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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19화 (719/1,497)

〈 719화 〉2부 5장 13

하늘이 열렸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런던의 상징과도 같은 빅 벤의 위에 열린 거대한 차원문은 다른 차원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지름이 최소 수 십 미터는 훌쩍 넘을 것이다. 어지간한 S급 괴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넓은 차원문에 히어로들은 긴장으로 몸이 떨렸다.

영국 시민들에게 게이트란 참으로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십 수 만 명의 사상자를 낸 ‘멘체스터 게이트’ 이후, 영국은 게이트가 터진다고 하면 자국의 히어로들을 바로 파견할 정도로 게이트에 편집증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그 게이트가 지금 런던 상공, 그것도 빅 벤의 위에 열렸다.

과연 게이트의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 것인가? 그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파지지직!

뢰전이 몰아치는 폭풍이 게이트의 입구에서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금방 게이트의 ‘주인’이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누가 될 지 깨달았다.

풍마룡.

전설 속 검은 드래곤의 모습을 한 괴수는 몸 길이가 무려 5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괜히 ‘S급 괴수’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풍마룡이 나온다.

그리고 이능력자들은 풍마룡을 막아야한다. 그래야 런던을, 영국을, 지구를 지킬 수 있었다.

“젠장, 그래도 지휘관이 있어서 다행이지.”

히어로들은 마력을 가다듬었다. 괴수들을 상대하느라 약간 소모된 마력을 회복한 히어로들은 ‘여느 때처럼’ 긴장을 놓았다.

“지금 몇 분이야?”

“4시 11분.”

“그럼 5시 10분에 닫으면 되겠네.”

히어로들은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게이트 발생에 따른 국제법에 따라, 게이트 발생 ‘한 시간 안’으로 타국은 국가의 요청이 없는 한 간섭할 수 없다.

풍마 게이트에서 뿜어져나오는 괴수들의 코어는 한 시간 동안 영국의 자원이 될 것이다. 히어로들은 풍마 게이트를 넘어올 괴수들을 사냥할 생각에 들떴다.

그러나.

“...지휘관 코드? 당장 전투 준비? 왜?”

코드 BWP로부터 전해진 1종 전투 태세 명령에 히어로들은 당황했다. 자신이 왜 ‘전력’을 발휘하는 전투 준비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단 명령이기에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지휘관의 예상이 적중한 상황에 소름이 돋았다.

쿵, 쿵.

열린 하늘에서 검은 바람이 휘몰아쳤다. 흑풍을 몰고 나타난 검은 드래곤은 빅 벤을 휘감으며 차원문을 넘어왔다.

끼이익.

게이트는 닫혔다. 마치 괴수를 보낸 것으로 역할을 다했다는 것 마냥, 게이트는 검은 드래곤이 나오자마자 줄어들기 시작했다.

키기기긱.

검은 드래곤 스스로 발톱을 들어 게이트를 닫기 시작했다. 풍마룡 스스로 차원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에 히어로들은 긴장했다.

“지성...체?”

캬오오오!!

풍마룡은 런던 전역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한 시선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두려워마라. 내가 있으니.]

하지만 공포는 사그라들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최대한 시가지를 벗어나게 만든다. A1부터 K7까지 모두 풍마룡을 빅 벤에서 떨어뜨려. 어그로 끌리면 도시 수습해.]

지휘관의 지휘에 ‘어떻게’라는 의문은 없었다. 이능력자들은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 아. 기사단 여러분, 준비는 되셨습니까?]

다소 장난기가 깃든 지휘관의 우스갯소리와 함께, 이능력자들은 빅 벤을 향해 달렸다.

[풍마룡 레이드, 개시.]

S급 괴수, 풍마룡 토벌의 서막이었다.

* * *

“이것들 봐라. 코어 타임 이용해서 단물 쪽 빼먹으려고 하네?"

나는 유유자적 긴장을 풀고 있던 히어로들에게 긴급명령을 하달했다.

"마룡들 나오면 어떻게 대처하는 지 똑똑히 알려줘야겠어."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풍마룡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지가 달리고 목이 길쭉하고 날개 달린 풍마룡을 상대로 히어로들이 해야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민가에서 떨어뜨려 상대하는 것.

"펜릴, 도심에서 괴수들 상대하고 나면 제일 짜증나는 게 뭔지 알아?"

"뭐냥?"

"사태 수습."

괴수들은 그저 미쳐 날뛰기만 하고 사라지지만, 그들이 싸운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괴수들과의 전투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도 인명 피해지만, 재산 피해가 극심하다.

그리고 풍마룡이 나타난 빅 벤은 바로 근방에 대규모 병원이 있고, 영국 왕실의 상징과도 같은 버킹엄 궁전이 있다.

풍마룡과의 전투가 최소 반경 1km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생각하면, 놈을 시가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공원 방향으로 끌어당길 필요가 있었다.

"나중에 괴수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이 피해보상을 해달라고 드러누우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일정 금액은 그래도 보상해주는 거 아니냥?"

"아니야. 죄다 밀어버리더라고."

명왕성이 다가올수록, 이계신의 기운이 넘실거릴수록 사람들의 폭력성과 광기는 더욱 짙어진다. 파괴된 잔해와 함께 사람들은 거리에서 쫓겨나게 되고, 빈민들은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그들의 말로는 '괴인'이다.

'시가지에서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안 좋게 작용해. 무조건.'

초반부의 전투가 극후반부의 게임 난이도를 확 높여버리는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런던의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어디 지시대로 잘 하는 지 볼까?"

투두두두두!

히어로들은 열심히 풍마룡을 빅 벤에서 떨어뜨리려고 어그로를 끌었다. 하지만 풍마룡은 빅 벤을 점거하여 꼼짝도 않은 채, 빅 벤 안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쟤 우리가 아직도 저기 안에 있는 줄 아나봐."

"...저거, 설마 나도 노리는 거냥?"

펜릴은 살기를 내뿜으며 옅게 웃었다. 풍마룡이 내비치는 기운에 본능적으로 사냥꾼으로서 느낀 것이다.

"하, 감히?"

풍마룡이라는 맹수가 노리고 있는 사냥감이 지휘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해."

"냥?!"

나는 펜릴의 꼬리를 잡아당겨 그녀를 진정시켰다. 풍마룡에 대한 살기는 수그러들었지만 나에 대한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휘관, 침대에서 죽고싶냥?"

"그럴 리가."

다행히 나에 대한 살기는 뇌살이었다. 나는 펜릴을 다독이며 히어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살기, 저 놈한테 푸는 건 어때?"

나는 풍마룡을 가리켰고, 펜릴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나보고 저걸 죽여라?"

"그래. 그걸로 정식으로 '데뷔'하는 거지."

나는 펜릴에게 적당한 복장을 제시했다.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성적 어필이 강한 스킨이 아닌, 정식으로 동료가 되는 김펜릴의 초기 복장을 꺼내들었다.

"...흐응."

나와 맞춘듯한 하얀 정장에 펜릴은 자신의 몸을 유심히 살폈다. 육체의 베이스가 박라온인 만큼, 정장의 핏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몸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데 당연히 정장이지."

"처음?"

"그래. 지휘관의 곁을 지키는 SS급 풍속성 히어로."

다크 레기온의 간부 절풍의 펜릴이 아닌, 그녀가 아군으로 들어왔을 때의 또다른 이명.

"다녀와, <바나르간드>."

"...가기 전에."

펜릴은 A급 코어 하나를 꺼내, 기본 스킨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그 물건을 내게 건네며 자신에게 직접 채워달라고 혀를 내밀었다.

"이거, 당연히 해줄 거지?"

"물론. 그런데 색을 말이야, 이 색으로 해주면 안 돼?"

"...그거 생각나서 조금 싫은데."

"그래야 걔도 그냥 구경만 하지. 미국에서 영국까지 날아오는 거, 생각보다 금방 아니야."

펜릴은 울상을 지었지만 내 부탁을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푸른색과 민트색이 섞인 듯한 목줄을 채웠다.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풍마룡 잡았을 때...그거 알지?"

"당연하다냥. 지휘관, 승리의 주문을."

"이기고 돌아오면 뱃속 한 가득 민트초코를 넣어줄게."

쪽.

펜릴은 가볍게 내 입술을 훔치고 달아났다. 나는 그녀가 떠난 청량한 바람을 만끽하며 히어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해결사 보냈으니까 모두 길을 열도록."

무대의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는 법이다.

* * *

"큭! 젠장, 꿈쩍도 안 해!"

히어로들은 빅 벤을 점거한 풍마룡을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휘관에게 지시를 받은 대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화망을 펼쳤지만, 히어로들의 공격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풍마룡은 무관심한 모습으로 빅 벤 내부를 살폈다.

"젠장! 저 안에 지휘관 계신 거 아니야?!"

"그럴 리가! 그딴 말 할 시간에 당장 빅 벤에서 저거 치워!!"

히어로들은 비명을 질렀다. 풍마룡은 빅 벤에 올라있지만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스르르.

풍마룡의 비늘 사이에서 검은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3m는 넘는 검은 알덩어리는 빅 벤 주변에 떨어져 땅을 더럽히기 시작했고, 지상의 히어로들은 알들을 요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화하기 전에 부숴버려!"

캬아앙!

비늘 사이에서 떨어진 알들은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부화했다. 알을 찢고 태어난 늑대형 괴수들은 하나하나가 C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을 번들거리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젠장, 이래선 방법이-"

■■■■■■!!

순간, 풍마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날개를 넓게 펼치며 빅 벤에서 날아오른 풍마룡은 어딘가를 향해 선회하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풍마룡은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가 풍마룡이 노려보는 존재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훗."

하얀 정장을 입은 민트색 머리칼의 여인. 얼굴에는 늑대를 형상화한 검은 가면을 쓴 그녀는 풍마룡을 향해 손가락만 가볍게 튕겼다.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고오오오----

여인을 중심으로 녹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냥꾼은, 나야."

■■■■■■■!!

풍마룡이 포효를 내지르기 무섭게, 여인은 하늘을 밟으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풍마룡의 속도보다 더 빠른 신속의 움직임에 히어로들은 넋을 잃었다.

[전 이능력자들에게. 전장을 지정한다.]

지휘관이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바나르간드>라는 코드 네임의 여인은 풍마룡을 유인했다.

멘체스터.

이미 게이트로 인해 황무지가 되어버린, 황폐화 된 전장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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