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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710화 (710/1,497)

〈 710화 〉2부 5장 04

우리의 움직임은 진작 영국 협회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내가 지휘관이라는 건 알고 있을테고, 나는 내 정체를 숨길 생각이 딱히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내 앞에 있는 펜리스 박, 그러니까 '존재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정체를 파악하느라 골머리를 썩힐 것이다.

"왜 그러세요?"

"은근슬쩍 포크로 내 쇼트케이크 넘보길래."

나는 내 자리에 놓인 케이크를 야금야금 빼앗아가는 그녀의 포크를 쳐냈다.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은근슬쩍 민트초코 케이크가 묻은 포크로 쇼트케이크를 야금야금 노리고 있었다.

민트를 묻히는 건 용서할 수 있어도, 딸기를 훔쳐가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너는 네 거 먹어."

"같이 먹으려고 산 거 아니었어요?"

"이건 내 거. 같이 먹으려고 산 것도 절반 넘게 먹어놓고는 지금 그러기야?"

"쪼잔하기는."

"딸기 앞에서는 쪼잔해도 돼."

박펜릴은 입술모양으로 궁시렁거리며 자기 몫의 민트초코 케이크를 크게 퍼먹었다.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시키면 탕수육부터 사라지는 것과 가같은 이치로, 우리가 주문한 세 가지 음식 중 같이 먹자고 주문한 음식은 박펜릴에 의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딸기 쇼트케이크.

박펜릴이 선택한 민트초코 케이크.

그리고 둘이 함께 선택한, 영국 음식에 대한 악의가 점철되어 실체화한 "딸기민초 파이."

다소 실험정신이 강한 자가 만든 파이는 잘 구워진 파이 안에 딸기맛 크림과 민트초코가 섞여 형언할 수 없는 맛이 느껴졌다.

박펜릴은 맛있게 먹고 있지만, 나로서는 딸기향 치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지.'

영국 요리에 대한 괴식 이미지가 점철되어 현실로 나타난 이 물건에 대해 과연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최소한 인간이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여길 것이다.

다행히 박펜릴은 사람이 아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박펜릴은 정체 불명의 혼종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자다.

사람의 육체에 깃들어있지만, 정신은 요괴 고양이라서 음식을 먹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 누가 민트 초코 딸기의 삼위일체 케이크를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괴식을 먹는 사람이 바로 괴인이지.’

그리고 히어로 협회는 열심히 박펜릴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하고 있으나, 인간의 이성적 심리장벽을 무너뜨리는 식성에 혼란에 빠졌다.

과연 영국 유명 디저트 맛집들을 섭렵하며 민트초코만 제패하고 다니는 박펜릴, 그녀는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마력감지'에도 잡히지 않고, 여권을 조회해도 없는 존재로 나타나고, 협회에서 모른 척 사람을 보내면 나를 데리고 빛처럼 사라지는가?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이 근방은 전부 다 먹어봤으니까 슬슬 호텔로 가야지."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다.

데이트라고 말은 했지만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자가 영국에 왔다고 방방곡곡에 알리는 건 전부 계획된 움직임이다.

결코 민트초코의 본고장에 와서 박펜릴의 호감도를 올리고 겸사겸사 영국의 딸기 디저트를 섭렵하고자 하는 의도는 1할이 채 되지 않는다.

"정부도 히어로도 협회도 모두 지휘관의 영국 방문을 알아챘으니, 분명 시비가 생길 거야."

정부와 협회는 지휘관을 지키려 할 것이다.

히어로와 헌터들은 지휘관의 마력을 공급받고 싶어 할 것이다.

괴인이나 빌런들은 지휘관을 납치하여 지휘관의 힘을 독점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은 지휘관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김펜릴도 처음에는 나를 죽이러 왔었잖아? 다른 녀석들도 지휘관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면 감시하거나 사람을 보낼 걸?"

"그러니까 일부러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그게 이번 여행의 목표지."

해외에서 머무르고 있는 간부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휘관에게 머물게 한다. 이를 통해 최소 두 명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던 한국에 시선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마암룡 아지다하카.

지륜의 히드라.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 등지에서 간부로서 기반을 다잡던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휘관의 정체를 파악한 뒤, 적절한 계획을 세워 한국으로 수하들을 보낼 것이다.

즉, 이번 영국 여행의 가장 큰 목표는 '히로인의 어그로'를 끈다는 것이 지상 과제다.

결코, 박펜릴과 데이트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이거 봐. 지금 우리 동선 누구 눈과 귀로 쏙쏙 들어가고 있으니까.”

“...세상에. 변태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우리를 염탐하며 우리의 영상을 촬영해 곳곳에 퍼뜨리는 자들만 족히 수 십이 넘는다. 나는 포장한 디저트를 챙겨 박펜릴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갈 곳으로 가자.”

“어딜?”

“영국에 왔으면 관광을 하고 가야지.”

게이트는 맨체스터에 열릴 지언정, 모처럼 온 김에 하나 챙겨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남들 모르게 빨리 다녀오자고. 부탁해, 펜리스 박.”

“후후, 그럼 실례한다냥.”

박펜릴은 싱긋 웃으며 내 허리에 손을 휘감았다. 그리고 가볍게 땅을 박차고-

휘릭!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100m 가량을 뛰어오른 박펜릴 덕분에 우리를 염탐하던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역시 눈치 못 채는 구나.”

SS+급 능력자가 작정하고 바람에 정체를 숨기니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박펜릴은 내가 인도하는 곳으로 날아가 발을 디뎠다.

빅벤의 위.

나로서는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운 곳이었지만, 박펜릴에게는 그냥 높은 곳에 지나지 않았다.

“펜릴.”

“왜 그러냥?”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펜릴의 말투는 금방 편해졌다.

“여기서 누가 민트초코 불태우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날아올 건가요?”

“달에 있어도 우주 공간을 달려서 날아올 거다냥.”

역시 펜릴의 어그로를 끄는 건 민트초코다. 그리고 펜릴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한 어그로도 함께 끌릴 것이다.

"박펜릴, 네가 해야할 일이 하나 있어."

"시켜만 달라냥. 민초 불태우는 것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다냥."

소곤소곤.

나는 런던에 와서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 당당히 밝혔다. 펜릴은 한참동안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허탈해하며 웃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냥?"

"물론이지. 나는 두 말 안 해."

"네가 크게 위험해질 수 있다냥."

"네가 적절히 연기만 해준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해결할 수 있어."

모든 것은 박펜릴에게 달렸다. 절풍이 아닌 간부 펜릴이라면 실패할 리가 없는 최고의 작전이다.

"그러니까...."

나는 박펜릴에게 하늘을 가리켰다.

"코어 좀 모으고 와줄래?"

"...난 진짜 어떻게 되어도 모른다냥."

박펜릴은 하는 수 없이 빅벤을 떠났다.

* * *

"지휘관께서 실종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펜워드 경, 진정하시오."

"진정이라뇨!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왕가의 사람들은 성을 내며 관료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사라진 지휘관에 대한 문제는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만약 지휘관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영국은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령 보디가드가 붙어있다고 한들, 영국은 책임을 져야했다.

"진정하세요, 모두."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와 함께 금발의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냉엄하고 지엄한 얼굴의 그녀는 도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함께 입국한 여인, 펜리스 박에 대한 정보는 다 확인했습니까?"

"예. 신원불명입니다. 협회에도 조직에도 원탁에도 등록되지 않은 이능력자입니다. 지휘관 개인의 호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아니그러한 곳이 없겠지만, 펜리스 박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은 수도없이 갈렸다.

과연 이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정말로 모든 디저트를 섭렵하기 위함인가?

"여권에 적힌 펜리스 박이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확인해보세요. 협회와 국제 헌터 길드에 혹시 이명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박'이라는 성을 붙인 것으로 보아, 분명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히어로일 겁니다."

모두가 여인의 목소리를 경처하기 시작했다.

"S급 탐지기에도 걸리지 않는 걸 보면 SS급 이상이 분명해요. 하지만 그런 존재를 우리가 모른다? 이 경우는 하나밖에 없죠."

"말로만 듣던 지휘관의 비밀병기...!"

"예. 그걸 이번 영국행에 드러냈어요. 그게 무엇을 말하겠어요?"

여인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번 영국에서의 게이트를 펜리스 박의 데뷔무대로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허어, 나라에 닥친 재앙을 어찌 그런 식으로...?"

"좋은 일이죠. 그래도 직접 와서 해결해준다는 거니까."

여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여인의 예측은 틀린 일이 거의 없었고, 국정 운영에 큰 도움을 주는 예언가와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지휘관 노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고작 한 명을 데리고 돌아다니면 어쩔-"

펜워드 경이 궁시렁거리기 무섭게-

삐비빅.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타 감지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왕실 레이더가 경고음을 마구잡이로 뿌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

"패턴, 녹!"

관료들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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