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0화 〉2부 6장 14
새벽.
나는 커튼을 좌우로 펼쳤다.
아직 태양이 떠오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간밤의 여운을 일깨우고 몽롱한 정신을 차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벌써 일어났어요?"
침대 위.
정액과 애액으로 가득한 이불을 덮고 잠든 신라는 이불 위로 얼굴만 내어놓은 채 베시시 웃었다.
"좀 더 자지 그래. 피곤할텐데."
"누가 밤새 안에 사정하느라 그렇죠. 나 참… 여신을 섹스로 기절시키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할 거예요."
"훗."
솔직히, 이것만큼은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나의 인생에서 자랑거리가 찾아보면 정말 많겠지만, 최근들어 잘한 일이라고 한다면 단연 신라를 섹스로 이긴 것이리라.
"내가 이겼으니까 계약도 내 뜻대로 하는 거다?"
"...음."
신라는 아쉬워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옷걸이에 걸어둔 실크 가운을 걸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화륵!
방 전체가 푸른 불꽃으로 번쩍이고, 방 안에 가득했던 섹스의 흔적은 말끔히 날아갔다.
유리창이 열리며 내부의 공기도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신라는 내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어깨에 묻었다.
"어쩔 수 없죠. 치트키를 쓰셨는데."
"딱히 치트키는 아니었는데?"
"약점을 정확하게 공략하셨잖아요."
"스스로 약점을 알려줬으면서 무슨 소리냐. 배란했을 때 임신 질싸 당하면 바로 가버리는 패턴이 있으면, 배란을 안 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신라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입술에 키스했다.
"...안 되는 거 알면서. 치."
신라는 앞으로 다가와 내 위에 걸터앉았다.
엉덩이를 자지 위에 올리며, 그녀는 나와 함께 서울의 새벽을 맞이했다.
"원작이 괜히 그런 스토리로 흘러가는게 아니었네요."
"원작?"
"창염의 피닉스. 저의 괴인체. 걔도 그렇게 죽었잖아요. 주인공이 유일한 자신의 약점인 걸 알면서, 지구 모든 생명체를 상대로 이길 수 있지만 오직 주인공에게만은 이길 수 없었던 존재."
"......주인공은 피닉스의 희망이었으니까."
정령이든, 괴인체든, 창염의 피닉스라는 존재는 자신의 위에 누군가가 족쇄를 채워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결했다.
피닉스로서는, 주인공이 부디 성주에게 대신 복수를 바라면서.
그리고 창염으로서는, 미연시의 히로인답게 주인공에 대한 희망에 더불어 '사랑'도 함께 가지면서.
"피닉스 루트의 공략도 이거랑 똑같잖아요."
"임신을 빌미로 설득했지."
간부는 지구에 남을 수 없다.
정령도 지구에 남을 수 없다.
게임 속 창염은 자신이 소멸할 걸 알면서도 지휘관에게 희망을 걸었고, 지휘관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임신.
창염에게, 정령에게 아이를 가지게 하는 것으로 격을 낮추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정령은 별다른 싱크로 없이 지상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창염이 여신에서 내려오면서 그 위상에는 이유나라는 존재가 올라가게 되었지만, 유나도 결국에는 구출하는데 성공하며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내게는 여전히 해피엔딩 이후의 이야기지만, 드디어 나는 신라를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아이 이름은 뭘로 하면 좋을까."
"아직 임신했는지 신호도 안 왔는데 벌써 정하는 거예요?"
"몰라. 임신했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임신할 때까지 안에 쌀 거야."
"...슬슬 막나가기 시작하네요. 푸흐흐."
신라는 내 손을 자신의 배에 올렸다.
"그래도 좋아요. 당신이 여자의 기쁨을 알려주셨으니까. 섹스도 좋지만...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도 알려주실테니까."
"같이 키우는 거지."
"그렇죠. 함께...후후."
신라는 내 허벅지를 토닥였다.
"그런데 당신, 저 임신한 동안 섹스 참을 수 있어요?"
"......딸이라도 칠까?"
임산부를 상대로 섹스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격한 섹스는 할 수 없다.
"아니면 애널로 해드려요? 허벅지?"
"그럼 네가 만족하지 못할텐데."
나야 자지로 쑤시고 싸면서 만족하면 그만이지만, 신라는 보지로 느껴야 만족하는 여자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제안."
신라는 내 손을 자신의 치골로 내렸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아마 곧 또 '손님'이 올 수도 있어요."
"......."
신라가 조금 억지에 가깝게 임신을 갈구한 이유는 저거다.
게임 속 존재들은 라이벌로 걱정이 되지 않지만, 현실의 존재는 다르니까.
"저도 안에서 빠져나왔는데, 다른 애들이라고 다를까봐요."
신라는 다른 히로인들이 현실에 나오는 걸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마."
나는 언제나처럼, 그리고 그녀가 그 때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준 것처럼, 그녀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결코 그런 일 없어. 나한테는 오직 너 뿐이야."
"네, 저도요. ...하지만 걔들이 당신을 따먹으려고 든다면, 난감해지겠죠. 현실의 당신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런 라노벨스러운 전개는 사양이니까요."
"...그건 또 어디서 알았어?"
"위키요."
조만간 신라의 스마트폰을 빼앗아야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하마. 어차피 섹스로 내가 이겼으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
"...후, 안되겠네요.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신라는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딱딱하게 발기한 자지를 자신의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오빠."
"!!"
"안에 싸게 해줄테니까...해줘."
신라는 상체를 숙여 가슴을 붙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니, 여신님. 갑자기 이런 식으로 애교를 부리시면."
"해줘어."
신라는 허리를 단숨에 내려 자지를 전부 집어삼켰다.
그리고 상체를 내 몸에 붙이며 고정한 다음, 허리를 좌우로 흔들며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나 되냐."
"왜 안 돼요? 당신에게 좋은 거지. 아내가 바람피우는 걸 허락해주겠다는데."
"야. 솔직히 얘기하자."
나는 신라의 볼을 손으로 붙잡았다.
"내가 다른 히로인이랑 바람 피우면, 너도 걔들이랑 맞바람 피울 거 아니야."
"...들켰네요. 헤헷."
신라는 헤실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만약.
누군가가 현실에 나타난다면.
신라가 과연 그녀를 상대로 보빔을 참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신라는 선택한 것이다.
"당신을 독점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여자가 있다면, 당신도 좋은 거 아녜요? 원래 미연시 주인공은 하렘을 이루는게 진엔딩인 걸."
"나한테는 창염 엔딩이 진엔딩인데."
"그런 거, DLC 업데이트 하고 나서 바뀌었거든요? 16명 하렘엔딩이냐, 아니면 창염 1명 엔딩이냐. 업데이트 하면서 이제 진엔딩은 하나 뿐인에요."
꿀럭, 꿀럭.
신라는 허리를 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자지를 꽉 조이고, 일부러 아랫배를 내 배에 붙이며 나를 아침부터 자극하기 시작했다.
"17명에 더해서 히로인 총 집합 하렘 엔딩. 간부와 정령은 쌍둥이로 1+1 바겐 세일. 거기서 이제 '정실' 결정전이 펼쳐지는 거죠. 푸흐흐."
"...미쳤어?"
인간 히로인 10명.
정령 히로인 7명.
간부 히로인 7명.
중첩이나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단순 계산만 일단 20명이 훌쩍 넘어간다.
"16명 하렘 엔딩도 충분해. 괜히 싱크로라는 식으로 7명은 포지션이 겹치게 만들어놓은 줄 알아?"
"저기 옆나라는 보니까 불꽃의 임신 복학생 같은 걸로 한 학과 여자들을 다 임신시키고 다니던데요?"
"그건 게임이고."
"뭐 어때요. 알게 뭐야. 남자한테 전혀 나쁜 얘기가 아닌데, 그걸 알아처먹지 못하는 멍청이가 나쁜 거지."
"그 멍청이, 너만 사랑하는-"
"닥쳐요."
츄릅.
신라는 입으로 내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올 말은 예스, 또는 오케이. 그거 이외에는 대답하기 전까지 키스하고 섹스할 거예요."
"체크아웃은?"
"대답은 예스나 오케이라고 했을텐데요?"
츄릅, 쯉, 할짝.
신라는 내 얼굴을 붙잡았다.
그녀의 등 뒤로 따스한 아침햇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그녀는 태양을 등지며 나를 쓰다듬었다.
"하렘, 해줘요."
"......."
"제가 더 잘할게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네? 제발요."
아아.
"......당신 대신 희생하겠다고 부탁한 거, 안 들어줬잖아요. 그러니까 이번만 제 부탁을 들어주면 안 될까요?"
"그게 나보고 지금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사랑을 나누라는 거야? 너 NTR취향이냐?"
"그건 아니죠. NTR은 아니고…."
신라는 손가락으로 혀를 한 번 쓸며 내 어깨에 하트모양을 그렸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체위를 위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위?"
"네. 당신...그거 제일 좋아하잖아요. 여자 한 명 더 있으면, 그거 가능한데."
"......."
"당신 원하는대로 다 싸게 해드릴게요. 이번만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네?"
결국 나는, 이 여자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내 사랑은 너야."
"푸흐흐."
신라는 다시 내 입에 키스했다.
"그 생각...제가 꼭 바꿔볼게요. 내 사랑 중에 제일은...저라고."
세상에.
남자보고 하렘을 차리라는 아내가 있다니.
...그것도 자기가 그 여자들을 상대로 레즈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쩌겠어.'
이런 여자를 사랑해버린게, 죄다.
* * *
달칵, 달칵.
백발의 여인은 머리에 쓴 물건을 벗었다.
"씨발…."
그리고 그녀는 쌍욕을 내뱉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느낌이 어때?"
머리가 벗겨진 검은 정장의 남자는 백발 여인을 향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좆같네요."
여인은 적나라하게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
"존나 좆같아요, 씨발."
"의외군. 미쳐 날뛰면서 마구 힘을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뭐하러. 그래봐야 다시 그 지옥같은 곳으로 돌아갈텐데."
달칵.
여인은 들고있던 게임 패드의 버튼을 조작했다.
그곳에는 'END’라는 문구와 함께 잔잔한 엔딩이 흐르고 있었다.
"...정리해보죠. 그러니까 제가 제 신체 데이터를 당신들이 만든 게임...그러니까 우리 세상...아 씨발, 더럽게 복잡하네. 욕 안 할라케도 지금...아오."
"크흐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대머리 남자는 종이 하나를 건넸다.
"너는 게임 속의 존재가 아니라, 차원 이동을 했을 뿐이다. 지구 4라는 느낌으로. 이해하겠나?"
"몰라요. ...그보다, 그것 하나만 확실하게 말해줘요. 금마, 진짜 있는 거 맞아요?"
"물론."
틱, 티딕.
대머리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TV의 화면을 넘겼다.
80인치 거대한 화면에는 두 명의 남녀가 한 화면에서 함께 나오고 있었다.
"!!"
청발의 여인 옆.
처음 보는 것 같지만, 행동거지에서 익숙한 느낌이 보였다.
"...좋아요. 거래를 받아들이죠."
"좋은 선택이야."
저벅, 저벅.
백발 여인은 자리를 떠났다.
대머리 남자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어, 나야. 조만간 큰 상자 하나 준비해줘. 응,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큰 상자. 응? 또 무슨 계획을 꾸미냐고? 그야 간단하지."
대머리 남자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들어올렸다.
"처녀 하나 택배 붙이려고. 새끼, 내 아바타 죽인 만큼 쥐여짜여 죽어봐야지. 흐흐흐."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