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54화 (754/1,497)

〈 754화 〉2부 6장 18 시청자 S 씨

A급 괴수, "제사르월"은 서울 광진구에 자리잡은 괴수다.

과거에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고 그 기억을 이어받은 건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광진구에 있는 지하철 역 하나를 통째로 자신의 세력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었다.

비록 시청사의 뱀에게 도전할만한 힘은 아니지만, A급 괴수는 서울이나 부산 이외의 장소에서 나타나면 족히 수 천 명을 잡아먹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다.

제사르월은-본인인지 아니면 본인이 최초로 잡아먹은 자인지는 모르지만-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소설 속 존재라면?

A급 괴수를 넘어 S급 괴수가 되는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인생의 주인공은 모두 자기 자신인 법이고, 제사르월은 얼마든지 더 강하고 높은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광진구의 왕이었다.

괴수로서 처음 가진 기억은 분명 강했던 누군가를 씹어삼키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 뒤로 광진구에 들어온 모든 놈들을 잡아먹으며 성장했다.

시청사의 뱀만 빼고, 서울에서 그를 상대로 감히 이빨을 들이밀 자들은 없었다.

그런 놈들은 이미 다 죽어 제사르월의 뼈와 살이 되었으니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인간은 더이상 서울에 존재하지 않고, 지하에서 간간히 나오는 놈들 정도밖에 없다는 것.

결국 제사르월은 현재 북에서 내려오는 괴수들을 받아먹으며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이미 인간의 맛을 맛본 그에게 괴수는 그저 입가심을 할 수 있는 요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괴수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다.

괴수는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태어난다.

아무리 인간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인간이 마치 물을 원하듯 타오르는 갈망에 식인을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마침.

멀리서 풍겨오는 '인간'의 냄새에 제사르월은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

여자의 냄새가 난다.

멀리서 느긋한 발걸음으로 경쾌하게 철길을 따라 걸어오는 소리는 분명 여자의 발걸음 소리다.

잡아먹는다.

무조건 잡아먹는다.

그리고 이왕이면, 얼마전에 생긴 새로운 기능을 시험해 볼 차례다.

크르르.

시청사의 뱀이 낳은 좆벌레들 중 일부가 감히 덤비길래 그것들을 씹어삼킨 결과, 제사르월에게는 좆이 달렸다.

보기에 흉측하고 너무나도 괴상하지만, 좆이 달린 만큼 제사르월에게는 식욕에 더불어 성욕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일단 싸고, 죽으면 잡아먹는다.

그걸 위해서라면 우선 적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캬아아!

제사르월은 사방에 포효를 내질렀다.

적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보다 서울에 있는 다른 놈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저기.

민트초코 냄새를 풍기며 걸어오는 여자는 자신이 점찍은 먹잇감이라는 것을!

"흐흥, 사냥감이 건방지게."

여인은 녹색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이죽거렸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옥색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고, 손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손톱이 돋아나며 사납게 웃었다.

"어차피 죽일 거지만, 죽고 싶냥?"

캬르르....

제사르월는 직감했다.

저 자는 시청사의 뱀 따위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강자다.

자신은 사냥감이고, 저 자는 사냥꾼-헌터였다.

"미안하지만 우리 팀원들의 성장을 위해, 여기서 죽어줘야겠다냥."

콰득!

움직임을 눈치챌 시간도 없었다.

제사르월은 자신의 가슴팍에 구멍이 뻥 뚫려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인의 마력 손톱에 검은색 구슬이 잡혀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알아챘다.

"안녕."

제사르월이 자신의 죽음을 눈치챈 것은, 그의 목이 아래로 떨어지며 시야가 반으로 쪼개진 뒤였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만약 소설 속의 존재라면, 그저 헌터에게 사냥당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만약 자신에게 '중간보스'의 역할이 정해져있었다면, 그건 지면을 차지하기도 전에 저 민트색 헌터에 의해 삭제당했다는 것을.

콰득, 콰득.

여인이 코어만 챙기고 사라진 뒤.

사방에서 튀어나온 좆벌레들이 제사르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 * *

[지금부터 서울 지하 스피드런을 시작할게.]

화면 속 금발서양남이 히로인들을 상대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는 헤드 기어를 쓰고 의식을 연동한 '신라'의 말이지만, 게임 속 세상에서는 신라가 창염의 모습으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거 참. 신기하네."

석하랑은 신라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 화면을 보며 눈을 빛냈다.

"임마는 그렇게 레즈 섹스를 못참아서 게임 속에서까지 애들 상대로 보벼볼라고 지금 안에서 저러고 있나? 아니면 지휘관으로 애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건가.... 확실히,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그립기는 하네."

아쉽게도 신라는 듣지 못한다.

방금 그건 석하랑이 내게 보낸 '문자' 메세지였으니까.

현재, 인게임.

나는 신라의 옆에서 미니피닉스(촬영 모드)로 그녀를 관찰하며 방송을 하고 있다.

시청자 수 : 1명.

그리고 석하랑은 내가 방송하는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신라의 지휘관 플레이를 구경하고 있다.

신라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트집을 잡기 위해?

아니다.

"하랑아, TV 안 봐?"

"나오는 사람들 죄다 모르는 사람밖에 없던데 뭘."

석하랑은 누워서 TV를 보는 걸 좋아하지만, 딱히 이곳 지구의 예능 방송은 취향이 아닌 듯 했다.

"그것보다 여기 누워서 보는게 최고야."

"앗...."

석하랑은 내 위에 걸터앉으며 몸을 눕혔다.

나는 그녀가 미끄러지지 않게 안아야했고, 석하랑은 정말 자연스럽게 내 위에 몸을 눕혔다.

"저기...닿는데."

"흐응, 역시...크네?"

"큰 건 또 어떻게 알고?"

"오빠야가 생체 딜도 만들 때 그냥 만들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분명 뭔가를 참고한게 있었겠지."

석하랑은 거리낌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안그래도 돌핀팬츠에 나시티만 입고 있어 신체접촉이 심한데, 바로 앞에 붙어있으니 배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봐요."

신라가 냅다 헤드기어를 벗고 석하랑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혹시 섹스할 거면 중간에 저 끼워줘야하는 거예요. 알았죠?"

"...그 말 하려고 지금 게임 정지한거야?"

"당연하죠.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신라는 다시 기어를 쓰고 게임에 들어갔다.

"...다 아네? 쳇."

석하랑은 신라를 향해 입술을 뻐끔거리며 짜증을 냈다.

"안 보는 사이에 몰래 섹스하는 건 어렵겠는걸."

"너...그렇게 나랑 섹스가 하고 싶어?"

"섹스가 하고 싶다기 보다는...흐흥."

석하랑은 내게 눈을 찡긋이며 내 손을 맞잡았다.

"섹스하면, 오빠야가 내한테 책임을 느끼지 않겠나? 오빠야는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지."

"......."

나를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섹스로 구속하려고 한다.

심지어 내 아내의 옆에서.

"불륜같아서 지금 배덕감이 장난 아닌데."

"본인이 허락한 거잖아. 그리고 불륜도 아니지. 합법이야, 합법."

"바람난게 무슨 합법이야."

"아, 몰라. 우리 지구에서는 그래. 백희아가 법 바꿨어. 국가적 영웅은 중혼 허용이라고."

"......."

백희아, 무서운 여자.

설마 법을 바꿔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백희아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얘긴데, 저기 게임 속에 있는 애들 보니까 어떤 느낌이들었어?"

"음...."

게임 속.

[오늘 우리는 남양주에서부터 지하로 진입할 거야. 다리는 끊어졌지만...한강 지하로 통하는 진입로를 발견했어. 이번에는 팀을 나누지는 않아. 모두 한 몸이 되어 움직일 거야.]

신라는 동료들을 이끌고 지하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히로인들, 동료들은 모두 '전력 무장'을 하고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게임 속 내라도 저기 같이 없는게 천만다행이라는 거? 안 그랬으면 내도 저기 마법소녀처럼 입고있었을 거 아이가."

"그렇긴 하지."

그들은 모두 마법소녀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서울을 진입하는데 마법소녀 복장을 입지 않는다?

외도다.

배틀슈트를 입고 갔다가는 게임오버 직행이다.

그러므로 마법소녀 슈트다.

"뭐...솔직히 말하면 그냥 우리가 연기하는 드라마 보는 느낌? 그도 그럴게, 20년이랑 25년의 게임 속은 완전 다른 모습인 걸."

"그렇게 느끼는 건가...."

"그런 셈이지. 아참. 그리고 내 말할 거 있다."

석하랑은 단숨에 몸을 뒤집었다.

바로 숨결이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고, 나는 옆에 있는 신라가 상당히 신경쓰였다.

"저거 옆에 방송 부스 있잖아. 내도 좀 써도 되나?"

"...네가 왜?"

"그거야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으니까 그렇지."

"...무슨 소리야?"

"별 건 아니고, 모델링 계약이 끝난 뒤에도 뇌절하는 놈들 대처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해야하나."

석하랑은 쓰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실존인물 인증이라는 걸 통해서, 아직까지도 내 따먹고 싶다고 하는 놈들 다 고소해버리게."

"고소가 돼?"

"그럼. 당연히 되지. 스트리밍은 좀 싫고, 왜 그런 거 있다 아이가.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 직접 자기들이 업데이트 내역 불러주는 거."

"그거야 성우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고.... 잠깐만. 설마."

뭔가,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여기...뭔가 괴수가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 유나는 진짜 예쁘다."

"여신이니까."

[펜릴의 흔적이군요. 과연. 위험요소는 미리 제거를 했다.... 훌륭합니다, 지휘관. 굳이 위험한 적을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온 언니야는 저래놓으니까 진짜 의외네.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번은 싸워보고 싶었을 지도. 알고보니 호구 보스 아님? 흐흥.]

"...오빠야, 임마 누리랑도 혹시 그짓 했나?"

"남자로는."

"여자로 했으면 확 걷어차버릴 뻔."

"남자로 하는 건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석하랑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애기하랑'을 띄우며 씩 웃었다.

"오빠야, 내도 이렇게 한 번 변해볼까?"

"...나 잡혀가."

"이 집 안에서만 하면 되는건데? 흐흥."

"......아서라."

나는 석하랑의 볼을 손으로 문질렀다.

"흐흥, 안 아프지롱. ...어, 씨발, 저거 뭔데."

석하랑은 영상 속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식겁했다.

"가을이...언니야?"

[서울의 지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서울 지하의 빌런 연합, 흑화단의 간부 중 한 명. <텐타클 마스터>라고 합니다.]

석하랑은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나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모습을 보니 참으로 착잡했다.

텐타클 마스터.

그는 우리가 알던 <팬텀>처럼 등 뒤에 촉수가 달려있었다.

마치 촉수는 그대로 두고 천가을 대신에 떡대 두꺼비 아저씨를 끼워둔 것같은 모습에 석하랑은 떫게 웃었다.

"...촉수는 가을이 언니야 전용 아니었나?"

"그게 20년의 지구랑 여기랑 완전히 다른 분기점이지."

나는 천가을과 있었던 이야기를 석하랑에게 간단히 전했다.

천가을의 트롤링 덕분에 내가 정신이 완전 깨였었다.

'트롤링은 못 막아.'

히로인이라는 건, 절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튀어나온 괴수에게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서울 한복판에서 설마 결계를 돌파해서 밖으로 뛰쳐나가서 죽는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건 가을이 언니야가 잘못했네. 내라면 절대로 안 나갔을텐데."

"그러니까."

정말, 신라-당시 창염만 아니었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저 촉수...위험한 거 아니가?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내는 저 촉수에 막 아는 사람 쑤셔박히고 하는 거 못 본다."

"괜찮아. 저거 원본으로 추정되는 사람...여의도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었거든."

"뭐? 진짜? ...근데 왜 촉수야?"

[후후, 제 촉수가 궁금하십니까?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이 나라를 헬조선이 아닌 강대국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선의철을 이 촉수로 죽여버리는 것.]

"...무서운 아저씨네."

"왜냐면 선의철이 우리 때처럼 쉽게 물러나지 않았거든."

20년과 25년 사이.

원작 시작 직전까지, 선의철은 아주 악독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와...선꼬삼 미쳤네."

석하랑은 위키의 내용을 살펴보며 치를 떨었다.

"근데 이 아저씨는 왜 <영원불멸의 3cm>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건데?"

"모든 우주를 통틀어봐도 3cm라는 드립이 있다더라. ...진짜일 수 있고."

"저런...안타깝다."

석하랑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내는 B컵인데."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