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9화 〉2부 6장 03
한 가지 분명히 하고 가야 할 건, 게임의 플레이어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플레이를 했다. 애초에 게임을 처박아두고 먼지만 쌓이게 만들었고, 그걸 꺼낸 건 내가 아니다.
창염, 신라가 게임을 시작하고 플레이어를 맡았다.
신라가 왜 굳이 원작을 플레이하려고 했는가?
그 이유는 나와 하는 것도 좋지만, 여자랑 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랑 보비지는 못해도 남자라도 하고 싶어요.
여자랑 하고 싶다!
여자랑 섹스하고 싶다!
여자랑 보지를 비비지는 못해도, 자지라도 쑤컹쑤컹하고 싶다!
-박히는 것도 좋지만...박는 것도 하고 싶단 말이에요. 네?
창염은 크싸레다.
신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당신한테 박을 수는 없잖아요.
-어...박혀주시면 정말 고맙기야 하겠지만….
-그냥 게임하자.
나는 나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게임 속 히로인들을 팔았다.
-그렇게 보비고 싶어?
-보빔을 포기할 바에는 차라리 딸기를 끊겠어요. 이번엔 진심이라구요.
신라는 진심이었다.
딸기마저 걸고 그녀는 내게 진심으로 도전했다.
-게임 속에서라도 보비게 해주세요!
-그건 어렵군. 대신 게임 속에서 마음껏 여자를 안게 해주마.
현실의 여자와 할 수 없기에, 가상의 공간에서라도 그녀는 하고 싶어했다. 마침 적당한 게임이 있었고, 그게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였을 뿐이다.
-가라, 신라. 백청화의 몸으로 히로인들을 전부 헤으응거리게 만들렴. 대신 옆에서 박히는 거 아닌지 감시할 거다?
-나이스! 고마워요! 기념으로 걔처럼 따먹어주세요.
-...걔처럼은 누구 얘기야?
-누구냐구요? 당신 전 여친-
찌걱, 찌걱.
그렇게 허락했다.
우리의 갈등은 언제나 침대 위에서 해결되었고, 문제 해결 방향도 침대 위의 승자가 정했다.
그래서 신라는 백청화로서의 플레이를 얻어냈다.
‘나야 뭐 즐길만큼 즐겼으니까.’
게임 속이라면 나도 유나와 십만 번을 넘게 떡을 쳤고, 창염이 백청화에 빙의하여 플레이를 해도 딱히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라가 여자가 되어 다른 남자에게 박히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강력하게 반대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나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몹시 난감해졌다.
DLC 2.1. 낭익천화.
밤낮으로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다.
그렇다면 이제 플레이를 '누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반으로 가르죠."
신라는 내게 거래를 제안했다.
"당신은 남캐로 플레이하고. 저는 여캐로 플레이하고. 그러면 깔끔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남자가 남캐를, 여자가 여캐를. 신라는 정석을 택했다.
서로 성정체성의 혼란이 올 필요도 없이, 서로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게임을 할 수 있다.
단, 이게 순수하게 '괴수와 괴인을 물리치는 시뮬레이션 육성 RPG'게임을 공략하기 위한 플레이였다면.
"신라야."
"네."
"나는 네가 히로인들이랑 비비는 것도 좀 싫은데."
"......."
바로 이게 문제였다.
신라가 남자로서 박는 건 괜찮다. 그건 게임이고, 실제가 아니니까.
"어차피 제가 히로인들이랑 비비는 것도 게임이잖아요?"
"네가 백합에 다시 몰두할까봐 무서워서 그래."
"무서워요? 왜요?"
"나를 물들일까봐."
꿈속에서 나는 서서히 신라의 세뇌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자지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여정을 떠나는 나는 어느새 여자만을 사랑하는 한 마리의 암컷이 되어있었다.
그런 건 사양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나는 나를 유지하고 싶어."
"음.... 제가 비비는 것도 싫다. ...어떻게 안 될까요?"
신라는 두 손을 모으며 내게 부탁했다.
"모처럼 기회잖아요. 물론 당신이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알지만, 이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도 히로인들이랑 박으면 되잖아요. 네?"
"끙...."
우리는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며, 서로에 대해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고, 신라는 신이었던 존재니까.
서로가 가진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고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 침대에서의 일이었다.
여신과 인간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
그걸 조율해나가는 토론 주제가 '신라의 게임 속 레즈플레이를 허락할 것인가?'라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건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게임 안에서만 만족 할 거지?"
"물론이죠."
"현실의 여자를 꼬드겨서 한다거나 그러면 안 된다?"
"현실에서는 오직 당신 뿐인 거 알잖아요."
"현실의 나를 여자로 만들어서 어떻게 해보려거나 할 생각 말라는 거야."
"......."
신라는 침묵했다. 나는 그녀의 볼을 잡아당겼다.
"어쭈, 대답 안 해?"
"아, 아에어요."
신라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항복했다.
“절대 당신을 상대로 보비거나 하지 않아요. 태양에 맹세코.”
“좋아. 애들이랑 백합 플레이까지만 허락한다.”
“고마워요, 허락해줘서. 푸흐흐.”
결국 언제나 져주는 건 나였다.
"사랑해요, 정말."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이 여자가, 여신이었던 자가 내가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가?
"대신 약속해."
"뭘요?"
"만약에 네가 현실로 돌아와서 나를 백합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낌새가 보인다면...그 때는 압수다."
"물론이죠."
"그리고 침대에 묶어두고 '다시는 레즈 플레이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할 때까지 박고 박고 또 박을 거다."
신라는 사색이 되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약속해야지?"
"끙...."
신라는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 참, 그리고 나 남캐로 플레이 안 한다."
"네? 왜요? 피닉스를 레이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요?"
"그 때만 나를 불러. 그럼 협조해주지."
"......3P."
신라는 나를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당신과 제가 피닉스를 범하는 것이에요. 어때요? 끌리지 않아요? 이른바 MFF?"
"FMF는 들어봤어도 MFF는 처음인데."
"당신이랑 제가 힘을 합치면 되죠. 부부는 일심동체. 맞죠?"
"...후, 그래."
부부는 일심동체.
"너 하고 싶은대로 해봐."
나는 결국, 신라가 하고 싶은 걸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어, 그럼 말이에요."
신라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어떤 말 나올 때까지 24시간 동안 박고 박고 또 박는 건...지금부터 해주셔도 되는데….”
“침대 위로 올라와.”
퍽퍽퍽퍽퍽.
결국 게임을 시작한 건 24시간이 지난 뒤였다.
* * *
정리.
게임의 플레이어는 신라, 창염, 바로 ‘나’.
밤에 남자로서 떡을 칠 일이 있다면 그에게 맡기고, 낮에 할 때는 내가 직접 한다.
즉, 밤에 남자로서 히로인과 섹스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임 플레이는 이전처럼 내가 한다는 말.
창염, 개진!
"창염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에요. 푸흐흐."
'나'는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 옆에서 미니피닉스의 형태로 어깨에 올라 내 주변에서 나를 촬영했다.
방송주기는 소위 -창-이 났지만, 우리는 방송 자체를 그만둔 건 아니다. 우리가 그만뒀다기보다는, 모종의 이유로 생방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
[오늘부터 녹방으로 올릴 거다.]
우리는 방송을 접었다. 정확히는 생방송을 접었다.
왜?
허구한날 떡치는 것도 그렇고, 너무 많은 정보가 꿀팁이라는 이유로 노출되는 것을 꺼린 누군가의 걱정 때문에.
[영상을 녹화하고 편집해서 내보내면 되겠지.]
그의 제안에 따라, 그는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마력 카메라가 되었다.
“그럼 움직여볼까요...푸흐흐.”
지금은 아침. 사무실의 모두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시기.
‘새벽부터 사람이 없어서 좋네.’
순수하게 남캐로 플레이 했을 때는 사무실 침대에 섹스의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밤새 진득하게 떡치는 건 아닌지, 마법소녀 동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일단 오늘은 전부 휴무.”
강제 휴가다.
나는 가장 먼저 내가 곤란한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먼저, 사람들의 남녀 전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중도 DLC 업데이트라 ‘지휘관! 어떻게 된 거예요?!’와 같은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내게는 지금 금발벽안으로 변한 모습이 더 익숙하니까.
“내가 꼭 염색을 한 것 같단 말이죠….”
[나는 원래 머리색이 더 좋은데.]
“현실의 저한테 만족하세요. 여기서는 금태양이니까.”
금(색)태양. 수많은 미녀들과 아름다운 계곡뷰를 탐방하는 희대의 백합마.
그런 금태양의 편의를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필요했다.
“낮뷰밤쥬. 전환 시기마다 옷을 갈아입고 환복하는 건 귀찮은 일이죠.”
나신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해가 뜨고 질 때마다 옷을 바꾸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마도기어를 통해 전화를 날렸다.
“여보세요.”
[...낮에는 전화하지 말라 안켔나?]
듣자마자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울린다.
“아이, 하랑. 그렇게 화내지 마요.”
[니 미친나? 어디서 귀여운 척이고?]
“그야 귀여우니까.”
[...대갈빡이 돌아도 제대로 돌아갔네. 뭔 일인데.]
“만나고 싶어요.”
[.......]
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나는 은근슬쩍 나에 대한 하랑의 관점을 떠볼 수 있었다.
[...부산 오든지.]
‘완전히 싫어하는 건 아니네.’
여자 상태인 백청화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밤 상태인 남자 백청화를 더 선호할 뿐.
“근데 제가 일이있어서 밤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할 것 같아요.”
[...니 지금 내 놀리나?]
“놀린다니요?”
[...밤에 온나. 부산 야경 구경이나 하고 가든가.]
석하랑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마도기어 너머 그녀의 얼굴이 생생히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금방 갈게요. 아, 혼자 가는 건 아닙니다?”
[누구랑 오는데?]
“알바생이요. 당신 둘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김펜릴이랑 같이 온다고?]
“물론.”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 바람이 일었다.
“불렀냥?”
“네. 당신이랑 하랑이 힘을 합해서 도와줄 일이 있어요.”
“이 몸이? 뭐냥?”
“옷.”
나는 내 몸을 가리켰다.
“남자와 여자를 아울러도 금방금방 변할 수 있는, 마력으로 된 옷을 만들어줬으면 해요.”
“...그 말은.”
[우리가 마력 해제하면 니는 알몸이 되는 기다. 알제?]
“당연하죠. 푸흐흐.”
오히려 바라던 바다. 나는 자료를 찾아와 그들에게 보였다.
“이런 타이즈로 부탁드려요.”
[야. 스쿨미즈 죽을래?]
미니피닉스 한 마리가 내 정수리 위에서 부리를 쪼아댔지만,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