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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13화 (713/1,497)

〈 713화 〉2부 5장 07

<영국 히어로 협회, '카멜롯 홀'.>

끼요오오옷!!

레이더에 새의 비명이 들린다. 아니, 기묘한 날개달린 괴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사람을 닮아있지만, 사람의 모습을 한 짐승이며 '괴물'들이었다.

애애앵---

B급 괴인이 무려 열일곱.

한 자리에 모여 누군가를 향해 시위를 하는 듯한 포효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괴성이었다.

괴인들은 지금 도발하고 있다. 누구에게? 금발벽안의 청년에게.

"다크 레기온...!"

괴인들을 넓게 포위한 히어로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괴인들이 인간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이야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저들의 행위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였다.

쪼르르.

괴인들은 마치 고양이가 오줌을 지리듯 소변을 뿌렸다. 명백한 영역 표시에 히어로들 뿐만 아니라 그걸 구경하고 있던 이들도 소위 뚜껑이 열렸다.

"당장 저 괴인들을 저곳에서 쫓아내야합니다!!"

"남의 땅 문화재를 두고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괴인들이 점령한 곳은 바로 스톤헨지.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역사적 가치가 깊은 고분군에 괴인들은 터를 잡았다. 바위 위에 하나 하나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짐승처럼 자신의 영토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크윽...!"

협회는 고민에 빠졌다. 고고학이나 역사학적으로 생각하면 문화재는 반드시 보전해야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괴인들을 가만히 내버려둬도 되는 것인가?

"야! 괴인 새끼들아, 나와!!"

끼요오옷.

괴인들은 히어로들의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분군을 이탈하지 않았다. 오히려 쏠 테면 쏘아보라는 식으로 히어로들을 도발했다.

"저 자식들...!"

괴인들은 자신들이 점거한 지역의 가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인간들이 쉽사리 전투를 펼치기 애매한 위치에 히어로들은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괴인들이 이탈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스톤헨지가 파괴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괴인들을 퇴치해야하는지.

차라리 C급 괴인 100명이었으면 쉽게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C급 괴인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A급 한 명만 투입하면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고 괴인들만 쏙 잡을 수 있었다.

차라리 A급 괴인 10명이었으면 쉽게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재가 아무리 가치를 자랑한다고 한들, A급 괴인 10명이라면 '핵이라도 쏴야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의 위협이다.

하지만 정말로 애매한 숫자였다.

들어가서 진압하자니 문화재 파괴는 확정되어있고, 가만히 내버려두자니 방치하기에는 당연히 큰 문제가 되는 놈들이다.

진퇴양난.

협회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가웨인 경 불러!!"

"그랬다가는 스톤헨지도 함께 날아갈 걸?"

"그럼 그보다 약한 놈들 불러!"

"그랬다가는 스톤헨지 절반이 파괴될 걸?"

"그럼 비슷한 놈들 불러!!"

"B급 17명 맞춰서 부르면 싸우다가 저 놈들 도망가는 거 아니냐?"

"썅, 그러면 어쩌라고!!"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았다. 괴인들이 문화재를 인질로 삼아 점거한 초유의 사태에 결국 히어로들은 선택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펜워드 경, 결단을!"

"으, 으으...!"

영국 행정부의 수반이자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을 겸하고 있는 행정가, 펜워드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막중한 책임에 어깨가 무거웠다.

당장 괴인들을 처리해달라는 이들에 더불어, 스톤헨지의 역사적 중요성과 문화재 파괴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하는 이들의 연락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나, 나는...!"

그는 선택을 내리기에 막중한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이 책임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영부영 기다리다가는 괜히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음에도, 히어로들은 협회장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음에도 그는 선택을 주저했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스톤헨지는 괴인 17명과 함께 사라진다.

"차라리 괴수들이었으면...!"

B급 17마리 괴수였으면 헌터들을 동원했을 것이고, 헌터들이 스톤헨지를 파괴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배상을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활한 헌터들은 괴'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했다. 괴인, 그 중에서도 다크 레기온의 괴인은 코어가 나오지 않고 손해만 막심한 괴인으로 유명했다.

"나는-"

[여기는 <퀸>.]

"......폐하?"

스톤헨지 인근.

거대한 흙벽의 위에 올라선 하얀 드레스의 여인이 스태프 하나를 쥔 채 당당히 스톤헨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괴인들을 축출하겠소.]

"자, 잠깐만요! 설마 그걸-"

구구구구.

스톤헨지를 중심으로 거대한 토사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 * *

"저질러 버리네."

나는 펜릴과의 질펀한 마력공급을 마친 뒤, 빅벤에 숨어 가상 스크린을 통해 스톤헨지의 광경을 마음 편히 구경했다.

"화끈하다냥. 저 여자."

"그래, 영국의 여왕님이자 S급 히어로, <퀸>이시지."

인간 히로인 10명 중에 외국인 비율은 생각보다 많다.

정슈리, 히카리, 샤오린만 하더라도 무려 3명이며, 한국인은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은유하, 천가을, 백희아 6명이다.

각 히로인 별로 저마다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에 한 명 빠진 '속성'의 여자가 있다.

금발벽안의 공주님(여왕님).

금발금안의 재계 여왕님(동양인)이 아니라, 흔히들 새끈하게 생긴 금발거유 외국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령이 외국인 얼굴이라 외국인 비율이 높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 히로인 중에 금발벽안 외국인 한 명 정도는 있는 게 밸런스가 맞았다.

히로인 No.8.

영국의 여왕이자 S급 히로인인 아르엘은 본인이 직접 스톤헨지 괴인 점거 사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여왕님이라서 그냥 뒤에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았는데."

"영국에 있는 S급 히어로 중에 저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여왕 뿐이지."

구구구.

스톤헨지를 중심으로 고분 전체를 뒤덮는 토분이 형성되었다. 아르엘의 지시에 따라 히어로들은 일제히 토사 안쪽으로 뛰어들었고, 외부와 바깥이 차단되는 돔 형태의 흙결계가 만들어졌다.

"펜릴."

"잠깐만 기다리라냥."

펜릴은 내 얼굴을 붙잡으며 입을 맞췄다. 나는 그녀와 혀를 섞으며 그녀가 건네주는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펜릴의 괴인'들이 가진 시야.

[저희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죠?! 여왕님께서 돔을 만드셨습니다!]

헬기가 시끄럽게 돌아다니며 흙벽만 애타게 구경하는 것과 달리, 나는 직접 괴인의 시야를 공유받으며 내부 상황을 살폈다.

- 먼저 시야를 차단할 것.

나는 풍속성 괴인들을 공략하는 방법을 빠짐없이 알려줬다. 펜릴도 괴인들에게 적당히 '죽는 법'을 알려줬다.

[히어로들의 영혼에 민트초코 냄새가 날 때까지 점액에 절여버리라냥.]

펜릴은 괴인들을 버림패로 사용했다. 간부보고 괴인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로 만들라는 건 선을 넘는 부탁이었지만, 나는 펜릴에게 몸을 대주는 거로 그녀를 설득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을 팔아 펜릴의 괴인을 고용했다. 그리고 펜릴의 괴인들은 모두 주인의 행복을 빌며 만족하며 죽음의 임무에 임했다.

- 갇히는 순간, '괴수'로서 본 모습을 보여라.

끼요오옷!!

괴인들은 저마다 폭주하기 시작했다. 검은 갑옷 같은 외형이 네 발 달린 사자와도 같은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고, 내부는 민트초코색깔 에테르체가 되었다.

[마룡화?!]

[아닙니다! 그냥 폭주에요!]

겉모습은 풍마룡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펜릴이 마력을 불어넣어 괴수로 만들었기에, 그들은 간부 마력의 지향점인 '풍마룡'을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전부다 준A급 괴수들.'

원래 베이스가 날개 달린 조류계 괴수들이라 풍마룡에 날개가 달린 형상이었다. 스핑크스 고양이에 날개가 달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캬아아악!!]

하나 하나가 3m를 넘어가는 괴수만 아니라면 분명 반려동물로 큰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력에는 인간을 탐닉에 미치게 만드는 민트초코향이 물씬 풍겼다.

[윽, 이 달콤한 향기는...!]

[현혹되지마라! 그리고 씨발 달콤은 무슨! 치약 냄새구만!]

[날아서 도망치려고 합니다!!]

괴수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석주를 이탈했다. 하지만 S급 히어로가 만들어낸 결계는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가로막았고, 히어로들은 고분에서 하나 둘 떨어지는 괴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구구구.

돌무덤 주변의 흙들이 천천히 돌무덤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스톤헨지를 보호하기 위해 콘크리트 옷을 덮어 씌우듯, 흙으로 된 마력의 결계가 바닥부터 돌무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역시 S급 방어력 최강.'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 중 방어력 하나 만큼은 탑 3 안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그녀는 내 작전대로 수비에 전념했다.

하늘에 결계를 치고, 땅의 석주는 바닥부터 아래에서 보호막을 씌웠다.

[캬아아앙!!]

철퍽!

괴수 하나가 날개를 공격당해 석주에 떨어졌다. 돌덩이가 파괴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결계는 파괴되지 않았다.

[키에엑!!]

날개가 부러져 땅에 떨어진 괴수는 맥없이 히어로들에게 퇴치당했다. 아니, 사냥당했다. 땅에서 돋아난 족쇄에 전신이 휘감긴 괴수들은-

"......."

갑자기 시야가 끊겼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펜릴은 무표정한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어...왜 갑자기 슬프지?"

펜릴은 자신이 우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진정해. 마력이 과해서 눈물로 흘러나오는 거야."

"그, 그런 가냥? 근데 왜 자꾸 여기가...."

펜릴은 울면서 웃었다.

"왜 자꾸 가슴부분이...아픈 건지 모르겠다냥."

"마력과잉통증이야."

"그런 게 있을 리가 없-"

나는 그녀의 입을 입으로 막았다. 펜릴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지만,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푸하. 우리 펜릴, 마력 공급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니야? 아래 위로 마력이 물처럼 새어나오는데?"

"......진짜 그런 거냥?"

"물론이지."

펜릴은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한쪽 눈만 가늘게 뜨며, 다시 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끝날 때까지, 나 좀 달래줘라냥."

"물론이지."

나는 펜릴의 감정이 안정될 때까지, 그녀를 품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큰일날 뻔 했네.'

하마터면 절풍이 깨어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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