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89화 (689/1,497)

〈 689화 〉2부 4장 16

새액. 새액.

나는 밤을 샐 정도로 정사를 나눈 하랑과 유나를 양 옆에 눕힌 채 대자로 누웠다. 유나가 내 왼쪽, 하랑이 내 오른쪽에서 나를 향해 엎드리며 팔베개를 하고 잠들었다.

'이게 행복이지.'

여신을 둘이나 옆에 알몸으로 눕혀 안기게 하는 것만큼 또 좋은 게 어디에있을까.

여기에 내가 남자의 몸이 아닌 여자의 몸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석하랑도 오케이했고, 이제 게임은 끝났어.'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누군가와의 연락을 확인했다.

[정슈리 양 새벽기차타고 해운대 간다네요~~ 고객님 새 여자 축하드려요..ㅎㅎ]

[A급 코어 하나면 되죠?]

[사랑합니다.]

유하는 이사진으로서 아카데미측을 압박하여 정슈리를 부산으로 오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슈리는 부산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녀는 비공식적인 대련을 하게 될 것이다.

<화마인 부산 방문, 지역 길드 활성화?>

슈리의 부산 방문은 이미 대대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애초에 슈리의 움직임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슈리를 무리하게 부산으로 오게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부산으로 오는 것도 감지덕지지.'

석하랑이 부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니 슈리가 부산으로 오게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슈리와 석하랑 간의 대련이 성립되고, 그래야 우리의 퀘스트 조건인 'A급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

"음...흐으."

나는 하얀 눈이 내린 것 같은 하랑의 머리칼을 쓸며 그녀를 안정시켰다. 잘 때도 다른 이와 꼭 달라붙어 자는 그녀의 잠버릇에 나는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자는 애를 깨워서 할 수도 없고.'

석하랑과 주인공의 관계는 부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현지 와이프 같은 존재다. 서울수복작전이 아닌 이상에야 주인공이 부산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사실상 관계는 하기 힘들고, 주인공이 부산에 내려올 수 있는 것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힘들다.

'왔을 때 최대한 많이 해주고 가야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호감도가 오르는 존재가 석하랑이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고, 석하랑은 웅얼거리며 더 깊게 잠들었다.

"......."

옆에서 싸한 눈빛이 느껴진다. 바디필로우에 다리를 올리는 것 마냥 은근슬쩍 다리 하나가 올라와 내 자지를 오금으로 움켜쥐었다. 허벅지 아래와 종아리 사이에 끼인 자지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안 돼요. 그 이상 하면 하랑 언니 진짜 내일 컨디션 안 좋아진다고요."

"유나야, 생각만 하는 것도 안 돼?"

"마력공급을 하고 싶으면 저랑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휴우. 알았다, 알았어."

나는 유나의 다리에 의해 자지가 구속되었다. 자고 있는 하랑이 어렸을 적 주인공에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자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몰래 해보려고 했지만 유나에게 자지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냥 재워주세요. 언니 엄청 힘들어했는데."

"솔직히 내가 하랑이 보낸 지분이 8할이라면, 네가 하랑이 보내버린 지분도 2할 정도는 되는 거 아니?"

"그래요? 그러면 둘이 합쳐서 십할이네요. 씹할."

"이게."

나는 유나의 가슴을 꼬집었다. 유나는 다리를 위아래로 들어올리며 내 자지를 애무했다.

"조용히 자요. 내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셔야 하잖아요."

"그래, 그래."

나와 하랑이 1:1로 성교를 나누던 시각, 유나는 이미 떡밥을 뿌렸다.

- 슈리야. 나 부산 내려왔는데, 설화공주가 A급들 상대로 대련해준다던데?

전투광까지는 아니지만 S급을 상대로 대련할 수 있는 기회는 마땅찮다. 특히 S급이 한국에서 단 둘 뿐인데다가 한 명은 방구석에 처박힌 노인네인 이상, 석하랑이 먼저 나서서 대련을 해준다고 하면 줄서서 기다리게 된다.

"슈리, 버스 탔어?"

"네. 심야버스 타고 내려오고 있는 중이에요."

슈리는 유나의 말을 믿었다. 설령 유나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들, 유나가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한 이상 하던 일 전부 제쳐두고 부산으로 내려올 여자다. 유나가 혹시나 외지에 나가서 나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여 한 걸음에 달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윤간당하지.'

빌런들은 유나를 팔아서 슈리를 유인한다. 슈리는 유나가 자신을 부른 게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스스로의 의식을 끊어버리게 되고, 나중에 유나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재기가 불가능한 폐인이 되어버린다.

"참 진돗개 같은 여자야."

"그건 무슨 의미에요?"

"주인을 믿고 따른다는 말이지."

"슈리가 저를 많이 의지하는 것도 맞지만, 사람을 개라고 부르는 건 조금...."

유나의 말 한마디에 한 걸음에 부산에 달려올 정도로 슈리는 유나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 누리가 길고양이같은 타입이라면, 슈리는 마치 상처입은 들개가 유나라는 주인의 품에 몸을 의탁한 것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니야, 나중에 분명 너도 느끼게 될 걸?"

나는 슈리의 은밀한 성향을 미리 스포했다. 그러자 유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다소 놀랐다.

"...강아지 맞네요."

"그렇다니까."

"개자지가 말이 많네."

찌걱. 새로운 다리가 내 귀두위에 얹어졌다. 유나와는 다른 방향에서 자지를 휘감은 서늘한 다리에 나는 등허리가 짜릿했다.

"어우, 하랑아. 일어났어?"

"옆에서 뭔 소리를 하나 싶었더니 다른 여자 품평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품평이라기보다는 그냥 성향 파악이지. 마침 잘됐다. 하랑이도 잘 새겨들어. 정슈리의 약점을 알려줄게."

"...공식적으로는 S+급인데 내가 약점을 알 필요가 있나?"

하랑은 자신의 힘에 대해 자부심이 넘쳤다. 나로 인해 강화된 힘에 우쭐거리는 게 제법 귀여웠지만, 나는 속내를 숨기고 엄한 눈빛으로 하랑을 다그쳤다.

"네가 할 건 대련이야. 가르침을 주는 거지 압도적으로 이기라는 게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하면 되는데?"

"뒤를 쳐."

"......뭐?"

정슈리의 약점은 단 하나.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에는 능하지만, 빌런이나 괴인을 상대로 하는 전투같이 변수가 많은 전투에서는 약하다는 것.

"정슈리, 뒷치기에 약한 타입이야."

* * *

<오전 10시, 부산 히어로 협회 대련장.>

"후우, 후우."

정슈리는 좀처럼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련장 맞은 편에 나타날 상대를 생각하면 할수록 몸 안의 마력이 끓어올랐다.

"슈리야, 너무 무리하지는 마."

"걱정마. 나 화마인이야. 수치상으로는 고작 9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네가 마련해 준 대련의 기회를 어떻게 날려버리겠어?"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며 부산까지 달려온 이유는 하나 뿐이다. 유나가 석하랑과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고, 슈리는 전후사정을 의심하면서도 유나를 믿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으로 내려오면 설화공주랑 한 판 할 수 있다니, 너니까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라도 믿고 내려온 거야.

그리고 지금, 한국 양대 산맥 중 한 명인 <설화공주>와의 대련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산 히어로 협회에 내리자마자 부산 협회의 직원들이 슈리를 귀빈처럼 모시며 대련장으로 이끌었고, 슈리는 대련장 전광판에 새겨진 <화마인>. <설화공주>.라는 대련장 사용자의 이명에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흐흐, 너는 이미 한 판 했어?"

"...응, 찐하게 한 판 했어."

"대단한데. 그럼 내가 이제 한 판 따낼 차례야. 유나의 복수, 내가 대신 해줄게."

"......."

유나는 하랑을 상대로 2:1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차마 슈리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못했다. 그저 은근한 미소로 속내를 숨긴 채, 슈리를 걱정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속성에서 불리하잖아."

"그런 비공식 속성론은 믿지 않아. 속성만으로 이길 수 있었다면 작년 히어로 올림픽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걸?"

슈리는 마도 스태프를 빙글빙글 돌리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자신이 1학년 때 잡은 나무 괴수의 숯과 코어로 만들어낸 스태프는 그녀의 마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주는 최상급의 코어웨폰이었다.

"결국에는 좋은 실력, 좋은 장비,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노력만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거야."

"......."

유나는 슈리의 말에 쉽사리 수긍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로 인한 패배가 확정된 싸움이라는 것을 알지만, 차마 친구를 상처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잠깐 일정이 지체되어."

문이 열리자, 정장을 입은 백발의 여인이 대련장에 선 슈리와 마주섰다. 차가운 인상의 여인은 눈이 바다처럼 고요하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설화공주 님. 설마 진짜로 유나랑 인연이 있는 지는 몰랐어요."

"뭐....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죠. 어제도 같이 하룻밤을 지낸 사이랍니다."

"그건 무슨 뜻...?"

"궁금합니까?"

석하랑은 입꼬리를 비틀며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대련장의 벽 전체가 얼어붙었다. 천장과 사방은 전부 얼렸으면서, 바닥에는 살얼음하나 끼지 않았다.

"이건...!"

"한강을 얼린 것과 똑같은 방어도의 빙벽입니다. 당신의 힘을 마음껏 펼쳐보세요. 당신이 전력을 낸들 부서지지 않을 겁니다."

"잠깐만요! 유나랑 하룻밤 지냈다는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유나와 저는 같은 '팀'입니다. 팀원끼리 교류를 했을 뿐."

"팀?!"

석하랑의 충격발언에 슈리는 유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객석에 앉아있는 그녀의 곁에는 다른 곳보다 훨씬 두터운 빙벽이 펼쳐져있었다.

"팀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 설화공주 님, 우리 길드원이셔."

"......."

한국 히어로 협회의 쌍두마차 중 한 명이 외국계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 어딘가 알려지게 된다면 나라가 뒤집어 질 말에 슈리는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당신도 비밀을 지켜야 할 사람이 될 기로에 놓였습니다, 화마인 정슈리."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모든 길드로 들어갈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을 가지고 있던 위치가 한 순간에 역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 입단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화마인, 준비는 됐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입단을 결정해...!"

"아뇨. 당신은 무조건 들어오게 될 겁니다."

사락. 하랑의 손등 위에 하얀 얼음결정의 나비가 날개를 펼쳤다.

"당신의 정해진 운명을 비틀기 위해서라도, 저는 전력으로 당신을 우리 팀으로 맞이하겠습니다. 덤비세요. 당신이 지면 우리 팀에 들어오는 겁니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어."

화륵, 화르륵. 슈리의 머리칼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복잡한 사정 다 집어치우고, 나는 당신을 이기면 되는 거야!"

"...하긴, 정공법으로 전부 이기면 그만이겠죠. 하지만 잊지마시길."

하랑의 마도기어가 반짝였다.

"세상은 앞으로만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하랑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자, 슈리의 뒤로 거대한 얼음 결정이 파고들었다.

* * *

<그 시각, 부산 히어로 협회 인근 찜질방>.

"이야, 잘 싸우네."

"설마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나는 선겨울과 함께 찜질방에 들러 하랑과 슈리의 1:1 대결을 화상으로 구경했다. 유나의 마도기어가 촬영하는 전투는 화염계 이능력자와 빙결계 이능력자의 정석과도 같은 전투를 그리고 있었다.

"한산해서 우리끼리 있기 좋다. 그렇지 않아?"

"...여기는 차마 들어오지 못하는 게 그렇네요."

나와 선겨울은 찜질방의 밖에 있는 한 무리의 이능력자들을 비웃었다. 호국청년단의 단원들은 몸에 새겨진 온갖 문신 때문에 혐오조장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하지 못했고, 나는 선겨울과 단 둘이서 찜질방에 들어와 온기를 만끽했다.

"이야, 좋다. 맨날 신경쓰이는 시선들 때문에 좀처럼 편안히 쉬질 못했는데."

"그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네가 사과할 건 아니야. ...어이쿠, 지독하군."

입구에서부터 한 무리의 떡대들이 찜질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신이 새겨져있을 위치를 살색 토시로 가린 그들은 우리의 근처에 자리를 잡으려는 듯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어...죄송해요. 편하게 찜질방 즐기지 못하게 돼서."

"문제 없어. 저기로 들어가면."

나는 식혜와 맥반석 달걀, 그리고 딸기우유를 챙겨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저기 들어가서 쉬면 되지 않겠어?"

"에...?"

찜질방마다 있는 작은 토굴. 사람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속으로 나는 기어들어갔다.

"뭐해, 안 들어오고."

나는 사람 한 명 딱 들어올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벌렸다.

"설화공주랑 화마인이랑 붙는 거, 안 보고 싶어?"

"......아주 그냥."

선겨울은 툴툴거리면서, 천천히 토굴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