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3화 〉2부 4장 10
신서울에는 괴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괴인이 겉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 숨어 사는 괴인의 수는 엄청나게 많지만 그 중 누구도 신서울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 신서울? 거길 왜 가냐. 지나가다가 하늘에서 벼락 맞을 일 있냐?
신서울에 발을 들이는 괴인은 정수리에 금빛 검을 맞고 죽기 마련. 신서울이라는 지역을 마치 자신의 영역처럼 만들어낸 S급 히어로, 광검은 신서울에 괴인이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단, 광검 조차도 제어하지 못하는 괴인이 나타날 때가 종종있다. 광검이 잡지 못하는 괴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광검이 나설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일 때가 있다.
"꺄아아악!!"
첫번째, 괴인이 갓 태어나 난동을 부리는 경우. 하필이면 우리가 들어온 역 지하 쇼핑센터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헬창괴인은 마구잡이로 물건을 부수며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C급 괴인 주제에 포효를 내지르거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건 어지간한 B급 괴인보다도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정작 B급 히어로가 나서면 10초만에 사로잡힐 놈은 난동을 부리면서도 정말 교묘히 움직이고 있었다.
"큭, 비켜주세요! 히어로입니다!"
"꺄아악! 저기, 저기로 도망쳤어!"
"으아악?! 텔레포트 빌런이다!!"
헬창괴인은 바람처럼 지하 쇼핑센터를 날아다니며 물건들을 부수고 다녔다. 여인에게 한이 맺힌 듯, 주변에 보이는 예쁜 여자들을 집중적으로 습격하고 다녔다. 현장에 있던 히어로들은 헬창괴인에 대처하기 위해 잽싸게 나섰으나, 한창 인파가 많은 시기라 바로 나설 수 없었다.
"사장님, 저 괴인 누구한테 조종당하는 거 같지 않음?"
"아까 그 추한 남자같지가 않은데?"
"그럴 리가 있나. 괴인을 조종하는 건 다크 레기온의 간부 뿐인 걸. 간부가 무슨 일이 있다고 신서울에서 C급 괴인을 조종하고 그러겠어?"
쿵!! 쿵쿵!!
헬창괴인은 마네킹으로 바닥을 거칠게 내리찍었다. 위치는 계속 바뀌고 있고, 헬창괴인의 바로 위에 달린 형광등이 부서진 마네킹의 파편에 으깨졌다.
"누리야, 명심해. 실내는 광검의 영역 밖이란다."
"그건 몰랐음...."
광검이 즉각 대처하기 어려운 두번째 요소인 환경, 공간이 '실내'거나 '지하'인 경우.
광검의 공격은 기본적으로 협회 건물 옥상에서 발사되는 스쿼드 미사일같은 마력의 칼날이기에, 지하나 실내에 있으면 광검도 공격하기 쉽지 않다.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면 건물 전체를 무너뜨리고 지진을 일으킬 정도가 아닌 이상, 광검의 원거리 공격은 닿지 않는다.
"젠장, 광검은 뭐하고 있는 거야!!"
"광검 광검 그러지 말고 히어로 없어?!"
사람들은 광검을 찾고, 히어로를 찾았다. 쇼핑 센터에는 C급 이상의 히어로들이 최소 10명은 있었으나, 그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다들 우리 감시하느라 바쁘지.'
우리를 보호하는 협회의 인간, 헌터 길드에서 우리를 주시하는 자들, 호국청년단, 문신사의 고용인, 그외 기타 등등 지휘관을 노리는 이들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까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냥 쇼핑센터에 방문한 일반 히어로들도 나서지 않았다. 헬창괴인이 난동을 부린지 벌써 3분이 지났는데도.
'손해배상 낼까봐 무서운 거지.'
히어로가 괴인과 싸우다가 파괴된 재산은 누구의 책임인가. 바로 히어로 개인의 책임이다. 건물이라도 하나 무너지면 히어로는 바로 자기 재산으로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헬조선을 탈출하는 히어로의 3할은 그런 일로 인해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이 모든 건 주인공 일행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 나는 몸이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듯한 누리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았다.
"누리야."
"사장님...."
"안 말려. 이길 수 있지?"
"...당근빳따지."
누리는 주먹을 움켜쥐며 앞으로 내달렸다. 배틀 슈트로 갈아입지도 않은 C급 이능력자가 맨몸으로 돌격한 것에 가을은 상당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내가 발굴해서 내가 키운 히어로야. 이런데서 질 리가 없잖아?"
"아니, 싸우다보면 엄청 망가지고 그럴텐데? 헬조선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 지는 알아?"
가을의 국어책 읽는 속물적인 걱정에, 나는 일부러 크게 콧방귀를 뀌며 주변에 들으라는 양 빈정거렸다.
"어뭬-리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만약에 망가지고 그러면...."
나는 마도기어를 만지작거리며, 누리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지시를 내렸다.
"물어주면 되지."
나는 플래그 쌓이는 소리 속에서, 누리를 움직이며 헬창괴인을 공격했다.
* * *
우당탕!!
편의점 유리창이 박살나고, 진열대에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거구의 괴인이 난동을 피우며 물건을 부순 게 아니라, 거구의 괴인이 어떤 공격에 날아가 편의점에 처박힌 것이다.
"누구...?!"
사람들은 괴인을 차날린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스냅백에 검은 마스크를 쓴 작은 소녀가 두 손을 털고 있었다.
"......."
소녀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다.
와장창!
소녀의 옆을 스치며 날아간 병맥주가 기둥에 맞아 깨졌다. 거인이 쓰러진 방향에서 날아온 병맥주는 MLB 투수들이 날리는 강속구보다 빨랐다.
"크아아!!"
괴인은 편의점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소녀를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골리앗이 짱돌을 집어던지는 건 볼썽사나웠으나, 병맥주부터 시작하여 집어던지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맞으면 골로 가겠다 싶은 물건들이었다.
"흥!"
소녀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마력을 손에 불어넣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물건들을 마력으로 만든 장갑으로 하나 둘 붙잡아 아래에 내려놓는 솜씨는 가히 묘기에 가까웠다.
"수속성?!"
"저, 저런 꼬마가...?!"
사람들이 놀라기도 잠시. 편의점 안에서 ATM기가 날아왔다. 소녀보다 1.5배는 더 큰 ATM기가 빙그르르 돌며 날아왔고, 소녀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히익?!"
소녀의 뒤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청년이 있었다. 아니, 피한게 아니라 구경하던 것이다. 그의 손목에는 마도기어가 영상촬영모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쳇!"
소녀는 혀를 차며 뒤로 내뻗던 한쪽 발을 강하게 디뎠다. 스니커즈가 옆으로 비틀리며 바닥을 쓸었고, 소녀는 팔을 뒤로 힘차게 뻗었다.
"하-앗!"
깔금한 기합과 함께, 소녀의 손에서 푸른 물결의 칼날이 튀어나왔다. 말끔하게 정제된 듯 하면서도 찰랑거리는 형태는 소녀의 능력이 C급 정도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하하하!"
같은 C급에서 누가 더 유리한가. 당연히 체급이 더 큰 쪽이 유리하다. ATM기를 뜯어 집어던진 걸로 힘을 과시하던 괴인은 소녀가 찌그러질 것에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서걱.
하지만 소녀는 괴인의 뜻대로 찌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ATM기가 반으로 갈라졌고, 소녀를 중심으로 ATM기는 반으로 갈라졌다.
"뭐임, 돈 달라고 난동 부리던 거임?"
소녀는 ATM기를 자르며 바닥에 흩뿌려진 현금을 집어들었다.
"닭찌찌살 사 먹으려고 온 건 아닌 것 같고, 여자 어떻게 해보려다 차여서 난동부리는 거임? 찌질한 새끼."
"카아아아!!"
소녀의 조롱에 괴인은 포효를 내지르며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소녀는 괴인을 비웃으며 옆으로 피했으나, 곧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악?!"
"흐억!"
소녀는 ATM기 주변으로 슬쩍 다가온 노인의 지팡이에 걸려 넘어졌다. 노인의 손에는 물에 젖은 만원짜리가 대여섯 장 들려있었고, 소녀는 다급히 물의 검을 해제하고 낙법을 취했다.
"키하하하!"
괴인은 손등으로 노인을 쳐날렸다. 순식간에 5m는 넘게 나가떨어진 노인은 맥주병이 깨진 벽에 부딪혀 기절했다. 소녀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괴인에게서 흉악한 마력이 뿜어져나왔다.
"늑대의 손톱!!"
괴인의 외침과 함께 괴인의 양손에는 검은 마력으로 된 손톱이 생겨났다. 괴인은 손톱을 노인을 향해 휘둘렀고, 소녀는 급히 물의 검을 만들어낸다음 앞으로 달려가 손톱을 튕겨냈다.
"크하하, 멍청한 년!"
괴인은 다른 손으로 소녀의 몸을 덥썩 붙잡았다. 소녀는 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몸에 마력을 둘렀다.
"크윽...!"
"쥐새끼만한 년이 감히 나를 능멸해?! 좆도 안 들어갈 만큼 년이 감히 나를!!"
"크으으윽...흥!"
퍼---억.
소녀는 다리를 뻗어 괴인의 낭심을 걷어찼다. 물의 마력이 실린 발차기가 괴인의 낭심에서 터지자 괴인은 눈이 뒤집혔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 쪽은 어쩌나, 넣을 좆도 터졌는데."
괴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소녀는 스니커즈로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물의 마력이 실린 발차기가 터지는 바람에 남자의 고간부는 축축하게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이봐요, 아저씨."
소녀, 김누리는 괴인의 낭심을 걷어찬 발을 들어올렸다.
"쥬지터져서 억울하면 고소하셈."
빠---악.
누리는 괴인의 턱을 아래에서부터 쳐올렸다. 깔끔한 일격에 괴인은 머리가 뒤로 넘어졌다.
쿠-----웅!!
괴인은 쓰러졌다. 잠깐의 위기를 겪었으나, 깔끔한 대처로 적을 물리치는데 성공한 누리는 몸을 돌렸다.
"......으으, 할아버지, 괜찮-"
풀썩.
누리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누구의 공격도 없었으나, 갑작스레 누리가 쓰러진 것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잠시만요, 잠시만!!"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히어로는 괴인의 상태를 확인한 뒤, 급히 누리의 등에 손을 올렸다.
"...마력 탈진이에요!"
여자 히어로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괴인의 몸이 안개처럼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우, 우와아아!!!"""
함성이 지하 쇼핑 센터에 한가득 울려퍼졌다.
C급 히어로 김누리.
그녀가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고 난 뒤 한 첫 마디는, '그 할아버지는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