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93화 (693/1,497)

〈 693화 〉2부 4장 20

잠시 뒤.

나는 유나, 하랑, 그리고 겨울과 함께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이제 내일이면 실습길드 발표 날이네."

실적은 이미 등록되었다. B급 괴수를 공략한 것, C급 괴인을 사로잡은 것, 그리고 A급 이능력자를 쓰러뜨린 퀘스트는 완료되었다.

"지금까지 다들 고생했어."

세 개의 퀘스트 중 하나만 클리어해도 실습길드로 등록이 가능하다. 나머지는 정슈리를 영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이제 남은 건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뿐.

"......어, 음."

"크흠."

"겨울이랑 하랑이랑 되게 불편해보이네. 유나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넷이서 같이 할까요?"

유나는 친목을 다지는 데 있어서 정말 화끈한 제안을 했고, 다른 둘은 기겁을 하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 그건 좀!"

"어색하니까 그건 삼가해주지 않을래…?"

"무슨 생각들을 하신 거예요? 인생게임이요. 인생게임. 넷이서 하는 거."

유나의 말에 둘은 의아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유나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거 알아요, 오빠? 섹스는 게임이라고 누가 그랬어요."

"유나는 인생섹스가 4P인 거야?"

"4P든 3P든 17P든 그건 중요한 게 아녜요. 중요한 건 그 안에 제가 있냐 없냐 하는 거죠."

"역시 이유나."

자신의 마음을 드러냄에 있어서 숨김이 없었다.

"그러니까 겨울 씨, 너무 신경 안 써도 되요. 오빠는 섹스한 상대를 대상으로 정말 많이 신경써주시니까요.”

“그거 좋아해야하는 건가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60억분의 10...중 한 명이 되었다는 것에.”

60억 중의 10은 커녕 20, 아니 30까지 늘어날 지도 모르지만, 유나와 하랑의 말에 겨울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 참…. 서로 불편해하지 말고 쿨하게 인정하고 가는 거예요. 알았죠?”

“물론. 다음에 서로 하고 있으면 같이 끼거나 자리 비켜주기. 약속이에요?”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정해버리네. 좋아. 나도 그게 편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유나가 1:1 마력공급 중에 난입각을 재려고 설계한 것 같지만, 나는 대화의 화제를 다시 실습 길드의 발표로 돌렸다.

“아침에 발표나면 바로 신서울에 가서 준비해야 해.”

“어디로 갈 계획인데?”

“장소는 나도 몰라. 장소에 따라 어떤 괴수 잡을 지도 생각해봐야지.”

아카데미에서 실습길드를 발표함에 있어, 단순히 실습을 할 길드를 정해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실습길드로 하여금 특정 지역에 방문하여 괴수들을 소탕하도록 요청하는 게 아카데미 실습의 묘미.

‘장소는 이미 세 군데 중 하나로 정해져있죠.’

1/3의 확률로 어디가 정해지느냐에 따라 전황이 달라질 뿐이다. 어차피 셋 다 ‘섬’으로 가니까.

“슈리 양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어?”

“히어로 숙소에서 지금 휴식 중이에요. 아마 오빠 프로필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을 걸요?”

하랑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한 슈리는 분명 복수를 위해 강해지고 싶어 할 것이다. S급의 문턱을 눈앞에 둔 그녀는 강해질 방법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선택을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S급이 될 수 있었다.

나에게 안기느냐, 안기지 않느냐. 어느쪽을 선택할 지는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

“다들 푹 쉬고 내일 아침 먹고 출발할 거야.”

길드 발표와 동시에 바로 신서울에 남은 이들과 합류하여, 길드의 활동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다.

***

<오전 9시 55분, 부산 히어로 협회 건물 안 A급 전용 객실>.

“후우, 후우.”

슈리는 숨을 들이마시며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10시까지 고작 5분밖에 남지 않았건만, 왜 이리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지 숨이 다 답답했다.

“빨리 발표나라….”

10시가 되면 아카데미에서 공식적으로 학부생들이 실습을 하게 될 길드를 발표하게 된다. 슈리에게 있어 가장 좋은 길드는 유성 그룹 산하의 길드였으나, 어쩌다보니 희망지 한 곳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오라클 스튜디오.

유나가 있고, 석하랑이 있고, 지휘관이 있다. <지휘관>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슈리는 그간 가졌던 모든 오해와 분노가 눈녹듯이 전부 사그라들었다. 대신 유나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유나...자기만 꿀빨고.”

꿀을 빨았다는 표현은 유나의 노력을 다소 폄훼하는 발언이었으나, 슈리가 유나에게 느낀 섭섭함은 진짜였다.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과도한 배려심은 슈리에게 독으로 작용했다.

‘반한 남자 독점하려고 질투하고 견제한 건 이해해. 근데 그게 지휘관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지휘관인 걸 알았다면 진작에 태도를 달리 했을 것이다. 진작에 지휘관인 걸 들었다면 실습 길드를 걱정하기는 커녕 지휘관과 함께 어떤 괴수를 잡으러 다닐지 괴수 사냥 동선을 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를 상대로 유나를 임신시켰니 뭐니 짜증을 부리고 협박을 하고 죽이려고 했다. 슈리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좌절했다.

“으으...난 이제 그 사람을 어떻게 봐야하는 거지?"

만약 자신이 욕하고 틱틱거린 것에 불쾌해한다면, 슈리에게는 인생역전의 기회가 그대로 닫히게 되는 셈이었다. 성행위 몇 번이면 S급이 될 수 있는데, 그 길이 잘못하면 까닥 막히게 생겻다.

"...몰라. 유나한테 다 책임지라고 할 거야."

유나가 제대로 이야기만 해줬다면. 임신같은 소리를 하지 않고, 제대로 자신에게만이라도 이야기해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우울함이 가득 차오르던 순간,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삐비빅. 10시, 10시 알람입니다.

"핫."

슈리는 바로 조회 버튼을 눌렀다. 몇 명이나 10시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 공지사항 게시판에는 벌써부터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2025년 2학년 학부생 실습길드 발표.hwp]

"찾았다...!"

수많은 파일들 중에서 슈리는 자신이 바라던 파일을 찾아 열람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모두 제껴, 자신의 이름도 전에 '실습 길드'를 검색했다.

"오라클 스튜디오!"

[검색 결과는 0건입니다.]

마도기어의 AI는 상큼한 목소리로 검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했다. 슈리는 당황해 자신이 검색을 제대로 했나 살폈지만, 분명 길드의 정식 명칭은 오라클 스튜디오가 분명했다.

"뭐야...?"

머리를 긁적거리며 화면을 아래로 내린 슈리는 흠칫 굳어버렸다. 눈앞에 보이는 내용에 갑자기 백청화라는 남자가 정말로 지휘관인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정슈리,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미친 거 아니야?"

세상 누가 이딴 이름을 길드명으로 한단 말인가. 마법소녀는 그렇다 치더라도, '큥큥'이라는 의미를 이미 유나를 통해 넌지시 깨닫게 된 슈리는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아니, 씨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보는 곳에다가 저러면 어떡해?!"

이미 게시글의 조회수는 불과 3분 사이에 1만을 돌파했다. 실습을 가는 학부생은 고작 100명 남짓한데 학부생의 가족, 길드의 관계자, 가십거리를 찾는 기자들, 궁금해서 들어온 이들까지 포함해 전국민이 보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속보> 정슈리는 마법소녀.]

"아아아악!!"

벌써부터 3류 찌라시 기사들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기사라고 해봐야 '<화마인> 정슈리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라는 길드로 배정되었다'라고 달랑 한 줄이었지만, 이미 댓글이 100개 가까이 달리며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이건...."

수치심에 죽어버린 것 같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슈리는 간신히 진정하여 다른 이들의 실습 길드를 살폈다. 아무리 살펴봐도 실습 길드 중에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와 같은 장난스러운 이름은 없었다.

"이런 건 실무진 단계에서 걸러져야 하는 거 아니야?!"

슈리의 오갈데 없는 분노는 자연스레 아카데미측을 향하게 됐고, 슈리는 씩씩거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창을 올렸다.

"...이유나."

이유나,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

삐리리릭.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슈리는 마도기어 너머에 떠오른 이름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유나야?"

[유나의 이름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윽."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모를 상대가,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스레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의 길드장, 백청화라고 합니다. 저와 계약해서 마법소녀가 되어주세요, 화마인 정슈리 님!]

"......."

슈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던져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엄마. 예언이 틀린 것 같아요."

슈리는 자신에게 남겨진 예언이자 유언을 떠올리며, 얼굴을 쥐어뜯었다.

"저런 남자가 세계를 구할 영웅이래요...."

슈리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에 끙끙 앓다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뭣도 모르고 받아버렸다.

[정슈리 양! 유성일보 기자입니다! 마법소녀가 된 소감은 어떠십니까?!]

"씨발 이 개새끼가 어디서 내 번호 알아내서 전화하고 지랄이야!"

슈리는 한동안 자신의 이명이 <마법소녀>가 된 것에 억울해 미칠 뻔 했다.

* * *

"푸흐흐, 당황해서 끊어버리는 꼴이란."

"죄송해요. 슈리가 저래뵈도 착한 애에요."

"그래, 그래. 신경안 써."

나는 슈리가 전화를 멋대로 끊어버린 뒤, 문자로 통보만 남겼다. 출발이야 우리가 먼저 한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우리가 가야할 장소를 알려줄 필요는 있었다.

"가을아, 할 수 있지?"

"...이능력으로 변신한게 아니고 그냥 변장한 건데 사람들이 속을까?"

가을은 잠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슈리처럼 몸을 꾸몄다. 태닝샵에서 마사지를 받는 겸 피부를 갈색으로 태우고, 머리를 금발로 잠시 물들였다. 슈리보다 가슴은 훨씬 크지만, 압박브라로 가슴 사이즈를 맞추고 큰 선글라스를 끼니 비슷한 사람처럼 보였다.

"걱정마. 가을이는 그냥 택시타고 이동만 하면 되니까."

"동선은 유성에서 알아서 해줄 겁니다. 걱정마시길."

"...내가 살면서 이런 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이야."

우리가 먼저 현지에 터를 잡은 뒤에 그녀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올 수 있도록, 가을은 사람들을 상대로 교란작전을 펼칠 것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라는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 찾는동안, 이미 우리는 내게 직접 전달된 길드 실습지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마도 트레일러는 당장이라도 내려갈 준비가 끝났고, 교란작전을 펼칠 가을도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그럼 출발하자. 우리, 섬으로 배정되었어."

"섬이라. 어느 섬입니까?"

"신안."

나는 '모든' 팀원과 함께 사무실을 떠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