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09화 (709/1,497)

〈 709화 〉2부 5장 03

정령은 마력으로 이루어져있다.

간부 또한 마력으로 이루어져있다.

간부와 정령의 차이가 있다면 간부에게는 테라의 오염된 마력이 깃들어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다.

민트초코를 사랑하는 사람과 민트초코를 혐오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 수준으로 극명한 차이가 나지만, 둘 다 민트초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건 똑같다.

즉, 간부 또한 조건이 맞으면 타인에게 빙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애초에 그가 피닉스로서 창염의 몸에 빙의한 것처럼, 다른 간부들 또한 다른 인간의 몸을 꿰차고 자신이 조종할 수 있다.

바로 지금 내 옆에있는 '펜리스 박'처럼, <절풍의 펜릴>이 풍속성인 박라온에게 빙의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혼돈환룡의 빙의 매커니즘과는 다소 다르다.

이능력자가 죽은 간부의 코어를 습득하여 힘을 얻는 것처럼, 간부는 인간의 코어에 깃들어 정신을 억누르고 자신이 육체를 차지한다.

펜릴은 본인으로서 존재하기를 선호하기에 스스로의 육체를 마력으로 빚어 돌아다니지만, 인간의 몸에 깃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조건 하나, 간부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어야 한다는 것.

조건 둘, 인간은 간부에게 온전히 육체의 주도권을 내어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조건 셋, 둘 사이에 불변의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

과거 피닉스가 상대했던 아르엘-펜릴 조합의 경우처럼, 간부는 인간의 몸에 깃들 수 있다. 박라온은 펜릴에게 몸을 내어줬고, 펜릴은 박라온의 육체로 내 보디가드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

정신적으로는 펜릴을 먹고, 육체적으로는 박라온을 먹는다. 박라온을 상대로 펜릴을 범하듯 할 수 있다는 짜릿한 쾌감이 나를 가득 채웠다.

"왔노라, 이곳에."

박펜릴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두 팔을 벌리며 영국의 공기를 만끽했다. 스모그 가득한 도시지만, 박펜릴은 미세하게 풍겨오는 민트초코의 향기를 찾아 코를 킁킁거렸다.

영국.

괴식의 나라로 유명한 이곳은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 세계에서도 그 위세를 떨쳤다. 정어리 파이가 대세로 자리잡은 것처럼 오히려 현실보다 심했다.

그 정점에 민트초코가 있다.

이 세계에서 민트초코는 김펜릴 공략의 핵심인 동시에 영국음식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세계 멸망의 장치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펜리스. 만약에 아무 소원이나 빌 수 있다면 말이야, 전 세계의 음식에서 민트초코 맛만 나는 세계라면 어때?"

치킨도 김치도 민트초코도 모두 민트초코 맛이 나는 세계.

누군가가 큐브를 이용해서 그런 세계를 만들고자 소원을 빌었고, 결국 모든 음식의 미각이 민트초코로 고정된 인류는 절망한 나머지 멸망했다.

민트초코를 싫어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민트초코게 대해 거부감이 있던 사람들도 현실에 좌절하고 말았다.

"민트초코만 가득한 세상이라니...."

그리고 민트초코 성애자라고 불릴 정도로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 또한.

"그건 무슨 끔찍한 세상이냥...아앙."

민트초코'밖에' 맛이 없다는 것에 질려버렸다.

"이 세상에 다양한 맛 중에 민트초코가 독특하기에 민트초코는 가치를 가지는 거다냥!"

"펜리스, 본래 말투가 나오십니다?"

"...가지는 거예요."

박펜릴은 애써 '쿨하고 냉철한 보디가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말투를 애써 교정하고 있었다.

이역말리 영국까지 와서 한국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람들의 손목에 채워진 마도기어는 냥냥거리는 말투까지 번역하여 펜릴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흠흠. 아무리 내가 민트초코를 좋아해도 민트초코만 먹으면 질리는 법. 때로는 다른 맛으로 입도 헹궈야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랍니다."

"그건 공감해."

나는 펜릴과 함께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예찬론을 펼치며, 호텔까지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백인 남성과 그를 보좌하는 동양인 여성의 조합은 다소 특이하긴 해도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 것 치고 정말 조용히 호텔방으로 들어왔다.

"해제!"

펜리스 박은 침대에 눕자마자 빙의를 해제했다. 박라온은 눈을 감고 침대에 쓰러졌고, 펜리스의 몸에서 녹색 고양이귀 메이드 미소녀가 튀어나왔다.

"역시 이게 편하다냥."

"어차피 다시 나갈 건데 굳이 빙의를 해제하는 이유가 없지않아?"

"집 안에서 속옷만 입고있는 거랑 똑같은 거다냥."

펜릴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라온의 몸을 꾹꾹 눌렀다. 라온은 깨어날 기미가 전혀 없어보였고, 펜릴은 라온의 몸 구석구석에 자신의 마력을 집어넣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온 목적은 뭐냥?"

"목적이라니? 히어로 협회에서 지휘관을 찾은 건데 당연히 와야지."

"흐흥, 고작 그런 이유로 지휘관께서 스튜디오에 팀원들 놔두고 영국까지 오셨다?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냥?"

역시 펜릴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더 떠보기로 했다.

"네가 일주일 동안 나랑 잠자리 책임져 줄 건데 뭐 어때?"

"그건 고맙고 당연한 거지만 말 돌리지 마라냥. 그런 이유면 유나를 데려왔을 거면서, 굳이 라온이한테 나를 깃들게하면서까지 나를 영국으로 데려올 이유가 없다냥."

"역시 김펜릴. 보통이 아니야."

게으름을 피우는데 천재답게, 그녀는 전후사정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뭔가 큰 위험히 있는 거 아니냥? 석하랑을 동원할 수 없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정도로 SS+급 이능력자가 필요한 상황."

"맞았어. 차원문 때문이야."

영국에 차원문이 열릴 기미가 보인다. 차원문이란 건 원래 불규칙적이지만, 간혹 특정 패턴을 보이며 차원문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내일모레, 맨체스터에 풍마 게이트가 열릴 것 같다더라."

"...으, 나 걔들 싫은데."

펜릴은 노골적으로 풍마 게이트를 싫어했다.

'그럴 법도 하지.'

풍마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들은 전부 한 때 절풍 휘하의 정령이었던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풍마룡은 절풍을 복제하다가 나온 실패작이다.

자기혐오도 물론이거니와, 펜릴의 근본인 절풍으로서 가진 혐오감의 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좀 짜증나네. 왜 내가 가는 곳마다 걔들이 나오는 거냥?"

"이 경우는 조금 다르지. 풍마 게이트가 열릴 곳에 우리가 찾아온 셈이니까."

간부와 정령을 쫓아서 열리는 갑작스러운 차원문과는 결이 다르다. 평소처럼 예고된 패턴에 따라 차원문이 열릴 뿐이다.

"귀찮은 차원문과 풍마룡은 애들보고 정리하라고 하고, 우리는 그냥 영국 구경이나 하면 돼."

"그건 무슨 소리냥?"

"모처럼 데이트하러 해외까지 나왔는데 일 때문에 신경쓰게 할 수는 없지."

나는 한 손으로 마도기어의 가상 키보드를 두드리며, 영국 협회에 실시간으로 전략 전술 대응 체계를 보내는 중이었다.

"영국이 민트초코의 발원지인 건 알고 있지?"

"물론. 그래서 내가 따라온 거 아니냥."

"그래. 하지만 말이야...."

나는 펜릴을 잠든 라온에게 다시 집어넣었다.

"얘, 영국 디저트가 참 맛있단다."

왕실의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인 만큼, 왕가에서 소비하는 케이크와 디저트만큼은 일품이다.

- 그러니까 민트초코 같은 것도 탄생하지.

민트초코의 탄생 배경은 왕가에 진상하기 위한 특별한 메뉴였다나 뭐라나.

* * *

<그 시각, 영국 런던 국제공항.>

"VVVIP는 언제 입국하시는 거지?"

영국의 히어로 협회장, <리치어드>는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미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공항 전체를 포위하여 지휘관의 얼굴을 담고자 군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젠장, 여왕님께 면목이 없는데."

"보스. 가웨인 경에게 물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안 돼."

리치어드는 차마 가웨인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

2025년이 되자마자 지휘관은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사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고, 원탁과도 오라클을 제외하면 아예 연락을 끊어버렸다.

도착 예정 시각은 훌쩍 넘겼는데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리치어드는 혹시나 지휘관이 영국에 다소 불만을 가지고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혹시 공문 그렇게 쓴 게 화가 난 건가...?"

고작 3개월 남짓한 짧은 시간만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애착이 생긴 걸까? 리치어드는 불안감에 손톱을 깨물었다.

"도대체 어디...."

삐비비빅.

리치어드의 마도기어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만 아는 개인적인 채널로 전해진 누군가의 문자에 리치어드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설마 해킹?'

리치어드는 남들 모르게 마도기어의 문자를 확인했다.

- <풍마 게이트 공략집>.

"...허."

어떻게라는 말을 할 새도 없이, 다른 채널을 통해 들어온 부하의 연락에 리치어드는 허탈감을 금할 수 없었다.

[보스. 찾았습니다. 지금 지휘관이랑 보디가드, 둘이서 런던 시내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비행기는 지금 도착하는 걸 탔잖나?"

[여권 위조에 저희가 당했습니다. 'C.W.H' 명의로 탄 건 가짜입니다.]

"...이 정도로 용의주도하실 필요가 있나?"

히어로 협회를 속이면서까지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이 가장 원하는 풍마 게이트에 관한 자료를 받았으니 조금은 만족할 수 있었다.

"지금 뭘 하시지? 현지 시찰?"

[......그게.]

부하는 질린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명 디저트 전문점마다 들려서 쇼트 케이크와 민트초코 케이크를 하나씩 맛 보고 계십니다.]

"......."

리치어드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지금 설마 디저트 관광하러 오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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