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96화 (696/1,497)

〈 696화 〉2부 4장 23

<그 시각, 인천 부두 인근 길드 집결지>.

“젠장, 진짜 정슈리 이쪽으로 온 거 맞나?”

인천항 근처에 모인 길드의 스카우터들은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택시 타서 움직인다고 하잖아. 아카데미에서도 본인이 택시 타고 움직이겠다고 하면 뭐 막을 수 있겠어?”

“그렇지? 흐흐, 사실상 현역이나 마찬가지인 녀석 아니냐.”

정슈리를 태운 자율주행택시는 신서울에서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며 인천으로 북상했고, 정슈리를 영입하려는 스카우터들 또한 급히 인천으로 올라와 근처에 대기했다.

다행히 택시는 생각보다 느리게 도로를 달렸고, 헬기까지 띄우며 인천으로 날아온 이들도 수두룩했다. 그만큼 정슈리에 대한 관심과 영입 의지는 대단했다.

“그래서 큥큥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의 정체는 찾았어?”

“몰라. 분명 차명 길드가 분명한데 흔적이 없어. 협회에서도 안 알려주는데 어떻게 아냐?”

“젠장. 이러다가 진짜 정슈리 마법소녀 되는 거 아니냐?”

농담으로 말을 했지만 스카우터들은 속이 타들어갔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조직에게 정슈리를 빼앗기는 건 여러모로 유감을 넘어 짜증이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

“아오. 우리 대장 정슈리 한 번 어떻게 해볼라고 난리피우던데.”

“너희도? 으으, 우리도 말도 마라. 벌써부터 우리 길드에는 결혼하겠다고 난리피우는 놈도 있는데 뭘.”

“에이, 아무리 그래도 갈보랑은 아니지. 척보기에도 놀게 생겼잖냐.”

“갈보라니? 그런 소문은 없어. 여자 히어로들이 얼마나 자기 몸 잘 챙기는 지 알잖아. 그런 소문 돌면 몸값떨어진다니까.”

정슈리에 대한 온갖 악의어린 소문이 도는 가운데, 드디어 택시가 인천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택시를 포위하듯 달라붙자, 택시 안에서 무언가 회색 빛이 뿜어져나왔다.

“응?”

“뭐지?”

순간.

끼이이익!!

택시는 갑자기 뒤로 돌아, 신서울을 향해 유턴하여 거꾸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스카우터들은 다시 신서울로 달렸다.

***

두두두두두.

고기잡이 배의 엔진이 시끄럽게 울리는 가운데, 우리는 목포항에서 고기잡이 배를 빌려 목포항을 떠났다. 2m 상어 괴수에게 들이받으면 바로 전복될 법한 작은 어선은 넘실거리는 파도에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흠흠. 유성공화국에서 유성의 힘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다니 참 놀랍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쪽배를 하루 쓰는데 300만원이나 쓰다니."

"아니지 라온 언니, 1억이야. 온전히 갖다줘야 9700만원 돌려받는다구."

"......."

하유은유하는 석하랑도 아닌데 주변에 냉기가 풀풀 날릴 정도로 저기압이었다. 선주는 은유하를 상대로 배를 빌려주는 대가로 1억을 불렀다.

"보통은 선박보험 같은 거 있어서 망가져도 보험금 타면 될텐데 말이야. 이제 어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상도 아니고."

"괴수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보험처리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괴수의 등장에 따라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의미가 없어졌다. 인간이 그나마 관리가 가능한 육지는 다소 괜찮지만, 바다 깊은 곳에 괴수가 득실거리는 이상 어업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사실상 어업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기 직전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낡아서 버리기 직전인 어선이라도 빌려주는 걸로 돈을 받아먹는 선주의 심정도 이해가 가는 동시에, 하루 빌리는 것에 대해 고작 300만원이나 부른 것에 대한 괘씸함도 동시에 들었다. 은유하는 막심한 손해를 본 것에 분노와 짜증에 가득차있었다.

"사장님. 하유은 씨 본사에서 깨지지 않게 하려면 이번에 성과 잘 내야할 것 같아요."

"당연하지. 안 그러면 불똥이 우리한테 튀지 않겠어?"

유하는 우리가 어느곳에 가는지 동선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현장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의 실습지역이 신안 인근인 걸 알았다면, 분명 그녀는 목포에 유성의 배를 미리 대기시켜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선의철에게 동선을 읽히게 되기 때문에 조심히 움직였다. 그게 독이 되어 쪽배를 300만원-온전히 돌려주지 못하면 1억-이나 되는 거금으로 바가지를 쓴 것이다.

"푸흐흐, 선주님 뜻대로 크게 한탕 벌고 돌아가야겠는걸?"

"한 번 배타고 나가서 코어만 잘 챙겨나가도 10억은 버니까요."

"맞아. 울 엄빠가 예전에 배타고 다녔던 거 들었는데, 원양어선 타서 살아돌아오기만 하면 인당 100억은 땡길 수 있다고 하더라. 레알임."

"사실상 생명수당이죠.... 그래서 사장님, 저희 어디까지가요? 계속 써요?"

갑판 아래, 물고기 창고에 들어간 가온은 배의 바닥을 발로 두드리며 물었다. 그녀의 아래로 퍼져나간 물의 마법은 쪽배를 아래에서 보호하는 중이었고,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아래에서 파고드는 E~D급 괴수들을 보호막 근처에 오자마자 반으로 갈라 도륙내었다.

"응. 잔돈이라도 벌어가야지."

"일단 이걸로 뱃삵은 벌어가겠네요."

단순히 어선의 진동을 느끼고 부나방처럼 보호막에 대가리를 들이받는 괴어들 덕분에 우리는 코어를 쓸어담는 중이었다. 물고기 창고가 코어로 차오를 때마다 유하의 노기도 점차 가라앉았고, 우리는 섬들을 스쳐지나가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윽."

"...버려진 섬입니까?"

"그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서 괴수들의 천국이 된 곳이지."

이 세계에서 섬은 기본적으로 버려지기 가장 쉬운 곳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게이트가 열려 섬 전체가 침몰한 이래, 섬에서 살던 주민들은 대부분 섬을 목숨걸고 탈출하여 육지로 터전을 옮겼다.

영종도나 강화도처럼 반도와 다리로 연결된 섬조차 괴수들의 습격으로 버려졌 건만, 상대적으로 방위가 취약한 도서산간에 사람이 제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세계가 평화를 되찾으면 여기 염전에도 사람들이 돌아오겠지?"

"......오빠, 여기 돌아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아는 거임?"

"글쎄. 인터넷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산다고 들었는데."

"......."

나는 은근슬쩍 슈리의 눈치를 살폈다. 뱃머리에 앉아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린 그녀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척 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있었다.

"이 나라는 참 외국인이 살기 어려운 동네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장님은 잘 살고 계시잖아요.”

“그렇지. 돈만 있으면 이 나라만큼 살기 좋은 곳이 또 어디있겠어. 푸흐흐.”

돈.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부재한다면 분명 살아가기 힘든 게 분명하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돈이 있다면 행복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돈 벌어야지. 슈리 양, 도와줄 거지?”

“.......”

“어쭈, 대답 안한다? 유나야, 와서-”

“실습생한테 시킬 생각이세요?”

“쳇.”

유나는 혀를 차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슈리는 그런 유나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봤고, 나는 유나의 허리를 토닥이며 주변을 가리켰다.

“실습나왔으니까 모처럼 안내해줄게. 지금 여기 염전이잖아. 그럼 뭐가 튀어나오겠어?”

“소금?”

“정답은 소금밭에 숨은 괴수들이야.”

키에에엑!!

내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소금밭에서 괴수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괴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몸통은 물고기의 형상이지만 인간의 팔과 다리가 달린 괴수들은 손에 쇠꼬챙이를 든 채 우리를 향해 이빨을 딱딱거렸다.

“유나야, 쟤들은 무슨 등급이지?”

“D급 괴수 <심해아귀>에요. 그런데 저렇게 몸이 하얀 녀석들은 처음보네요.”

“당연하지. 쟤들, C급인 걸.”

팀원들-마법소녀들은 마린룩으로 저마다 무기를 들어올렸다. A급인 가온이 있고, 아무튼 S급인 보이지 않는 보디가드가 따라 붙어있지만, 괴수를 상대하는 건 분명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름은 <솔트 머맨>. 염분이 짙은 곳에서 나타나는 어인형 괴수야. 물고기가 소금밭에 절여저서 괴수가 된 케이스지.”

“사장님, 주의사항 뭐 있음?”

“창은 장식이야. 진짜는 이빨이지.”

끼이익--!!

고기잡이배가 염전밭의 부표를 들이받았다. 사각형으로 넓게 펼쳐진 염전은 이미 표면이 굳어 밟고 다니기에 충분할 정도로 굳어있었다.

“잘 들어. 염전 전체가 전장이라고 생각해. 살얼음이 껴서 깨지기 쉬운 강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프레임 위에서 싸우는 거야.”

“그러다 밟으면 깨지는 거임?”

“우리 팀원들 전부다 깃털처럼 가벼워서 걱정이 되지는 않는데, 설마 깨지는 사람은 없겠지? 푸흐흐.”

긴장을 풀기 위한 내 농담에 팀원들은 피식 웃으며 갑판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을 보호하는 가온과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유하를 제외한 유나-라온-누리가 포지션을 잡고 프레임 위에 두 발을 디뎠다.

“물에 빠져도 걱정마! 내가 건져줄게!”

“언니는 거기나 잘 지키셈!”

“방심하지 말고, 전투 개시!”

캬아아악!!

솔트 머맨, 소금아귀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채꼴로 넓게 펼쳐진 상태로 달려드는 소금아귀의 수는 눈으로만 봐도 족히 수십에 이를 정도였다.

“유나는 광탄으로 시선 교란. 라온이 좌익, 누리가 우익. 각자 자유롭게 때려죽이면 돼.”

대량의 C급 괴수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지휘를 내릴 필요는 없었다. 유나가 빛을 뿌려 괴수들의 시야를 빼앗는 사이, 라온과 누리가 굳은 염전 위를 달리며 괴수들을 하나 둘 때려잡기 시작했다.

“슈리 양, 너는 일 안 해? 지금 유나 불러서 박을까?”

“아, 아니 그게.”

슈리는 몹시 당황하며 손으로 고간부를 눌렀다. 붉어진 얼굴로 쭈뼛거리는 그녀는 노출도가 심한 복장에 손을 사타구니에서 때어내지를 못했다.

“이, 이 꼴로 싸우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꼴로 싸우는 거지 헐벗고 싸우려고?”

“미쳤어요?!”

슈리는 자신의 복장을 가리키며 성질을 부렸다. 다른 이들이 입은 마린룩과는 달리, 슈리의 복장은 핑크색 레오타드에 흉부에 붉은 리본이 달려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싸우라는 거예요?!”

“히어로 코스튬을 부끄러워하다니, 감점 5점.”

“야!!”

“지휘를 내리는 사람에게 반 말을 하다니, 태도 불량으로 감점 10점.”

슈리는 레오타드 옆으로 드러난 구릿빛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학점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학부생에게 성적은 몹시 민감한 부분이었고,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평가 점수에 그녀는 스태프-를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가라, 마법소녀 슈리! 히어로라면 어떤 코스튬을 입고 싸우더라도 감내할 줄 알아야지!”

“이건 코스튬이 아니라 치녀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정상적이고 귀여운 복장인데 왜 나만 이런 꼴인 건데요?!”

“인턴도 아닌 사회견학으로 온 녀석에게 정직원 복장을 줄 것 같아? 얘기했지! 네가 그걸 입고 싸우지 않으면 유나가 그걸 입을 거다!”

“윽…!”

유나를 걸고 넘어지는 협박은 몹시 효과적이었다. 슈리는 마치 지리기 직전인 자세마냥 허벅지를 붙이며 전장으로 뛰어내렸다.

“얘들아, 마법소녀 플레임 큥큥의 지원 공격이다!”

“푸흡!”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던 유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물고기 창고에 코어를 한가득 쌓고 있던 가온도 손으로 입을 막으며 끅끅거렸다.

“아니, 씹…! 나에게는 <화마인>이라는 이명이 있다고요!”

“가라, 블레이즈 큥큥!”

“씨발!”

슈리는 쌍욕을 내지르며 스태프를 높이 치켜들었다. 평소 그녀가 애용하던 스태프와는 다른, 내가 일부러 그녀에게 준 7세 유아용 마법봉은 뾰로로롱 소리를 내며 하트 모양으로 반짝였다.

화르륵.

모양은 우스꽝스럽더라도 코어웨폰은 코어웨폰이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형태야말로 빠요엔의 상징이며, 슈리가 움켜쥔 마법봉은 어지간한 마도 스태프보다 훨씬 더 좋은 효율을 자랑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화르르륵!

염전 곳곳에 불덩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슈리는 부끄러움을 전부 불꽃과 함께 태워버리려는 듯 사방으로 불덩이를 난사했다. 라온과 누리의 동선을 피해 떨어지며 폭발하는 불덩어리에 소금아귀들은 금방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A급은 A급이네.”

“저보다 지금 마력은 높잖아요.”

“그래. 둘이 붙으면 당연히 가온이가 이기겠지만.”

외국에서 원탁 히어로의 에스콰이어로 지낸 가온과 견줄 정도로 슈리의 전투력은 높았다. 확실히 신서울 아카데미에서 모든 길드의 사람들이 탐내는 유망주 다웠다.

“하지만 전투는 언제든 불의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법.”

괴수와의 전투는 완전히 숨통을 끊고 코어를 뜯어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내 어깨에 올려둔 김펜릴의 엉덩이를 톡 건드렸다.

“세상은 참 여러 변수가 튀어나온단 말이야. 흐흐.”

괴’수’는 주로 짐승이나 자연의 생물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괴’인’은 사람들로부터 발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실히 괴수를 상대로 하는 건 제법 괜찮네. 하지만 어인이 아니라 괴인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어떨까?”

인간형을 상대로 한 전투에도 과연 무차별 적으로 불덩어리를 터뜨리며 싸울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전투를 통해 정슈리가 가진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다.

대인전.

물고기에 사람의 팔다리가 난 존재 뿐만 아니라, 괴인과 같은 사람같은 적을 상대로 얼마나 확실하게 싸울 수 있는가.

“바다는 말이야, 괴인들이 태어나기 정말 좋은 땅이지. 푸흐흐.”

팀원들이 소금아귀들을 모두 처리한 순간, 염전 바닥에서 하얀 팔이 휙 하고 튀어올랐다. 앙상하고 삐쩍마른 사람의 팔이, 뼈만 남은 채.

"대-하."

새우 대가리, 하이.

머리에 새우같은 투구를 쓴 검은 괴인들이 하나 둘 염전밭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