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6화 〉2부 5장 19
펜릴에게 큐브를 투여한 것으로 나는 영국에서의 할 일을 다했다.
멘체스터에 열릴 게이트를 해결했다.
영국 여행 기간 동안 라온의 몸에 계속 마력을 주입하여 그녀의 레벨을 88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아직 그녀는 자신의 진짜 능력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몰라 40전후의 능력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펜릴과 동화된 것을 계기로 그녀의 코어는 그간 쌓여있던 힘을 되찾았다.
“라온아, 뭐 달라진 거 없어?”
“달라진 거라...몸의 선이 더 예뻐진 것 같습니다. 가슴과 엉덩이도 살짝 업 된 것 같고, 등허리에 있던 살도 조금 들어간 것 같습니다.”
“아니, 육체미 말고. ...하아, 아니다. 그냥 맛있게 먹어.”
펜리스 박이 된 계기로, 라온의 육체는 펜리스 박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었다. 펜릴의 빙의를 바탕으로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나니,라온도 딱히 펜릴과의 합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펜릴. 당신 덕분에 다이어트는 더 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하항, 이 몸이 좀 대단하다냥.”
펜릴은 디폴트 육체-B컵 조금 안 되는 녹색 고양이귀 메이드 미소녀로 변신해 우쭐대기 시작했다. 라온이라는 좋은 동료를 얻자, 그녀는 고양이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며 기뻐했다.
“동지!”
“...동지.”
무엇을 숨기랴. 박라온과 김펜릴은 영국 런던 한가운데에서 민초당을 결성했다. 민초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민트초코로 뭉친 둘은 공식 설정상 풍속성 베스트 조합 답게, 테이블 위해 즐비하게 늘어진 온갖 민트초코 디저트를 먹고 마음껏 맛을 즐기고 있었다.
양이 부족해서 싸운다? 그런 게 일어날 리가 없다.
“지휘관, 케이크 다 먹었다냥.”
“그럼 더 주문하면 되지.”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민트초코를 주문했다. 이전에 주문한 것도 밀려있으니, 아마 느긋하게 기다리면 한 무더기 아이스크림이 도착할 것이다.
‘역시 민초의 발상지.’
펜릴을 공략하려면 영국으로 갈 때 무조건 펜릴을 데려가야한다.
민초라는 호감도 선물을 이용해 아군으로 영입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민초를 바탕으로 대놓고 이렇게 공략하면 호감도 작업이 쉽다고 약점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안 데리고 올 수 있겠는가?
‘이른바 숏컷이죠.’
나는 펜릴 공략의 최단 루트를 밟았다. 심지어 펜릴이 나를 이제 결코 배신할 수 없는 최고의 아이템까지 주었으니, 이제 펜릴은 내게 절대 복종할 것이다.
“아, 펜릴. 이거 주문 잘못 온 것 같습니다.”
라온은 입가에 잔뜩 크림을 묻히고 먹는 펜릴을 제지했다. 펜릴이 막 포크를 집으려던 초콜릿 속에는 딸기가 잔뜩 묻혀있었다.
“아, 그건 내 거야. 나한테-”
“민초빔---!!”
번쩍!
펜릴의 왼쪽 눈에서 에메랄드빛 광선이 뿜어져나왔다. 초콜릿 케이크를 덮친 민초빔에 딸기는 어느새 민초 특유의 에메랄드 빛으로 변했다.
“이러면 되는 거 아니냥, 흐흥.”
“.......”
라온은 펜릴이 빔을 쏴버린 옥색 딸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며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사장님, 민초딸기 드시겠습니까?”
“싫어.”
딸기는 딸기로 먹어야 하는 법. 나는 펜릴의 민초빔이 가진 위력을 목도하며 몸서리를 쳤다.
- 모든 음식을 민트맛으로 바꾸는 능력!
- 민트초코 괴인을 생성하는 정도의 능력!
- 바다를 민트초코로 뒤덮는 능력!
“.......”
미니 피닉스들이 민초빔의 가능성을 두고 재잘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가 펜릴에게 패배하여 민초괴인에게 윤간당하며 민초에 함락되는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상의 변환.
큐브는 이처럼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큐브 하나를 고작 민초빔으로 바꾼 정도면 아주 싸게 큐브를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죽은 사람도 부활시킬 수 있는 만능의 소원 램프를 이렇게 쓴 거 알려지면 욕을 먹겠지.’
분명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정화 없이 그냥 부활시켜달라고 하면, 시체 덩어리가 두둥실 떠다니며 ‘하이!’그럴 건데 어떻게 그런 소원을 빌겠는가.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큐브를 없앤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라온이나 펜릴 둘 다 정확히 모르니 아무 문제도 없다.
“라온아. 아까 물었던 건데, 뭐 달라진 거 없어?”
“...마력 말씀하시는 거라면, 딱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단지....”
라온은 포크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공허했던 것이 채워지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듭니다.”
“그러면 됐어.”
나는 누군가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뜯겨나간 라온의 빈자리에는 이제 민트초코에 미친 요괴 고양이(늑대)가 자리를 잡았고, 라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딴살림을 차린 놈은 이제 더 돌아올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터뷸러스 아웃.’
터뷸러스가 빠져나간 곳에는 펜릴의 마력이 깃들게 되었다. 정령각성을 통해 싱크로가 이루어질 경우, 라온의 육체와 코어에서 손상된 부분에 정령의 마력이 육신으로 승화하게 된다.
즉, 라온은 펜릴이 빙의하는 것 반으로 진정한 바람의 여신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절풍은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펜릴의 눈에는 민초빔이 깃들었다.
펜릴의 ‘몸’에는 ‘큐브의 힘’이 깃들었다.
간부의 ‘육신’에 ‘이계신의 힘’이 깃들었다.
이제, 정령은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으리라. 정신이 뇌에 깃들어있다면 왼쪽 눈에 박힌 민초빔의 힘이 절풍을 뇌 한 구석까지 밀어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펜릴아, 너 자칭있잖아.”
“녹색 고양이귀 메이드 미소녀!”
“그거, 늑대귀 아니야?”
“......냥?”
펜릴은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급히 라온의 도움을 받아 위키를 찾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다.
그리고.
“...이제 냥 못해....”
펜릴은 좌절했다. 자신의 괴수로서의 근간이 늑대라는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되었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펜릴아.”
“왜...?”
“라온이한테 빙의해봐.”
“.......”
“으, 펜릴?!”
펜릴은 라온의 얼굴을 붙잡았다.
“펜리스 박으로의 변신이야. 라온아, 원래 마법소녀는 변신 이펙트가 필요한 거야?”
“하지만 이럴 필요는-”
츕♡
짝, 짝, 짝.
내 ‘지시’에 따라 펜릴은 라온에게 입을 맞췄다. 라온은 금방 눈을 감았고, 펜릴의 몸에서 녹색 폭풍이 몰아치며 주변을 덮었다.
사아아----
라온의 몸 위에 민트빛으로 빛나는 새로운 복장이 갖춰졌다. 펜리스 박을 상징하는 옷이 하얀 정장이라면, 이번에는 검은색을 기조로 한 정장이었다. 민트색 풀어헤친 넥타이는 여전하지만.
“...이러면 돼?”
“거울 봐봐.”
펜리스는 마도기어를 통해 자신의 귀를 살폈다. 그리고는 늑대귀와는 다른 고양이의 귀가 달려있는 것에 귀를 쫑긋 세우며 놀랐다.
“지휘관!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그러고 민초빔 한 번 쏴봐.”
“민초...어?”
펜리스의 왼쪽 눈동자 색은 고동색이었다. 즉, 라온의 눈동자 색이 남아있었다.
“어...?”
끔뻑끔뻑.
펜리스는 눈을 수 차례 깜빡였다. 간밤에 펜리스로서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때와 달리, 지금은 둘의 색이 완벽하게 좌우로 나뉘어 고정된 오드아이가 되고 말았다.
“이게...어떻게 된...?”
“김펜릴 상태로는 민초빔을 쓸 수 있지만, 라온에게 빙의하면 못 쓴다 이 말씀.”
“!!”
펜리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럼 나는 앞으로 민초빔 못 쓰는 거 아니야?!”
“다시 돌아가면 쓸 수는 있어. 대신 봐봐. 지금 고양이귀지?”
“...설마 라온이랑 같이 있어야 고양이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야...?”
“물론.”
펜리스는 울상을 지었다.
“내 고양이귀....”
그녀에게 있어서 녹색 고양이귀 메이드 미소녀라는 건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일종의 ‘캐릭터’이자 자아유지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그걸 빙의로밖에 유지할 수 없다는 것에 진심으로 슬퍼했다.
“펜릴아. 우울해하지마. 네가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응?”
“네가 더 이상 고양이귀에 집착하지 않아도, 너는 ‘펜릴’이라는 걸 이 세계에 확립한 셈이야.”
늑대귀가 튀어나왔음에도 인격이 펜릴이라는 것이 그 증거였다.
“펜릴아. 너는 더 이상 이세계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야.”
“!!”
펜릴은 내 말에 눈물을 주룩 흘렸다. 그리고 소매로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눈에서 민초 흐른다냥."
"투명한데?"
"맛은 민초니까 괜찮다냥. 끙차!"
펜릴은 소파 위로 일어나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나, 지구인 김펜릴! 앞으로 지휘관을 위해 평생 충성을 바치겠다냥!"
"뭘 평생 충성까지."
"응? 그럼 적당히 써먹고 버릴 생각이었냥? 따먹을 만큼 따먹었으니까 충분하다? 아아, 이게 먹버라는 건가 그거냥? 호감도 꽉채워서 이제 떨어질 것도 없으니 관리 할 필요도 없다 이거냥?"
"...그런 건 아니고."
반여신에 등극했기 때문일까? 펜릴은 핵심을 짚었다. 나는 괜히 찔렸지만 반론은 하지 않았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흐흥, 좋다냥. 다른 여자들 따먹는데 이 지구인 김펜릴이 도와주겠다냥. 그래서 누굴 따먹을 거냥?"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 한 명 한 명 따먹다가...결국에는...."
내 말에 펜릴은 웃음이 싹 굳었다. 나는 내 심장을 두드렸다.
"창염의 피닉스."
"그게...가능하냥?"
"왜 안 되겠어?"
내가 따먹겠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