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2화 〉2부 4장 09
이 세계에는 온갖 위험요소들이 넘쳐난다. 그걸 일일이 말할 필요는 더는 없을 것이며,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은 가장 대표적인 존재인 <괴인>이다.
다크 레기온의 간부가 주문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 정복의 첨병.
괴수의 코어를 폭주시켜 인간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인간이 오염된 마력에 노출되어 짐승처럼 변이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다양한 케이스 중에서도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순도높은 괴인이 발생되는 케이스다.
"김펜릴아. 저기 한 번 볼래?"
나는 우리 테이블에서 멀리 떨이진 곳, 거구의 남자가 차를 홀짝이는 곳을 가리켰다.
머리를 스포츠로 자른 그는 근육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고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리나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는 듯 연신 어색하게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저 남자 말이야, 어떤 사람일 것 같아?"
"직업을 묻는 거냥, 아니면 재능을 묻는 거냥?"
"둘 다."
"...복싱 선수?"
"땡. 정답은 피트니트 센터 트레이너야. 마력 재능은 암속성을 제외하고 바닥을 기는 사람이지."
김펜릴은 나를 향해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나로서는 모를수야 모를래가 없는 대상이라, 모처럼 기회를 잡은 김에 간략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저기 금발태닝 양아치들은 여자를 윤간하는 쓰레기들이고, 저기 배불뚤이 아저씨는 최면술사야. 그리고 저기 덩치 큰 근육덩어리는 분노조절장애지."
"...뭔소리냥?"
"하나같이 나중에 괴인이 되어 사회에 해악을 끼칠 자들이라는 얘기야. 오, 곧 빡치겠다."
또각, 또각. 척 보기에도 아름다워보이는 미인이 근육남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여자를 맞이하는 근육남의 행동은 순박해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눈으로는 여인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사장님, 확인하고 왔어. 딱히 나쁜 짓 하는 건 안 보이던데?"
"잘못 본 거 아닐까...? 그냥 나가던데."
"일단 앉아봐. 설명해줄게. 그냥 나간게 아니라, 염탐하고 간 거야. 친구 소개팅 남의 얼굴이 어떤지."
내 말에 누리와 가을은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 앉았다. 김펜릴은 어느새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남들의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곳, 내 옆에서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 그 여자가 나가면서 저 남자 스캔하고 갔어. 그리고 이제 썸녀가 와서 얘기하는 거지."
"앞으로는 연락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어요."
시작부터 클라이막스. 나와 일행은 귀를 쫑긋 세웠다. 나를 감시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도 우리의 관심사가 쏠린 곳으로 귀를 기울였다.
"저, 저기. 그러지말고 한 번 만...."
"저는 그쪽 센터에 운동하러 가는 거지, 당신이랑 사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에요. 제가 돈내고 다니는 센터에서 왜 제가 불쾌한 시선을 받으면서 운동해야하는 거죠?"
"그건 혜지 씨가 새끄...크흠."
근육남의 말실수에 여자의 눈이 희번득해졌다. 누리와 가을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조용히 상황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관장님께는 말씀드렸어요. 환불 다 했고, 다른 곳으로 운동 가기로. 그러니까 앞으로 저한테 집앞까지 찾아와서 밤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자, 잠깐만!!"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여자의 말에 근육남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여자는 근육남이 갑작스레 손목을 잡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는 듯, 낭패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 한 번 밥 먹는 것도 안되나?!"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근육남은 막무가내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지만, 종업원부터 다들 근육남의 덩치와 위압감에 압도되어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사장님, 우리가."
"아냐, 누리야. 저기 주인공은 따로 있어."
"혜지야!!"
문이 열리며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바가지 머리에 안경을 쓴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여자보다 더 키가 작았다. 이른바 소동물계라고 불러도 될 소년은 여자를 향해 달려왔다.
"이거 놔주세요!"
"넌 뭐야, 씨발!"
"혜지 남자친구입니다...!!"
"민수 씨!"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걱정과 안도감, 그리고 숨길 수 없는 호감이 담겨있었다. 나는 근육남을 향해 딸기라떼를 들어올렸다.
"골키퍼 있는 여자를 건드린 자의 최후에 건배."
"사장님, 저거 지금 골키퍼가 뚫리는 거 아님?"
"누리야, 외형으로 상대를 판단하면 안 되지. 특히 네가 그러면 더더욱 안 돼."
내 말에 누리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곧 내 말의 의미를 깨닫고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실화?"
"이 새끼가!!"
근육남은 주먹을 들어 소년을 향해 후려치려고 했다. 주먹을 맞기라도 한다면 나가 떨어지다 못해 즉사할 것 같은 위압감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명복을 빌며 딸기라떼를 들이켰다.
"이 세계는 근력이 아니라 마력 우선 주의 아니겠어."
콰---앙!!
철판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근육남은 주먹을 붙잡고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소년은 손바닥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근육남의 공격을 막았다. 골리앗의 공격을 다윗이 피하는 것도 아니고 받아친 것에 가게 안의 사람들은 입을 벌리며 놀랐다.
"이능력자?"
"이능력자지."
마력 친화력에 대한 재능 차이. 그리고 각성의 유무. 두 가지의 차이로 인해 근육남은 자신보다 세 배는 작은 듯한 소년을 상대로 공격 하나 제대로 못했다. 초능력의 세계에 살고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근력을 믿다가 낭패를 보게 된 것이다.
"혜지야, 가자."
"오빠...."
여자는 남자와 팔짱을 끼며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그에 남자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거칠게 소리쳤다.
"씨발! 내가 좆만한 새끼보다 못한 게 뭐야?!"
"......우리 오빠는 이능력자야. 그것도 B급.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근력, 재력, 정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게 마력의 힘이다. 근육남은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남자와 여자는 조용히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혜지야, 잠깐만."
"오빠, 왜 그래? 그냥 가자."
"사과해야지.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그...사장님이신가요? 저 테이블 망가진 거, 제가 배상할 게요."
남자가 마지막에 가게 매니저를 상대로 근육남이 망가뜨린 기자재와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돈을 지불한 것으로, 근육남은 남자를 상대로 완패하고 말았다. 한 여자를 둔 두 수컷의 번식 경쟁에서 마력의 힘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람 인품만 봐도 근육남보다는 소년 쪽이 훨씬 좋기는 하지. 너희는 둘 중 하나 고르라면 누구를 고를래?"
"음...속물적으로 쳐도 이능력자 아님? 임대 헬스장이랑 타워팰리스랑 비교하는 격이잖아. 비교가 안 되지."
"네가 보기에는 어때?"
"저 근육 덩어리, 척봐도 전과있어 보이는 사람인데? 내 눈은 못 피해. 하는 짓 딱 보니까 빌런이 될 상이야."
모든 면에서 근육남은 이능력자 소년에게 패배했다.
'마력이 이 세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게 된 지 보여주는 장치기는 하지만 조금 불쌍한 걸.'
"크흑, 흐으윽, 크허엉...!"
과장 좀 보태어 2m 가까이 되어보이는 근육남이 서럽게 우는 모습은 흉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오죽하면 옆에 있던 금발 양아치 둘이 안타까운 눈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배불뚝이 최면 아저씨가 안경 아래의 눈물을 닦을 정도였다.
"여기서부터가 하이라이트."
나는 둘에게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저 남자, 이제 어떻게 될 것 같아?"
"으아아악!!"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가게를 뛰쳐나갔다.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우리가 먹은 음식을 전자로 계산한 뒤 코트를 챙겨입었다.
"가자. 일하러."
"일?"
"설마...."
"실적 채우러 가야지."
앞으로 세 시간 정도 안에, 괴인 발생할 예정이므로.
* * *
<오후 8시, US 피트니스>.
"으아아!!"
남자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바닥에 내던졌다. 그의 눈에는 짜증과 분노, 살기가 넘실거렸다.
"과, 관장님?"
다부진 몸의 청년이 조심스럽게 남자, 관장을 불렀다. 유성 산하 피트니스 센터의 책임자이자 헬스장의 주인은 거칠게 프로틴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기우야."
"네, 네?!"
"너 요즘 알바 편하냐?"
"잘못들었습니다?"
"이능력 각성해서 편하냐고, 이 새끼야!"
관장은 청년, 기우의 정강이에 로우킥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기우는 당황했으나, 공격을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서 대처하지도 못했다.
퍽!
하지만 관장의 공격은 기우에게 그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다. 기우의 몸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정강이에 마력을 둘렀고, 관장은 단단한 무쇠 덩어리에 로우킥을 날린 셈이 되고 말았다.
"아아악!!"
오히려 관장이 발목을 부여잡고 나자빠졌다. 기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 지금 뭐한 겁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리, 크어억...!"
"아니, 씨발, 사장이 알바 부른 지 1분도 안 되서 정강이 걷어차는 게 말이나 돼요?!"
사무실 안의 소란이 밖까지 울려퍼지자 쇠질을 하던 남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닥에 엎어진 관장의 모습을 보며 흠칫 놀랐다.
"뭐, 뭐야?"
"관장님이 저 팰려고 했어요! 근데...."
"경찰불러! 경찰불러 이 새끼야!"
관장은 괴성을 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기우를 비롯한 헬스장의 손님들이 당황하는 사이, 헬스장 관리용 X로이드가 천천히 다가와 관장 앞에 멈춰섰다.
"표준계약서 제 77조 7항에 의거, 가맹점주가 유성의 사회적 명예에 현저히 해가 되는-"
"으아악!"
"...물리력으로 제압합니다."
X로이드는 관장을 순식간에 제압하여 바닥에 눕혔다. 이능력자에게 치이고 기계에 제압된 관장의 눈은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X로이드는 관장을 한쪽 발로 밟은 다음, 손님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손님 여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다음 가맹점주를 찾을 때까지 본 점은 임시 휴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쇠질을 하던 이들이 간단한 샤워를 하고 돌아간 사이, 피트니스 센터는 문을 닫았다. 관장은 유일하게 남은 X로이드를 향해 증오의 눈빛을 보냈지만, 사람처럼 생겼다고 한들 기계인 X로이드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X로이드에게 제압당할 뿐이었다.
"이...좆같은 세상...!"
관장은 마도기어를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연락을 주고받았던-자신은 썸녀라고 생각했던 이-의 프로필 사진을 살폈다.
"이, 이 씨발년이...!"
여자는 어느새 프로필 사진을 바꿔놓았다. 순박한 소년의 옆에서 야시시한 복장으로 가슴을 밀착하며, 소년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V자를 그리는 모습에 관장은 소년의 눈깔을 V자로 뻗은 두 손가락으로 찔러버리고 싶었다.
"씨발, 씨발...!"
"사용자의 바이탈 수치에 이상 발생. 혈압 170, 신체온도 37.4도. 휴식을 권장합니다. 휴식을-"
"닥쳐, 개간년아!"
콰득-!
관장의 손에 X로이드의 목이 짖이겨졌다. 순식간에 목이 손아귀 힘에 으깨진 X로이드는 타닥타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와장창!
사무실의 유리문이 깨졌다. 관장은 거울 속, X로이드의 대가리를 붙잡은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크르르...."
관장의 눈에는 보라색 안광이 반짝이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근육은 벌레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고, 관장의 근육은 점점 미세하고 세밀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년...."
관장은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창문을 향해 나아갔다. 피트니스 센터 회원가입 당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여인의 집이 어디에 있는 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관장은 프로틴 파우더를 입안에 한가득 털어넣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거기, 멈추라냥."
쿵!
관장의 거체가 순식간에 무릎이 꿇렸다. 관장은 갑작스레 나타난 항거할 수 없는 힘의 소유자에 오금이 떨렸다.
"크흠. ...아해야, 본좌의 힘을 원하는가."
뒤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소리에는 관장의 몸을 짓누르는 마력이 담겨있었다. 관장의 눈동자에 범람하던 보라색 안광은 점점 녹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뒤에서 다가온 칼바람이 관장의 심장을 움켜쥐는 듯 했다.
"본좌는 북풍. 혹한의 대지에서 휘몰아치는 자. 이 몸의 힘을 원한다면 바람이 되어라."
"크, 크아아악!!"
관장의 몸이 점점 뒤틀리기 시작했다. 헬스장 안에 가득 차있던 공기가 관장의 몸속으로 꾸역꾸역 흡입되어 관장의 근육이 되기 시작했고, 3m 가까이 자란 관장은 이미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본좌는 절풍의 펜릴. 이 몸의 이름으로, 세계를 질풍처럼 찢어발겨라."
크어어어어!!
괴인이 된 남자는 창문을 향해 뛰어내렸다. 곧 사방에 괴인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자, 덤벨 위에 걸터앉아있던 목소리의 주인이 사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아, 힘조절 하기 힘들다냥."
검은 라이더 슈트-간부 복장의 김펜릴은 전신 기지개를 켜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발버둥 쳐봐야 괴인 될 놈, 구하지 않고 실적으로 쌓는다니...."
이미 '오염'이 되기 시작했다면 돌이킬 수 없다. 김펜릴은 괴인이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괴인을 조용히 조종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이기게 할수록 민트초코 케이크 한 판. ...그리고 완벽하게 지면...꿀꺽."
김펜릴은 갑자기 아랫배가 큥큥거리기 시작했다.
"이 싸움, 무조건 진다냥."
화려하고, 완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