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16화 (716/1,497)

〈 716화 〉2부 5장 10

런던 일대에 피난령이 떨어졌다. 수많은 차원문 관측학자들이 약 99% 확률로 열릴 것으로 추정하는 <절풍 게이트>에 런던 일대는 전운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전부 다른 도시로 빠져나갔고, 런던에는 오직 게이트에 대처하기 위한 히어로와 용병으로 온 헌터, 그리고 치안 유지를 위해 모인 군인들밖에 없었다.

"휴우, 아주 난리가 났군."

우리는 런던에서 대피하지 않고, 둘이서 바람속에 숨어 움직이며 런던 골목을 돌아다녔다. 펜릴은 펜리스 박으로서, 박라온의 몸에 깃들어 나와 함께 빠르게 나를 대영박물관으로 인도했다.

"벌써 다들 피신했습니다."

지금 나를 안고 달리는 이는 펜릴이 아니다. 펜릴은 '본 게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박라온은 SS급 이능력자의 힘을 사전체험하고 있었다.

"라온아, 저기 사람들 있다."

"예? 피난 권고로 도망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라온은 내게 눈짓을 보내며 저들을 구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어 라온의 잘못된 선택을 막았다.

"런던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도망을 치지 않았어. 왜 그러겠니?"

"...도망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미 라온은 서울의 사태를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북에서 내려오는 숱한 괴수들의 웨이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고 서울을 지키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른바, 쓰레기 할당제.

다양한 이유로 정당한 지시나 올바른 상황에 따르지 않는 이들이 20~30%가량 존재했다.

사람이 다섯 명 모이면 한 명은 쓰레기라는 말을 게임 속에 적절하게 버무린 제작사는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은 주인공 세력에게 큰 장해가 되도록 설계해뒀다.

"히어로들이 알아서 할테니 대피 안하고 뻗대는 놈들, 남아서 조회수 빨아먹을 생각으로 바깥 촬영 하고 있는 놈들, 그리고 대피하고 싶었지만 버림받은 이들. 아주 다양하게 남아있지."

나는 라온에게 건물 하나의 창을 가리켰다. 라온은 손에 바람을 모아, 그곳을 향해 투창하여 유리창을 깨트렸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자마자 인근에 있던 군인들이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자리를 이탈하여 군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고,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C92 구역에 긴급상황 발생!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를 발견!

침대에 누워있던 노인은 군인들의 인도하에 무사히 후방으로 이송되었다. 우리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량한' 이들을 구조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제법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누군가 유리창을 깨는 것으로 긴급구조가 필요한 자들을 알리고 있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이능력자다. 본부, 응답바란다.

...빌런이나 괴인은 아닌 듯 하지만 정체를 숨기는 것이 수상하다. 주의하도록.

"역시 마냥 무능하지는 않네."

유리창이 깨질 때마다 구조가 필요한 자들이 나오니 이상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했다. 영국 히어로 협회와 '대괴수괴인빌런차원문게이트대응전략처리본부', 이른바 '대처부'는 우리의 존재를 파악했으나 적극적으로 추적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들의 관심은 크게 두 곳에 쏠려있었다.

하나는 런던 게이트.

또 하나는 대영박물관.

"라온아. 잠깐 여기서 쉬자."

우리는 오래된 건물 안으로 숨어들어, 주인이 없는 빈 집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행히 안에는 방안을 촬영하는 홈카메라나 CCTV가 없었고, 우리는 본격적인 '작전'을 결행하기에 앞서 여론을 살폈다.

"괴도 저지."

나는 영국 커뮤니티와 글로벌 커뮤니티, 그리고 한국 커뮤니티 등 온갖 인터넷 여론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적절히 조합한 결과, 사람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공통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이 새끼 미친 거 아님? 런던에 차원문 생기는데 그걸 노려서 도둑질 한다는 게 말이나 됨?

- 아 글쎄 괴도 저지 본인이 아니라니까요!

- 아니면 그거대로 문제 아니냐? 어떤 미친 놈이 괴도 저지를 사칭해서 지금 게이트 터진 와중에 문화재 도둑질 하겠다잖아.

"괴도 저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상당하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진위야 어떻든, 국가적 재난을 틈타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악질아닙니까?"

"그러게. 어떤 쓰레기같은 놈일까?"

나다. 바로 이 몸, 창염의 피...가 아니고 백청화다.

'근데 이 세계의 P도 지금 박수치고 감탄하고 있을 듯.'

나니까 알 수 있다. '창염'이라는 개체로부터 파생된 '피닉스'이기에, 그녀는 내 행보를 읽는다면 배를 잡고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 상식적으로 괴도 저지 사칭범이 로제타 석을 훔쳐가겠냐?! 인력을 대영 박물관에 몰아넣고 빈 집을 털려고 하겠지!

괴도 저지를 사칭하여 사람들이 런던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든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나였다. 선량한 이유로 런던에 남아있는 이들이 많았지만, 자기 재산을 잃어버릴까봐 쉽사리 도망가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세상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결국 이 모든 행위는 내가 '여자'를 취하기 위한 중간과정이라는 걸.

- 쓰레기

- 쓰레기

- 개쓰레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가 외친다. 나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묻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게 현실도 아니고 게임인데 뭐 어때?'

절풍 게이트라는 국가 재단 사태를 이용하여 내 이익을 가져오는 내 행위에 대해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나의 하렘을 위해서, 그가 이미 저질렀던 것처럼, 나는 반 국가적 테러범이 될 것이다.

"만약에 이 뒤에 전부 지휘관이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크게 분노할 겁니다."

"괜찮아. 나는 철저히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테니까. 라온아, 그래도 내가 욕 먹는 거 막으려면 착한 일은 좀 해야겠지?"

나는 라온에게 허름한 건물의 지하를 가리켰다. 라온은 바람의 창을 던지려고 했으나,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야. 저기는 우리가 진짜로 '습격'을 해야하는 곳이야."

절풍 게이트가 일어나려고 해도 사람들이 모여 숨어있는 곳. 나는 미리 준비한 가면을 착용했다.

"라온아, 어떻게 할래. 네가 직접 할래, 아니면 펜릴보고 시킬래?"

"......."

라온은 내가 건넨 가면에 수치심으로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수치심을 억누르고 마법소녀 복장도 소화해낸 그녀도 이 과감하고 대담한 복장에 입을 열지 못했다.

"...사장님, 이거 말고 다른 복장은 없습니까?"

"응, 없어."

있어도 꺼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의식이 펜릴에 의해 점거당한 동안 만들어낸, A급 코어-영국산으로 만든 마력 슈트를 당당히 펼쳤다.

위이잉.

검은 비키니 아머를 중심으로 민트초코 색으로 반짝이는 에너지 슈트. 입으면 A급 이하의 공격은 전부 막아내는, 펜릴이 직접 만들어낸 마력 슈트였다.

캣 걸 슈트. Made By 김펜릴. 이른바, [괴도 민초캣].

"이거, 유륜이랑 음부만 제외하고 다 드러낸 셈이 아닙니까!"

박라온은 씩씩 성을 내며 소리쳤다. 실제로 마력이 흐르는 에너지 슈트 부분이 대부분이었고, 유륜과 중요 부위를 가리는 검은 면적은 슬링샷에 준할 정도로 좁았다.

"당연하지. 이 슈트의 컨셉은 민트초코니까.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에 초코칩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거 봤어?"

자고로, 노출도와 방어력은 비례한다고 하더라.

"이거 봐! 이 사이에 마력으로 코팅되어서 결코 몸이 노출되지 않아. 그냥 겉에 전신 라택스 슈트 두른 거랑 다를 게 없어."

"누가봐도 치녀잖습니까!"

"괜찮아! 어차피 이 지구 사람들 중에 박라온이라는 사람이 이걸 입고 있는 걸 눈치챌 사람은 없어!"

"으, 으으...."

박라온은 고민에 빠졌다. 마침 시간이 다 되었기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큥 스위치, 온!"

나는 박라온의 입술을 훔쳤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내 현란하고 끈적한 혀놀림에 점차 혼이 빠져나가듯 눈이 몽롱해졌고, 곧 혀놀림도 박라온 답지 않게 요염해졌다.

뿅.

라온의 엉덩이 뒤에 마력으로 빚어진 꼬리가 튀어나왔다. 펜리스 박으로서 의식을 되찾은 펜릴은 샐쭉 눈웃음을 치며 입술을 떨어뜨렸다.

"사람을 수치사시키려고 작정했냥?"

"입어줄 거지?"

"물론이다냥."

펜릴은 마력슈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옷 위에 마력 슈트가 착 달라붙어, 완벽한 슈트 차림이 되었다.

톡, 톡톡.

펜릴은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청량한 마력이 주변에서 뿜어져나오며, 펜릴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미소지었다.

"지휘관. 저를 펜리스라고 불러주시겠어요?"

그녀는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번들거렸고, 나는 그녀의 슈트를 가리켰다.

"원래 옷은 어디로 보냈어?"

"슈트 아래에 입기 불편해서 다 찢어버렸는데요. 속옷까지."

"...그럼 마력 슈트 해제하면 알몸 아니야?"

"그게 더 좋은 거 아니에요?"

나는 펜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라온의 정신을 잠시 삼킨 펜리스는 펜릴 7 : 라온 3 의 비율로 섞였다.

"그럼 괴도 펜리스 양, 작업 시작이야."

우리는 괴도가 되어, 당당히 대영 박물관의 로제타 석을 부수고 큐브를 훔칠 것이다.

"그런데 지휘관. 지휘관의 이름은 뭐로 할 거예요? 제가 당신을 지휘관이라고 안에서 부를 수도 없잖아요."

"음.... 이거면 되겠네."

나는 나의 정체를 암시하면서, 나를 눈치채지 못할 가명을 만들어냈다.

"페닉스(Penix)."

결코, 페니스가 아니다.

결코, 피닉스가 아니다.

"다크 레기온을 몰락시키고 새로운 세계의 흑막이 될 하렘 마스터."

나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악의 조직이자 괴도 집단의 수장이 될 것이다. 마법소녀 히로인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원 간부들과 함께, 당당히 죄를 저지르며 큐브를 회수할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의 큐브를 훔칠 거야. 그리고...."

현재 단원은 절풍의 펜릴 한 명 뿐이지만, 언젠가 7명이 모두 모이게 되는 날이 오게 되리라.

"그거로 큐브마다 각각 다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머신을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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