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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97화 (697/1,497)

〈 697화 〉2부 4장 24

전 세계에 아니 그러한 곳이 없지만, 괴수와 괴인의 준동에 따라 세계는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변했다.

과학문명은 21세기를 거쳐 마도혁명까지 이루어져 22세기로 나아갈 기틀을 마련하고 있으면서, 인간의 의식과 이성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중세 시대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한국 곳곳도 마찬가지죠. 대한민국의 모든 인프라를 신서울에 집약한 대신, 다른 모든 곳을 버렸습니다."

2000년을 넘어오면서 외곽 지역의 사람들은 하나 둘 안전한 내륙 쪽으로 몸을 옮겼다. 과거 고려, 조선 시대에 왜구들이 준동을 하는 것 마냥 괴수가 날뛰니 도저히 살 방법이 없었다.

괴수는 나타났는데 군인이 쏘는 소총은 의미가 없고, 해안선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이능력자는 없었다. 결국 스스로 죽고자 하는 이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내륙으로, 지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평소에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던 이들을, 과연 제 목숨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을 제대로 데리고 도망쳤을까?

"선의철이 서울의 모든 다리를 끊어버린 것처럼, 이들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염전의 주인들은 염전에 있는 사람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배를 타고 도망쳤다. 인과응보라고 한다면 100척의 배 중 목포항에 들어간 배는 고작 2~3척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조리 해수면 아래에 도사리던 해양 괴수들에 의해 배가 전복되어 고기밥이 되었다. 다른 곳보다 유독 서해에는 해양괴수들이 많았다.

"석하랑 때문에 부산 일대로 가려던 해양 괴수들이 모조리 남해랑 서해로 흘러들어갔죠. 그리고 그에 따른 피해는 모조리 도서 산간 지역의 사람들이 봤구요."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큰 피해를 입혔지만 그건 석하랑의 잘못이 아니다. 승냥이가 호랑이의 영역을 피해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 사는 토끼를 사냥하는 건 자연이 이치였다.

이미 인류는 괴수라는 짐승들을 맞이한 시점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약육강식이라는 원시시대의 섭리를 따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인류가 짐승 하나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시대로 돌아간 이상, 인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순응하고 적응해야했다.

"그리고 버려진 염전의 주민들...노예들은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순순히 괴수에게 죽는다. 1번.

하지만 아무리 자유를 빼앗겨 노예가 되었다고 한들, 삶에 대한 의지가 꺾인 이들은 아니었다. 애초에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자유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 나를 버리고 간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자신들을 버리고 간 소위 '주인'이라는 작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소금밭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괴수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던 이들은 소금 속에서 주인에 대한, 인류에 대한 분노와 광기로 정신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테라의 장기는 이런 이들에 침식됩니다. 대부분은 괴수가 되지만, 강력한 의지를 지닌 존재들은 괴'인'으로 만들게 되죠."

김펜릴과 같은 다크 레기온의 간부가 강제로 타락시켜 만든 괴인이 아닌, 부의 감정에 이끌려 폭주하게 되어 만들어지는 자연발생 괴인.

청화를 중심으로 염전밭에서 튀어오른 새우 괴인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대하괴인."

팔다리는 앙상한 뼈지만, 머리부터 척추에 이르기까지 진짜 새우를 가져다 박아놓은 듯한 외형. 척수 아래로 떨어진 날개형 꼬리는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더 단단한 둔기였고, 복부에는 눈으로도 어림하기 힘든 작은 다리들이 절지동물마냥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해양 괴인들 특. 전부 다 촉수 달림."

그리고 대하괴인의 가장 큰 특징.

새우같은 외형이기에 드러나는, 입 주변에 달린 새우 특유의 수염.

"상대 머리를 수염촉수로 휘감아서 쪽 빨아먹는, 아주 무시무시한 괴인이죠."

사람 대가리 하이. 목젖까지 찌르는 촉수에 당하는 순간, 왠만한 이능력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대하괴인의 손에 살해당하게 될 것이다.

* * *

"꺄아아악!!"

슈리의 비명이 염전에 울려퍼진다. 해골의 팔다리에 새우의 몸통, 그리고 입 주변에 꿈틀거리는 수염은 곧은 수염이 아닌 촉수처럼 움직였다.

"쟤들도 촉수네요."

"이젠 너무 익숙해서 징그럽지도 않은 거임."

기존의 팀원들은 촉수가 달린 대하괴인에 아무렇지 않게 마력을 가다듬었다. 누리의 말대로 이들은 내가 정말 온갖 곳을 끌고 다니느라 볼 꼴 못 볼 골을 전부 눈으로 확인했다.

당장 여수 아쿠아리움의 오션 팬텀만 하더라도 촉수 해파리였고, 이 세계 9할의 해양괴수는 촉수가 달려있다. 설령 그런 게 있을 것 같이 않은 대왕고래 괴수가 있더라도, 속에 촉수처럼 움직이는 회충이 들끓기 마련이다.

"꺄아아악! 히어로, 히어로!!"

슈리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며 스태프를 휘둘렀다. 그녀의 스태프에서 뿜어진 불덩이는 화력은 좋았지만 조준이 좋지 않았고, 난사에 가까운 공격에 아군까지 당할 뻔 했다.

"피해."

나는 마도기어로 팀원들에게 각자 몸을 피할 방향을 지시했다. 전방에서 싸우던 라온과 누리가 옆으로 몸을 날리며 불덩이를 피했고, 쪽배를 향해 날아오는 불덩이는 가온의 물방울이 막아냈다.

"정신착란에 의한 프렌들리 파이어. 감점 20점. 가온아. 쟤 뒷통수에 물총 좀 날려줘."

촤륵! 가온이 날린 물방울이 슈리의 뒷통수를 정확히 때렸다. 졸지에 바닷물을 뒤집어 쓴 슈리는 다시 화염구를 난사하려다 축축하게 젖었고, 유나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후방으로 당겼다.

"마냥 아카데미에서 공부만 하다가 현장 나오니까 빡시지?"

"히, 히끅."

"맨날 귀엽고 깜직한 C급 괴수들만 상대하다가, 실제 괴인들을 본 소감이 어때?"

"징그러워요, 흐끅."

징그러움. 모든 괴인들은 바퀴벌레 이상의 흉측함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세계에 괴수들이 날뛰고 있다고 한들, 신서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바깥의 자세한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광검이 신서울의 모든 괴수와 괴인을 처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학부생들이 괴인들을 볼 기회가 마땅찮은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있겠어? 싸워야지! 지시대로 싸워!”

나는 슈리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적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입속으로 스태프를 찔러넣어 불로 구워버리라고 지휘했다.

페로페로페로페로.

“모, 못해요!!”

슈리는 사마귀 뱃속에서 튀어나온 연가시마냥 꿈틀거리는 혀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적을 눈앞에 두고 굳어버리다니, 감점 40점. 동료가 무리하게 만든 것에 감점 20점.”

“하앗--!”

슈리의 옆으로 달려온 라온이 대하괴인의 입안으로 창을 쑤셔넣었다. 아가리를 벌리며 촉수로 머리를 붙잡으려던 대하괴인은 창에 꿰뚫려 대롱대롱 매달렸다.

“라온아, 빨리 바닥으로 찍어! 안 그러면 꼬리로 친다! 누리는 가서 꼬리 잘라!”

라온은 창의 중간을 잡고 대하괴인을 바닥에 찍어버렸다. 정면에서 돌아온 누리는 칼날을 세워 대하괴인의 꼬리를 잘라냈고, B급 괴인은 몸을 파들파들 떨며 절명했다.

푸쉬이이--

대하괴인은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괴인이 죽는 특유의 효과와 함께 오염된 장기는 허공에 흩어졌다.

“슈리 학생, 괴인이 소멸했을 때 주변에 다른 괴인이 있다면?”

“흐, 흐끅, 흐으윽…!”

슈리는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슈리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온 유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나는 알아?”

“네. 괴인이 사망하면 다른 괴인이 더 폭주하잖아요.”

“그래. 더 강해지지.”

공기 중에 흩어진 장기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사방으로 흩어지며 다른 괴인의 몸에 정착하게 되고, 괴인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

키아아아아악!!

대하괴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짐승형 괴수들은 근육이 부풀어오르거나 이빨이 더 날카로워지기 십상이건만, 대하괴인은 입에 달린 수염이 더욱 더 크고 우람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사, 사장님. 저거 지금 다리도 움직이는 것 같은데?!”

“크윽. 저러면 안쪽을 노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온! 지원 가능합니까?!”

“저는 배 아래를 지키느라 못 도와드려요!”

심지어, 목 아래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다리까지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인 양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부까지 이어진 수 십개의 다리는 마치 딜도를 꽂아놓은 것 마냥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하여튼 문어 놈들 감성 하고는.”

“사장님,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흑, 흐끅, 으으윽…!”

슈리는 유나의 다독임을 받고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과호흡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저게 인류가 상대해야 할 적들의 현실이란다.”

적의 등급이 높을수록 흉측한 모습은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는 않는다.

등급 상 지상 최강의 괴수도 몸에 달린 리본같은 장식은 목에서 돋아난 촉수같은 것이며, S급 괴수들 중에 촉수 없는 괴수는 화속성 이외에 거의 없다.

촉수계 외계인을 상대하는 이상, 인류평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는 이들은 촉수와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그러니까 촉수를 마법소녀들이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승리가 되는 거야!”

“보통 마법소녀들이 촉수에 당하는 게 패턴 아닌가요?”

“그 패턴을 이겨내는 것이야 말로 인류 승리의 상징이지! 클리셰는 깨라고 있는 법이니까!”

수많은 촉수괴물들로부터 이겨내는 것이 바로 해피 엔딩으로 가는 지름길. 그걸 위해서 이능력자는, 히어로는, 마법소녀는 촉수에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

“정신차려, 정슈리! 아직 메인은 나오지도 않았어!”

“네…?”

“내가 얘기했던가? 우리 여기로 온 거, A급 괴수를 잡으러 온 거라고.”

C급 괴수들은 차고 넘치도록 튀어나왔다. B급 괴인들도 하나 둘 튀어나왔다. 이제 순서에 따라 남은 건 A급 네임드 괴수 뿐.

“모두 배에 타!”

내 지시에 팀원들은 갑판위에 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린 슈리는 유나와 라온이 부축하여 배에 올렸고, 괴인들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던 누리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선미에 서는 것으로 유하는 엔진을 다시 밟았다.

뿌우우우.

다급한 경적과 함께 우리는 ‘필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염전의 소금이 사방으로 퍼져나와 해수면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 이건?!”

“B급 괴수도 자기 영역이 있는데, A급 정도 되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본인이 가장 쉽게 날뛸 수 있는 전장을 구축하는 것. 우리는 순식간에 소금으로 뒤덮인 바다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윽…!”

가온은 열심히 물방울을 움직여 소금밭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방울이 통째로 소금밭 속에 갇혀버리는 바람에, 가온의 마력으로 배의 아래를 지키고 있던 것도 이제 크게 의미는 없어졌다.

“슬슬 온다.”

키에엑, 크어어억!

괴인들이 하나 둘 염전의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좀비처럼 기어간 대하괴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입에 물며 한 줄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놀랍단 말이야. 인류는 아직 코어를 합성할 방법이 없는데, 괴수들은 저렇게 쉽게 코어를 하나로 뭉치고. 크, B급이 A급이 되는 기적이란.”

이제 1억짜리 쪽배는 필요없다. A급을 잡는 순간 수 백억이 넘는 자본이 들어올 건데 고작 1억이 대수겠는가.

“모두 레이드 준비!”

괴수 세계에서 역시 꽃은 레이드가 아니겠는가. 나는 서서히 모습을 갖추는 뱀장어같은 거대 새우를 향해 외쳤다. 몸길이가 20m는 훌쩍 넘는 대하는 우리를 향해 촉수 채찍같은 수염을 번들거리며 소금판 위에 서있었다.

“<솔트 페니어스>! A급 괴수야! 오늘 에이스는 큥큥이다!”

모두의 눈에 불이 붙었다. 나는 코트 안에서 TAT를 꺼내 마탄을 집어넣었다.

“내가 딜 미터기 1등 먹으면 내 맘대로 할 거다! 지금부터 30분간 프리롤!”

나는 지휘를 포기했다. 정확히는 팀원들 개개인에게 판단을 자율적으로 내리도록 맡겼다. 일종의 오토 사냥인 셈이었고, 내 압도적인 지휘력을 바탕으로 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초거대 새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화마인?”

이제는 조금 진정한 기미가 보이는 슈리는 딸꾹질을 하며 스태프를 들어올렸다. 마법소녀 복장에 대한 부끄러움은 전혀 없어보였고, 촉수에 대해 혐오감은 남아있지만 거리낌은 없었다.

-바퀴벌레 무섭다고 안 죽일 수는 없지.

혐오스러운 외형이라도 결국 죽여야 한다면 맘 편히 죽이는 게 정답이다. 나는 TAT의 총구를 대하에 겨눴다.

“아, 안 위험해요? A급 괴수인데?! 차라리 사람들을 부르는 게 더 낫다고요!”

“사람들은 오지않아.”

나는 주변에 펼쳐진 소금의 결계를 가리켰다. 깨려면 얼마든지 깰 수 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보시다시피 결계로 막혀있거든. A급 주제에 이런 결계라니. 어지간히 이곳이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나봐? 푸흐흐.”

A급 주제에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소금의 결계에는 이곳에서 죽어나간 괴인들의 원념이 실체화 된 것이다. 염전 노예들의 절망와 좌절이 적에 대한 구속으로 나온 것이다.

“저 놈들에게 당하면 여기서 평생 새우들 알이나 깔 운명이 되는 거야. 평생 염전 소금에 파묻혀 살래,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래?”

슈리에게는 힘이 있다. 상황을 타개하는 것을 넘어, 솔트 페니우스를 쓰러뜨릴 힘도 가지고 있다.

“저, 저는 뭘 하면 되요?”

슈리는 이제서야 순순히 내 말을 들을 준비를 마쳤다. 나는 그녀에게 스태프로 A급 대하를 겨누도록 지시했다.

"대하는 소금구이지."

마침 주변은 소금밖에 없는 세상. 나는 소금의 결계에서 A급 대하를 가리키며 엄지로 목을 그었다.

"구워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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