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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47화 (747/1,497)

〈 747화 〉2부 6장 11

신라는 외유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에 대해 잘 알기에 그녀는 외출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잘하는 수상한 금발벽안 미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신라 특유의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말을 걸지 않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들은 감히 신라에게 말을 걸려고 수작을 걸기 마련.

"저기요, 실례합니다만.... 별스타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별스타도 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이디를 묻는 자가 있는가 하면.

찰칵, 찰칵, 찰칵.

멀찍이 떨어진 채 신라를 도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우야.... 벗겨먹고싶다."

신라를 상대로 대놓고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자도 있었다.

이렇게 바깥으로 나오기만 하면 신라를 향해 수많은 시선이 모인다.

이건 비단 우리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한복을 입고 데이트를 나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이만큼 시선이 몰리더라.

마치 사람들이 유명 연예인을 보고 웅성거리는 것처럼, 신라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너무나도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의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법.

그렇다면 만천하에 이 태양을 자랑하는 동시에, 이 태양이 나만의 태양이라는 걸 과시하며 다른 이들에게 자랑할 뿐이다.

"가요, 당신."

신라는 내 손을 움켜쥐며 잡아끌었다.

"어차피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저런 걸 하나하나 따지고 살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올려봐야 당신 부러워하기만 할 뿐이죠."

신라는 팔짱을 끼며 몸을 기대었다.

주변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다들 '저 새끼는 어떻게 저런 여자를 사귄 거지?'하는 시선이 강했다.

아무래도 게임 속 지휘관과 나는 외형적으로 조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에, 선남선녀라기보다는 여신과 야수의 만남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냥 예쁜 여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어요. 진짜 문제는...."

신라는 눈짓으로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은 두 남자를 가리켰다.

"저렇게, 은근히 알아보는듯 아닌 자들이죠."

그들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뭔가 자기들끼리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라는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방송으로 보였다.

이미 네트워크 상에 얼굴이 퍼져버렸기에 수습할 방법은 없었고, 그걸 이미 본 사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르는 눈치네요. 머리칼, 확실히 바꾸고 오길 잘했다. 그쵸?"

나는 신라의 금발을 살짝 손으로 쓸어내리며 다듬었다.

중천에 떠있는 태양을 그대로 담아놓은 것처럼 밝게 빛나는 금발은 '청화'가 방송으로 보여주던 모습과도 사뭇 달랐다.

하지만.

"야, 저거 지휘관 TS랑 똑같이 생겼는데?"

"어우야. 그렇네. 게임 속에서 탈출한 줄 알았다는."

방송 속의 청화라고 알아보는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생겼다.

"...저런 식으로 생각하면 곤란한데요."

"그러게."

신라의 얼굴이 '방송인'으로서 팔리는 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라의 모습이 '게임 속 캐릭터'로서 팔리는 건 상당히 부담이 크며, 상당히 꺼려지는 바.

벌써 신라를 두고 게임에서 탈출했느니 마니 하는 농담이 들려온다.

당사자는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내뱉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말이었다.

"저 사람들은...."

"실례합니다, 두 분."

검은 정장의 사내가 갑자기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뭔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하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이탁환 과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알고?"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순간적으로 구길 뻔 했다.

회사 자체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단지 일상적인 데이트조차도 이렇게 감시하다가 나타나는 것처럼 방해를 하니까 문제다.

"데이트 막을 거면 가세요. 거부는 거절합니다."

"막을 생각 없습니다. 하 사장님에게 전달된 회장님 지시사항을 말씀드리려고 온 것이니까요."

"...조 씨?"

진실을 알고 나서 차마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존칭을 담아 부를 수도 없는 자.

그래서 나는 그를 '조 씨'라고 칭했다.

이름은 뭔가 너무 막 부르는 것 같아 나중에 뭔가 해코지를 당할 것 같고, 그렇다고 경칭을 섞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조 씨.... 크흠. 자세한 사항은 여기 이걸 참고하시길."

그는 우리에게 검은색 서류 가방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뭔가 정체불명의 계약서 같은 것이 존재했다.

"부디 면밀히 검토해주시길. 제 번호는 명함에 적혀있으니, 거길 참고하셔도 됩니다."

"아빠한테 직통으로 날리면 되는 거 아니예요? 푸흐흐."

"아...."

가만히 있던 신라의 말에 그는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렇다.

신라의 성은 '하' 씨로, 우리에게 편안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그는 신라를 양녀라는 방식으로 호적을 만들었다.

왜 굳이 호적을 만들었느냐.

-아이, 딸기를 온라인 주문해야하는데 뭘 자꾸 이렇게 깔래요? 음...어? 공인인증서? 이거 어떻게 해야하는 거죠?

그 때는 공인인증서를 만들 이유가 있었다.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휴대폰 본인인증 등을 활용하려면 여러 가지로 호적이 있는게 편했다.

-혼인신고를 하는데 호적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푸흐흐.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나에 대한 법적인 구속이었지만.

아무튼.

"...사장님께 직통으로 하시면 제가 중간에서 곤란합니다. 이건 회사 일이라...."

"간단한 설명도 안하고 가려는데 그럼 전화로 물어봐야하지 않겠어요?"

"그, 데이트 방해할 것 같아서 서면으로...."

이탁환 과장은 신라를 상대로 아주 절절맸다.

신라의 양아버지, 하선태 사장이 신라를 자신과 동격으로 대우해주는 만큼, 그보다 더 낮은 이 과장은 당연히 신라를 상대로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다.

나한테 막대하는 것? 딱히 신경 안 쓴다.

신라를 상대로 막대했다면, 나는 자존심을 무릎쓰고 조 씨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날렸을 것이다.

조 씨랑 연락은 아예 안해도,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겠지.

"카페가서 확인할테니까 간단하게 알려주기나 하세요. 이게 뭐죠?"

"그...하신라 님과 당신의 '신체 데이터'를 게임에서 활용하고자 했다는 계약서입니다."

신라는 굳은 얼굴로 바로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들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계약서를 선 자리에서 즉각 확인했다.

가장 신경쓰이는 건 날짜.

지금 현재도 미래도 아닌, 원작 게임이 출시되기 훨씬 이전이다.

"...계약 날짜가 게임 발매 이전으로 되어있네요?"

"계약서를 꾸미자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의 특별지시로, 두 분을 상대로 계약서를 하나 만들고자 합니다. 두 분의 신체 데이터를 바탕으로...신라 님은 '창염의 피닉스'를, 그리고 당신은 '괴인 피닉스'의 신체 데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오호라."

게임 속 존재가 튀어나온게 아니라, 우리를 베이스로 게임 속에 집어넣었다?

* * *

잠시 뒤.

카페에 온 우리는 딸기 몽블랑과 간단한 음료를 주문하고 계약서를 살폈다.

계약서의 내용은 앞서 우리가 파악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하 갑은 이하 을에게 게임 데스다니스(가제)를 제작함에 있어 3D 모델링을 위한 신체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한다."

"전후관계가 바뀌었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한테 납득이 가는 변명은 할 수 있겠네요."

만약 누군가가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창염의 피닉스 루트' 공략에 성공할 경우.

그는 분명 피닉스의 외형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까?

나도 어그로를 끌고 싶어서 공략 인증을 했던 만큼, 결코 참지 못할 것이다.

분명 피닉스의, 창염의, 신라의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되겠지.

이미 DLC 업데이트를 통해 곳곳에서 'TS빔을 맞은 여성 지휘관'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여자 지휘관은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선겨울 꺼져! 진짜 히로인은 TS지휘관이다!

-제작사 찬양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휘관이랑 유나랑 뷰비면 누가 이김?

-지휘관 TS 당한 상태로 괴인들한테 사로잡혀서 킁카킁카 당하고 싶다.

ㄴㅁㅊ....

특히 조개나 가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일부 마이너하고 힙한 이들의 열렬한 지지도 받았다.

마치 내 꿈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라 다소 소름이 돋았다.

"흐응, 그런데 당신.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신체 모델링 활용 대상자들의 이름이 비어있는 거?"

신라는 계약서의 빈 공간을 가리키며 씩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뭔가 큰 그림이 아닐까요?"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진실이 될 리가 없다.

3D 신체 모델링의 활용.

그것은 '히로인'들과 '괴인 피닉스'에 활용되는 것들이었다.

히로인'들'.

"이러다 한 두 명씩 다 탈출하는 거 아닐까요?"

"그게 가능할 리가...."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계선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당신이...나를 선택하지 않고 그들을 선택하고 세계를 구한 경우라거나."

"......그건 아니지."

나는 그 가능성을 단단히 부정했다.

"내가 너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어."

"...푸흐흐, 듣기만 해도 좋네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당신."

신라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내게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쳐도,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아요?"

"......."

"만약에 당신이나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당신을 두고 벌이는 새로운 전쟁이 되겠네요. 저는 괜찮은데...당신은 어때요?"

"...의견이 갈렸군."

신라는 몽블랑을 단숨에 삼켰다.

마침 시간도 슬슬 해가 저물어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부부 싸움은?"

"침대에서."

이기는 사람 의견 따르기.

나는 신라의 손을 잡고, 바로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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