형이죠. 피를 흘리는 걸 막으려는 몸의 작용이라고 해야하나."
"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언젠가 이 지구에 평화가 찾아오는 날. 그 날."
유나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다. 여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겠죠?"
* * *
그리고, 현실.
끼요오오옷.
신라가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나는 오늘도 전을 굽고 있는 석하랑의 방에 모니터링을 나섰다.
"아니, 여러분. 이거 제가 실수한 게 아니라니까요? 하씨.... 내가 진짜 설정 제대로 했다니까?"
괴수를 죽이는데 숙련된 히어로일지 몰라도, 석하랑은 방송인으로서는 초보에 불과했다.
아무리 그녀가 전자치는 아니라고 해도 전문적으로 방송을 하는 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도네 유도가 아니라! 아니, 나는 분명 제대로 했다고요!"
석하랑은 카메라를 향해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자신이 잘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굽히지 않는 만큼 진심으로 답답할 것이다.
"석하랑 제대로 나와야 한다니까?"
[석하랑 제대로 나오고 있는데요?]
[우리 눈에 보이는 거 석하랑 아님?]
[하랑님 오늘도 예쁘시네요. 근데 모델이 더 나은 듯^^]
"지금 내가 나가야하는 게 아니고, 3D모델링이 나가야한다니까?"
제대로 하기는 했다.
다만 설정 하나를 잘못 건드려서, 석하랑은 그냥 자기 자신을 송출하고 있었다.
첫 날 사고를 친 이후로, 그녀는 그냥 VR 필터 없이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D 미소녀와 3D 버츄얼 캐릭터로 간을 보려던 석하랑이 왜 얼굴을 공개하게 되었느냐.
거기에는 다른 파트너 스트리머 '이유나'의 등장이 한 몫을 하고 말았다.
"아 씨.... 이거 세팅만 진짜 제대로 하면 바로 캐릭터로 바꿔버릴 거임."
[가지마! 캠은 키고가!]
[캐릭터로 바꿀 이유가 없는데? 우리는 AAA보다 B를 더 좋아하니까!]
채팅창은 이미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아무리 석하랑이 방송을 한다고 해도 세팅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을 굽기 마련.
"씨이, 너희들 좋아하는 껌딱지로 바꾸겠다는데 왜 그러는 건데!!"
[껌딱지도 좋지만 역시 사람은 풍족한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유부녀를 상대로 벌이는 음습한 망상...ㅗㅜㅑ.]
"이잇...."
석하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그리고 캠에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오빠야, 내 좀 도와줘.... 이거 설정을 못 하겠다."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초보 방송인의 실수 아닌 실수에 채팅창은 또 웃음의 물결이 흘렀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방송에 들어가 채팅을 날렸다.
[매니져P : 설정 여기서 이거 누르세요.]
따로 문자로 보여주거나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뭔가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불타는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함.
당연히 올바른 해결 방법을 내어놓은 나를 두고 많은 이들이 '오....'와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석하랑은 달랐다.
"이건가? ...아 씨, 확대 뭔데? 내 이거 안 눌렀는데?"
"......."
이래도 되는 걸까.
옆 방 유나는 벌써 캠 세팅은 물론이고 장면을 여러 개 만들어 단축키 지정까지 하던데, 석하랑은 그것 조차 어려워했다.
'이럴 때는-'
나는 들고있던 스마트폰에 메모를 적어 넘기려고 하다가,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될 것 같아 결국 입을 열기로 했다.
"...보통 이럴 때 캠 끄거나 마이크 소리 죽이거든?"
처음 나가는 육성.
채팅창이 잠시 얼었다.
"이거 이렇게 세팅하면 돼. 됐지?"
"오, 고맙다. 오빠야 근데...."
[PPPPPPPPPPPPP]
[P! P! P! P! P! P! P! P! P!]
[혹시 피쟝인 것이야? 피쟝인 것이야? 피쟝인 것이야?]
"......창염개진."
나는 석하랑의 채팅방에 불을 질렀다.
대외적으로 나는 '창염의 피닉스 괴인형'의 모델링으로 알려진 존재.
따라서 같은 인게임 모델링 제공자로 석하랑과 엮여도 딱히 이상할 점은 없었다.
석하랑과도 '지인 사이'라고 알려졌을 뿐이다.
왜냐면 나는 '청화'의 남편이지, 석하랑의 남편이라고 했다가는 트럭에 직접 타고 본사에 몰고 들어가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미 청화의 남편으로 알려진 것 만으로도 살해감이야.'
목숨은 소중하다.
그러므로 괜히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어디서 갑자기 푹 찔려 죽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좀 진정...에라, 모르겠다. 님들이 이러니까 오빠야가 방송 쉬는 거 아님. 뭐? 오빠야가 게임 속 애들이랑 4P 섹스를 할 때 기분이 어땠냐고? 씨발, 내가 같이 안 해서 빡쳤다, 왜!!"
"......나도 진짜 모르겠다."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게 될 리가 없지.
나는 펑펑 터져나가는 채팅방을 향해 박수를 치며 석하랑의 방을 떠났다.
저기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섹스까지 하면 어그로가 폭발하겠지만, 석하랑의 알몸을 남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다.
이제는 나만 볼 수 있으니까.
'식사나 준비할까.'
신라는 게임을 하고, 석하랑은 시청자와 진지하게 현실 하렘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고 있고.
시간이 된 만큼, 내가 지금 할 일은 둘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것 뿐.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패널로 시선을 돌렸고, 그만 기절할 뻔 했다.
"...쟤 진짜 뭐야?"
[배달왔어요~]
유나는 내가 어플로 주문한 음료들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고리를 건 다음, 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놓고 가."
"그래도 얼굴은 보여주시네요."
"너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켠왕한다더니."
"아, 그거."
유나는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웃었다.
"켠왕 끝났어요. 지금 가볍게 샤워하고 바로 오는 길이랍니다."
"...방송은?"
"끝났죠. ...조금 피곤하긴 한데, 오빠의 이야기 정말 멋졌어요. 오빠가 신라 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거...많이 부러워졌거든요."
"무슨 말이야?"
두렵다.
무슨 말을 할지 무섭다.
"오빠...."
유나는 틈 사이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웃었다.
"...비가 오려나?"
" "
유나의 속삭이는 듯한 말투에, 나도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