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66화 (766/1,497)

〈 766화 〉2부 6장 29 스트리머 서카랑

집에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그에 맞춰 새로운 살림도 챙겨야 한다.

처음 석하랑이 들어왔을 때는 그냥 단순히 어느 방을 쓰면 되겠지 이야기를 했지만, 석하랑과의 관계가 공고해진 이상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두 집 살림은 안 돼요."

"한 집에서 방 따로 쓰는 거면 몰라도, 그건 내도 싫다."

신라도 석하랑도 같은 집 안에서 살고싶어했지, 따로 집을 구한다거나 하는 건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나눴던 계획대로 지금의 부부침실은 신라의 방으로, 그리고 다른 방은 석하랑 개인의 방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 여기 써도 되나?"

"물론."

석하랑이 선택한 방은 부부 침실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우리가 서재 겸 게임방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곳이다.

인테리어 내부 공사를 위해 방을 비워둔 덕분에, 석하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방을 꾸밀 수 있었다.

다만.

흔히들 말하는 '여캠'이 '자기가 자는 방'에서 스트리밍을 하는 것처럼 개인 방송 스튜디오를 만든 것을 기반으로, 석하랑은 그곳에서 지내기를 선택했다.

"그냥 여기로 들어와요."

철저히 '방송용'으로 꾸며진 방에서 지내겠다는 석하랑에게 신라는 침실의 공유를 제안했다.

앞으로 있을 관계의 연속을 생각하면 침대가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면서 매트리스가 딱 붙도록 침대도 하나 더 주문했고, 잘하면 사람 다섯이 반듯하게 누워도 될 정도로 부부침실은 침대로 가득찼다.

"내도 염치가 있지. 작은 방이라도 괜찮다."

그러나 석하랑은 신라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녀는 방의 형태가 어떻든, 자신만의 개인 공간을 원했다.

"푸흐흐, 앙큼하긴."

나도 이미 눈치챘지만, 신라 또한 석하랑의 생각을 눈치채지 못할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나중에 침대에서 당신 방에 따로 오게 하려는 속셈 아니예요? 완전 여우네, 여우. 두 집 살림은 그래도 두 방 살림으로 저 다른 거 하는 사이에 자기 방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죠?"

"잘 아네. 이틀은 네 방에서 자고, 하루는 내 방에서 자고. 하루 정도는 내도 안고 잘 수 있게 독점해도 되는 거 아이가?"

"그리고 나흘째는 셋이서 침실에서 같이 자고. 완벽하네요. 푸흐흐. 아, 농담이에요. 그냥 사흘을 셋이서 같이 자죠. 대신 하루 정도는 양보해줄게요."

"...그건 내가 싫은데. 오빠야랑 같이 자는 거 아니면 내는 혼자서 잘란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건지. 알았다, 알았어. 자는 날에 대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하랑이가 이 방 쓰는 거는 확정이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석하랑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부부침실은 신라의 방으로.

게임방은 석하랑의 방으로.

"그런데 하랑아. 네 방, 방송용 스튜디오로 쓴다고 안 했어? 침대도 안에 넣기로 했잖아."

"그랬지. 마이크랑 카메라도 이미 다 들어왔고. 오빠야가 확인했다 아이가. 컴퓨터 최신형, 아니 그 이상이라고."

"그럼 진짜로...그걸 하겠다는 거야?"

"응. 안 될 이유는 없지 않나?"

석하랑은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카메라 각도 잘만 맞추면 침대 안 보일테고, 또 뒤에 시스템으로 크로마키 치면 보일 일도 없다."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침대.

그 위에는 데스디나스 관련 굿즈라고 할 수 있는, '석하랑'의 대형 인형이 빈백 대신에 놓여있었다.

"짜잔, 하랑 등장."

그리고 문을 연 바로 옆에는 책상과 함께 개인 방송을 위한 완전 셋팅이 이루어져있었다.

"이미 스트리머 닉네임도 정해졌다. 회사에서 나보고 '스트리머 서카랑'하라고 하더라."

"...에반데."

"어차피 내인 거 다들 모를 걸?"

그렇다.

석하랑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인방을 하기로 했다.

집안일 자체에 흥미를 붙이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신라와 달리, 석하랑은 기본적으로 집안일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여자다.

그렇다고 TV를 보고 건어물처럼 사는 건 본인이 싫다더라.

"내 애가 울 엄마 뭐하냐고 물으면 내가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거 아이가."

"...스트리머가 유부녀라는 거 뭔가 좀 그렇지 않나?"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는데. 12살에 히어로로 데뷔하고 10년이 흘러, 22살에 애엄마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석하랑. 재미있지 않겠나? 흐흐."

말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

이유는 하나 뿐.

'얘 은근히, 아니 제대로 관종이지.'

이미 12살 때부터 사람들의 이목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온 여자다.

아역에서 빵 터진 아역배우가 연예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2020년의 지구에서 연예인보다 더한-국가적 아이돌이자 여신으로 칭송받은 여자가 가만히 집에서 있을 수는 없다.

이곳에는 히어로를 괴롭히는 괴수도 괴인도 없으니, 평생 TV만 보다가 살 수는 없는 법.

사람은 뭐든지 건전한 취미생활을 가지는 게 좋다.

단지 그게 '방송'이라는 게 걱정될 뿐.

'석하랑이 노출되는 거 좀 위험한데, 그렇다고 집에 가만히 두는 것도 더 안 될 것 같아.'

아무리 이 세계에서는 운신을 조심해야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막을 수는 없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석하랑은 자신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는 것을 바랄 것이다.

-오빠야가 선택하면 되겠네. 연예인이랑 모델, 인방 스트리머 중에 뭐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

-...듀라한.

석하랑은 내게 가불기를 걸었고, 나는 석하랑이 그나마 가장 상처를 덜 받을 것 같은 스트리머를 선택했다.

-대신 얼공이나 몸캠은 금지.

-왜?

-나만 볼 거야.

-...그런 거라면 인정이지. 히힛.

그리하여, 결국 석하랑은 '목소리'만 송출하는 스트리머가 되기로 했다.

이미 장비는 전부 도착했고, 남은 건 방송 전 여러 가지 테스트만 남아있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스트리머 같은 걸 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결국에는 이거 네가 선택한 거잖아. 네가 한다고 했으니까...걔들도 도와주는 거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석하랑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오빠야랑 신라 둘이서 떡치는 소리는 걱정마라. 물리적인 방음 부스에 마력으로 결계까지 쳤으니까, 어지간하면 밖으로 소리 나갈 일 없으니까."

"...왠지 하꼬로 전전하다가 망할 것 같은데."

시청자 2~4명을 전전하다가 관심도의 부족으로 차라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건 내 욕심일까.

나와 신라가 방송을 녹화방송 형태로 돌린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이 새끼들 안 되겠어요. 뭐? 내 남편이 어쩌고 어째? 피닉스 따먹고 싶다? 확 다 불 질러 버릴까요?

...실시간으로 난동을 피우는 악질들을 구하기 위해, 나는 방송을 중단해야만 했다.

-나를 임신시키고 싶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신이니까! 하지만 내 남편을 임신시키고 싶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네요! 갓 블-

안 그러면 진짜로 빡친 신라가 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 같았다.

"망하지는 않을 걸요? 석하랑 목소리가 얼마나 예쁜데."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신라가 거들었다.

"대신 방송사고로 카메라 안 끄고 침대에서 자위하거나 당신이랑 떡치다가 정지먹겠죠."

"그럼 더 좋고. 석하랑의 남자가 누구인지 전세계에 아는 거 아이가."

석하랑은 킥킥 웃으며 컴퓨터를 가리켰다.

"그냥 취미활동으로 하는 거고, 절대 이상한 일 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안해도 된다. 그리고 이거 덕분에 '석하랑'이 오빠야 전용이 된 거 아이가."

"...망할 놈들."

조 씨는 석하랑의 모델링을 추출한다는 명목으로 석하랑에게 회사와 연계되는 '스트리머'를 제안했다.

스트리머 자체는 2020년의 지구에도 존재했다.

이능력자는 많은 방송인들의 메인 컨텐츠로 활용되었고, 날뛰는 괴수를 멀리서 촬영하거나 길드에서 레이드 뛰는 걸 방송으로 송출하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석하랑 또한 어려서부터 카메라 렌즈 뒤의 시선에 익숙해져있다.

걱정은 되지 않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너한테 욕정하는 애들은 어떻게 하지?"

"뭐...그건 신라 마음가짐으로 대처하면 되는 거 아이가? 내가 이 얘기하니까 그러더라고. 내 몸은 어차피 오빠야 거고, 환상 속의 내를 상대로 딸치는 것 정도는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

여신이 된 여자는 사고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그거 정도는 귀엽게 봐주면 되지. 누구는 딸같은 괴인을 제자같은 남자한테 줘버렸으면서 와그라는데?"

"그건 그 녀석이.... 하아, 아니다. 됐고, 하는 거 옆에서 도와줄테니까 켜봐."

이왕 할 거라면 철저하게.

악질에 대해서는 사측에서 '매니저' 활동을 통해 쳐낸다고 했으니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근데 내가 생각했던 장비들이랑 많이 다른데?"

"응. 모델링 아직도 내놓으라고 난리난 사람들 민심 다독인다고, 이걸로 하라 카더라."

"...아니 미친."

석하랑은 책상 아래 놓인 상자에서 정체 불명의 카메라를 꺼냈다.

렌즈에는 보기만해도 상당히 꺼려지는 이형의 물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거 뭔데?"

"음...차원을 낮춰주는 카메라? 어디보자...설명서대로 하면...다 됐다."

삐빅.

넓은 모니터 속.

카메라에 비친 석하랑은 인게임 속 3D 캐릭터처럼 보이고 있었다.

"2D모드...? 이거 한 번 눌러볼까?"

삐빅.

이번에는 입체감이 사라지고, 석하랑을 미소녀체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그림이 라이브 2D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친."

세상은 이제 전기차가 상용화되고 수소차가 터질 위험을 안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시대인데, 이 미친 놈들은 SF 속에서나 볼 법한 미래 기능을 이런데 쓰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오빠야, 일로...헐."

"아니, 이 미친 놈들이?"

카메라 속.

나는 '금발서양남', 그러니까 지휘관으로 비치고 있었다.

머리칼은 금발로 변하고, 눈은 신라를 닮은 푸른 눈동자였다.

"이 미친 놈들이 설마...."

"...그냥 코스프레 방송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와...이거 대단하네. 내가 지금 눈으로 보는 건 오빠야인데, 카메라로 보이는 건 점마고."

석하랑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목을 걸었다.

"석하랑이랑 지휘관이랑 둘이서 게임 방송하면서 스킨십하면, 다들 열불나서 터지는 거 아닌가 몰라?"

"...캠방 아니거든."

"그래도."

츄릅.

"물고 빠는 소리는 다 들릴 거 아이가."

"정지 먹는다."

"뭐래, 자기들은 19금 미연시 플레이도 송출했으면서. 19금 성인걸고 하면 되는 거 아이가?"

"......."

나는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게임 제작사와 연계한 버츄얼 스트리머, '서카랑'이 인터넷 방송계에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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