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8화 〉2부 7장 01 2유나
스트리머 서카랑의 방송이 시작부터 사고가 터지기는 했지만, 일단 나름의 성과는 거둘 수 있었다.
-전자창녀 ㄷㄷ해
-자기 몸을 공공재로 공유하는 거...ㅗㅜㅑ
-뷰지도 스캔된 건가요?
"내는 모르는데. 오빠야한테 물어볼까?"
-씨발 받아치는 거 존나ㅋㅋㅋㅋ
-오빠야...어우야.
-나의 하랑쟝을 빼앗긴 느낌...싫지 않을지도?
석하랑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자신을 향한 온갖 섹드립과 모욕에도 유하게 흘려내며 받아쳤고, 꼬여드는 악질들도 제풀에 나가떨어지거나 방송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서 악질 행위를 하며 석하랑을 긁었다.
"애들 순하네."
하지만 오히려 석하랑은 그들의 행위를 보며 웃기만 했다.
"저쪽 세계는 완전 악의로 가득차있었는데."
"테라의 영향이죠. 인간을 괴인으로 만드는 괴전파가 가득한 세상이니, 여기에 있는 악질이 거기서는 평범한 축에 속했으니까요."
2020년의 지구.
그곳의 사람들은 언제 괴수가 나타나 사람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신경이 곤두 서있었다.
그런 만큼 자신은 고통받고 사는데 떵떵거리고 누구보다 안전하게 꿀을 빠는 이능력자들에 대해서 극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방구석폐인이 아니라 방구석괴인이 될 정도로.
인간의 악의를 캐치한 오염된 테라의 마나는 사람들의 성정을 바꿔버렸고, 석하랑은 그런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12살 때부터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사람들 순해서 좋네. 거기서는 죽은 사람 사진 올리면서 '왜 구하러 안 와?'하면서 긁는 게 태반이었는데."
"방송으로 어그로를 끄는 사람이 드물었죠. 그래서 빌런 컨셉을 유지하기도 했고."
2020년의 지구.
그곳의 한반도가 지옥불반도라고 불렸던 것처럼, 지구 전체가 마경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2025년의 지구도 그나마 순해진 정도다.
인간의 끝없는 악의는 평범한 범인이 견디기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히어로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석하랑은 무려 10년 가까이 히어로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영웅의 멘탈은 사이버 창녀 소리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녀는….
"게임 속 내를 보니까 오빠야랑 떡쳤다고 전 세계 공개를 하던데?"
"인게임이잖아."
"인게임 아니라더 그렇게 했을 걸? 내가 좀 더 의젓해지고 성숙해진 상태기는 해도, 딱히 틀린 건 아니지 않나?"
석하랑 루트의 개방, 60억 지구인이 보는 앞에서 공개 프로포즈 하기.
그냥 하는 건 안 된다.
"공개 프로포즈라는 말로 다들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공개 섹스죠."
"무섭네, 26살 석하랑. 좋아하는 남자를 독차지 하려고 온 지구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하다니. 오빠야는 어떤데? 가능하나?"
"안 될 것도 없지."
전 지구인 앞에서 신라...그리고 석하랑을 내 여자라고 공언하는 행위가 섹스라면 이 한 몸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물론 남들에게 '뭐 저런 놈이랑 섹스를 하냐'는 욕은 듣지 않도록 해야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슬슬 '그거'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겠나?"
"네. 이것부터 대처하기로 하죠."
석하랑과 신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왜 저렇게 심각한가 덩달아 나도 심각해졌고, 나는 내 앞에 놓인 스마트 패드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유나?"
"네. 이유나예요. 당신이 10만 번 섹스를 한 여자."
"그거 솔직히 이야기해서 데이터 쪼가리잖아."
"하지만 2020년의 유나는 얘기가 다르죠? 창염의 피닉스와 하신라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당연하지."
나는 피닉스 루트로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이유나 스피드런을 감행했다.
1월 1일에 이유나를 영입하여 100일이 되는 시점에 이유나 SS랭크를 찍은 다음, 대충 아무 정령이나 싱크로 시켜서 엔딩까지 일직선으로 달리는 스피드런은 너무나도 쉬웠다.
단지 그 과정이 창염의 피닉스를 공략하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연구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스토리를 미는 것 자체는 쉬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살을 섞은 데이터 이유나와 2020년의 이유나는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엄연히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내게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이유나가 아니었다면 히드라를 담지 못했다.
유나가 히드라와 지륜, 삼위일체로 싱크로를 해줬기에 나는 창염을 2020년의 지구에서 하신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이들이 도왔지만, 유나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된 여자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거, 일시정지예요."
"......영상이었어?"
사진인 줄.
나는 정지된 영상의 재생을 위해 탭을 두드렸다.
"이게 뭐야."
그리고 나는 보고말았다.
여캠처럼 보이는 영상.
오른쪽에 파도처럼 쓸려나가는 채팅들.
그리고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아니 실존인물로서 존재하는 이유나.
나의 이유나는 이렇지 않아?
아니다.
[전자창녀라고요? 흐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인게임 모델링이 저희를 담아낼 수 없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그 아이는 저랑 닮은 사람이죠.]
영상 속 이유나가 말하는 대로, 현실의 유나를 게임이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 속 유나가 99레벨의 유나였다면, 현실의 유나는 여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레벨 100의 여신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러 분들은 저로부터 파생된 존재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말하자면...안녕하세요, 사위 여러분?]
"사위라…."
유나가 나온 이유를 알겠다.
"무슨 게임 속 캐릭터를 자식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저 유나 덕분에 하랑이에 대한 시각은 나름 괜찮아졌어요."
신라는 커뮤니티의 반응을 들고왔다.
[따님! 장모님을 제게 주십시오!]
[너무해요, 지휘관 님! 우리 엄마를 건드리다니!]
푹.
유나 배드엔딩.
장모님을 건드려 사망.
"...이건 또 무슨 업데이트야?"
"인게임 속 이유나는 이유나로. 그리고 현실의 이유나는 인게임 이유나의 어머니로 설정되어버렸어요."
"그럼 공략 안되겠네. 놈들이 유나를 공략할 수 있게 놔뒀을 리가 없으니."
"그렇지. 근데 오빠야, 문제가 하나 있다."
석하랑은 딱딱한 표정으로 내게 패드에 온 연락 하나를 보였다.
"오빠야 만나고 싶단다. 임마가."
"......."
이유나.
과연 어떤 이유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나와 카페에서 1:1로 만나자고 제안을 보냈다.
신라에게.
"이거, 선전포고죠?"
"...뭔가 위험한데."
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일단 유나가 만나자는 제안에 대해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만나주기만 해도 바로 저랑 키스해준다는데요? ...뭐해요, 옷 안 입고."
"......."
유나는 자신의 입술을 걸고 신라를 매수했다.
* * *
잠시 뒤.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나왔다.
신라가 챙겨준 옷을 입고 나온 나는 꼭 소개팅을 나온 것 마냥 한껏 차려입은 상태였다.
부우웅.
집 근처 카페는 사람의 인적이 상당히 드문, 체인점도 아닌 동네의 카페였다.
약속 장소는 유나가 정했고, 나는 카페로 가자마자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어요?"
갈색으로 웨이브진 단발.
인게임 속 유나가 다양한 단발을 고수하지만, 나는 이 단발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어디서 봤더라?'
적어도 게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디지.
심지어 코트에 미니스커트 같은 원피스까지 입고 있으니 너무 어색했다.
내가 아는 유나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또 이런 모습이니 진짜로 '그것' 같았다.
그래, 2020년의 지구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그 이유나…!
"호칭은 여러 가지로 섞일 수 있으니까…단장님이라고 할게요."
"단장?"
"청화단의 단장님이시잖아요."
"...너는 혹시."
"일단 올라가서 이야기를 할까요?"
유나의 분위기는 상당히 여유가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카페의 2층으로 올라갔다.
"주문은 이미 해뒀어요. 단장님 마실 음료랑 제 거, 그리고 크림파이."
"...왜 하필 크림파이?"
"그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니까요. 뭐...크림파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이렇게 단장님이 의미심장하게 생각하는 걸 보는 게 좋지만."
유나는 샐쭉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만나자고 하는 이유는 이거예요. 스트리머 서카랑을 비롯한 데스디나스 히로인들이 단장님의 집에서 방송을 하는 거죠. 단장님은...이제 저희들의 프로듀서가 되는 거고."
"음…."
나쁜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이걸 진행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에 따른 제 제안은 간단해요. 저는 단장님의…아이를 원해요. 제 처녀를 드리고, 제게 아이를 주세요."
"풉."
뿜을 뻔 했다.
유나는 자연스레 내게 냅킨을 건넸고, 나는 입 주변을 닦고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죠. 이건 단장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제 뱃속에서 태어날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내가 왜?"
누가 들으면 내가 이유나와 결혼이라도한 사이인 줄 알 것 같다.
"하랑 언니를 품으셨던 것처럼 하시면 돼요. 마침 저도 '성인'이고."
"그러니까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내가 너한테 한 거라고는 전장에 나서는 걸 강요한 것밖에 없는데?"
"나름 좋은 경험이었죠."
"고작 그거가지고 내 아이를 가지겠다고? 그건 아니지."
"아뇨. 그런 이유만은 아니에요. 단장님의 아이를 가지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거니까요."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나는 처음부터 느꼈던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말을 통해 나는 유나의 '이질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유나."
"네."
"유나는 그런 말 안 해."
"...그런 말?"
"유나는 절대 내게 강요를 하는 아이가 아니야. 그 어떤 상황에도 절대 남에게 '강요'라는 걸 하는 여자가 아니지."
"...사람이 사랑하다보면 절박해지는 법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그러지 않는다.
유나랑 10만 번 떡쳐본 이유나 전문가로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유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여자가 아니야. 이런 방식은...그래."
나는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내 손목에 채워진 청백의 밴드를 움켜쥐었다.
"너...유나 아니지?"
"제가 유나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이런 방식…. 알 것 같아."
유나가 아니다.
유나의 몸을 한 무언가다.
"너…."
"......들켰네."
유나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갈색의 눈동자, 아니 금색과도 같은 눈동자의 그녀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크림파이를 건넸다.
"안녕, 시안 군?"
"......."
"안녕하세요, 단장님."
"...이유나?"
어...라?
유나가,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