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6화 〉Bed Ending # 000 (H) 04
때는 바야흐로 서기 2025년.
26년도 전에 있었던 대혼란은 불과 3년만에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간간히 열리는 차원문은 각국의 이능력자를 중심으로 즉시 닫혔고, 세상은 그렇게 평화를 되찾는 듯 보였다.
- 이제는 화약도 핵도 필요없습니다! 이제 인류에게는 오직 마력만이 필요합니다!
바야흐로 제 4차 혁명, 마도 시대의 개막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마력이 있는 자들을 우러러보고 마력이 없는 자들을 멸시했다.
인간이 마력을 각성하는 방법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능력을 각성한 이들은 질시의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이능력자와 비능력자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극소수의 이능력자들이 다수의 비능력자들을 위해 자유가 억압되고 책임이 부여되는 과정에서, '빌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괴수와의 전쟁도 끝나지 않았건만, 인류는 새로이 빌런과의 전쟁을 다시 치르게 되었다.
"그런 거 우리는 모르겠는데?"
한국 빼고.
* * *
<2025년 7월 27일, 해운대 백사장.>
"사람들 존나 많네."
기우는 무더운 여름 날씨에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혔다. 전 날 해운대 근처에서 화속성 히어로와 빌런끼리 한 번 크게 치고박고 싸웠다고 하더니, 바다 온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해운대 일대는 사막 더위를 방불케했다.
"더우니까 다들 벗고 좋네. 음."
기우는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자기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나온 여인들, 그리고 하룻밤을 뜨겁게 보내기 위해 모인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우야, 어디 좋은 여자들 안 보이냐?"
"시끄러워. 있어봐, 저기 여섯 명-"
기우와 친구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맞은 편 호텔 방향에서 이 세상의 미모로 보이지 않는 형형색색의 여인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인들이 가는 길을 터주며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어댔다.
"미쳤다...."
아이돌인가? 아니다. 아이돌 수준으로는 비벼볼 수 없는 미모였다. S급 히어로들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할 미모의 보유자들은 서로 옥신각신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빠는 피마마를 더 좋아하는게 맞다니까?"
"얘, 확신할 수 있어? 난 아닌 것 같은데?"
"하암, 좀 닥치렴. 사람들 쳐다보잖니."
백발의 여인이 주변에 모인 이들을 눈으로 흘겼다. 뒤에서 몰래 사진을 찍으려던 사람들은 겁을 먹고 손을 내렸다. 갈색이나 금발, 흑발은 다소 흔하다고 해도 백발과 녹발, 회색의 머리칼은 평범함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능력자. 여섯 명의 외국인은 이능력자가 확실했다. 기우는 저들을 어디서 보았나 속으로 긴가민가하다 손뼉을 쳤다.
"세상에, <청화>잖아."
[청화(靑火)]. 인류 최초의 SSS급 히어로이자 세계 최강의 히어로, <창염(蒼炎)> 백신라를 필두로 하는 초일류 길드. 히어로 일과 헌터 일을 가리지 않는 이들은 때로는 빌런 퇴치를, 때로는 괴수 퇴치를, 때로는 차원문 파괴를, 때로는 트롤링 소동을 일으키는 세계구급 길드였다.
<운사>, <암황>을 비롯한 수많은 이능력자들이 소속되어 국제 길드로 거듭난 길드에 열 두 명의 신입 멤버들이 들어왔다고 알려졌다. 이전에는 이름이나 얼굴만 알려졌을 뿐,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온 열 두 명의 신입들은 하나하나 전부 S급의 이능력자들이었다.
"미친. 어느쪽이지?"
히어로 측인가, 헌터 측인가. 기우는 위키의 정보를 살피며 여인들의 상태를 살폈다. 한 팀은 [H-ERO], 다른 한 팀은 [훈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두 팀의 멤버들은 각자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성격은 정 반대였다.
"후냐앗!"
녹색 고양이귀 미소녀가 프릴달린 수영복을 입고 메가폰을 잡았다. 기우는 불과 하루 전에 너튜브에서 본 <민트초코 3갤런 10분 컷>이라는 영상에서 본 여인인 눈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주민 여러분들께 알린다냥! 지금부터 이곳은 우리가 접수하겠다냥!"
"하아. 너 장난하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흐, 흥!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여기에 곧 차원문이 나타날 거니까!"
갈색 단발녀가 나무라고, 흑발 스트레이트의 여인이 사람들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백사장에서 쫓아내기 시작했다. 기우는 멀찍히 선 채 [훈타] 팀의 활동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진짜 정신없네. ...아니, 잠깐만. 그러면 설마."
애애애애앵.
<차원문 발생>.
마도기어가 울리자마자 기우는 고개를 치켜올렸다. 하늘에는 거대한 차원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
"으, 아아악!!"
갑작스러운 차원문의 등장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으나,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훈타가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하하! 와라, 미친 정령들이여! 나 카르나가 상대해주마!!"
"귀찮아...집에가서 아빠 품에서 잘래...."
"그러고 싶으면 일을 하렴. 아버님은 일 안하는 애는 싫어하신단다."
수영복을 입은 여섯 여인들은 차원문에서 뛰쳐나오는 괴수들을 화려하게 무찔렀다. 기우는 그들의 활약을 영상으로 촬영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새끼 존나 부럽다...."
모두가 '그 새끼'라고 부르는 존재. H-ERO 팀과 훈타 팀의 열 두 쌍둥이, 인류의 희망을 낳은 남자.
"백청화 씹쌔끼."
세계 최강의 여신이 길드 이름을 사랑하는 이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자부하며,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중혼이 허용된 남자. 이기우는 진심으로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 * *
"아빠, 이거 어때? 이뻐?"
"아! 지륜이 아빠한테 가슴 들이민다! 개변태!"
"그, 그러지마.... 다같이 사이좋게 나눠가지기로 했잖아...."
"하, 하하, 하하하."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여섯 명의 여인들에게 둘러쌓여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는 여아들 사이에 던져진 인형과도 같았다. 이곳으로 흔들리면 저곳으로 흔들리며, 나는 내 '정령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야만했다.
"설야 조각 예쁘네. ...지륜이 깨트렸어? 자, 잠깐만. 절풍아, 시원한 바람은 좋은데 슬슬 칼바람이 나오는 것 같다. 지륜은 아빠 등 뒤에 자꾸 가슴 붙이지 말고. 천광아, 너 혹시 또 암룡이랑 싸웠니? ...환룡이랑 다퉜다고? 허."
""""""아빠!! 쟤가 먼저!""""""
나는 여섯 딸들이 내게 엉겨붙는 것에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자란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7살 어린 아이였을 때와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았다.
'지옥이었지.'
정말 어떻게 버텨냈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과거의 나에 대해 대견하다고 생각하며, 맞은 편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오는 두 명의 여인-아내들을 맞이했다.
"얘들아, 비키렴."
"그건 우리 거예요."
창염과 피닉스.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한쪽은 흰 비키니를, 다른 한쪽은 검은 마이크로 비키니를 입고 딸들을 내 주변에서 내쫓았다. 나는 둘 사이에 끼이지마자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와, 아빠 진짜! 우리 앞에서는 서지도 않더니!"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우우, 엄마들만 예뻐하고. 우우우."
"닥치고 수영이나 하러가세요, 다들."
피닉스는 엄한 눈짓으로 호텔 안의 물놀이장을 가리켰다. 여느 수영장 못지 않은 넓은 시설로 몸을 날린 여섯 명의 정령딸은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하아, 살 것 같아."
"쌀 것 같다는 건 아니고요?"
"어머, 큰일인데. 급하면 여기다가 싸세요. 아앙."
창염과 피닉스는 내가 누운 비치배드로 다가와 내 몸 위에 걸치듯 누웠다. 안그래도 딸들 앞에서 안 세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둘의 손길에 나는 바로 서버리고 말았다.
"크흠. 저기, 애들도 보고 있는데 이건 조금."
"뭐 어때요? 새삼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몰래 훔쳐보던 애들이에요.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아요?"
창염과 피닉스는 좌우로 내 가슴 위에 엎드렸다. 멀리 다른 곳을 슬쩍 살피니, 여섯 정령딸들은 은근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에 이 세상이 멸망한다면 쟤들이 폭주해서 그런 걸 거야."
"괜찮아요. 저희가 막을 거니까. 1:6 정도는 껌이에요."
"2:12도 마찬가지죠. 푸흐흐."
"아빠아아아!!"
수영장의 문이 열렸다. 입구 쪽에는 정령딸들과 똑같이 생겼지만 성격이 정 반대인 간부딸들이 술과 안주를 잔뜩 들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우리 차원문 막고 왔어! 그러니까 상으로 그거 하자, 그거!!"
"그래, 잘 했네. 고생했어."
"야! 너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내 얼굴 가지고 그런 식으로 역겹게 굴지 마!!"
"흥, 어쩌라고!"
딸들은 언제나처럼 서로 드잡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염과 피닉스의 온기를 느끼며 모든 걸 포기했다.
"......흐, 흐허허, 흐허허."
지옥같다. 남자 하나 있으면 마음이라도 조금 터놓고 지낼 수 있지만, 내 주변에 있는 14명의 이능력자들은 모두 여자였다.
'저 망할 년들.'
말만 딸로 다시 태어났지, 다들 나-백청화를 호시탐탐 노리는 녀석들이라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모른다.
"저기요, 당신."
"17:1 정도는 껌이라고 하셨으니까, 14:1도 쉽겠죠?"
창염과 피닉스는 은근한 눈빛으로, 아니 대놓고 색정적인 눈빛을 보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성교육 시간!!""
"으아, 안 돼!!"
내 몸이 창염과 피닉스에게 구속되었다. 둘은 자신들의 흉악한 가슴으로 내 팔을 끼웠고, 내 허벅지 위에 고간을 비비며 딸들을 불렀다.
"아빠랑 하고 싶은 사람~"
"자, 잠깐. 이 나라에서 근친은 범죄다!!"
내 말에 딸들은 움찔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 나는 이 나라의 시민이다! 법률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어!"
"아, 그거 말인데."
정령 중 백발의 딸이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백희아 국회의장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SSS급 이능력자법, 이하 '큥큥법'은 국회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큥큥법에 의하면 SSS급 이능력자는 근친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SSS급 이능력자끼리는 4촌 이내에서 아이를 낳을 때 더 강한 아이가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연구결과? 히카리지? 이건 날조다!!"
"날조 맞아. 근데 어쩔? 이미 법은 통과되었는데."
"설야, 진정하렴. 나랑 같이 하는 거잖니?"
"우와아! 치사하다! 물타입 먼저 하는 게 어디있냥!!"
다른 딸들이 난동을 피우는 가운데, 백발의 두 여인은 서로 깍지손을 끼며 내 위에서 입술을 맞췄다. 창염이 '우효오오-', 피닉스가 '끼요오옷-'거리며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다가오는 연쇄큥큥의 공포에 입술이 벌벌 떨렸다.
위이잉.
"엄마, 저 SSS급이 되었어요. 이제 위법 아니죠?"
"인간의 법률로 여신을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 푸흐흐."
"포기하면 편해요. 그냥 즐기면 된다니까?"
하나로 합쳐진 백발의 여인은 내 위에 서서히 몸을 겹쳤다. 창염과 피닉스는 옆으로 비키며 내 겨드랑이에 머리를 뉘였다.
"아직 싱크로 안 되는 사람은 보기만 하세요~"
"그럼 지금부터...큥큥, 스타트!!"
큥큥.
큥큥큥큥.
현재에 남기로 한 나.
잘 보고 있나.
이곳은 지옥이다.
살려줘.
# 000, 完.
(e)d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