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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48화 (748/1,497)

〈 748화 〉2부 6장 12

호텔은 상당히 넓었다.

"거기 같네요, 그쵸?"

"그러게."

여의도 청화단 본거지, 펜트 하우스.

무너진 호텔을 보수하여 우리는 그곳을 거점으로 삼았고, 펜트 하우스는 내가 건물로 활용했다.

이왕 서울로 올라온 거, 가급적이면 그곳을 우리는 예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그 건물, 게임 제작사가 사들였다더라.

나와 신라의 추억이 담겨있는 그 건물은 전체가 어떤 남자, 어떤 회사 소속이 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할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는 딸기 케이크가 맛있다고 소문난 다른 호텔을 찾았다.

마침 비어있기도 했고,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만큼 우리는 최고급 서비스를 받으며 펜트하우스로 들어왔다.

"라운지에서 수군거리더라고요. 혹시 저 여자, 외국의 무슨 공주가 아니냐고."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닌가?"

"걸어서 호텔로 온 한복 입은 남녀 커플이 펜트하우스 예약자다? 흐흥, 상상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죠."

신라는 커튼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여의도에서 바라보던 배경과는 방향부터 완전히 다르지만, 그래도 서울의 야경은 그것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그...당신."

신라는 그녀답지 않게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서울 구경은 충분히 했고, 우리 사이의 이견을 정하기에 앞서, 한 가지 치트를 쓰려고 해요."

"치트를 쓴다고?"

"네. 히로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술이며...동시에 미연시 주인공들은 99% 대처할 수 없는 궁극의 기술."

신라는 두 손을 하복부에 올리며 활짝 웃었다.

"임신공격."

"......그게 가능해?"

"여신인데 가능하죠. 원래부터 가능했어요."

"말 안했잖아."

"가장 중요한 걸 얘기 안해서 빡치게 만드는게 저잖아요?"

"......나 지금 몹시 화가 나려고 해."

주로 자지가.

"생리 한 번 안 한 여자가 어떻게 아이를 가진다는 거야?"

"배란을 안 하면 생리도 할 필요 없죠. 여신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몸은 인간 여자의 몸이라서. 근데 있잖아요. 여기 놀러오자고 하기 전부터...."

신라는 복부 양쪽에 손을 올리며 호선을 그렸다.

마치 몸속의 장기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듯, 그녀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배란하고 왔답니다. 오늘, 위험일이에요."

"......."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가능하다라.

"...주민등록증도 있고 혼인신고도 했겠다, 출생신고 안 될 이유는 없지."

"어...생각보다 순순히 수용하네요?"

"빡친 건 자지로 풀면 되니까."

"...푸흐흐."

저벅, 저벅.

한복 치마의 양쪽을 잡은 신라는 침대 바로 앞에서 내게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않아요? 과연 인간이 여신을 임신시킬 수 있는지."

신라의 말대로.

그녀가 현실로 오고 난 뒤에, 단 한 번도 그녀는 '임신'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게 있어요."

"뭔가 알게되면 화날 것 같은 기분인데."

"푸흐흐, 젊은 남자 인생에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제 배려라고 생각해줄래요? 왜냐면...지금 이걸 하게 되면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가 많이 달라질테니까."

신라는 서서히 치맛자락의 끝을 잡은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서양 귀족들이 양쪽으로 치마를 잡아끌어 인사를 하던 모습에서, 점차 치마 앞을 들추며 다리를 보이는 치녀처럼 그녀는 한복치마 끝을 들어올렸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기도 했고, 또 이번 계약 덕분에 안정적인 상황이 되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슬슬 진짜 '가정'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너랑 나, 두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다익선. 여자도 더 있으면 좋고, 자식도 더 있으면 좋죠. 당신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현실에서 하렘 차리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칼맞아 죽어."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뭐 어때요? 아이 보는 건 우리가 보면 되는데."

하지만 신라는 여전히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새 치마는 무릎까지 올라갔다.

치마 속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맨다리는 언제봐도 희고 고왔다.

"걱정마세요. 요즘 사람들 보니까, 육아도 컨텐츠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거 다 수익창출 금지로 망한 거 아닌가?"

"다 방법이 있죠.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때때로 그 꾀는 신조차 모독할 정도로 교묘하고 지능적이랍니다. 인간의 지혜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신라의 치마가 이제 허벅지까지 올라갔다.

"아무튼 당신은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돼요. 하지만 앞으로 당신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겠죠. 당신이 아니라...태양이 아빠라고 부르게 되겠죠."

"벌써 태명까지 정했어?"

"남자애면 태양이 그대로 이름을 쓰고, 여자애면 아문-라에서 따와서 아라라고 부르려고요. 푸흐흐."

"금씨면 금태양이네?"

자식 이름이 금태양.

본명이 금태양.

흔히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는 '너무한 자식 이름 베스트' 같은 식으로 올라가기에 딱 좋은 이름이다.

"...그래서 태양이 아빠 되는 거 싫어요?"

"되고 말고 자시고,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거야?"

나는 입이 바싹 말랐다.

비단 신라의 한복이 계속 올라가서 그런 것 뿐만 아니라, 신라가 말하는 것이 진짜 '가능'할 것 같아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가능은 했죠. 여신인데. 신화를 살펴보면 인간이랑 결혼해서 자식을 낳은 신이 얼마나 많다고요."

"너는 관계 없는 동네 얘기 아니냐?"

"어차피 신화가 다 거기서 거기지."

스륵.

신라는 손을 멈췄다.

치마의 끝은 아슬아슬하게 고간을 가리고 있었고, 신라는 나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떻게 할래요? 그냥 계속 당신으로 남겠다면 그대로 내리고, 태양이 아빠가 될 거라면 들어올릴게요."

"......선택의 여지가 없군. 아니, 이건 선택으로 내릴 문제가 아니지."

드디어 때가 된 걸까.

나는 외투에 미리 숨겨둔 물건을 하나 꺼냈다.

"윽."

큐브 모양으로 된 물건.

실제 게임 속의 물건을 똑같이 따라한 정육면체의 큐브에 신라는 대놓고 표정을 찡그렸다.

"갑자기 그런 건 왜 꺼내요?"

"있어봐."

나는 큐브를 사용하듯 큐브에 큼지막하게 박힌 눈을 눌렀다.

그러자 안에서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큐브의 봉인이 풀렸다.

스르르.

현대의 기술로는 재현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물건.

하선태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더니 하나 만들어주더라.

사아아.

정육면체 모양의 작은 함은 미믹처럼 입을 열었다.

"형식적인 이벤트 싫어하는 건 알지만, 지구에 왔으면 지구의 법을 따르셔야지."

"...이런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신라는 치마를 잡은 손 중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릎은 꿇지마요. 그대로."

"원하는 대로."

나는 케이스에서 작은 반지를 꺼냈다.

신라의 네번째 손가락과 딱 맞는 사이즈로, 은색에 푸른 보석이 박힌 아주 특별한 물건이다.

"앞으로 나도 너를 다르게 불러야 할 거야. 괜찮겠어?"

"뭐라고 부를 건데요?"

"누구 엄마."

"......그것 참, 엄청 설레는 호칭이네요."

스륵.

나는 반지를 그녀의 손에 끼웠다.

"푸흐흐, 왜 그렇게 떨어요?"

"떤 거 아니야."

"그렇겠죠."

신라는 지긋이 웃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인간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건, 여신으로서 가진 모든 권위와 힘을 내려놓는다는 거랑 똑같아요."

"뭐야, 싱크로라도 돼? 너 마력 사라지면...괜찮겠어?"

"아.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에요. 진짜 마력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단지...여신이 한 남자의 여보가 된다는 거니까. 더이상 숭배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건 앞으로 하기 나름 아닐까."

신라는 쿡쿡 웃으며 눈을 반쯤 감았다.

신호다.

"...저기, 출발할 때 속옷은 골라달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제일 꼴리는 걸로 입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나머지는 직접 들어올려주실래요?"

신라는 왼손으로 치맛자락의 끝을 내게 건넸다.

나는 과연 어떤 비경이 펼쳐질까 기대하며 치마를 들어올렸다.

"...와."

"꼴려요?"

"존나 꼴려."

한복과의 조화가 이렇게 꼴리는 속옷이 있다니.

그 속옷의 이름은, 노팬티라고 하더라.

"신라야."

나는 치맛자락을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못 참겠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바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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