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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21화 (721/1,497)

〈 721화 〉2부 5장 15

[전원 긴장 늦추지 말 것.]

죽은 사람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과 함께, 동시에 지휘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냥 풍마룡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뒤로는 풍마룡 부활의 의식을 외우게 했으면서, 앞으로는 히어로들에게 풍마룡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상기시키는 지휘관의 지휘에 펜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풍마룡의 모가지를 자르면 2페이즈는 열리지 않는다. 펜릴에게는 그 틈을 노려 목을 자를 힘이 있다.

덜그럭.

하지만 펜릴은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간지럽기도 하지만, 이 목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과 이제부터 바나르간드로서 살아갈 운명의 상징이었다.

지휘관은 펜릴에게 '2페이즈를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펜릴은 풍마룡을 향해 자신의 마력을 몰래 집어넣었다.

데구르르.

멘체스터 땅에 미리 묻어둔 A급 코어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에서 풍마룡의 몸에 흘러들어갔다. 아무리 A급 코어가 S급에 비비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 수가 일곱 개에 간부가 풍속성 간부가 직접 '합치는' 이상 준 S급 출력을 낼 수 있다.

[2페이즈, 온다!]

고오오오----!!

펜릴이 일곱 개의 코어를 풍마룡의 코어에 강제로 쑤셔박아넣자, 풍마룡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올리며 포효를 내질렀다.

아오오--------!!

파직, 파지직.

마치 탈피를 하듯, 풍마룡은 껍질을 깨고 본 모습(?)을 드러냈다.

[빙고. 설마 여기서 본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검은 외부 장갑에 내부는 짙은 녹색의 마력으로 반짝이는 에테르체 괴수는 마치 어떤 괴인이 괴수로 변한 모습과 흡사했다.

바람의 늑대.

1999년, 북유럽 일대에 나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라진 이형의 괴수. 피의 일주일을 일으켰던 일곱 괴수 중 하나가 구속구와도 같은 검은 갑주를 전신에 두른 채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마룡들은 간부들의 분신체였던 건가?]

"......."

펜릴은 자신의 괴수체와 거의 비슷하게 변한 풍마룡의 모습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휘관은 온갖 변명으로 풍마룡의 2페이즈를 어떻게든 특정 개체로 지정하고 싶어했다.

[고유 개체 확인! 풍마룡 2페이즈...가 아니다! 저건 <절풍의 펜릴>이다!]

모든 히어로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스쳤다. 괴인이 어찌 괴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마력 패턴도 어느정도 상이한데?

라고 하는 순간, 풍마룡의 마력 패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히어로들은 풍마룡의 마력 패턴에서 다크 레기온의 간부 '절풍의 펜릴'의 패턴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절풍의 펜릴이라고?"

"마룡의 몸에 깃들어 폭주한 건가?"

"아니면 마룡이 또다른 모습...?"

유심히 살펴보면 풍마룡의 패턴이 펜릴의 패턴을 닮아가고 있었지만, 전문적인 연구기관에서 분석하는 게 아니면 육안으로 99% 닮은 꼴은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저건 절풍의 펜릴이 아닌 것 같은데. 왜냐면-

[모두 충격에 대비! '절풍'에 맞지마!! 무조건 피해!]

라는 생각은, 지휘관의 경고와 함께 바람처럼 날아갔다.

절풍의 펜릴의 수식어, '절풍(折風)'.

수 천 명의 히어로들에게 중상을 입힌 '절대지연'의 칼바람은 맞아본 사람만 안다. 몸이 뇌의 제어를 벗어나 잠시 굳어버리는 순간의 고통을!

캬오오오오-------!!

풍마룡 2페이즈의 하울링이 울려퍼지자, 진녹의 칼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와장창!!

풍마룡 2페이즈의 인근에 있던 히어로들은 칼바람이 닿자마자 코어웨폰이 망가졌다. 마력의 흐름도 순간 끊겨, 순간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

절풍의 펜릴이 가진 고유의 특성, '절풍'.

그리고 절풍이라는 건 펜릴의 고유 특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흐름을 끊어내는 바람은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칼바람 그 자체로 휘몰아치며 공격을 퍼붓는다.

[맞서싸우지 마! 물러서!]

마력의 흐름에 간섭하여 행동불능을 일으키고 자신은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연속 공격을 이어나가려는 특수한 공격에 모든 히어로들은 깨달았다.

"컥?!"

"이, 이런!!"

"몸이, 안 움직여!!"

풍마룡 2페이즈가 절풍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목소리는 그대로 나오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마력의 흐름이 뚝 끊겨 몸이 움직이지 않는 현상을 직접 겪었다.

그리고 히어로들은 확신했다.

풍마룡 2페이즈야말로, 절풍의 펜릴이라는 것을.

'절풍'을 사용하는 게 절풍의 펜릴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절풍의 펜릴이라는 것인가!

"...냥."

펜릴은 자신의 마도기어에 비친 코드네임, <바나르간드>를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자신에게 '절풍'이라는 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펜릴이라는 이름 조차 그녀의 '이명'이었지만, 그녀는 목줄과 함께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하였다.

<바나르간드> 펜리스 박. 또는 김펜릴.

"미안하지만, 나를 위해 죽어줘야겠다냥."

펜릴은, <절풍의 펜릴>을 향해 손톱을 세웠다.

아오오오오-------!!

최강의 암살자로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 * *

런던.

버킹엄 궁전의 수호를 맡은 아르엘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명령은 런던을 지키는 것이었고,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지휘관의 엄명이 있었다.

"......."

아르엘은 고민했다. 지휘관은 분명 지금 한창 멘체스터를 관리하고 있을테니,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고 잠깐 대영박물관에 다녀와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여유가 있었다.

멘체스터에 열린 게이트를 신경쓰지 않고 버킹엄 궁전의 수비를 잠시 다른 이에게 맡겨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키에에엑!!

지휘관에 의해 명명된 풍마룡 제 2형태, <절풍의 펜릴>은 영국 히어로들의 레이드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모든 히어로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며 펜릴이 날리는 '절풍'을 피했다.

절풍이 날아오는 궤적을 읽고 피하는 것은 기본이고, 절풍의 경직을 각오하고 몸으로 막아낸 탱커를 딜러들이 직접 잡고 이동하여 공격을 피했다.

간혹 날아오는 브레스는 화속성 히어로들이 모여 불꽃의 장벽을 일으켰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절풍도 불꽃의 마력 장벽은 쉽사리 뚫지 못했다.

화륵, 화륵!

칼바람이 불의 벽을 스칠 때마다 절풍의 펜릴은 괴성을 지르며 마력을 뿜어냈다. 방출하는 마력은 떨어지지도 않는지, 연신 마력을 뿜어내며 멘체스터 일대를 뒤엎었다.

[조금만 더 딜 넣어. 지금 보이지? 안에 마력 닳는 거.]

지휘관의 격려에 히어로들은 땀을 닦으며 씩 웃었다. 절풍의 펜릴은 에테르체로 몸이 구성되어있었고, 서서히 안쪽을 채우는 녹빛의 마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마력 반응 봐봐. 겉으로는 지금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실상은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허세야, 허세.]

캬아아악!!

지휘관의 조롱을 들은 건지, 절풍의 펜릴은 괴성을 지르며 사방을 할퀴고 긁었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움직이기만 할뿐, 뛰어다니거나 히어로들을 습격하지는 못했다. 등허리에 꽂힌 바람의 신창에 꼬챙이처럼 뚫려, 절풍의 펜릴은 제자리에 고정되었다.

[버나르간드가 판을 깔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뭘 해야하지?]

삑.

총력전개.

"야!! 버스터 콜 떴다!!"

지휘관의 지시와 함께, 모든 히어로들이 원거리에서 전력으로 포격을 때려박았다. 마도 대포에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며 총탄과 화살을 비처럼 퍼부었다.

쾅! 콰광! 쾅!!

폭음이 터질 때마다 절풍의 펜릴은 절규하듯 울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원통해하며, 절풍의 펜릴는 바닥에 고정된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키기기긱, 기기긱!

갑주형 외피가 신창에 긁힐 때마다 절풍의 펜릴은 마력을 흘렸다. 찐득한 녹색의 에테르가 흘러내릴 때마다,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아 섬찟했다.

캬아아아악!!

절풍의 펜릴은 누군가를 향해 괴성를 질렀다. 무력화된 자신을 향해 포격을 일삼는 인간들도 밉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무력화시킨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훗.]

바나르간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저 손가락만 튕겼을 뿐인데, 절풍의 펜릴은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사실상 바나르간드 혼자서 절풍의 펜릴을 죽이고 있는 셈이었다.

[안녕이다, 절풍.]

철컥.

바나르간드는 품에서 총을 꺼낸 뒤,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핸드캐논을 방불케하는 총의 총구에서 붉은 기운의 빛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아르엘은 멀리서도 총구 안에 스며드는 마력을 읽고 경악했다. 붉은 색의 마탄은 '화속성'의 마탄이었고, 안에 깃드는 마력은 풍속성이었다.

분명 다른 속성의 마력이건만, 두 마력은 마치 합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듯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Bang.]

바나르간드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총신 전체가 녹빛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총신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

천둥이 울렸다.

마치 뇌신이 벼락을 내리꽂는듯한 총격은 바람보다, 소리보다 빨랐다. 스크린 너머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아르엘은 그만 귀를 머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번쩍.

녹색의 빛이 터졌다. 시야를 뒤덮는 민트색의 빛무리는 마치 플래시뱅이 터진 것 마냥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눈앞을 가리는 마력의 분류에 아르엘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전장은...?!"

당장이라도 멘체스터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행여나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그녀의

[ 후우.]

바나르간드는 총구 끝에 휘파람을 불며-

[오늘 잘 했으니까 상으로 섹스해달라고...우후훗.]

혼잣말을 하다가, 그만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어...전체회선...?]

뿅.

바나르간드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르엘은 허탈감에 주저앉을 뻔 했다.

"......저게, 지휘관의 힘...!"

섹스로 훈련된 SS급 히어로의 위용 덕분에, 절풍의 펜릴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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