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86화 (686/1,497)

〈 686화 〉2부 4장 13

<3월 13일, 신서울 버스터미널 근처 카페>.

"실적 다 채웠네."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돌아다닌 동선을 일일이 확인하여 플래그를 전부 다 회수했는지 확인했다. 이번 챕터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요소들을 제대로 클리어했는지 일일이 확인했고, 완벽하게 요소요소를 공략해냈다.

라온이 B급 괴수 전투에 참가시켜주기.

누리 사람들한테 관심받게 해주기.

김펜릴 매일매일 민초주기.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공평하게 마력공급을 해주기.

유나는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여신은 여신이라 너무나도 쉬웠다.

'다른 히로인 공략하려고 해도 아직 때가 아니니.'

히로인과의 이벤트를 만들어내려고 하면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호감도가 오른다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지는 않는다.

막말로 내가 중국으로 날아가 샤오린과 접점을 만든다거나, 영국으로 가서 아르엘과 썸씽을 일으킨다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히로인과 연관된 배드 엔딩만 늘어나게 될 뿐.

'달 마다 한 명씩.'

한 챕터에서 할 수 있는 히로인 공략은 한정되어 있고, 지금 3월의 메인 히로인은 정슈리, <아그니>가 될 여자다. 나는 히로인과 연관된 배드엔딩 플래그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찾다가 누락된 부분을 확인했다.

"아, 하나 빼먹었다."

"뭘 빼먹었어요?"

"호국청년단."

그간 나의 팀원들과 다니는데 익숙해져서 그런가, 빌런들에 관한 플래그를 조정하는 걸 잊어버렸다.

'요즘 너무 긴장감 없이 지내기는 했지.'

천가을이라는 큰 산을 넘어간 것도 그렇지만, 당장 쓰러뜨려야 할 챕터 보스 김펜릴이 내 허벅지 위에서 갸르릉거리며 하품을 하는 것에 긴장이 풀려있었다.

'4월 정도는 되어야 슬슬 위기가 찾아오고.'

김펜릴처럼 동료가 되는 간부가 아니라, 주변에서 배회하며 사사건건 괴인 사태를 일으켜 주인공 일행을 강제로 활약하게 만드는 츤데레가 4월에 온다. 빌런 중에서도 가장 윗단계라고 할 수 있는 다크 레기온 간부가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다른 빌런들의 플래그를 다져놓아야 한다.

그 첫번째, 이 나라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선의철의 호국청년단.

그 두번째, 히카리와 연관이 있는 문신사의 개인 부대.

그 세번째, 은유하와 연관이 있는 헌터 길드.

그 네번째, 백희아와 연관이 있는 국제 히어로 협회.

히로인마다 연관된 이익집단이 하나 둘 빌런 플래그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정리할 수 있을 때 미리 정리를 해둬야 한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파리들 떨쳐내야하는데."

주인공이 활약할수록 주변에 나타나는 승냥이들은 늘어만 간다. 초반에는 외국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호구사냥꾼들이 태반이었다면, 슬슬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존재들이 늘어나 주변에 빌런들만 한가득 쌓이게 된다.

"유나야. 지금 주변에 우리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 느껴져?"

나는 내 테이블에 마주앉은 유나에게 주변을 가리켰다.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정말 온갖 사람들로 가득했다.

"음...저기 이능력자 전용 창구에 있는 사람들 말씀이세요?"

"상점 3점."

유나는 터미널 한켠에 마련된 이능력자 전용 객실을 가리켰다. 터미널 한켠에는 히어로 및 헌터들의 원활한 업무 추진이라는 명목으로 능력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이능력자들이 별세계의 복장으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나 이제 더 잘 느끼게 됐네."

"당연하죠. 누가 매일매일 개발해준 몸인데요."

"그래, 그래. 그렇게 느껴본 결과, 저기 사람들 보이지?"

나는 대합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세 그룹을 가리켰다. 중세 판타지 세계의 갑옷을 입은 무리가 있고, SF 미래 배경의 우주복을 입은 이들도 있고, 택티컬한 배틀 슈트를 입은 무리도 있었다.

"유나야, 질문. 저기서 우리를 감시하러 온 사람들은 누구누구일까요?"

"정답. 셋 다."

"맞았어. 정답이야. 상점 9점."

판타지 복장을 입은 자들은 호국청년단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윗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의 국뽕 코인을 이세계 복장으로 씻어내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선의철이 관철하고자 하는 조선 무사 컨셉의 전투복은 멋스럽다면 멋스럽지만, 대놓고 호국청년단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SF 미래 배경의 우주복은 유성 산하의 헌터 길드로, 은유하의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유성 공화국 아래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언젠가 크게 한 방 먹이겠노라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로, 은유하의 X로이드가 눈길이 미치지 않는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택티컬한 배틀 슈트.

저들은 기존의 이들과는 조금 다른, '아카데미의 학부생'들이다. 정말 다양한 빌런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아카데미 학부생들은 다름 아닌 슈리와 관련이 깊은 이들이다. 3월 15일, 실습 길드가 확정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길드를 관찰하며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장님 진짜 대단하세요. 어떻게 얼굴만 보고 누가 누구인지 아시는 거예요?"

"빅 데이터. 다들 한 번씩 본 얼굴이니까."

"아...이거요?"

유나는 자신의 외투 한켠에 박힌 오라클의 문장을 가리켰다. 미래의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 추궁하는 사람에 대해 오라클만큼 좋은 이름팔이가 또 없었다. 애초에 오라클 본인도 그러라고 주인공에게 회사의 이름을 팔라고 맡겼다.

"그런 셈이지. 유나도 마찬가지 아니야? 저 사람들, 다들 한 번씩 본 사람들이잖아."

"그, 그렇죠."

공원 화장실에서 마력공급을 했을 때, 아닌척하면서 슬쩍 옆 칸에 들어왔다 나간 아저씨 하나가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있다.

서울수복작전이 끝나고 안양 임시 초소에서 마력공급을 했을 때, 얇은 벽에 귀를 기울였던 아가씨 하나가 우주비행사 복장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아카데미 학부생들이야 유나가 1년 동안 함께 본 동기들이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유나랑 거기서 안 해봤네."

"...어디 생각하고 계셔요?"

"아카데미 교단."

"윽."

유나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분노나 부정이 아닌 침묵이 유나의 속내를 금방 드러내고 있었다.

"유나가 조별과제 발표했던 강의실에서 해보는 건 어때?"

"그러면 진짜 저 사장님 아이 임신해서 퇴학한 걸로 알려질 걸요?"

"뭐 어때? 어차피 슈리만 들어오고 나면 실제로 그런 걸로 해도 상관없어."

"......이거 기뻐해야 하는 건지, 어이없어해야 하는 건지."

유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사장님, 슈리가 그렇게 좋아요?"

"슈리가 좋기도 하지만, 슈리랑 유나랑 같이 있는 게 보기 좋아서 그렇지. 솔직히 말해서...."

이 자리에는 나와 유나밖에 없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유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슈리가 우리 팀이 되는 거 싫지는 않잖아? 네가 신경쓰고 있는 건 그거 아니야? 솔직히...."

"맞아요. 유일한 친구랑 자지 하나 두고 싸우기 싫단 말이에요."

유나는 대놓고 본색을 드러냈다. 주인공과의 관계도 상당히 소중하기는 하지만, 1년 동안 서로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준 존재와 연적이 된다는 것에 상당히 어색해하고 난감해했다.

"하지만 유나야, 나는 슈리를 꼭 내 팀원으로 넣어야겠어."

"꼭 그렇게 다 따먹으셔야 속이 후련하시겠어요?"

"내가 뭐 삼천궁녀 만들 생각도 아니고, 나는 넣고 싶은 사람만 넣거든?"

"팀에 넣는다는 거예요, 보지에 넣는다는 거예요? 둘 다죠?"

"인생살이 겸사겸사지. 좋아, 유나야. 이렇게하자. 네가 슈리한테 거짓말하게 한 거 나도 어느정도 책임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사진 하나를 유나에게 튕겼다. 유나는 사진을 받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마도기어를 꺼버렸다.

"이거 어떻게...?!"

"그런 미래도 있는 거란다. 내가 그거 때문에 슈리 우리 팀에 넣으려고 하는 거거든."

유나에게 보낸 사진에는 유나와 슈리가 같은 침대-기숙사 침대에 함께 누워, 서로 알몸이 된 채 두 손을 깍지끼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나랑 둘이서 저렇게 꼴리는 얼굴을 하게 될 미래라니, 내가 안 넣고 배겨?"

"......이, 이 '저'는 왜 이렇게 기뻐하고 있어요?"

"잘 봐봐."

나는 이불로 살짝 가려진 유나의 음부를 가리켰다. 모자이크를 피하기 위해 이불로 살짝 덮듯이 가린 곳에는 이미 하얀 크림이 허벅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포지션 말이야, 마력공급 둘한테 한 번씩 하고 다음은 누구한테 해줄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네?"

"아, 내가 그 얘기 안했지. 참."

나는 유나가 혹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마지막 스포를 날렸다.

"나 말이야, 둘이서 정말 마음맞는 사람이 상대라면 마력공급 동시에 할 수 있다고."

<더블배럴> 3P가 이루어질 때 두 명에게 동시에 마력공급이 가능합니다. 순서는 관계 없습니다.

# <제한> (창염)을 얻기 전까지, 조합에 제한이 있습니다.

# <해금> (이유나), (정슈리)와 한 침대에서 같이 한다.

이 세계는 RPG이며, 지휘관의 능력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기 마련이다. 마력공급과 관련된 기술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게 되어있으며,

'가온이는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로 영입한 거니까.'

3P를 완벽하게만 하면 하루에 두 명에게 마력공급을 할 수 있다. 그 첫번째 계기가 되는 상대가 바로 다름아닌 이유나와 정슈리.

"유나야. 슈리랑 첫날밤은 너랑 마력공급 3P. 어때? 아, 물론 처음은 1:1로."

"......."

유나는 산발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사장님이 다 책임지세요."

"야스."

"두 분이서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유나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예약을 위해 한참 줄을 서있던 우리 길드의 직원 선겨울이 티켓을 네 장 끊어왔다. 나와 유나가 함께 앉고, 바로 옆 좌석에 겨울과 김펜릴이 앉는 자리였다.

"고생했어요, 겨울 양. 그리고 미안해요. 부산에서 있는 일에 당신까지 부르게 돼서."

"아녜요. 저도 머리 식히기 딱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푸흐흐, 그러면 부산에 가서 잠깐 쉬다 옵시다. 어차피 하루 잠깐만 갔다가 오면 되는 거니까."

3P 마력공급을 위하여 A급 히어로를 쓰러뜨릴 이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 우리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산항에서 마린룩을 입고 화보 촬영을 한다는 연막작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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