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6화 〉2부 6장 10
본격적인 서울 공략에 앞서, 나는 신라의 호출을 받았다.
"서울에 가요."
TV를 보던 그녀는 영상 속 서울을 가리키며 눈을 빛냈다.
TV에는 다양한 디저트 카페에 대해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마침 유명한 호텔의 디저트를 홍보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딸기를 주제로 하는 디저트 섹션이 방송으로 나왔고, 나는 그녀가 왜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먹고싶냐?"
"신상이라잖아요."
"......."
남자들이 자신의 취미 생활에 있어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바로 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들 경우, 원하는 시리즈의 예약 구매는 무조건 해야한다거나 콘솔 같은 것도 새로운 세대 또는 업그레이드 기종이 나온다거나 하면 바로 사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명품일 것이다.
그게 옷이든 화장품이든 구두든, 신상이면 무조건 사들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는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여자다.
스스로의 육신 자체가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뭐하러 값비싼 보석이나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겠는가?
단지 신라가 참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딸기 관련 제품들에 대한 새로운 도전 욕구였다.
'딸기 가공품이면 차라리 낫지. 그건 택배로 주문하면 되니까.'
각종 딸기 관련 제품들을 하나씩 구매하며 그걸 간식으로 먹는데 돈을 쓸 뿐이다.
심지어 개인 간식으로 사먹는 딸기도 신라 본인의 용돈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내게 건네받은 자본금으로 개인적인 투자를 통해 그녀는 각종 딸기제품들을 생산하는 식품주로 이득을 봤고, 조만간 우리 집 인근에 있는 딸기 농장을 사들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내가 좋아, 딸기가 좋아 라고 묻는다면 나라고 지체없이 답하겠지만.
딸기가 좋아, 레즈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장고를 하게 되는 여자.
그런만큼 그녀에게 딸기란 삶의 낙이며 인생이다.
"사러 가죠. 가는 김에 1박도 하고."
신상 딸기 케이크.
가격은 주먹만한 한 조각에 약 3만원.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싸지만, 딱히 못 사먹을 정도는 아니다.
신라나 나나 통장에 보관중인 돈은 많다.
"하지만 서울이라...."
"적진을 탐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적진?"
"게임이 서울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현실 서울을 구경하면 게임 속 서울을 살필 수 있는 셈이죠."
"어차피 게임 속 서울은 폐허잖아."
"에이, 째째한 건 따지지 말구요."
신라는 서울에 대해 알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냥 신라 네가 서울에 놀러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런 것도 있고, 오랜만에 데이트 나가자는 거죠. 그래서 싫어요, 데이트?"
"데이트 좋지."
방 안에서만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백날 천날 반복되면 사람이 질리는 법이다.
아무리 집돌이와 집순이 둘이서 침대 위에서 구르는게 일상이라고 해도, 일상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며 일상의 새로운 활력을 끌어내는 것도 좋다.
"언제 출발할까? 차 시동 걸어놔?"
"음...아뇨? 당신 차 운전하느라 신경쓸 바에는 그냥 택시타고 버스타고 이동해요."
"그럴까...지하철 타고 아무곳이나 막 가볼까? 어차피 게임 안에서도 지하도로 움직일 것 같은데."
"아니면 그냥 시티투어도 좋구요. 장소는 여기랑 여기."
"...너."
알겠다.
신라는 그냥 디저트 투어가 하고 싶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스타그램에서 유명한 딸기 디저트 가게를 섭렵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호텔.
목적지 대부분이 카페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는 것만 빼면 서울 데이트로 완벽한 코스다.
'어차피 나는 데이트 코스로 하나만 들어가면 돼.'
호텔.
끝.
"근데 신라야. 서울에 가기 전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문제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돈이 없어요, 시간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볼 때 남들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해서...네 머리카락."
"머리가 왜요?"
신라는 자신의 청발을 가리켰다.
그녀의 창염(蒼炎)에 어울리는 푸른색이며, 이 세상에서 오직 그녀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자연의 푸른색이다.
여자 아이돌이 아주 특이하게 염색을 해도 이런 머리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아주 불필요하게.
"아직 이 나라에서는 너처럼 파란 머리칼은 흔한 머리가 아니야. 불필요한 일에 휘말릴 수 있어."
금발 외국인도 눈길이 한 번 오가는 곳이 이 나라인데, 청발 외국인은 오죽하겠는가?
"그럼 피닉스 코스프레라고 하면 안 될까요?"
"창염의 피닉스 인간 모습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경우가 거의 없는데 무슨."
"음...귀찮게."
정작 본인이 본인의 분신을 코스프레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지만, 차라리 지금 이대로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그게 더 좋을 지도 몰랐다.
지휘관과 히로인 코스프레.
어디 주말에 게임 관련 행사에 찾아가는 커플의 느낌으로 움직인다면 그냥 특이한 시선을 좀 받을 뿐 크게 오해를 사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
"가발을 쓰는 건 좀 그런가? 아니면 염색을 해야하나.... 모자로 눌러쓰고 가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음…. 그럼 이렇게 하면 되죠."
신라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허공에 떠오른 푸른 불꽃을 자신의 이마부터 뒤로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 색깔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도 여신의 권능 아니겠어요?"
사아아.
"짜잔. 커스터마이징."
그녀의 머리칼은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머리색깔은 인게임 속에 있는 저를 참고했어요. 어때요?"
마치 그녀가 게임 속에서 "백청화(여)"로 플레이를 하는 것마냥, 신라는 금발벽안의 전형적인 외국인이 되었다.
"이러면 아무 문제 없죠?"
"음…. 이것 참. 나 그러면 외국인이랑 결혼한 남자처럼 보이게 되겠는데."
"어머, 결혼한 남자라는게 싫은 건 가요? 아니면 여자친구?"
"외계인이랑 결혼한 남자가 더 유니크하지 않아?"
"푸흐흐."
신라는 눈을 찡긋이며 나를 옷방으로 잡아끌었다.
"그럼 나머지는 옷이네요. 들어와봐요."
새로 이사를 하면서 생긴 드레스룸에는 신라와 나의 옷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흐흥, 뭘 입고 나가면 좋을까~ 아, 속옷은 골라주세요."
이 모든 옷을 샀냐고?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 신라가 마력으로 짜낸 옷이다.
현실에서 이계의 능력을 사용하는게 참 그렇기는 했지만, 이런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크게 무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얀색은 어때요?"
"심심한데."
신라는 여신, 그러니까 SSS급 이능력자로서의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아니면 검은색? 빨간색은...음, 너무 과한 것 같고. 아니면 머리도 금색으로 물들었으니까 파란색으로 해요? 푸흐흐."
"꼴리는 걸로 하자."
"채택."
그래서 그녀는 내가 '창염의 피닉스'였을 때 했던 '마력의 실생활 응용'을 아주 잘 써먹고 있다.
"그럼 외투는 직접 제작한 옷으로 할까요, 아니면 다른 걸로?"
"그냥 기존에 있던 걸로 하자. 괜히 밖에 나갔다가 마력 해제되면 문제되는 거 아니냐? 서울 한복판에서 나체 커플 등장이라고 SNS에서 난리가 날 걸."
"음...그렇네요. 그러면 그냥 평상복으로 할까요? 하긴, 이건 너무 디자인이 게임 디자인인가?"
신라는 아쉬워하며 자신이 만든 옷들을 다시 옷장에 넣었다.
설령 그것이 '히로인들의 대학교 새내기 복장 세트'라거나 '히로인들의 평상복 스킨 세트'와 같은 디자인이라고 해도.
'미소녀 게임에 특화된 옷이지, 실제로 입고 다니면 조금 그런 옷들이기는 해.'
신라는 마력으로 옷을 짜내며 게임 속의 스킨 디자인을 많이 참고했다.
그 덕분에 일상복이라는 느낌 보다는 정말 게임 캐릭터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신라가 개인적으로 구입한 기성복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디자인의 기반이 기성복은 여성이 여성을 위해 만든 옷이라고 한다면, 신라가 마력으로 만든 스킨 기반의 옷들은 전부 남성이 여성을 위해 만든 옷이었다.
즉, 남자 보기에 좋은 옷이다.
나는 좋지만 다른 이들이 눈호강 하는 건 싫다.
"그럼 이건 어때요?"
그리고 신라는 옷 하나를 꺼냈다.
"...금발벽안 외국인이 선택한 옷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요?"
신라가 꺼낸 옷은 나는 상상도 못한 선택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폐백하게 되면 입게 될텐데, 미리 입어도 괜찮죠? 어차피 사람들의 이목을 끌 거라면, 당신도 이걸 입으면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을 거고."
"......."
나는 신라의 제안에 상자 안에 넣어둔 물건을 꺼냈다.
"어그로 한 번 제대로 끌리겠는 걸."
"잘생겨서 그래요. 푸흐흐."
"...네가 예뻐서 그런게 아니고?"
"둘 다인 걸로 하죠."
신라는 옷걸이에 걸어둔 자신의 옷을 하나 챙겼다.
"예뻐요?"
"옷이 옷걸이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지?"
"푸흐흐,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신라는 옷을 꺼낸 나를 잡아당겼다.
"갈아입고 바로 나가죠."
신라가 꺼낸 옷.
그것은 우리가 커플로 구입해뒀던, 혹시나 몰라서 구입해둔 옷.
K-Traditional Dress.
한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