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20화 (720/1,497)

〈 720화 〉2부 5장 14

전장은 멘체스터.

폐허가 된 것으로 모자라 황무지와 크레이터밖에 존재하지 않는 초토화 된 도시이기에, 이능력자들은 풍마룡과의 전투에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 전력으로 포격 개시.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코어웨폰에 손을 올려둔 히어로들은 일제히 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소총을 비롯한 원거리 무기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화망을 형성했다.

■■■■!!

풍마룡은 괴성을 내지르며 브레스를 뿜었다. 입에서 몰아치는 토네이도에 사선에 있던 히어로들은 몸이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 전방에 있는 탱커들을 피해 우회하는 브레스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이런-"

"훗."

짧은 웃음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마력의 토네이도는 그보다도 더 강한 마력의 바람에 바닥으로 짖눌려 훅 꺼져버렸고, 애꿎은 바닥만 긁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휘이잉.

히어로들의 이마에는 식은 땀을 식히는 산들바람만 스쳤을 뿐이었다. 히어로들은 허공에 떠있는 녹색 고양이귀 정장 미녀를 향해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바나르간드!!"

"...흥."

여인, 바나르간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코웃음만 쳤다. 하지만 히어로들은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우뚝 솟은 꼬리를 보며 그녀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마우면 물러서지 말고 계속 싸워."

바나르간드의 말에 히어로들은 다시 코어웨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나타난 초면의 이능력자가 지시를 내리는 것에 히어로들은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마도 레이더에 아군으로 표시되는 바나르간드의 표식에 군말이 쏙 들어갔다.

그녀의 팀을 알리는 코드는 [BWP]. 지휘관 직속 히어로였다.

"젠장...."

헌터 하나가 바나르간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졸라 예쁘네."

동양의 미와 서양의 미, 그리고 이계의 미가 한 데 섞인 듯한 외형은 인형과도 같았다.

더군다나 지휘관의 힘으로 'SS'급에 오른 것을 과시하는 건지, 마치 고양이를 코스프레하는 듯한 귀와 꼬리는 어지간한 코어보다도 더 강한 마력을 방출하고 있었다.

■■■■!!

"풍마룡이 날개를 펼친다! 공중날기 패턴 아니야! 모두 산란에 주의!!"

그녀의 지시는 곧 '지휘관'의 지시였다. 지휘관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적절한 공략을 제시하는 자라면, 바나르간드는 지휘관이 정확한 지시를 내리게 하기 위해 현장을 조율했다.

펄럭-!

풍마룡은 날개를 좌우로 펼쳤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은 모습에 히어로들은 흙먼지를 피해 뒤로 크게 물러났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오르려고 하던 풍마룡은-

푸슈우우웃!!

좌우로 펼친 날개에 시선을 끈 뒤, 비늘을 열어 막대한 양의 검은 마력 덩어리를 뿜어냈다. 안에서 흘러나온 검은 마력은 빅 벤 인근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처럼 늑대형 괴수가 되었다.

키이익!!

분명 런던에서는 쉽게 대처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했던 히어로들이었다. 풍마룡은 그들을 비웃듯 산란을 마치고 모든 비늘을 닫았다.

"걸렸다!"

그리고 히어로들은 일제히 코어웨폰을 풍마룡에게 겨눴다.

"쏴버려---!!"

투두두두두.

알을 깨고 나오려는 괴수들을 향해 히어로들의 공격은 자비심이 없었다.

"우리가 런던 상할까봐 조심했지, 너희들 무서워서 쫀 줄 아냐!!"

"이 개같은 새끼들! 너희 때문에 우리 부모님 피신했다고!"

키에에엑!!

히어로들의 분노가 담긴 사격이 괴수들을 일부 휩쓸었다. 하지만 모든 괴수들을 죽인 건 아니었고, 앞서 죽은 괴수들의 뒤에 숨어 태어난 괴수도 남아있었다.

[으레 그렇지만, 산란 패턴 이후에는 총공격 찬스인 거 알지?]

지휘관의 지시에 근접 무기를 든 전사들은 일제히 전방으로 달렸다. 마도기어의 레이더가 밝히는 궤적을 따라, 그들은 지그재그로 달렸다.

퍼버벅!

근접 히어로들의 등 뒤로 코어웨폰의 사격이 날아왔다. 괴수가 아닌 히어로들을 벌집으로 만들 것만 같은 사격이었으나, 그 어떤 사격도 프렌들리 파이어가 일어나지 않았다.

히어로가 뒤에서 일부러 지휘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쏘아맞추는 게 아닌 이상, 동료를 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수 백 수 천 발의 마탄은 오직 괴수와 풍마룡에게만 닿을 뿐이었다.

"이게 지휘관의 힘...!"

■■■■■■!!

모처럼 몸 밖으로 내보낸 분신들이 쉽게 당해버리자, 풍마룡은 괴성을 지르며 발톱을 높이 치켜들었다. 정면에서 뛰어오던 히어로들의 레이더가 반짝였다.

삐비비빅!

지도에 붉은 색의 궤적이 그려졌다. 그곳에는 '!'모양까지 친절하게 남아있었다. 히어로들은 자신들이 ! 구역에 있음을 깨닫고 급히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

풍마룡의 발톱이 땅을 긁었다. 괴수의 발톱은 정확히 예고된 지역을 할퀴었고, 근처를 향해 달려들던 히어로들은 무기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으아아!!"

히어로들은 기합과 함께 무기로 풍마룡의 다리를 난도질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코어웨폰의 칼날이 풍마룡의 비늘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

풍마룡은 네 발을 사방으로 디디며 히어로들을 짓밟으려고 했다. 육중한 육체를 이용해 밟아죽이려고 했으나, 발을 디디는 위치마저도 히어로들에게 마도기어의 지도로 전달되었다.

퍼억, 퍼억!

S급 괴수라고는 해도 데미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비늘 하나하나가 A급 방패라고 한다면, 방패가 깨질 때까지 때리고 또 때리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방패를 때리는 사람의 수는 한 명이 아니라, 수 백 수 천 명.

차원문이라는 국가적 사태에 전투력이 아무리 낮아도 C급 이상의 전투력만 가지고 있다면, D급 히어로도 코어웨폰을 들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날아오르기 전에, 일제사격 개시.]

지휘관의 지시에 다시 포격이 재개되었다. 근접 히어로들은 마도 포격에 휘말리지 않게 안전한 후방으로 이탈했고, 풍마룡은 이미 도망친 히어로들을 밟아 죽이려다가 그만 포격에 직격타를 맞았다.

펄럭!

풍마룡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도망치려고 했다. 히어로들은 포문을 급히 위로 당겼으나, 풍마룡의 날개는 이미 넓게 펼쳐졌다.

[포격 중지. 실드 전개 됨.]

지휘관의 짧은 명령에 히어로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총구를 내렸다. 풍마룡의 몸 근처에는 마력을 사방으로 방출하여 체력을 회복하는 보호막이 펼쳐졌다.

회복과 반격을 동시에 하는 셈이었다. 보호막을 향해 포격을 날리는 순간, 마탄의 마력은 풍마룡이 흡수하게 될 것이다.

[다들 지시대로 따라줘서 고맙다. 마무리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한다.]

지휘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풍마룡은 여전히 날뛸 기세가 역력했고, 마무리를 넣기에는 체력이 많이 남아보였다. 심지어 실드까지 펼쳐져있지 않은가?

[다들 하늘을 주목.]

지휘관의 말에 히어로들은 하늘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백미터가 넘는 상공에 떠올라 있는 백색 정장의 히어로가 양손에 쥔 마력의 창을 풍마룡에게 겨누고 있었다.

"신창."

바나르간드는 짧게 중얼거리더니.

"궁니르."

아주 가볍게, 손에 쥔 에메랄드빛의 마력창을 아래로 던졌다. 빠르게 떨어진 2m짜리 장창은 화살처럼 빙글빙글 돌며 풍마룡을 향해 떨어졌다.

뭐하는 거야. 보호막에 흡수되잖아. 히어로들이 하나 둘 경악하던 순간.

와장창----!!

바나르간드의 투창에 보호막은 유리창마냥 산산조각났다. 풍마룡은 자신의 보호막이 깨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대처를 하지 못했고, 창은 풍마룡의 날갯죽지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그리고, 폭풍이 일어났다.

고오오오오------!!

마력의 창이 파괴됨과 동시에 창에서 거대한 폭풍이 풍마룡을 휩쓸었다. 히어로들이 그렇게 칼을 휘두르던 비늘은 칼바람과도 같은 폭풍에 두부처럼 쉽게 잘려나갔다.

■■■■■!!

뭉텅뭉텅 덩어리 째 썰어대는 폭풍은 풍마룡의 전신을 할퀴었다. 비늘 사이로 흘러나오는 알조차 갈라버리며, 풍마룡의 몸 전체를 그야말로 갈아버렸다.

고오오오-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바나르간드의 눈높이까지 닿는 것으로 모자라, 구름을 가르고 하늘 높이 치솟아오르는 높이까지 올라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가히, 신의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히어로들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에 본인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바나르간드가 나서자, 더이상 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SS급 히어로의 힘은 강력했다.

데뷔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압도적이고 강인하고 신속한 힘이었다.

[그만.]

딱.

지휘관의 지시가 내려지기 무섭게, 바나르간드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사방으로 퍼져나가 멘체스터 전체를 파괴할 것처럼 몰아치던 폭풍도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전신이 갈린 풍마룡만이 남아있었다.

■■■■■....

전신이 찢어발겨진 풍마룡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날개는 축 늘어지고, 꼬리 또한 바닥에 닿아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움찔, 움찔.

비늘이 꿈틀거렸지만 더이상 안에서 알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미 사방에 흩어진 알들과 괴수들도 풍마룡 본체가 쓰러지자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

히어로들은 숨을 죽였다. 모두가 미동도 하지 않는 풍마룡을 향해 멀리서 코어웨폰을 겨누며 침을 삼켰다. 그들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여전히, 그들의 마도기어 레이더에는 풍마룡의 마력 반응이 남아있었다.

"우, 우와아...."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풍마룡이 더이상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

"""우와아아아아아!!!!"""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히어로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휴우."

펜릴은 휘파람을 불며 땅에 착지했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기며, 그녀는 지휘관이 직접 채워준 목줄을 만지작거렸다.

- 이곳에서 풍마룡을 '절풍의 펜릴'으로서 죽이기 위해서는 한 가지 눈속임이 필요해.

펜릴은 기억을 더듬어 풍마룡을 향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휘파람을 불며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다크 레기온의 간부로서 풍마룡에게 부활의 주문을 읊고 있는 셈이었다.

- 풍마룡은 S급이기는 하지만 그냥 녹색의 블랙 드래곤일 뿐이야. 이걸 '네임드화'하려면 사전 작업이 필요하지.

이미 준비는 끝났다. 런던 전역을 돌아다니며 마피아, 갱 등 빌런들을 털어먹었을 때, 펜릴과 지휘관은 A급 코어만 훔친 것으로 모자라 풍속성 A급 코어를 따로 보관해뒀다.

그리고 그걸 다른 곳도 아닌 '멘체스터'에 묻었다. 런던에서 멘체스터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SS+급 이능력자인 김펜릴에게는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보다도 더 짧게 걸리는 거리였다.

푸쉬이.

풍마룡의 몸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완전히 멈췄다. 하나 둘 히어로들이 안도하는 가운데, 펜릴은 '마법의 주문'을 입속에서 되뇌이며 타이밍을 쟀다.

- 길고 긴 영창은 필요없어. 괴수를 진화시키는 최고의 영창을 가르쳐줄게.

펜릴은, 금단의 주문을 외웠다.

지휘관으로부터 직접 들은 최강의 마수를 깨우는 주문을.

처음부터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던 그 주문을!

"해치웠냥...?"

아아아----!!

히어로들의 탄식과 절규에도, 펜릴은 어깨만 으쓱였다.

변명을 한다면, 단 하나.

지휘관이 시켰다. 직접.

그리고.

쩌적. 쩌적.

풍마룡의 몸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