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707화 (707/1,497)

〈 707화 〉2부 5장 01

"뭐 또 재미있는 거 없나."

청년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커뮤니티를 뒤졌다. '창벤'이라고 불리우는 곳도, '큥큥.gg'라고 불리우는 곳도 찾아다니며 그는 자료를 찾았다.

"피닉스 루트...씨발...."

청년은 담배를 태우며 피닉스 루트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언제나 피닉스 루트는 모든 데창-데스디나스 폐인들에게 있어서 찾을 수 없는 엘도라도의 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청년은 '순정' 피닉스 루트를 찾고 있었다.

DLC 없데이트 이후 사라진 루트를 사람들은 '로스트 루트'라고 불렀으며, 아직도 사람들은 피닉스가 히로인이 되는 루트를 찾느라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보물을 찾는 모험가의 심정이 이런 걸까? 청년은 마우스를 영혼없이 달칵거리며, 피닉스 루트의 정보를 찾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응?"

그리고 청년의 눈에 띄는 이상한 게시글이 있었다.

[님들 '그 부부'는 피닉스 루트 성공할 것 같음?]

"부부가 데창이라고? 자식 교육 종쳤는데?"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게시글을 눌렀다. 조회수는 다른 게시글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댓글의 수가 제법 많아 불판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 지금 4월까지 슈리 공략 끝냈는데 불가능 할 건 또 뭐야ㅋㅋ

- 다른 건 몰라도 16명 다 공략해줬으면 좋겠다

ㄴ 17P! 17P! 17P!

- 다음 없데이트 추가 되면 부부 중 누가 하려나

"...부부가 같이 방송을 한다고? 미쳤구나."

청년은 깊은 한숨이 나왔다. 외국의 경우인 줄 알았더니, 심지어 한국이더라.

"이 나라의 미래는 이래도 되는 걸까?"

게임 속 한국이 시궁창인 것 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보다 더한 경우가 있었다. 청년은 아무 생각없이 방송으로 넘어가는 링크를 눌렀다.

[초반 4인방 레이드]

방송의 시청자 수는 고작 100여명을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청년은 초반 4인방이 레이드를 뛸만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영상을 눌렀다.

꺄아악----!!

사장님, 저 죽습니다, 하아앙!!

"......레이드가 이런 거였어?"

유나, 라온, 누리, 그리고 슈리.

네 명의 여인은 한 명의 몬스터를 상대로 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금발서양남의 전형을 갖춘 그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네 명의 여인을 유린하고 있었다.

"......어우야."

청년은 101번째 시청자가 되었다.

* * *

<3월 26일, 신서울 오라클 스튜디오 사무실.>

"오랫동안 잠든 기분이야."

"그거야 진짜로 계속 낮에 주무시고 계셨잖아요?"

"그런가?"

나는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분명 네 명과 5P 섹스를 즐기고 난 뒤, 게임 속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며 휴식을 취했다.

'사실 네 명이랑 한 것보다 그랑 한 게 더 피곤하지만.'

게임 속에서 하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것.

하지만 현실에서 하는 건 둘 다 좋으라고 하는 것.

한 번 불이 붙어버리면 쉽게 꺼뜨릴 수 없고, 결국 밤새도록 하고 난 다음 쪽잠을 자고 게임에 접속했다.

아아, 인간의 육체란!

'이럴 때는 정령이 되고 싶다니까.'

서로 녹초가 되어 몸을 붙인 채 잠드는 것도 매력이긴 하지만, 정신 세계 속에서 육체적 피로감 없이 질펀하게 하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이 세계에서도 정령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면, 그러니까 창염의 피닉스가 죽어서 내게 코어를 넘겨주면 나도 정령에 준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정령을....

"후냥?"

나는 내 무릎에 누워 자고 있던 김펜릴의 꼬리를 무심코 붙잡았다. 고양이 상태에서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는 김펜릴은 내게 머리를 들이밀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 사장님, 그거 하자, 큥큥.

"...잠깐 김펜릴 산책 시키고 올게."

"고양이인데요?"

"반은 개같은 거니까 산책해도 괜찮아."

나는 김펜릴을 어깨에 태우고 밖으로 나섰다. 신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나를 주시하는 이들에게 움직임이 노출되지만, 그걸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게 주인공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멘탈이다.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나는 남들의 시선을 즐기는 타입이다. 이 얼굴이, 이 몸이, 이 자지가 내 남자다라고 과시하고 다니기 위함이다. 아, 얼굴은 아닌가?

딸랑딸랑.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당당히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곤에 절어있던 점원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붉혔다.

'역시 주인공 페이스.'

디폴트 값이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잘생김이라는 게 탑재된 금발서양남의 전형이다. 알바생이 이 얼굴을 보며 얼굴을 붉히듯, 나 또한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C급 빌런 박아영.'

눈앞의 여자는 빌런으로 제법 유명한 존재다. 그의 데이터베이스-피닉스 위키-에 따르면, 이 여자는 나의 진정한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알바생이면서 딸기 아이스크림 몰래 한 쿱 씩 훔쳐먹는 빌런!'

진짜 빌런인 동시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있어서도 빌런이라는 말.

"저기...주문하시겠어요? 그리고 매장에는 그, 고양이를...."

"이거랑 이거, 한 통씩 주세요."

"네...한 통이요?"

"그럼요."

하나는 딸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민트초코.

"각각 하프갤런으로 낭낭하게 담아주세요."

주인공이라 함은, 하프갤런 통을 하나의 맛으로 다 담아 먹을 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 *

히어로 협회, 정부, 헌터 길드, 그리고 기타 여러 조직.

그들은 현재 한국에서 한 명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시안.w.히비스커스.

- 제 한쿡 이름은 '백청화'라코 해요.

스스로의 한국식 이름을 백청화라고 명명한 그는 기행을 종종-아니 정말 자주-보이는 존재로, 외국계 자본의 오라클 스튜디오라는 이능력자 양성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체는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휘관!

수많은 이능력을 가진 자들 중에 '이능력자의 마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악의 조직 다크 레기온으로부터 척살 일순위인 존재인 그에 대해 인류는 모두가 그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인류가 꼭 그런 법은 없다.

백청화를 어떻게 하면 이용해먹을 수 있을까.

백청화라는 존재가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이상, 이 남자를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까하는 고민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협회, 정부, 헌터 길드 등은 서로 백청화를 각자의 이유로 이용해먹으려는 잠재적 경쟁자였다.

하지만 그들도 때로는 뭉치기 마련.

바로 '공공의 적'이 생겼을 경우.

협회는 현재, 백청화를 찾는 '외국'의 존재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 * *

"백청화 님의 영국 방문을 요청합니다. 라...."

나는 협회에서 날아든 소식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협회의 높으신 분들은 이 요청을 두고 한창 골머리를 썩히고 있겠지만, 나도 머리가 아픈 일이 한 둘이 아니다.

'해외 파견 요청.'

백청화가 지휘관이라는 건 한국의 수뇌부들도 알고 있는 사항이다.

즉, 이미 시안이라는 존재가 지휘관이라는 걸 알고 있는 외국계 주요 인사는 수도 없이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원탁'이 있으며, 이번에 백청화를 상대로 영국에서 보낸 초청은 원탁의 의사가 깃들어있다.

'외국의 히로인들이나 동료들을 영입할 절호의 기회.'

주인공 입장에서는 공짜로 해외여행을 시켜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으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해외 파견은 많은 플레이어들에게도 실제로 해외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좋아하는 여자랑 해외 데이트 나가는 느낌이지.'

해외로 데려갈 수 있는 동료, 단 한 명.

단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는 만큼 별다른 위험은 없다. 이건 해외의 B~A급 히어로들을 다뤄봄으로써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군 동료의 성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리 알아보는 시연회에 가깝다.

- 영국갔다가 안 돌아오는 거 아이가?

누군가는 내가 영국에 정착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나는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에게 봉착한 문제는 '누구'를 데려갈 것인가.

선택의 문제는 항상 나를 어렵게 만드는 일이며, 멀리 영국까지 '지휘관'으로서 다녀오는 일인 만큼 잘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국에 다녀오는 기간 동안, 한 여자와 계속 섹스를 해야하니까!

"뭘 그렇게 고민하냥."

김펜릴은 민트초코를 한 통 전부 다 비우고 나서야 내게 말을 붙였다. 하프갤런 통을 전부 비운 그녀는 플라스틱 스푼을 입에 문 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부족해?"

"그거 먹어봐도 되냥?"

김펜릴은 아직 반도 채 먹지 못한 내 딸기 통을 노리고 있었다. 민트초코 귀신이 왜 갑자기 딸기를 노리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매번 그렇게 맛있게 먹는 거 볼 때마다 맛이 궁금했다냥."

"그런 거라면 인정이지."

새로운 (딸기)동료는 언제든 환영이다. 나는 김펜릴에게 하프갤런을 공유했다.

'게임이니까.'

현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딸기맛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민트초코만 먹는 김펜릴이 딸기에 흥미를 가졌다는 건 분명 좋은 신호였다.

"후냥...."

그녀가 주인공에게, 나에게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이야기니까.

그럴수록 그녀 속에 있는 호로새...'절풍'이 튀어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니까.

"김펜릴."

"냥?"

"너, 나랑 같이 영국 좀 다녀오자."

"......영국?"

김펜릴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민트초코의 성지! 이건 프로포즈 급이다냥!"

"......."

새삼스럽지만, 나는 '그'가 저지른 행동이 떠올랐다.

빅벤 민트초코 테러.

실행범은 피닉스지만, 계획범은 창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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