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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90화 (690/1,497)

〈 690화 〉2부 4장 17

화염술사와 빙결술사의 싸움은 철저한 마력 대결이다.

흔히들 표현하는 ‘마법’이라는 이름의 이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둘 사이의 대결은 대게 ‘장마전선’이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푸쉬이이!

불기둥에 닿은 얼음나비들이 수증기를 일으키며 녹아내렸다. 석하랑이 뽑아낸 얼음나비들은 전장을 뒤덮으로 사방팔방으로 날아들었고, 슈리는 자신의 스태프를 휘둘러 마구잡이로 불기둥을 만들었다.

콰앙, 콰앙!

얼음나비는 아주 쉽게 부서졌다. 설화공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정슈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손해.

마력 교환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자신은 마력을 상당히 사용하는 ‘스펠’을 사용하고 있지만, 석하랑은 고작 마력을 아주 최소한으로 활용하는 ‘기본공격’으로 정슈리를 수비에 급급하게 만들었다.

“제 공격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알다마다!”

정슈리는 스태프를 회수해 주변에 불의 막을 펼쳤다. 활활 타오르는 구형의 보호막은 정슈리의 몸을 완벽하게 보호했고, 불기둥의 틈새로 파고든 얼음나비들이 보호막 위에 내려앉았다.

“크으윽!”

원거리에서 나비 몇 마리 날릴 뿐인데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다. 특별한 기술도 사용하지 않았건만, 아무리 S급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전세가 열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술은 쓰기는 썼어.’

정슈리는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정슈리가 전력을 다해 불꽃의 마법을 사용했건만, 대련장을 감싼 얼음벽은 조금도 부서지거나 녹아내리지 않았다.

즉, 석하랑은 대련장 보호라는 명목으로 절대방벽이라는 사기적인 기술을 빼고 전투에 임했다. 장기로 치면 차포를 떼고 싸우는 격이었으며, 정슈리의 자존심은 활활 타오르다가 자꾸만 사그라들었다.

‘내가 이렇게 힘도 못쓰고 진다고?’

정슈리는 스태프를 꽉 움켜쥐었다. 아카데미에서 실기 1등이기도 한 그녀는 현역 히어로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존재라고 하지만, 이 정도 격차는 나서는 안 됐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차이였다. 정슈리는 석하랑이 펼치는 얼음나비의 향연에 보호막 속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정면 싸움은 약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화력이 강하다고 한들, 그건 상대적인 거니까요.”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은 고마운데,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 불쾌하군요!”

슈리는 강자에 대한 예우와 짜증을 실어 스태프를 전방으로 뻗었다. 코어웨폰인 스테프에 마력이 깃들어 붉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전력으로! 인페르노!”

“기술명을 외칠 이유가 없다면 딱히 안 말하는 게 좋습니다.”

석하랑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슈리의 스태프에서 뿜어져나온 불꽃은 수 천 도를 훌쩍 넘는 지옥의 유황불과도 같았고, 순간 천장의 얼음방벽이 열기에 살짝 녹을 정도였다.

“지금처럼 말이죠.”

짝. 석하랑은 손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얼음나비들이 일제히 수증기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얼음에서 물로 변해버린 석하랑의 공격에 슈리는 경악했다.

“뭣?! 물술사?!”

“히어로는 언제든지 능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법.”

석하랑은 우쭐거리는 미소와 함께 손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오선지처럼 물결치는 얼음 결정들은 슈리가 날리려고 한 화염구를 향해 춤을 추듯 휘감았다.

“그 정도로 저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화마인.”

푸쉬이이---.

석하랑의 얼음 결정들은 그물이 되어 슈리의 화염구를 휘감았다. 막대한 흰 수증기와 함께 화염구는 제대로 발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그대로 터져버렸다.

“으, 으으….”

너무 강하다. 전력 차이가 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고작 4만 늘어나면 자신도 S급에 발을 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가깝게 여기고 있었건만, A급과 S급의 차이는 천지차이였다.

“하, 하지만…!”

아직까지 ‘궁극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 마력을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궁극기를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전투는 당신의 패배입니다.”

석하랑의 승리 선언에 슈리는 울컥했다. 아직 싸우기에 충분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석하랑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왜?! 내가 왜 진 건데?!”

“...말이 좀 편하네요. 뭐 좋습니다. 왜 진 건지 설명하자면….”

빠-악. 뒷통수가 얼얼하다. 슈리는 뒤를 바라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 유나야?”

“...미안해, 슈리야.”

슈리의 뒷통수를 스태프로 때린 여인, 이유나는 울먹거리는 눈빛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 그게 이게 실은-"

풀썩.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붙잡고 있으려던 정슈리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

<그 시각, 찜질발 토굴 안.>

"이게 뭐예요?!"

겨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화려한 결계 속에서 강력한 두 존재가 펼치는 얼음과 불의 랑데뷰는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점차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으나, 갑작스레 튀어나온 유나라는 변수에 의해 끝나고 말았다.

“슈리 양은 저게 문제야. 한 번 믿은 건 쉽게 의심하지 않는 타입이거든.”

“그렇다고 친구한테 뒷통수를 때리라고 하는 건 조금.”

“유나한테 의존증을 가지고 있기도 해. 유나 졸업해야지.”

유나에게 집착을 보이는 정슈리는 본래 영입하기 몹시 쉬운 존재다. 외국계 길드에서 활동하는 유나가 걱정되어 유나가 일하는 길드에 따라 지원을 할 정도(2월까지는)로 그녀는 유나에 대한 의존과 집착이 심하다.

'집착이 아니라 세계 평화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거지만.'

핵단추가 옆에 굴러다니고 있다면 누구나 걱정하고 신경쓰기 마련. 슈리가 가진 아주 미약한 미래예지의 힘은 유나가 잘못되면 곧 세계가 멸망할 거라는 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것이다.

“어쨌든 유나는 이제 내 여자야. 계속 유나한테 집착하는 건 잘못됐어.”

“유나 양이랑 하는 거에 슈리 양이 부담스러운 건 아니고요?”

“뭔 소리야. 슈리까지 어떻게 해보려고 지금 발악을 하는 건데.”

그리고 이왕이면 몇 명 더.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이쿠, 좁다.”

“히익?! 뭐하는 거예요?!”

“공간이 좁아서 불편한 걸 어떡해? 싫으면 나가든가.”

나는 겨울의 위에 올라탔다. 풍만한 두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도기어를 앞으로 뻗어 슈리와 하랑의 전투를 다시 재생했다.

“이, 이러다 SP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걱정마, 안 들켜.”

“무슨 자신감으로…!”

“못 보고 있으니까.”

토굴에 들어온 순간, 이미 나와 겨울은 다른 곳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겨울 양, 어디 한 번 우리도 즐겨볼까?”

나는 찜질방 옷의 바지를 살짝 내려, 나의 거근을 꺼내들었다.

“설마 여기 들어오면서 예상 못한 건 아니지?”

“아니, 진짜, 들키면 당신이 좆되는…!”

“걱정마. S급이 결계쳤으니까.”

“......!”

보이지 않는 S급, 폰보디가드의 존재를 언급하자 겨울은 눈을 샐쭉였다. 슬쩍 아래로 다리를 뻗어 토굴 입구를 건드리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결계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담도 하셔라. 혹시나 중간에 들키면 개쪽으로 안 끝나는 거 아시죠?”

“걱정마. 절대 들킬 일 없어.”

나는 겨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체위를 바꾸려고 했다. 서로 옆으로 누워서 박는 건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아, 잠깐만요.”

겨울은 바닥에 반듯하게 엎드렸다. 큰 가슴이 땅과 닿은 건 유감이지만, 겨울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엉덩이를 흔들었다.

"뭐지? 애널섹스를 해달라는 과시?"

"허, 허벅지를 빌려드리는 거예요! ...그, 그리고."

겨울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처, 처녀막 안 깰 자신 있으면 앞에다 박아보시던가요…."

모순을 제시하는 겨울의 말에 나는 자지가 불끈 달아올랐다.

***

“두식 씨, 저거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뭘.”

“남녀가 저런 으슥한 토굴에 들어가서 살을 부대끼고 있는데 신경 안 쓰여?”

“알 게 뭐냐. 선가놈 딸 년이 양키랑 놀아나든 말든.”

호국청년단의 일원, 김두식은 같은 호국청년단의 단원인 박아라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호국청년단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열중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박아라는 절로 불안해졌다.

“이거 괜히 잘못되면 우리만 슥삭 당하는 거 아니야?”

“멍청아. 남자랑 둘이서 부산 내려온 거 왜 안 막았냐고 어제 노발대발하면서 애들 쪼인트 당한 거 모르냐?”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저거 보고하면 바로 빡쳐서 부산 날아올 걸. 니들은 감시하라고 내려보냈더니 저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데 안 막고 뭐했냐고.”

“우리 임무는 감시 아니야?”

“딸 년 놀아나지 않도록 감시하라는 말이지. 저렇게 남자랑 둘이서 으슥한 곳에 들어가서 그렇고 그런 짓 하지 못하도록.”

김두식은 둘이 들어간 토굴을 가리켰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떨어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크게 문제될 건 없어보였다.

“두식 씨, 뭘 보는 것 같아?”

“길드 관련 내용이겠지. 저 놈, 은근히 자기 길드 관련된 중요 내용은 저런 식으로 숨긴단 말이야. 우리한테 안 보여주려고 들어간 게 틀림없어.”

“큰일이네. 보고하기 난감한데.”

“보고할 필요가 뭐있냐. 그냥 나중에 아가씨께는 별 일 없었습니다 하고 넘어가면 되지. 애초에 여기 있는 인간들 선겨울인 거 몰라. 신서울에서나 아이돌이지.”

김두식은 맥반석 계란의 껍질을 까며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뉴스에서 마침 선의철이 나와 서울의 경제적 가치를 논하고 있었다.

“저 씨발놈.”

“마, 나랏님 욕하면 바로 오지에 끌려가는 거 모르나?”

“누가 나랏님 욕했나? 애미씨벌.”

신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생생한 반응에 김두식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같은 나라의 지도자지만, 신서울 다음으로 큰 부산만 하더라도 선의철에 대한 반응은 끝자락에 달해 있었다.

“선가놈 개새끼. 분명 꼬추 얼라보다 작을끼다.”

“뭐래. 자네가 까보기라도 했는가?”

“아 생긴 거 보면 딱 견적 나오지.”

남자들은 선의철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두식은 묵묵히 계란을 까며 한 입 베어물었다.

“우리가 저거 보고하는 순간, 신서울의 왕님이 부산으로 행차하실 거다. 여이 아저씨들 더럽게 귀찮아할 걸?”

“부럽네요. 저희는 저항도 못하고 명령대로 따라야 하는데.”

박아라는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하얀 수건을 목도리처럼 묶은 그녀의 목에는 검은 문신이 슬쩍 삐져나와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선가놈에게 우리는 그냥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교환부품이야.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그렇군요…. 그, 근데 두식 씨. 저건 어떻게 하죠?"

"뭘?"

"그, 둘이서 지금 엄한 짓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김두식은 슬며시 토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둑어둑한 공간 아래 몸을 겹친 둘은 대담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와우. 저거 보고하면 바로 우리 목 날아가겠는 걸."

"어,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두식은 코를 파며 자세를 반듯하게 잡았다.

"정직하게 보고하고 모가지 날아가거나, 그냥 못 본 척 하거나. 오우야, 공공장소에서 아주 대놓고 떡을 치려고 드네."

"......저, 저는 몰라요."

호국청년단 단원들은 토굴 안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침을 삼켰다.

"제발 박아라."

"네? 부르셨어요?"

"아니. 박으라고. 박으면 보고 안 할 거다. 크흐...오우, 씨발."

김두식은 삼키려던 식혜를 뿜을 뻔 했다.

"지, 진짜 박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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