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9화 〉2부 7장 02 누가 낳을래?
싱크로.
인간과 정령이 하나가 되는 것.
즉, 둘은 하나의 개체로 취급 받는다.
이는 인게임 내에서도 같은 원리로 적용된다.
히로인만 스쿼드를 구성했을 때, 간부나 정령이 한 명만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전부 16명의 스쿼드를 짤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전에는 단 7명, 그것도 속성별로 한 명씩 데려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한 명의 전력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싱크로에 성공한 히로인들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세계를 탈출하는데 싱크로라니. 그렇게까지 그 세계가 싫었던 건가?"
"그건 달라요. 세계를 탈출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단장님을 쫓아서 온 거죠."
지금은 이유나다.
이 나긋나긋하고 듣는 것 만으로도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는 분명히 이유나다.
"단장님께서 떠나고 난 뒤로 세계는 안정되었어요. 하지만 저는 제 파트너의 공허함을 알게 되었죠."
"공허함?"
"단장님이 없는 세계는 지극히 단조로웠어요. 다른 정령들은 세상을 떠돌거나, 단장님께서 남겨주신 선물을 두고 애지중지하거나 했지만...제 안의 히드라는 달랐죠."
유나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베시시 웃었다.
"쇼타 시안군이 아니면 안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히카리에게 제작 의뢰를 하면 쇼타 형태로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그건 단장님의 형상을 한 무언가지, 단장님이 아니라고 극구 사양하더라고요."
아까까지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던 히드라는 쏙 들어갔다.
자신의 치부를 눈앞에서 까발리는 데도 불구하고 왜 유나의 입을 막지 못하는 걸까.
히드라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닐텐데.
"히드라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세요?"
"아니. 싱크로해서 하나의 육체에 나온 거라면, 히드라 쪽이 주가 되지 않을까했거든."
히드라라면 유나의 인격을 잠시 억누르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싶었다.
하지만 히드라는 유나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것 마냥...아니, 유나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 마냥 행동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음.... 이건 조금 성적인 내용이긴 한데."
유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베시시 웃었다.
이미 전자유나와 10만 번을 떡친 나로서는 게임을 처음 플레이 했던 때, 진정한 의미에서 유나의 첫경험을 취할 때와 비슷해 소름이 돋았다.
"순결한 처녀여야지 세계를 넘어올 수 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싱크로한 존재라면, 단장님께서 하신 것처럼 세계를 넘어갈 수 있겠죠?"
"내가 했다기보다는...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단장님도 순수한 처녀였으니까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잖아요. 적어도 다른 남자에게 범해지지는 않았으니까. 범해졌다면, 아니 어떤 누구라도 단장님의 그곳을 건드렸다면 아마 2020년의 지구에 고정되었겠죠."
"......."
건장한 청년을 두고 순수한 처녀라니.
청년막이 범해지지 않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계기와 방법, 그리고 20년의 세계를 떠날 의지와 힘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죠."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지만...그래서 순결한 처녀가 조건이라 이거지. 음."
그 놈이 생각하는 '순결'의 범위가 어느 수준까지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커뮤니티에서 한창 불타오르는 주제가 하나 있었다.
히로인들 중에 진정한 처녀는 누구인가?
그 누구에게도 몸을 주지 않은 처녀는 많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은 처녀는 조금 논외.
오직 주인공만을 바라보고 지냈던 처녀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 이외의 남자를 잠시나마 마음에 품은 처녀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 하나.
"영혼이 순결하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하지?"
"...단장님, 의외로 이곳에서는 언어를 상당히 정제해서 말하시네요? 되게...뭔가 새로운 모습 같아서 설레네요."
"......."
피닉스의 껍데기를 쓰고 있던 세계나 지휘관의 껍데기를 쓰고 있던 인게임과 달리, 당연히 현실 속 나는 그 어떤 가면도 없는 생얼 그대로의 모습이다.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설렌다고?"
"네. 저랑 이야기할 때도 나름 제 신경을 써주시기는 했지만...지금 이 모습이 정말 괜찮네요. 이상형이라고 해야하나.... 후후, 혼이 잘생겼다는 말이 있다면 단장님을 두고 하는 말이 되겠네요. 주변에 여자가 많은 게 참 이해가 많이 되네요."
"...나는 그쪽의 생각을 조금 모르겠는데. 그...뭐냐."
"유나라고 그냥 편하게 불러요. 아니면 저도 편하게 불러드릴까요, 오빠?"
"......그러자."
다른 건 몰라도 오빠 소리는 못 참는다.
나는 절대 바람을 피우거나 외간 여자와 썸을 타는 게 아니다.
이 세계는 21세기 동방예의지국.
엄연히 장유유서의 유교 질서가 있는 곳인데, 당사자가 편하게 불러달라고 했으니 편하게 부르는 것은 인지사정.
"유나가 나보다 그러면...."
"20살이예요. 여기서는."
"...석하랑이랑 한 살 차이가 되었네."
"아마 다 그럴 걸요? 후발주자들이 있다면...다들 '성인'으로 취급받을 나이가 될 거예요. 하신라 님도 그렇고, 하랑 언니도 그렇고."
"......태연하게 후발주자를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다시 순결 문제를 따져보지. 혼이 순결하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하지?"
내 질문에 유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오빠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알겠네요. 몸은 처녀인데 혼으로는 이미 섹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죠?"
"그래."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당장 하신라가 인게임에서 공략한 '아지다하카'가 있다.
몸이자 본체인 아지다하카/앙그는 처녀이나, 그녀는 알다시피 전세계 모든 괴인들의 공공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녔다.
그건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
남자를 쇼타로 만들어서 응애 플레이에 심취한 히드라.
자기보다 강하거나 대등한 남자라면 몸 정도는 따먹어도 좋다는 마인드의 카르나.
동창 부하들의 동정을 전부 떼어준 혼돈환룡.
인간 히로인 중에서도 존재한다.
SR-6974라는, 칼집 자위쇼를 벌이다가 처녀를 잃은 샤오린이나 X로이드로 재미를 보는 은유하도 해당된다.
공식적으로 비처녀인 천가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들의 처녀성을 두고 키보드로 많이 싸우게 된다.
인기투표가 사실상 '처녀성' 배틀 이라고 누가 비꼬기도 했을 정도로, 히로인의 처녀성은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의아했다.
"히드라, 딴 놈 자지 만졌잖아."
"......."
당사자는 모른 척 하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인게임을 확실하게 플레이 한 나는 잘 알고 있다.
"유나를 상대로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진실을 숨길 수는 없으니까 확실하게 이야기하자. 히드라, 노인네를 상대로 모유수유 대딸 플레이를 했잖아?"
"...부정할 수는 없죠."
아지다하카만큼 전세계적으로 분신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히드라 또한 몸을 여러 곳에 사용하며 간부로 놀았다.
만약 그녀가 진정한 의미에서 처녀였다면, 내가 시안 군으로서 다가가 쇼타 섹스각을 잡았을 때 순순히 나를 침대로 들였을까?
절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 기, 체가 모두 처녀인 유나같은 존재를 처녀로 두는 자를 두고 커뮤니티 사람들은 '유나콘'이라고 부른다.
유나가 절대적인 여신인 건 맞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으로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건 맞지만, 그런 유나의 처녀성과 순수성을 두고 다른 히로인을 깎아내리는 악질들에 대한 멸칭이다.
유나콘들에게 묻는다.
아무리 인게임이지만 다른 엑스트라의 자지를 붙잡고 대딸 마망 플레이를 해준 히드라는 처녀인가?
물론 인게임 속의 캐릭터와 20년의 지구 사람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비처녀 걸레였던 천가을이나 혼돈환룡이 처녀성을 유지하게 된 것처럼, 나의 개입으로 인해 처녀성을 지킨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히드라는 내가 개입하기도 이전에 이미 다른 자의 좆을 만졌다.
실수로 만진 것도 아니고, 대놓고 붙잡은 다음 한 발 빼줬다.
그런게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히드라는 처녀라고 할 수 있는가?
절대.
결코.
그런 자가 순수한 처녀여야만이 넘어올 수 있는 4차원의 벽을 돌파할 수는-
"......그렇군. 기생이구나."
"맞아요. 기생이라는 표현은 제 입장에서는 조금 그렇지만...싱크로를 했기에 저와 함께 넘어올 수 있었죠."
넘어온 건 순수한 처녀인 이유나.
하지만 '싱크로'한 상태로 넘어왔기에, 히드라는 유나의 정신 속 혼의 일부로서 넘어왔을 것이다.
"넘어오고 난 뒤에는, 원래 세계에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요. 성주가 마련해준 그릇으로서의 제 몸은 거기에 남아있을테니...히드라의 분령이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뭐 참다 참다 히카리가 만들어준 쇼타 피닉스를 덮쳤을테고."
"......."
히드라라면 가능성있다.
"그래서 아까는 히드라가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이런 제안을 드리고 싶어요."
유나는 크림파이를 한 입 베어물며 싱긋 웃었다.
"딸로 이유나가 좋으세요, 아니면 히드라가 좋으세요? 저희는 어느 쪽이든 괜찮은데."
"...내가 너희 중 한 명을 임신시키는 건 일단 확정이다 이거야?"
"네. 그래야 이 세계에서 두 명이 될 수 있으니까. 대신 앞으로 낳게 될 아이는...이게 날아갈 거예요."
유나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온전히 이 세계의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기에, 완전한 망각의 과정을 거치게 되겠죠."
유나와 히드라는 내게 이지선다의 제안을 했다.
유나와 섹스를 하고 히드라를 낳을 것인가.
히드라와 섹스를 하고 유나를 낳을 것인가.
어느쪽이든 새롭게 태어나는 딸을 상대로 내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유나콘의 관점, 조 씨의 관점에서 보는 '비처녀'에 대한 형벌.
하지만 나는 유나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애써 숨기려고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원래는 네가 히드라를 낳는 거겠지, 응?"
"......."
유나는 침묵했다.
"히드라 본인은 모든 기억을 잃고 딸로서 태어나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너는 히드라를 위해 기회를 주는 거야. 맞잖아."
유나의 이명은 성녀.
설령 사랑하는 이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선택하더라도 웃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여자다.
"너는 너 자신이 죽을 각오로 히드라의 사랑을 응원하는 거야."
"네, 맞아요. 그게 파트너니까. 그리고...오늘 만나서 확신했어요."
유나는 내 손을 꼭 잡으며 활짝 웃었다.
"오빠라면, 제게 너무나 좋은 아빠가 될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