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659화 (659/1,497)

〈 659화 〉2부 3장 24

2025년 3월 1일.

서울수복작전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정 무렵에 등장한 S+급 괴수로 인해 나라는 공포에 빠졌다.

다들 쉬쉬하던, 백두산 천지의 괴수처럼 여기던 <시청사의 뱀>이 나타나 남산 타워에 또아리를 틀었다. 뱀의 새끼들로 보이는 괴수들은 무려 2만 마리가 강서부터 강동까지 자리를 잡아버렸다.

차마 공공연하게 본래의 명칭을 부를 수 없어 <사면바리>라고 부르게 된 작은 뱀들은 금방이라도 신서울을 향해 남진할 것 같았다.

모 장관이 한강 이북에서 내려온 괴수라며 북괴라고 칭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외설적인 외형 때문에 서울에 대한 관심은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 한국은 시청사의 뱀으로 인한 난동으로 죽거나 실종된 히어로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외국에서는 2만마리나 나타난 괴수들이 '특정 지역'에 묶여있게 된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 이거 코어 2만 개 수급 가능한 각 아닙니까?

그리고 사면바리들을 서울 남쪽에 가두리 양식으로 가둬버린 장본인, 석하랑은 서울의 한강 전체를 얼려버리는 기적을 보였다. 마력탈진만 아니었다면 SS급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보인 것에 감탄했다.

- 아니, 사면바리들을 내려오지 못하게 관악산부터 얼려야지 한강을 얼리면 어쩌자는 거냐?

몇몇 성급한 이들은 석하랑이 펼친 얼음 방벽의 위치를 성토했으나, 곧 사면바리들의 행동을 살펴보며 기회임을 직감했다.

- 서울을 벗어나면 소멸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히어로들의 증언이 암암리에 퍼지기 시작했고, 긴급방어선을 펼친 히어로 협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사면바리의 특징에 대해 밝혔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서울의 행정구역에 마치 결계라도 펼쳐진 것마냥 사면바리들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얼음방벽을 거슬러 올라가 한강을 넘어가려고 하는 습성으로 보아, 서울이라는 장소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즉, 2만 마리의 C~A급 괴수들이 서울이라는 땅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한 마리당 천만원이라고 단순 가정을 해도 그 규모가 2천억. 심지어 개중에는 A급 괴수들도 있을테니, 모든 값어치를 더하면 최소 조에 이르는 금전적 가치를 가진 괴수들이 서울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3월 2일.

나라는, 세계의 국면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 * *

<3월 2일 오전 7시, 경기도 안양시 히어로 협회 [임시 전진기지]>.

"설마했는데 다행이네요. 저 두 시간 전만 하더라도 좆바리들이 갑자기 일제히 남하하는 줄 알았거든요."

"사면바리. 엄한 말 하지마."

"아, 협회의 높으신 분들이 이름을 저따위로 지은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꼬추벌레라고 불러요?"

"차라리 페니스네이크라고 불러. 선의철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영어로 부르겠다."

<나이트메어>, 히어로 협회장 설지영은 안양시에 마련된 최전선 상황실에서 레이더를 살피며 몇 번이고 안도했다. 금방이라도 신서울을 향해 내려올 것 같았던 괴수 웨이브는 서울의 행정구역 라인을 따라서 빛처럼 유턴했다.

"신서울 헌터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면바리들에 대한 사냥 허가를 내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안 돼. 서울에 들어가겠다는 거잖아."

"아뇨. 그...양식장 밖에서 사살하겠다고 하던데요? 경계를 어슬렁거리는 사면바리들을 경기도에서 쏴 죽이겠다고 합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전해. 사면바리들 원거리 공격 가능하다고. 괴수들한테 좆물샤워를 받고 싶지 않으면 그 생각 당장 때려치라고."

"아니, 협회장님. 저보고는 좆벌레라고 부르지 말라면서 그런 말 하시면 됩니까?"

"......꼬우면 네가 협회장 하던가."

설지영은 갑질로 불만을 억눌렀다.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협회장 자리에 강제로 앉은 탓에, 그리고 설지영이 협회장 자리에 오른 건 옆의 남자-부협회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기에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하하, 그럴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그런데 협회장님, 저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부협회장은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마도기어에서 리스트 하나를 꺼내들었다.

[서울수복작전 피해상황 보고]

...중상 : 29명, 실종 13명....

"이야, 참 신기해요. 어떻게 다치거나 실종된 이들이 하나같이 그 새끼 개새끼들일까요? 아니면 평소에 소문 안 좋기로 유명한 악질들이거나."

"...협회장 지시를 듣지 않아서 그래."

설지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협회장이랑 설화공주가 직접 오더를 내렸잖아? 근데 그 놈들, 누구 지시를 듣는 건지 참 의심스러울 정도로 움직이더라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괴수랑 빌런들에게 피본 거지."

"크흐흐, 정의구현이다?"

"정당하고 효율적인 지시를 내렸는데 따르지 않은 건 그 사람들 탓이야. 지시대로 움직였으면 충분히 살아남고도 남았을 걸?"

"그러니까 더 신기하다는 거죠. 지시를 들은 사람들은 전부 다 살아남았고, 지시 안들은 놈들은 싹다 뒤졌다는 거 아닙니까?"

"죽은 거 아니야. 실종된 거야."

"그거나 그거나. 아무튼 협회장님 생각이 그렇다면 잘 알겠습니다. 저도 어디 가서 입 함부로 놀리지 않도록 합죠."

능글맞은 부협회장의 웃음에 설지영은 피식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치 하나는 더럽게 좋은 남자답게, 서울수복작전에 뭔가 모종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협회장님, 저 입 무거운 거 잘 아시죠? 그럼 저한테 슬쩍 언질이라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번 작전에 누구의 입김이 들어갔길래, 선가놈만 더럽게 피를 본 겁니까? 돈 밝히는 놈들? 훈타들? 아니면 언덕 위의 하얀 집?"

"......."

설지영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리듯 속삭였다.

"하늘."

"네?"

"...하늘에서 내려주신 분이 계셔. 그래, 천명이지."

"......와오."

부협회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귀를 파냈다.

"협회장 님. 진심으로 말씀드리는데 제 동생이랑 있을 때는 그런 말 하지 마십쇼. 괜히 입 잘못 놀리다가 민증 위조한 거 들킵니다?"

"아, 안 그래...! 너, 너! 명령이야! 오는 연락들 적당히 쳐내! 나는 현장 둘러보고 올테니까!"

"허."

설지영은 상황실을 부리나케 떠났다. 부협회장은 홀로 상황실에 남아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친동생한테 본인 나이 아직까지도 안 밝혔는데, 그런 나한테 이걸 얘기 안해준다고? 진짜 그러면 엄청 중요하고 심각하단 얘긴데."

눈칫밥 하나만으로 협회장 자리를 피한 남자, 부협회장의 두뇌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씨발, 설마 지휘관 썰이 진짜인가?"

짝. 부협회장은 손으로 뺨을 때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가늘고 길게.

"아이고, 불쌍한 우리 호구단 친구들. 선의철 위해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지멋대로 살다가 피보고 어떡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어?"

뚜루루루.

상황실에 누군가의 전화가 걸렸다. 부협회장은 표정을 지우고 수화기를 들었다.

"예, 히어로 협회 부협회장입니다. 협회장님께서는 지금 관악 쪽의 이상현상으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즉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허,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협회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깔았다.

"호국청년단의 히어로분들 또한 한국의 히어로입니다. 저희가 무슨 이유로 호국청년단 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단정하시는 겁니까? 그게 괴수대책부의 입장입니까? 이 건에 대해선 협회장님께-이보세요! ...아 씨, 끊었네. 새끼, 눈치는 더럽게 빨라. 쯧."

다시 경박한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온 부협회장은 어깨를으쓱이며 하품했다.

"나는 모르겠다. 헬조선 협회가 다 그렇지 뭐~ 설마 이런 동네에 지휘관이 오셔서 지휘해주실 리가 있나~ 흐흐흐."

히어로 협회.

그들은 그저 -협회-하기로 결정했다.

* * *

<그 시각, 유성그룹 헌터길드 세미나실.>

각 길드의 헌터 집단을 이끄는 수장들은 아침부터 급히 유성의 사무실로 모였다. 그들이 유성의 직원이라 그런 게 아니라, 한국 내 최대 규모 헌터 집단인 US 길드에서 헌터 전원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젠장, 우리가 유성 따까리들도 아니고. 오라가라 하면 다 오는 줄 아냐?"

"응, 네 마도기어 유성꺼. 저기 정부 쪽 인간 안 보이냐? 이거 장소만 유성이지 신서울 헌터들 전부 소집된 거야."

"회장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헌터들은 모두 침묵했다. 유성 그룹에서 '회장'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는 단 한 명 뿐이었다.

저벅, 저벅.

단촐한 검은 정장을 입은 노인을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붙잡았다. 백발이 가득한 그의 뒤로 유성의 실질적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은재민이 노인을 모시듯 옆에서 보좌했다.

"뭐야, 저거 개망나니 아님?"

"어우야, 정장 입은 거 보니까 좀 새끈한데...?"

은재민의 옆에는 유성의 막내, 은유하가 은재민과 함께 노인을 보좌했다. 단상에 선 노인, 유성의 회장 '은하수'는 사나운 금빛 안광을 터뜨리며 좌중을 둘러봤다.

"존경하는 헌터 여러분, 반갑습니다. 자질구레한 인사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인사말만 30분 넘게 하는 노인이 자기소개조차 거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음 편히 들어왔던 헌터들이 하나 둘 긴장하기 시작했다.

삐빅. 모두의 마도기어에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올랐다. 위성 레이더로 서울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화면에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사면바리들이 들끓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전대미문의 사냥터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 설화공주 님의 활약 덕분에 우리는 코어 2만 개를 수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꿀꺽. 헌터들의 입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유성공화국의 제왕이라고 불리우는 남자 답게, 은하수 회장은 서울에 나타난 대량의 괴수들을 신서울 몰락의 위기가 아닌 대량의 코어 수급을 위한 사냥터로 여기고 있었다.

"서울은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전장과 지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수가 2만이라고 한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잡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단, 일거에 소탕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러니 헌터 여러분,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부탁. 은하수 회장의 입에서 나온 의미심장한 말에 헌터들이 다시 굳었다. 회장은 좌중을 둘러보며,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번 만큼은 서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함께 합시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코어를 독식하려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지 맙시다."

가장 욕심을 부려야 할 탐욕적인 존재가 먼저 한 발 물러섰다. 내심 유성에 의해 사냥터를 빼앗길까 조마조마했던 헌터들은 유성 회장의 대승적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 질문있소. 협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몽환>경. 걱정마시오. 이미 협회와 정부측과는 협의를 거친 사안이오. 유하야, 전송해다오."

"예, 회장님."

은유하가 마도기어를 통해 보낸 데이터를 확인한 헌터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강서구부터 강동구까지. 각 길드별로 사냥터를 공평하게 추첨합시다. 협회와 정부의 공인하에, 공정한 조건으로 사냥터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장은 승부수를 던졌다.

"유성은 제일 마지막에 남는 곳을 고르겠소."

헌터 길드.

재계대통령이라고 불리우는 유성 회장의 카리스마에, 서울이라는 넓은 사냥터를 나름 공평하게 가르기로 결정했다.

* * *

"예. 고객님, 반발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추첨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이거 진짜 조작이랑 포섭없어도 괜찮은 거죠?"

"아니, 제가 평소에 그런 짓을 한다는 게 아니라. 막상 거지같은 곳 걸리면 저 고객님 미워할 겁니다? 참가하는 헌터 길드 수만큼 나눈다고 해도 저희가 2만 개 손해라고요. 원래 제가 다 독식할 수 있는 거, 고객님 말씀대로 했다 이 말씀."

"네? ......아이, 그걸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후후후, 네네. 알겠어요. 대외적으로 이미지도 챙기고 좋겠네요."

"네. 협회는 여의도, 저희는 동작을 먹을게요."

"그런데 동작에 뭐가 있길래 저보고 매수라도 해서 챙기라는 거예요? 시청사의 뱀이랑 얼굴 맞대고 싸우라?"

"...네? 지하괴인제국? ......농담이죠?"

* * *

"푸엣취!"

"아저씨, 감기에요? 저리가세요."

"크흠. 거 미안합니다, 겨울 여왕님. 제가 뱀이랑 좀 사이가 안 좋아서. 알러지 있어요."

"그런 것 치고는 되게 잘 잡아먹으시던데."

"괴수들 잡아먹고 크는 괴인이니까요. 근데 여왕님, 그래서 약속대로 부군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시, 시끄러워요...! 설마 진짜로 아무것도 안할 줄은 몰랐다고요!"

지하 괴인 제국. 현재 여왕 멘붕 중.

"지휘관이 왜 우리를 돕고 지랄이야...."

"덕분에 우리도 싹 다 살아남았잖습니까. 거지같은 놈들은 뱀한테 잡아먹혀서 좆바리가 되었구요. 크허허!"

"...일단 나중에 다시 올게요. 지금 자리 오래 비울 수 없으니까."

"예, 예. 여왕님, 오실 때는 부군도 같이 데려오시지요. 크하하!!"

지하에는 두꺼비같은 인상의 남자와 누군가를 똑 닮은 여인의 대화만이 울려퍼졌다.

수 백마리의 자지무기 시체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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