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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15화 (715/1,497)

〈 715화 〉2부 5장 09

<버킹엄 궁전, 영국 왕실 국왕 집무실.>

갑작스러운 괴인 소동에도 영국은 큰 무리없이 괴인들에 대처했다.

영국의 여왕이자 S급 히어로, 아르엘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기에 국민들은 안심했다. 그녀는 영국의 자랑이며, 여왕이며, 아이돌-우상이었다.

- 영국은 왕실이 있어서 천만 다행이다!

민주주의 혁명에 따라 세계 수많은 국가들은 왕정이 끝났다. 왕가의 핏줄이 이어지는 곳도 대게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왕족이 맥이 끊기거나 아예 혁명 당시 처형된 나라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달리, 왕가가 여전히 남아있는 국가들은 이상하리만큼 왕족들의 이능력자 비율이 높았다.

특히 왕족들은 하나같이 최소 B급의 힘을 각성했다. 그중에서도 아르엘은 S급 이능력자로 땅을 다루는데 최고봉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이번 스톤헨지 공략 작전에도 그녀의 능력은 100%, 아니 그 이상을 발휘하여 스톤헨지가 파괴되지 않고 괴인들을 퇴치할 수 있었다.

이능력을 이용해 스톤헨지 위에 시멘트를 덧씌워 보호막으로 삼는다.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섬세한 작업, 그리고 압도적인 마력량을 요구하는 기술은 분명 아르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자.... 어떻게 나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걸 정확히 지시해내는 존재에 대해, 아르엘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은 것 같군."

아르엘 개인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퀸>으로서의 아르엘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르엘은 이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S급 능력자의 이능력 사용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히어로 위키에도 등재되어있는 공유정보와도 같은 것이다. 여느 히어로는 사용하는 기술과 사소한 습관까지 위키에 등록되어있을 정도로, 이능력자들에 대한 정보는 공공재와도 같았다.

인류 평화를 위해 애쓰며 원탁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휘관이라면 아르엘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그래도 그건 모르겠지."

아르엘은 속으로 긴장하며 빨리 정보가 들어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여왕으로서 통치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S급 히어로로서 최소한의 의견 타진과 행정 참여는 가능했다.

그녀가 현재 원하는 것은 지휘관에 대한 정확한 정보.

내가 모르는 남자가 나에 대해 어떻게 이능력을 사용하면 되는지, 어떤 식으로 힘을 다루면 되는지, 어떻게 써야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발칙하게."

아르엘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체스말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옅게 웃었다. 그녀가 움켜쥔 퀸 옆에는 킹이 당당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퀸은 전방위로 움직일 수 있는 반면, 킹은 한 칸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킹이 죽으면 게임이 끝난다.

괴수와 괴인, 다크 레기온을 비롯한 모든 적들은 앞을 가로막는 기사와 성직자를 죽이고 킹을 사로잡기 위해 물밀듯이 몰려온다.

인류를 위해, 지휘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다.

"이왕이면 우리 영국을 위해...."

삐비빅.

마도기어의 알람이 울렸다. 아르엘은 근엄한 얼굴로 마도기어를 두드려 호출에 응했다.

"무슨 일이오, 펜워드 경."

[여, 여왕님. 두 가지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식은 땀을 흘리는 펜워드 경은 몹시 초조해보였다.

[하나는 '절풍 게이트'가 이틀 뒤에 열릴 것이라는 '천문대'의 예측 보고입니다. 정확한 시간은 새벽 4시부터 4시 30분 경입니다.]

"그건 변한게 없군."

[예. 문제는 장소인데....]

펜워드 경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멘체스터가 아니라, 런던에서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말."

아르엘은 깃털펜을 자신도 모르게 부러뜨렸다.

"어째서 갑자기 런던이란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마력의 흐름이 런던 인근으로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지휘관, 또는 다크 레기온 간부들의 준동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경의 생각은 어떻소?"

[.......]

아르엘의 질문에 펜워드는 눈을 아래로 깔았다. 21세기에 마치 진짜로 왕정시대의 절대권력을 가진 여왕을 마주하는 것처럼, 펜워드는 기가 죽은 채 입술만 뻐끔거렸다.

[그, 저도 잘....]

"...경, 혹시 지휘관의 소재는 파악되었소?"

[아, 예! 런던에 계신 걸로 확인되었습.... 아! 혹시 그들은 지휘관을 노리고...!]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런던 시민들에게 피난 권고를 내리시오. 그리고 혹시나 모르니 여력이 멘체스터에도 일부 히어로들을 남겨주시오."

아르엘은 바뀐 장소에 맞춰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통치자의 대표로 뽑힌 자보다 여왕의 능력이 더 뛰어났다.

"...이제 됐소. 보고는 끝이오?"

[아닙니다. 게이트가 한창 일어나려는 와중에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스럽습니다만, 여왕님께서 무조건 보고하라고 하셔서....]

"뭔가?"

[괴도 저지(Judge).]

순간, 아르엘은 망가뜨린 깃털펜을 완전히 으스러뜨렸다.

"그 범죄자가 왜?"

[...대영 박물관에 예고장이 날아왔습니다. 괴도 저지가 '로제타 석'을 훔쳐가겠다고 했습니다. ......게이트가 열리는 시각에.]

"이런 미친...?"

아르엘은 상스럽게 욕지기를 입에 내뱉었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넘어온 대영 박물관에 붙은 괴도 저지의 예고장에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왜?"

아르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 * *

괴도 저지(Judge).

무언가를 심판한다는 영단어를 자신의 이명으로 쓰는 그녀는 빌런이며, 그 위험도는 S+급으로 추정된다.

아니, 정확히는 SS급으로 추정된다.

S+급 히어로의 방어를 뚫고 예고한 물건을 훔쳐 넘겨버린 그녀의 도적질에 숱한 문화재가 도둑을 맞았다.

단순히 도둑질만 한다면 그녀에 대해 ‘괴도’라고 칭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문화재를 절도하기만 했다면, 그녀는 ‘의적’이라고 칭송받지 않을 것이다.

정체도, 국적도, 성별도 아무도 모르는 괴도 저지는 누구인가?

“영국 여왕, 아르엘.”

“후냥.”

펜리스 박은 두 손을 아래위로 놓으며 눈을 빛냈다.

“여왕이 괴도 저지라고?”

“그래.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정체지.”

여왕이 괴도.

괴도 중에 여왕님과 같은 성향을 가지는 존재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의 직업이 한 나라의 여왕인 자가 괴도 짓을 하고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괴도이면서 여왕이라는 속성을 동시에 가진 기이한 이 여인이 문화재를 약탈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히로인’이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 대영 박물관에는 영국의 문화재가 거의 없다는 걸.”

“근데 왜 대영 박물관이냥.”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이 전부 모여있다 이거지.”

“아항. 여왕님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셨구만!”

펜릴은 아르엘의 심정을 정확히 캐치했다.

“영국인으로서의 나인가, 아니면 과거 선조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아르엘로서의 나인가.”

“그래서 약탈한 문화재를 훔쳐다가 그 나라에 돌려준다는 거?”

“그런 셈이지.”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히로인들 중에 이른바 ‘혐성’으로 설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절풍이야 내가 싫어하는 거고 천가을은 빌런도 히로인이라는 장치에 희생된 여자인 만큼, 천성이 쓰레기인 히로인은 절풍밖에 없다.

아르엘은 괴도 저지로서 대영 박물관의 물건들을 주로 노렸다. 그리고 틈만나면 지하로 이동하여 서유럽 일대의 박물관들을 털었다.

그녀의 주요 타깃은 대영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 두 곳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동료로 맞이할 거야.”

“여왕까지 동료로 들이려고 하다니…. 역시 지휘관이다냥.”

“다크 레기온의 간부도 동료로 들이는데 뭐가 어때서? 나중에는 여신도 동료로 들일 지도 모르는 일이지.”

“흐흥, 기대하겠다냥. 그래서 어떻게 동료로 영입할 생각?”

펜릴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괴도 저지의 예고장을 가리켰다.

“이거, 본인이 한 거 아니지 않느냥.”

“그래. 민트초코 좋아하는 누가 몰래 가져다 놓았지.”

나는 괴도 저지의 예고장을 모방했다.

그리고 내가 보물을 훔쳐가겠노라 선언했다.

<로제타 석>.

이집트의 유물로, 프랑스가 발굴하여 대영 박물관에 들어가게 된 문화재다.

본래라면 이집트에서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겠지만, 인류는 문화재에 신경을 쓰기에는 괴수와 괴인이라는 위협에서 당장 살아남기 급급했다.

“어떻게 할 거냥. 다들 의심하고 있다냥.”

“의심?”

“괴도 저지가 ‘가짜’라고.”

인터넷은 한창 예고장이 진짜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 하고 있다.

-괴도 저지는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준다고 하지, 훔쳐간다고는 안 해!

예고장이 날아든 수법과 방법은 진짜와 비슷했지만, 괴도 저지의 ‘철학’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식으로 우리의 예고장을 가짜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괴도 저지는 그런 말 안 해!

“신앙 수준이군.”

“문구 실수한 거 아니냥?”

“아냐. 정확해. 왜냐면 우리가 사칭한 거라는 걸 알아야 하거든.”

나는 주먹으로 벽돌을 부수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로제타 석을 부숴버릴 거야. 산산조각.”

“......후냥?”

“펜릴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선물하나 줄게.”

나는 펜릴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걸었다.

“소원을 빌면 민트초코가 원하는 만큼 나오는 비밀의 구슬. 어때?”

“...지휘관.”

펜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 괴인인데 방금 지휘관의 아이를 임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냥.”

그렇다.

로제타 석 안에는 이계신의 큐브가 있고, 나는 그걸 소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마력을 집어넣으면 민초맛 아이스크림으로 변환시키는 무한민초생성기.

‘큐브 하나 컷.’

이계신의 코어(1/27), 민트초코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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