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1화 〉2부 5장 24
“야. 큥포인트고 나발이고 니는 뭐하자고 이 지랄을 하는데?”
하얀 나시 티에 청자켓을 걸친 백발의 미소녀, 석하랑은 입술을 댓발 내밀며 내게 짜증을 부렸다.
“우리 하랑이 화났어?”
“치아라. 화 안났다.”
“화났네. 나도 지금 아랫도리가 화났....”
나는 석하랑의 살기 어린 눈빛에 두 손을 들었다. 그녀는 지금 몹시 신경이 과민했다.
생리도 아닌데 왜 신경이 날카로울까? 그건 1차전에서 자신이 제외되었다는 것에 더불어, 1:1 대결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바나르간드 대 설령화.
바람의 정령과 물의 정령.
고작 챕터 2에서 벌어지는 빅-매치에 벌써부터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둘 다 레벨은 99. 둘 다 내게 마력을 공급받아 강해졌음. 심지어 무상성.
화속성과 지속성이 서로 무상성이듯, 풍속성과 수속성은 유불 리가 없다. 오히려 서로 합이 잘 맞는 마력속성이다.
한 명은 민트초코를 광적으로 사랑하고, 한 명은 블루베리를 광적으로 사랑한다. 그저 가고자 하는 방향만 다를 뿐이다.
“야, 내 하나만 물어보자.”
“뭐든지.”
“내가 만약에 펜릴한테 발리면, 나는 큥포인트 0으로 깎이는 거 아니가?”
석하랑의 불안감에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나를 밀쳐내려던 그녀도 순순히 내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걱정마. 하랑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부산으로 달려가서 대줄테니까.”
“...내가 무슨 호스트 부르는 것도 아니고 대준다니, 니 말 그 따위로 할래?”
“그치만 하랑이를 위해서라면!”
“됐다. 닌 애들 지휘나 해라.”
“하고 있는 걸?”
나는 마도기어를 채운 손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타이핑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곳곳에 퍼져있는 우리 팀원 중 아직 큥포인트를 잃은 마법소녀는 아무도 없었다.
“봐봐. 다들 시민들 잘 보호하고 있잖아.”
백청화의 몸을 본따서 만들어진 X로이드들은 진짜 시민들처럼 겁에 질린 상태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들을 지키는 마법소녀들은 상대 괴인들이 보이는 강렬한 의지에 제대로 현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헤헤, 여자는 비켜! 나는 거기 시안쿤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미친! 우리 사장님 건드릴 생각 마셈! 그리고 님은 수컷이잖아!]
[케헤헤, 어디 남자는 구멍 없나?!]
[너님은 내가 꼭 죽일 거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히어로들의 약우세였다. 언제든지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을 기반으로 훈련을 하는 마법소녀들은 C+급 전투력에도 B급 괴인들과 무리없이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봐봐. 일단 당장은 한 명씩 상대를 하니까 1:1로 충분히 버텨내잖아.”
C+ 전력에 해당하는 유나, 라온, 누리, 그리고 하유은에게 할당된 민트괴인은 각각 한 명당 세 명.
[시안쿤은 전부 제가 지킬 거예요!]
[영국에서 갈고 닦은 힘...!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빠 청년막은 내가 지킨다아아아!]
저마다 자신만의 힘을 뽐내며 셋은 열심히 시민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X로이드로서 참가한 하유은은....
[크아악! 시안쿤들이 왜 중무장을 하고 있는 건데!!]
[두두두두두.]
B급 코어웨폰으로 중무장한 시안쿤 용병대를 지휘하며 괴인들을 역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는 그녀는 자신이 직접 코어웨폰을 다루며 자기 몫의 괴인을 쓰러뜨렸다.
[돈도 안 되는 것들이 탄환값나가게 하기는...쯧.]
은유하는 괴인들을 상대함에 있어 진심으로 신경질을 냈다. D급 괴수를 상대하면 탄환값이라도 벌지만, 괴인은 코어만 남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괴인의 코어를 갈아서 코어웨폰으로 만든다거나 에너지로 사용하기에는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천재 기술자가 있다면 모를까.
“근데 니...그거 사실이가? 괴인을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거.”
“물론. 방법이 두 가지나 있는 걸?”
“대박이네. 뭔데?”
“하나는 세계적인 발명가를 모셔서 괴인의 코어에서 마력을 짜내는 거고, 또 하나는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공개 프로포즈를 해서 정신을 일깨우는 거야.”
“...미친, 내같으면 쪽팔려서 자살한다.”
그 방법으로 폭주하는 괴인에서 정령으로 각성한게 너란다. 나는 뒷말을 삼키며 펜릴에게 지시를 내렸다.
“슬슬 A급 애들한테도 투입해줘.”
[알았다냥. 근데 진짜 30명 다 때려박아도 되는 거냥?]
“물론. A+는 겉치레가 아니야.”
펜릴의 지시에 따라, 대량의 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세 방향의 화면을 동시에 띄웠다.
<화마인>, 정슈리.
<운디네>, 김가온.
그리고 <마스커레이드>, 천가을.
[스치기만 해도 죽는 것들이 어디서 까불어!!]
[으으읏...! 지키는 싸움은 어색한데...!]
[아싸. 슈리 미리 복사해두길 잘했네. 후후후.]
결계를 쳤기에 그들은 마음껏 자신의 힘을 뽐낼 수 있었다. 이번 전투는 대외적으로 기록되는 전투가 아니기에, 셋 모두 자신의 전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슈리, 확실히 강해졌네.”
“마력은 S급이라도 전력은 여전히 A+급 아이가?”
“S급 강자를 상대하게되면 자연스레 각성하게 될 거야. 기다려보자.”
[다 타버려! 으윽, 아이스크림 타는 냄새 도대체 뭐야!!]
슈리는 화속성답게 괴수들을 아주 손쉽게 쓰러뜨렸다. 주변이 이미 폐허가 되었으니 주변 환경을 파괴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진 그녀는 자기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괴수들을 죽였다.
“슈리야, 시민들 지키면서 싸워야지?”
[시민들을 건드릴 괴수들을 먼저 죽이면 그만 아니에요?!]
슈리는 괴수들이 시민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괴수들을 불태워죽였다. 덕분에 그녀는 단 한 명의 시민도 잃지 않았고, 동시에 큥포인트 또한 손실이 없었다.
“알았어. 네 스타일대로 해봐.”
나는 슈리에게 자율행동을 맡겼다. 레이더 상에 보이는 최소한의 반응에 대한 지시는 했지만, 슈리의 동선이나 스킬 활용에 대해서는 터치를 하지 않았다.
“합리적이긴 한데, 아직 경험이 부족하긴 하네.”
석하랑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석하랑의 말에 동조하며 다른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으으, 오지마! 저리 꺼져!]
시민들을 중심으로 물의 장벽을 두른 가온은 접근하는 괴수들을 상대로 수탄을 날리고 있었다. 물을 조종하는 능력에 있어서 발군인 그녀는 시민들을 자신과 함께 물의 방어막 내부로 모아 지키고 있었다.
“오, 저게 세이렌의 <토치카>구나?”
“물의 장벽을 두르고 내부에서 외부로 수탄을 날리는 플레이...공수가 적절한데?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
석하랑도 김가온의 전술에 제법 흥미를 가졌다. A+급인 김가온이 사람 50명 정도 수용할 토치카를 만들었다면, 아마 석하랑은 대공요새를 만들지 않을까.
‘어쩌면 가능할 지도.’
얼음성을 만들어 괴수들을 상대하는 전진기지를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김가온과 석하랑은 속성은 같아도 능력의 유연함은 천차만별이다.
[하아앗!]
가온은 달려드는 괴수의 방향으로 물의 장벽을 변형시켰다. 순식간에 줄어든 장벽에 괴수는 미끄러지듯 장벽을 스쳤고, 관성에 따라 바닥을 굴러 밖으로 튕겨나갔다.
“...내, 내도 언젠가는....”
석하랑의 고질적인 문제점. 수속성임에도 능력이 ‘얼음’에 특화되어있다는 것. 정령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아마 평생동안 얼음만 다루게 될 것이다.
“가온이도 문제는 없네. 그렇다면....”
<마스커레이드>, 큥P – 1점 !
알람이 울렸다. 나는 천가을이 배치된 주차장 구역을 재빨리 훑었다.
“...저 언니야 지금 뭐하는 건데?”
석하랑은 천가을의 모습에 탄식했다.
천가을은 가온의 토치카를 불꽃의 벽으로 두른 채 시민들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가온과 슈리의 장점만 골라서 가져온 듯한 모습에 제법 칭찬을 할 법도 했다.
괴수들은 누구 하나 마스커레이드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했다. 화마인이 괴수들을 일일이 때려잡는 쪽이라면, 마스커레이드(화마인)은 태워죽일 불길로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찌걱, 찌걱, 찌걱!
[아흐응...지휘관이랑 자지 똑같이 생겼네...?]
[어, 허억...!]
천가을은 시안쿤 한 명을 옆에 세우고 대딸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자지와 X로이드를 비교하며 음미하고 있었다.
“히어로가 시민을 성추행해도 되는 기가?”
“히어로라기 보다는, 빌런이 대의를 위해서 히어로 측을 돕는다고 봐야하는 거 아닐까. 하하.”
[지휘관. 나 진지하게 궁금한 거 있는데, 이거로 섹스하면 자위야 아니면 NTR이야?]
“.......”
천가을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와 똑같이 생긴 시안쿤을 이용해 천가을이 섹스를 한다? 기계를 이용한 자위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용납할 수 없다.
“NTR이지. 그건 안 돼.”
[유감이네. 씁....]
“대신 네가 시안쟝을 능욕하는 건 허락할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나도 나름 능력이 늘어났으니까.]
천가을은 시안쿤을 옆으로 밀치고 자신에게 할당된 시안쟝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시안쿤을 엎드리게 한 다음, 다리를 벌려 시안쟝을 자신의 고간에 얼굴을 들이밀게 만들었다.
[야, 빨아. 내가 지금 너희 지켜주고 있잖아...?]
[아으으...그, 그러지 마세, 으읍?!]
“...저 언니, 레즈가?”
“굳이 따지자면 바이라고 할 수 있지.”
천가을, 큥포인트 아웃. 시안쿤보다 더 포인트가 높은 시안쟝이 겁간당하기 시작한 이상, 천가을에게 남은 큥포인트는 없었다.
[순서야 뭐 맨 마지막에 해도...어차피 하루에 한 명이면 늦어도 2주니까...하아아.]
그녀는 시안쟝에게 아래가 빨리며 몸을 떨었다. 포인트 방침으로는 꼴등이지만, 그녀는 사실상 단 한 명의 시민도 잃지 않았다.
- 내가 가서 빨고 싶은 것이에요.
“...야, 니 혹시 저런 거 좋아하나?”
“응.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게 진심으로 안타까울 정도야.”
여캐로 플레이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감.
“...흠흠. 아무튼 전체적으로 다 잘해주고 있네.”
C+급도, A+급도 모두 힘을 내서 괴수를 상대하고 있다. 주변에서 하나 둘 나타나는 괴인들을 상대로도 선전은 마찬가지.
“외부의 적을 상대로는 다들 잘 싸우고 있네. 푸흐흐, 그러면 내부에서 적이 나타나게 된다면 어떨까...?”
삑. 나는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내 옆에 있던 민트 머리칼로 변질된 시안쟝의 눈이 금색의 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코드 ‘AC-8’을 선언하지.”
“츄릅.”
시안쟝에 방금 막 연동된 은유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코드 AC-8 모드 가동. 지금부터 시민들이....”
[꺄아악! 아, 안 돼요!]
[뭐, 뭐하는 거야?!]
[...어머, 씨발?]
“트롤링을 시작합니다.”
저마다 열심히 지키고 있던 시안쿤 중 일부가 공포에 잠식된 얼굴로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여기 있다가는 죽을 거야!]
[엄마, 엄마아아! 히어로 님, 제발 저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세요!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아요!]
[다 죽을 거야.... 어차피 다 죽을 거라고....]
“구조해야 할 시민들이 히어로들에게 방해가 된다. 늘상 있는 패턴이지.”
[아, 이런....]
[아, 에이 씻팔------!!]
슈리의 쌍욕이 전체 회선을 때렸다.
동시에.
[이 때를 노렸다냥!!]
적 간부가 본격적으로 트롤링을 시작한 시민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