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4화 〉2부 6장 27 열락의 끝
광란의 3P 이후.
"......."
석하랑은 내 위에 엎어진 채 잠들어있었다.
밤새도록 내가 그녀를 괴롭혔는지 그녀가 나를 괴롭혔는지는 애매하지만, 중간부터 기승위와 대면좌위로 변한 뒤부터 그녀는 이성이 날아간 채 본능 만으로 몸을 내게 맡겼다.
"후후후, 하랑이 잠든 거 귀엽네요."
신라는 잠든 석하랑의 머리칼을 정돈하며 내 손을 잡았다.
자신은 내 팔에 머리를 이고 자면서, 정작 석하랑은 내 위에 엎어져 누워있는 걸 허락했다.
심지어 여전히 몸은 겹친 채.
"하나의 이불 아래 두 여자를 동시에 품은 남자라. 후후, 아주 좋으시겠어요?"
"한 여자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했는데?"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나는 잠든 석하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이 20년 넘게 쌓아온, 살아온 걸 내던지고 나를 찾아온 거잖아."
"당신 같아서 동정심이 생기고 그래요?"
"동정심이라기보다는, 그 마음을 이해하니까 내가 미안한 거지."
내가 신라에게 향하던 마음.
그것이 석하랑이 내게 품은 마음이라고 한다면, 나는 더욱 석하랑을 모질게 내칠 수 없었다.
안 되는 걸 알면서, 당사자에게 거부당할 걸 알면서, 수 차례 좌절하고 무너지더라도 나는 도전했다.
내가 해피엔딩을 얻어냈다고 한다면, 석하랑도 도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신라도 충분히 공감하기에, '우리'는 석하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말,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신라는 석하랑의 등을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사랑 하나 때문에 신이 되다니. 정말...재미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걸요. 당신, 분명히 알아두세요."
신라는 내 입술 위로 검지를 올리며 눈을 찡긋였다.
"하랑이 저만큼 사랑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같이 자는 거 없어요."
"......이제는 그런 협박 안해도 돼."
마음을 바꾸기까지 정말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단을 내린 순간부터는 더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너야말로 나중에 질투하면 안 된다? 나, 여차하면 너 게임하는 동안 둘이서 부산 놀러갈 지도 몰라."
"...그건 좀 화가 나는데, 은근히 기대가 되네요. 당신이 그럴 리가 없는데 만약 그랬다는 건, 내가 1순위가 아니게 되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기보다는...분명히 해야지."
나는 신라에게 대놓고 선언했다.
"1순위가 바뀌는 게 아니야. 하랑이랑 불륜하는 거야."
"와, 쓰레기다."
"나를 쓰레기로 만든 게 누구더라?"
"저죠. 푸흐흐. 그러면 저도 엄포를 놓아야겠네요."
신라는 내 볼에 키스하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혼자 게임하는 동안...저랑 하랑이랑 둘이서 여행 다녀와도 뭐라하기 없기."
"...둘이서 딴 남자랑 놀아나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흐흥, 지금 쫄렸죠? 갑자기 막 긴장되고 그러죠? 걱정마요. 그런 일은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신라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둘 다 집을 비우면, 꼭 누가 몰래 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에이, 설마."
"가능성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어요?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반대쪽 팔이 비었는데."
"......그냥 하랑이 한 명으로 만족해주면 안 될까?"
"푸흐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당신이 그쪽에서 박고 다닌 플래그가 몇 개인데, 한 명으로 끝날 것 같아요?"
"......."
만약.
석하랑처럼 누군가가 튀어나온다면, 과연 신라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냥 재미로 뛰쳐나온 게 아니라 석하랑과 같은 마음으로 나온 것이라면, 신라도 분명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뭐 크게 잘못한 거 있어?"
"네. 아주 큰 잘못. 1년 동안 후리고 다닌 여자가 몇 명인데 누구랑도 안 했잖아요."
"그건 네가.... 하, 아니다."
나는 신라의 머리를 뒤에서 헝클이며 혀를 찼다.
"나도 모른다, 이제. 너희가 알아서 정해."
나는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 * *
그 시각.
[...너희가 알아서 정해.]
"녹취 끝났습니다, 회장님."
"그래? 지금부터 알아서 하면 된다 이거지? 전술핵 투하 간다."
"타이밍은 언제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걔 원하는 타이밍에. 거...조만간 TV 채널에 크레페 가게 같은 거 광고 좀 찔러봐. 딸기랑 블루베리랑 같이 섞여있는 걸로. 그러면 둘이 안 가고는 견디지 못할 걸?"
"그럼 따라가지 않을까요?"
"새 DLC 뽑으면 되지. 겜창이 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업데이트로. 그래. 거기 스토리 지금 좆박았으니까, 어디 한 번 더 개판으로 만들어보자고."
수많은 모니터가 펼쳐진 넓은 공간.
"히드라 챕터, 내가 직접 개편한다. 그래, 원전이랑 원작이랑 이전 세계를 적당히 섞어서.... 그래, 그게 좋겠어."
정면, 꺼진 모니터에는 디스플레이 불빛에 반짝이는 대머리 하나가 있었다.
* * *
그 시각, 신서울 정부청사 대통령 관저.
"후우...."
선의철은 벌써 몇 갑이나 비웠는지 모를 줄담배를 피우고 또 피웠다.
평소에 건강 관리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준비해둔 찻잎에 싸구려 담배 냄새가 스며들든 말든, 그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렸다.
"각하."
뒤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의철은 바로 몸을 돌려 방문자를 반겼다.
"어떻게 되었지?"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시안.w.히비스커스의 '매지컬 큥큥스'는 지하도를 통해 진입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자료 줘봐."
선의철이 손을 내밀자, 후드를 뒤집어 쓴 복면인은 머뭇거리며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A4용지에 프린트된 온갖 자료는 백청화의 팀, 그러니까 선겨울이 함께 참가한 헌터 길드의 자료가 담겨있었다.
펄럭.
"...지금 장난하나?!"
선의철은 그걸 복면인-'청송'의 얼굴 앞에 뿌렸다.
"지하도로 진입한 지 벌써 한나절이 지났어! 최신 자료를 가져오란 말이야, 최신!!"
"그게 최신입니다. 서울 지하 특성상 경기 남부까지 내려오니 않는 이상 모든 신호가 먹통이 되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젠장! 애들 보내서라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현장에 있는 이들을 동원할 수 있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동원했습니다. 곧 소식이 전해질테니 노여움을 푸시지요."
청송은 조급함을 보이는 선의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십니까? 무슨 문제라도...생긴 겁니까?"
"......."
이제는 선의철이 답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는 주먹을 말아쥐었다가 푹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됐다. 나가."
"각하, 혹시 따님과 그 금발 서양남 사이의 관계를 걱정하시는 거라면...."
"나가라니까!!"
선의철의 엄포에 청송은 고개를 푹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청송을 향해 침이라도 뱉을 기세였던 선의철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젠장, 젠장! 저 년이 모르는 걸 봐선, 진짜로 위험한데...!"
청송은 준S급, 그러니까 A에서 S로 넘어가기 직전에 해당하는 여자다.
그런 여자가 이전에 이곳을 습격한 존재, 아지다하카의 방문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즉, 청송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전세계를 누비는 악의 조직 간부를 상대로 우위를 점칠 수 있을 리는 만무.
"젠장, 이제 어떻게 하면...응?"
삐빅.
선의철의 마도기어가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아주 야릇하고 은밀한 검은색.
마치 치마 속 검은 스타킹의 색과도 같은 빛에 선의철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마도기어를 눌렀다.
[안녕, 각하?]
허공에 스크린이 하나 떠올랐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주고 떠난 여자, 아지다하카가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눈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그녀의 복장은 여전히 하드한 검은 가죽이었다.
[당신은 이 인간한테 고마워해야할 거야.]
[으읍...!]
"!!"
아는 얼굴이다.
백청화.
'TS 증후군'이라는 끔찍한 병에 걸려 낮에는 여자가 되어버리는 비운의 청년.
금발벽안의 미녀는 위에 흰 와이셔츠 한 벌만 입은 채, 아지다하카에게 턱 아래와 가슴을 쥐어뜯기며 분노에 벌벌 떨고 있었다.
[원래는 서울 지하에 있는 괴뢰들한테 돌림빵을 놓으려고 했는데, 이 인간이 자기 몸을 던져서 선겨울의 처녀를 구했다 이거야. 나머지는...킥킥, 영상으로 보라구.]
"여, 영상...?!"
치직.
화면이 변했다.
그곳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 미친...!"
선겨울, 아지다하카.
츄릅, 쯉, 쮸읍, 츄르릅.
두 명의 여자는 무릎을 꿇은 채, 딱딱하게 솟은 거근을 혀로 빨고 있었다.
둘에게는 개목걸이가 채워져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듯한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사슬을 잡고 있었다.
[하하, 왜 그래? 선겨울의 처녀를 살려주는 대신...네가 나한테 따먹히기로.]
"아, 아아...."
선의철은 깨달았다.
언뜻 보기에는 남자가 두 여자를 강제로 펠라치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흑발의 아지다하카가 둘을 상대로 강제로 성행위를 하게 만들고 있다.
선겨울에게 금발서양남의 자지를 빨게 하고....
치지직.
영상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셋의 체위가 바뀌어있었다.
[어서, 빨아.]
[읍, 으읍...!]
아지다하카는 백청화(女)의 뒷통수를 붙잡고 아래로 누르고 있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선겨울의 보지.
[보고 있어, 각하? 지금 네 딸이 외간남자...아니다. 여자인가? 아무튼, 보빨 당하는 거?]
[읍, 으븝, 흐읍...!]
아지다하카는 카메라를 향해 비웃으며 중지를 들어올렸다.
[이번에 찍은 영상은 내가 잘 가지고 있을게. 후후, 이 몸의 심기를 건드리면...알지? 재미 없을 줄 알아.]
"씨발...."
선의철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딸은 처녀를 지켰다.
하지만 처녀를 지킨 것 이상으로 심한 일을 당했다.
[왜 그래? 당신이 거래를 받아들였잖아. 당신은 목숨을 지키는 대신, 당신 딸을 노리개로 팔기로.]
"그런 적 없어!!"
[어머, 지금 아니라고 한 거야? 후후, 걱정마.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을테니까.]
저 영상이 사방에 퍼지는 순간, 자신은 끝장이다.
[너는 딸의 몸을 팔아서 살아남은 쓰레기가 될 거야, 각하.]
"젠장, 젠장...!"
뚝.
영상은 끊어졌다.
"아아악!!"
와장창.
선의철의 집무실은 집기가 마구 부숴지기 시작했다.
* * *
"아, 실수했다. 더블 펠라는 소장용이었는데. 미안, 지휘관. ...근데 꼴리지 않아? 딸이 금발서양남 좆을 빨고 있는데. 히힛."
"...지휘관, 정말 이 간부를 믿어도 되는 거예요?"
"일단은. 그보다 너는 안 부끄러워? 그래도 아버지한테 유사 섹스 테이프가 보내졌는데."
"딱히.... 어차피 그 양반, 제 알몸 사진도 가지고 있을 걸요."
"......."
역시 선의철은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